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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성 셴닝시 약제사, 장쩌민 고소 때문에 불법 체포영장 받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 보도) 쉬창훙(徐長虹, 48)은 후베이성 셴닝(鹹寧)중심 병원 퉁지(同濟)젠닝 병원의 한약방 약제사로, 직장에서 공인하는 성실하고 선량하며 근무에 열심히 책임지는 우수한 의료 근무자다.

2015년 7월 22일, 쉬창훙이 장쩌민을 고소한 고소장을 쓴지 1개월이 넘었는데 현지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특무 기관) 야오슝(姚雄), 국가보안 류닝(劉寧) 등 7~8명은 출근 중인 쉬창훙을 병원에서 직접 후베이성의 이른바 ‘법제교육센터’로 납치해 세뇌 박해를 가했다.

세뇌반에서 박해당한 기간 쉬창훙이 잔혹한 박해를 당해 거의 생명이 위급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족들은 마음이 무척 조급해 현지 ‘610’ 주임 야오슝을 찾아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야오슝은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한 ‘610’ 인원 천(陳)씨는 쉬창훙의 가족을 위협하며 그들을 쫓아버리겠다고 공갈 협박했다.

쉬창훙이 세뇌반에서 50여 일 동안 박해를 당한 후 후베이성 세뇌반, 현지 ‘610’ 인원은 젠닝시 검찰원과 결탁해 쉬창훙을 모함하려 음모해 9월 9일에 쉬창훙에 대해 불법 체포 영장을 발급했다. 게다가 쉬창훙의 가족을 속여 통지서 위에 서명시켰다. 지금 쉬창훙은 셴닝시 셴안구 구치소에 감금돼 있다.

취창훙은 파룬궁을 믿어 ‘진선인(眞ㆍ善ㆍ忍)’ 이념으로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됐는데 오히려 1999년 7.20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장쩌민 집단에 정신에서 육체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집안의 노인, 아내, 아이, 많은 친척은 심신에 극심한 시달림을 받았다. 특별히 아이는 어린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1999년 8월, 쉬창훙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진실한 말 한 마디를 했다가 젠안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는데 그때 아이는 한 살도 되지 않았다. 10월, 쉬창훙은 불법 노동교양처분 1년을 받았다.

쉬창훙의 아내 쑤샤오롄(蘇曉蓮)은 1999년 12월에 법에 따라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 한 마디를 했다가 13일 동안 불법 감금을 당했다. 불법 감금을 당하고 나온 뒤 당시의 직장 셴닝시 농업과학 연구소에서는 출근을 허락하지 않았고 또 생활비 한 푼도 지급해 주지 않았다. 아이는 연로하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부양하는 수밖에 없었다.

쉬창훙이 파룬궁을 견지했다는 이유만으로 2002년 4월에 쉬창훙은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퉁산(通山) 구치소로 납치돼 4개월 넘게 감금당했고 8월 말에야 석방됐다.

돌아온 이튿날 아내 쑤샤오롄은 우한(武漢) 여자 마약중독자 재활원으로 납치돼 2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2005년 9월 중순 어느 하루, 쉬창훙은 야근을 하다가 젠닝 석유화학 요양원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그 후 현지 ‘610’이 셴안(鹹安) 검찰원과 서로 결탁해 내린 불법 체포영장을 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 불법적인 3년 징역 판결을 당했다. 처음에는 한커우(漢口) 돤친커우(斷琴口) 감옥에 감금됐다가 그 후 샤양(沙洋) 감옥에 이송됐다.

감옥에서 3년간 잔혹한 시달림을 받고 석방된 뒤 쉬창훙은 여전히 끊임없는 현지 ‘610’의 괴롭힘을 받았다. 출근한 후 현지 ‘610’의 지시 때문에 병원 측은 어쩔 수 없이 쉬창훙에게 매달 노임을 1천 위안(약 18만 원)만 지급했다.

아내는 1999년 12월부터 2004년까지 직장에서 업무를 배치해주지 않았고 생활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14년 3월 28일 오전, 셴닝시 ‘610’의 야오슝(姚雄), 국가보안 저우이(鄒譽), 류닝(劉寧) 등은 출근 중인 쉬창훙을 후베이성 법제교육센터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를 진행했다. 며칠 뒤에 또 아내 쑤샤오롄을 후베이성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를 진행했다. 아이는 학교로 다녀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고 핍박에 못 이겨 친척 집에 임시로 거주했다.

쉬창훙은 집으로 돌아온 후 끊임없이 현지 ‘610’의 공갈 협박을 당했다. 2014년 12월, 후베이성 세뇌반 허웨이(何偉) 등 4명은 현지 ‘610’의 야오슝, 류닝과 결탁해 쉬창훙이 출근하는 병원으로 가서 쉬씨를 위협하며 협력하지 않으면 다시 납치해 세뇌반으로 보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쉬창훙은 매번 납치를 당할 때마다 모두 직장에 출근하고 있었다. 보위과의 탕(唐) 과장은 99년 7.20부터 지금까지 이 일체 사실을 목격했다. ‘610’ 인원은 매번 먼저 열쇠를 빼앗고는 또 병원 보위과에서 그들과 함께 가서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하도록 위협했다. 매번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사사로이 민가에 들이닥쳐 거주지를 뒤집어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놓았다.

각각 2005년 9월, 2014년 3월, 2015년 7월 22일에 3차례나 불법 가택수색을 진행했는데 차례로 집안의 컴퓨터 3대, 1만 위안(약 180만 원)이 넘는 현금, 대법 서적, 휴대폰, MP4, 옷, 방석 등 개인 물품을 모두 강탈했다. 가족은 빼앗긴 물품에 대한 어떠한 명세서나 수색영장 등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매번 이 무리들은 모두 사복을 입었고 또 강탈해간 열쇠마저 지금껏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 무리 사람들은 국가 법률을 어겼고 불법 납치죄, 강탈죄, 사사로이 민가에 침입한 죄, 불법 구금죄 등을 저질렀다. 당연히 엄벌을 받아야 가장 마땅한 죄악의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은 이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공무원들에게 죄를 저지르게 했고, 그들로 하여금 보잘것없는 이익과 승진을 위해 가장 보귀한 양심을 팔아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게 했다.

시간은 이미 16년이 지나갔다.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는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생은 여전히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마음을 품고 이성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진술해 사람들의 양심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진심으로 여전히 협박을 당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공무원들이 선악을 분명히 구분하고 인과응보가 있음을 알며 저우융캉(周永康), 리둥성(李東生), 보시라이(薄熙來), 왕리쥔(王立軍), 쉬차이허우(徐才厚) 등의 뒤를 따라 걷지 말며 장쩌민을 뒤따라 함께 역사에 의해 도태되지 말기를 바란다.

16개의 춘하추동은 파룬궁수련생이 감당한 극심한 고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민중의 양심 소생을 수반하며 조용히 지나왔다. 당시 슬피 울던 아이들은 어른이 됐다. 쉬창훙의 아이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 가정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장하는 기간에 공포, 슬픔, 빈곤을 겪었고 또 언제 아빠, 엄마가 보이지 않거나 혹은 집안이 언제 또 불법 가택수색을 당할지 몰랐다.

기쁘고 위안이 될 만한 것은 주변 민중이 그래도 정의감이 있다는 것이다. 전 셴닝시 농업과학 연구소의 많은 사람과 정의감 있는 기타 사람들이 쉬창훙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구원의 손길은 내민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아이를 담당했던 모든 교사들은 모두 아이의 부모의 믿음 때문에 그를 차별하지 않았고 반대로 쉬창훙의 아이는 정직하고 선량하며 동정심이 많은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파룬궁수련생은 선량한 민중에게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지금 전 세계에는 장쩌민을 고소하는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 민간에는 ‘선악에 인과응보가 없다면, 건곤에는 반드시 사심이 있다(善惡若無報,乾坤必有私)’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공동으로 천상의 변화에 순응해 하루 빨리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이번 유혈 박해를 끝내고,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존엄 있는 사회에서 생활하도록 하자.

여러분께서 파룬궁수련생 쉬창훙, 타오시전(陶席珍), 허구이훙(何桂紅)을 도와 대책을 세워 구원해 주시기 바란다.

(역주: 관련 박해 부서와 인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0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12/3174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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