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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캉핑현 백여 명이 소란, 납치당해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2015년 11월 5일, 캉핑현(康平縣) 전난(鎭南) 파출소에선 파룬궁수련생 장슈팡(姜秀芳), 푸리신(付立新) 부부를 납치했고 아울러 동시에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전베이(鎭北) 파출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 바이징제(栢敬傑)를 납치했고, 천위춘(陳玉春)은 샤오청진(小城鎭)에서 납치됐으며. 장리펑(張立鳳)은 11월 5일 아침 6시가 넘어서 집에서 납치됐고 컴퓨터 본체 두 대를 강탈당했다. 이 외에 또 그녀 남동생(속인)의 컴퓨터 본체도 동시에 강탈당했다.

요 며칠 캉핑현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대대적인 교란을 자행했다. 집에 없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경찰은 가족에게 이른바 ‘훈계서’를 주었으며, 어떤 파룬궁수련생 집 주변에는 잠복 감시하는 사복 경찰이 있었다. 현재 이미 알기로는 납치당한 대법제자가 12명으로 늘었고 교란당한 사람은 백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최근 캉핑 파룬궁수련생이 교란, 납치당한 상황이다.

2015년 10월 30일 저녁 8시 30분, 캉핑현 성리향(勝利鄉) 파출소장 저우즈(周志)는 경찰을 이끌고 성리향 원화촌(文華村) 파룬궁수련생 가오제(高潔)를 납치해 31일 낮에 선양(瀋陽) 유치장으로 보냈는데 5일 동안 구류 당했다고 한다.

2015년 10월 30일 저녁 8시 30분, 전베이 파출소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치리커(齊立科)의 집으로 가서 납치를 시도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었기에 박해를 면했다.

2015년 10월 30일 저녁 8시 30분경, 캉핑현 전베이 파출소 경찰이 파룬궁수련생 왕훙잉(王紅英)을 전베이 파출소로 납치한 후 왕훙잉은 심각한 질병 상태가 나타났다. 가족이 엄숙하게 석방을 요구하자 그날 저녁 왕훙잉은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2015년 10월 30일 저녁, 캉핑현 샤오청쯔(小城子) 파출소 경찰은 덩퉈즈촌(鄧陀子村) 파룬궁수련생 궈수샤(郭淑霞)의 집에서 납치를 시도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었던 이유로 박해를 면했다.밤 10시 30분경, 또 요우돤촌(腰段村) 파룬궁수련생 쑹지샤(宋紀霞)의 집으로 가서 소란을 피우며 이튿날에 다시 그녀 집으로 가서 납치하겠다고 큰소리쳤다.

2015년 10월 31일 오전, 캉핑현 얼뉴향(二牛鄉) 파출소 소장 등은 파룬궁수련생 양전위(楊振宇)를 납치했다. 알려진 바로는 파쿠현(法庫縣) 유치장으로 납치돼 5일 동안 구류 당했다 한다.

2015년 11월 1일 정오 12시 30분경, 캉핑현 전베이 파출소 경찰 대략 6명은 파룬궁수련생 양저후이(楊哲慧)의 집에 들이닥쳐 양저후이 및 그의 남편 궈이(郭毅)를 납치했다. 양저후이는 납치당한 후 그날 저녁에 캉핑현 전베이 파출소로 납치돼 선양 유치장으로 보내졌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 몸이 불합격이어서 이미 집으로 돌아왔다.

2015년 11월 2일 저녁, 캉핑현 둥관향(東關鄉) 파룬궁수련생 왕웨원(王耀文), 징슈화(荊秀華)는 둥관향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다. 시관향 대법제자 장구이샤(張桂俠)는 시관 파출소에 납치됐다.

11월 3일, 안유장(安有江)도 석방을 요구하러 갔다가 납치됐다. 시관툰(西關屯) 파출소 소장 류후이취안(劉慧泉)은 2011년 6월 1일 개발구(開發區)에서 파출소장을 맡았을 때 예전에 캉핑현 다오란촌(刀蘭村) 징융안(荊永安) 일가 네 식구를 납치해 그들에 대해 전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적이 있다. 그중 동시에 두 개의 전기봉을 사용해 20여 세인 징융안의 큰 딸 징단(荊丹)에 대해 전기충격을 가함을 포함한다. 11월 4일 저녁, 성리향 파룬궁수련생 바이징제는 전베이 파출소로 납치됐다.

(역주: 관련 박해 부서와 인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7/3187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