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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을 고소한 선양시 파룬궁수련생 수십 명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0월 20일부터 선양시(瀋陽市) 각 현 지역의 공안국에서 선양시 관할 구역 내에서 원흉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이번 대규모적인 납치는 선양시 공안국 쉬원유(許文有)가 통일적으로 주도했다. 아래 원고를 보낼 때에도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허핑구(和平區)

10월 20일 저녁, 허핑구 난후(南湖)파출소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청중슈(程中秀)를 교란했고 문을 부수었다. 그 후에 또 두 사람이 문어귀에서 잠복 감시를 진행했다. 청중슈는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0월 20일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파룬궁수련생 왕야핑(王亞萍)이 허핑구 국가보안대대 경찰에 의해 허핑구 타이위안(太原) 파출소로 납치됐다가 그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10월 21일 저녁, 허핑구 국가보안대대에서 지셴(集賢) 파출소 경찰에게 지시를 내려 따로따로 여성 파룬궁수련생 3명을 납치했다. 그중 70여 세인 두 파룬궁수련생은 1시간 동안 불법 감금당한 뒤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50여 세인 마오쥐안(毛娟) 여사는 여태껏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10월 20일 저녁 8시, 허핑구 바징(八經)파출소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쉬펑셴(徐鳳先)의 집에 들이닥쳐 그를 강제로 끌고 갔다. 대략 1시간이 지나 풀어주었다. 이튿날 오후 4시 경, 경찰은 또 쉬펑셴의 집으로 가서 거듭 그를 납치하려 했으나 쉬펑셴에게 심각한 고혈압 증상이 있었던 탓에 그때 선양 적십자회 병원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다. 지금 이른바 보석 수속을 밟고 있다.

10월 22일 오후 10시경, 파룬궁수련생 훙루이성(洪瑞勝)이 허핑구 국가보안대대, 바징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10월 22일, 다둥구(大東區) 파룬궁수련생 왕징저(王靜哲)는 업무 단위 다둥(大東) 지방 세무국에서 허핑구 시타(西塔)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가택 수색을 당했고, 지금은 선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11월 2일, 선양시 제6인민병원 간호사 나옌(那燕)은 직장에서 선양시 허핑구 난쓰창(南市場)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지금 황구구(皇姑區) 싼타이쯔(三台子) 유치장에 불법 감금돼 있다.

11월 3일 이른 아침, 허핑구 파룬궁수련생 차오차이전(曹彩珍)은 병원에서 남편을 동반해 검사를 받을 때, 허핑구 타이위안(太原) 파출소 경찰에게 교란을 당했다.

황구구

10월 22일, 점심 12시 경, 황구구 파룬궁수련생 퉁리친(佟麗琴)이 집에서 랴오허(遼河)파출소 경찰에게 선양시 구치소로 납치됐다.

10월 22일 오후 5시 경, 황구구(皇姑區) 파룬궁수련생 두리제(杜麗傑, 여, 68세)가 집에서 시 국가보안경찰 2명에게 선양시 구치소로 납치됐다.

11월 1일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황구구 파룬궁수련생 왕리핑(王莉萍, 여, 64세)이 황구구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집에서 납치됐고, 아울러 가택 수색을 당했다. 지금 선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11월 1일, 황구구 샹궁가(向工街) 파룬궁수련생 류메이쥐안(劉梅娟, 60여 세)이 황구구 밍롄(明廉)파출소 경찰에 의해 그의 집에서 납치됐다.

황구구 파룬궁수련생 머펑위니(麼鳳雲)가 선양 제1구치소로 납치됐다.

위훙구(於洪區)

10월 22일 저녁 8시경, 파룬궁수련생 퉁리옌(佟麗豔)은 위훙구 위훙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아울러 가택 수색을 당했으며 또 선양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10월 28일 오전 9시가 넘은 시각, 파룬궁수련생 진리팡(金麗芳)이 위훙구 양스향(楊士鄉)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톄시구(鐵西區)

10월 21일, 22일, 선양 파룬궁수련생 왕위(王玉)가 톄시구 싱궁(興工) 파출소 경찰에게 전화로 교란을 당했다.

11월 1일, 톄시구 파룬궁수련생 허런(何仁)이 선양시 톄순(興順)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11월 2일 오후, 톄시구 파룬궁수련생 류웨이(劉偉)가 톄시구 칭궁(輕工)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지금 톄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하고 있다.

11월 2일 밤 9시 넘어서 톄시구 파룬궁수련생 옌펑진(閆鳳金)이 톄시구 톄시 파출소 경찰에게 선양 톄시구 구치소로 납치됐다.

11월 2일, 톄시구 파룬궁수련생 쑹샤오밍(宋曉明) 및 15세 딸이 교란을 당했다. 지금 이 대법제자는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다.

11월 3일 오후 10시, 톄시구 바오궁(保工) 파출소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주쥔(朱軍)의 집에 가서 교란을 진행했다. 톄시구 파룬궁수련생 진전훙(金振紅)은 톄시구 싱궁(興工)파출소 경찰에게 전화 교란을 당했다. 파룬궁수련생 추궈리(楚國立)는 톄시구 공안에게 교란을 당해 핍박에 못 이겨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1월 2일 저녁, 톄시구 신화(新華)파출소 경찰 류창스(劉長石)가 파룬궁수련생 젠위펑(簡玉鳳)의 집에 가서 교란을 진행했다. 그 후, 젠위펑(그리고 젠 씨의 딸이 있음)을 신화파출소로 납치했는데,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것 때문에 기록을 당했다. 그 후에 두 모녀는 밤중에 불법 감금당했다. 게다가 이튿날에 반드시 파출소로 가서 물건을 바치도록 위협을 받은 뒤에 석방되었다.

선허구(沈河區)

11월 2일 저녁 7시 넘어서 선허구 파룬궁수련생 류자쩌(劉家澤)는 선허구 후이궁(惠工) 파출소 경찰에게 교란을 받았다. 11월 3일 아침 7시, 류자쩌는 납치됐고 가택 수색을 당했다. 11월 4일, 선허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11월 2일 점심 쯤, 선허구 팡자란(方家欄) 지역 파룬궁수련생 궈슈원(國秀文)이 선허구 링윈(凌雲)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11월 3일, 선허구 파룬궁수련생 러우(婁)가 납치당했다.

다둥구(大東區)

12월 28일, 선양시 파룬궁수련생 왕솽(王爽)은 점심에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다둥구 원궁(文官)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지금 다둥구 바커수(八棵樹)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하고 있다. 선양 파룬궁수련생 양원제(楊文傑)는 5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하고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장나(張娜)는 보름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는데, 여전히 유치장에 있다.

10월 30일, 다둥구 창안(長安) 파출소 경찰은 민간항공원(民航院) 내의 한 여성 대법수련생(60세 쯤)을 납치했는데, 지금 선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다.

훈난구(渾南區)

11월 2일 오후 4시 경, 선양시 공안국, 훈난구 분국 및 각지 파출소 경찰이 훈난구 왕빈가도(望濱街道) 사무실의 구라쯔촌(古砬子村), 쩡쯔거우촌(曾子溝村), 싼자쯔촌(三家子村)의 파룬궁수련생 우롄잉(吳連英), 우롄전(吳連珍), 리수민(李淑敏), 쑨쭤웨이(孫作偉), 쑨루이제(孫瑞傑), 가오슈핑(高秀萍), 왕슈핑(王秀萍), 왕리차오(王立嬌), 쑨펑화(孫鳳華), 쑨위잉(孫玉英), 쑨바오런(孫保仁, 이미 집으로 돌아갔음), 허우수쿤(侯淑坤, 이미 집으로 돌아갔음), 리쯔샹(李自祥), 바이수쥐(白淑菊), 쩡셴즈(曾憲志), 진스난(金世男), 쩡슈샹(曾秀香), 싼자쯔촌의 이름을 모르는 노년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고, 아울러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그중 남성 파룬궁수련생 4명이 둥링(東陵) 구치소로 납치됐고, 그 나머지 파룬궁수련생은 선양시 구치소로 납치됐다.

쑤자툰구(蘇家屯區)

11월 1일 점심, 선양 파룬궁수련생 류톄스 및 그의 모친은 장쩌민을 고소한 것 때문에 각 자의 집에서 쑤자툰구 천샹(陳相)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리고 또 두 사람이 납치됐는데 구체적 신분은 상세하지 않다.

11월 2일 오후 5시 반, 쑤자툰구 파룬궁수련생 리청룽(李成榮), 창추란(常秋蘭), 창추위(常秋玉) 모녀 세 명이 쑤자툰구 천샹 파출소 경찰에게 교란을 받은 뒤, 파출소로 납치됐는데 모두 지금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11월 4일, 파룬궁수련생 스창링(石長玲)은 출근하다가 쑤자툰구 천샹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랴오중현(遼中縣)

11월 2일, 랴오중현 양스강쯔진(楊士崗子鎮) 파출소 소장 황스마오(黃世茂)가 경찰 몇 명을 거느리고 파룬궁수련생 9명을 납치했다. 게다가 파룬궁수련생에게 ‘연공을 하지 않는다’고 쓰도록 핍박했는데, 그제야 석방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중 한 사람은 풀어주지 않았다.

11월 3일 밤 10경, 랴오중현 샤오자이먼향(肖寨門鄉) 파룬궁수련생 양유보(楊有博), 사오잉후이(邵英彗) 부부가 랴오중현 샤오자이먼 파출소 경찰에게 교란, 납치를 당했다. 양유보는 4일 아침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고, 사오잉후이는 선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랴오중현 츠위퉈(茨於坨) 지역에서 몇 명이 장쩌민을 고소한 것 때문에 교란을 당했다.

11월 3일, 파룬궁수련생 주수셴(朱素賢), 무바오전(穆寶珍)이 교란, 납치를 당했다. 그날에 이른바 ‘반성문’을 쓴 뒤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11월 3일 점심, 선양시 파룬궁수련생 웨후이핑(岳惠平)이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11월 3일, 랴오중현 둥제(東街) 파출소 경찰이 파룬궁수련생 여럿을 납치했다. 게다가 파룬궁수련생을 유치장에 가뒀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건강 검진에서 불합격이 되어서야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런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파쿠현(法庫縣)

10월 23일, 파쿠현 예모타이진(葉茂台鎮)의 80여 세 노년 파룬궁수련생 인수셴(伊淑賢)이 파쿠현 예마오타이진 파출소 경찰에게 교란을 당했다.

10월 30일 저녁, 파룬궁수련생 천수펀이 양하이치(楊海奇) 등에게 파쿠현 국가보안대대로 납치됐다.

캉핑현(康平縣)

11월 1일 점심 12시 30분 경, 파룬궁수련생 양저후이와 남편 궈이(郭毅)가 캉핑현 전베이(鎮北)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11월 2일 저녁, 캉핑현 둥관향(東關鄉) 파룬궁수련생 왕야오원(王耀文), 징슈화(荊秀華)가 둥관향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11월 2일, 캉핑현 시관향(西關鄉) 파룬궁수련생 장구이샤(張桂俠)가 캉핑현 시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3일에 안유장(安有江)은 석방을 요구하러 갔다가 또 납치됐다.

파룬궁을 박해한 급선봉인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쉬차이허우(徐才厚), 왕리쥔(王立軍), 쑤룽(蘇榮), 리둥성(李東生) 등 일부 사람은 이미 낙마했는데, 표면적으로는 탐오, 부패로 낙마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파룬궁을 박해한 것 때문에 보응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끝이 아니다. 왜냐하면 핵심 죄악을 여전히 심리하지 않았고 아직도 맨 마지막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파룬궁을 박해하는 인원이 이 최후에 구도를 받을 기회를 다잡길 바라며, 상부에서 무엇을 시키면 무엇을 하고 기어이 일가족의 생명과 내기를 거는 나쁜 일을 끝까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신의 직무의 편리를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하는 것만이 밝은 길이다. 박해를 멈추고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첨부:쉬원유(許文有) 그 사람

사진 1

(사진 설명 1):쉬원유(許文有)

쉬원유는 수년간 형사경찰 업무에 종사했는데, 사악하고 악랄하다. 2002년에 안산에서 선양으로 가 랴오닝성 공안청 형사범죄사건 정찰총대대(偵察總隊) 총대대장을 맡았는데, 한 가지 중요한 임무가 바로 ‘중대한 파룬궁 사건’에 대해 탄압하는 것이다.

2004년에 발생한 ‘가오룽룽(高蓉蓉)의 얼굴을 망가뜨린 사건’이 폭로되어 해내외에서 충격을 받았는데, 쉬원유가 바로 정찰총대대 총대대장을 맡고 직접 가오룽룽의 행방을 추적 조사함을 책임졌다. 2005년 6월 16일, 랴오닝과 선양 경찰 측에서는 거듭 납치당한 가오룽룽을 죽여 입을 막았다. 가오룽룽은 ‘의과 대학’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 겨우 37세였다. 얼굴에는 상처투성이였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었다. 쉬원유는 ‘큰 공’을 세웠다. 2005년 9월 9일,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 뤄간(羅幹)과 공안 부장 저우융캉(周永康)이 직접 지명해 쉬원유를 전국 전형으로 수립했다.

2006년, 쉬원유는 랴오닝성 공안청 부청장으로 발탁되어 랴오닝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면서 저우융캉의 충실한 앞잡이로 전락했다. 그 후에 또 선양시 공안국 국장이자 선양시 부시장으로 발탁되었다.

2008년, 올림픽 전에 불법 대납치를 진행했는데, 적어도 파룬궁수련생 2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2013년 전국운동회 전, 선양시 공안국 국장 쉬원유는 또 ‘안정유지’를 진행한다는 이유로 파룬궁수련생을 대규모로 납치했다. 파룬궁수련생 수십 명이 납치됐는데, 어떤 이는 고문 학대를 당했다. 그중에는 ‘수사자 학교(雄獅學校)’의 30여 명 교사와 학생을 포함이 되어 있고, 구실은 ‘수사자학교 전통문화반’의 교사가 모두 파룬궁수련생이며, 파룬궁수련생이 학교를 세우는 것은 중공(중국공산당)의 현행 교육제도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었다.

2015년 8월, 파룬궁수련생 여럿이 장쩌민을 고소장이 반송되었고 현지 공안 파출소의 교란을 받았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쉬원유에게 우편으로 진상편지 및 장쩌민 고소 자료를 부쳐 그에게 빨리 깨닫도록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죄할 기회가 없다고 권고했다. 오늘날 쉬원유는 오히려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만 하며 박해를 주도하는데,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단지 천벌일 뿐이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 사례 총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8/3188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