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기자 종합보도)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5월부터 8월 9일까지 산둥(山東) 지난(濟南)시에서 총 915명(746 건)이 최고인민검찰원, 법원에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형사고소장’을 받았다. 그중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일주일 사이에 106명(97건)이 장쩌민을 고소했다.
이 파룬궁수련생들은 사회 각계에서 왔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었다는 이유로 납치, 가택 수색, 노동교양, 불법적인 판결을 당한 것이다. 불법적인 감금 중에 전기 충격을 당했고 각종 고문 등 박해를 당했다.
피고인 장쩌민은 1999년 7월 20일에 광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진행해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맞아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하라’는 등 소멸 정책을 집행해 무수한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에게 극심한 상처를 주었다.
8월 13일까지 밍후이왕에서는 이미 총 14만 6천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 최고인민법원, 공안부 등 관련 부서에 넘긴 장쩌민 고소장 사본을 받았다. 인터넷 봉쇄와 정보 전달이 불편한 이유로 실제 수치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시 리청구(歷城區)의 쉬옌훙(許延紅) 수련생은 말했다. “수련 전에는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아 온몸이 그야말로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어서 모든 것을 원망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제 가슴 속의 짙은 안개가 걷혔고 또 온몸에 병이 없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언니는 그런 잔혹한 박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마음을 어기고 수련을 포기했습니다. 원래 파룬궁 수련 때문에 몸이 건강하고 활력으로 가득 찼던 언니는 지금 불치병에 걸려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해 너무도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장쩌민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 발동한 이번 재난에서……우리는 정상적인 수련의 환경을 잃었고……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해 때문에 수련을 포기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세인이 거짓말을 정말로 믿고 수련에 들어설 수 없었는지. 심지어 어떤 이는 또 악의적으로 우리 대법제자에 대해 고발,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가한 것으로 인해 대법에 대해 죄를 저질러 자신의 장래에 나쁜 결과를 심었으며, 또 우리와 가족에게 정신적으로 극심한 상처를 조성했습니다. ‘진선인’에 대한 이번 박해는 사람의 양심을 타락시켰고 사람의 선념을 철저히 잃게 했으며 사람의 도덕적 최저선을 파괴시켜 세인들을 위험한 상태로 밀어 넣었습니다.”
산둥 대학 퇴직 노동자 수련생 정잉(鄭穎)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4년 9월 25일, 리샤구(歷下區)와 직장 내 610은 또 강제로 나를 지난 장수이취안(漿水泉) 여자 노동교양소로 압송해 전향 세뇌를 시켰다……욕설을 퍼붓고 구타하고, 공갈 협박했으며 또 장시간 수면 박탈을 시키는 등 일련의 비인간적인 고문과 학대를 진행했다. 2005년 5월 4일, 나는 식물원에서 파룬따파 진상을 알리다가 지난(濟南) 구치소로 납치됐다.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사인 침대(死人床) 위에 꼬박 4일 동안 묶여있었는데 줄곧 온몸이 부어올라 마치 식물인간처럼 지각을 잃을 때까지 묶여있었다……”
고문 재연: 사인 침대(死人床)
“2005년 6월 3일, 리샤구 610의 리둥팡(李東方)은 쑨후이(孫輝)와 결탁해 또 나를 지난 장수이취안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해 1년 9개월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당시 내 몸은 극도로 허약했으나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교도관은 여전히 나를 스팀 파이프 위에 하루 종일 매달아놓았다.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나는 노동교양소에 납치당한 이튿날 국무원과 인민대표대회에 편지를 써서 내가 박해당한 진실한 사실을 반영했다. 악독한 교도관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나를 일종의 천 끈[그들은 ‘속박대(束縛帶)’라고 함]으로 스팀 위에 묶어놓고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으며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줄곧 7월 9일까지 묶어놓았다. 1개월 넘는 사이에 끈을 풀어주는 시간은 아주 적었다……박해로 거의 사람 모습을 잃을 뻔 했다……”
지강(濟鋼)집단 유한회사의 70세 왕메이란(王美然) 노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3년, 남편은 집에서 수련생과 텔레비전을 보다가 신고를 당했고, 아울러 바오산(鮑山)분국 파출소에 의해 강제로 바오산 분국으로 납치돼 3일 동안 전향 세뇌를 당했다. 그 기간 경찰은 남편에 대해 능욕을 가했고 공갈협박하면서 또 헐뜯었는데 그에게 정신적 시달림과 고통을 조성했다. 10여 년 동안, 남편 왕창하이(王長海)가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지강파출소, 가족 위원회, 직장에서는 늘 집으로찾아와 괴롭히거나 전화를 걸어 괴롭히며 우리 가족과 연락하는 사람들을 감시했다. 박해가 광적인 시기에는 차를 몰고 집 주변에서 연속 24시간 동안 감시를 진행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정신적 시달림과 박해를 가했다. 이로 인해 줄곧 심신이 건강하던 남편은 점차 허약해져 어찌할 방도가 없게 됐다. 결국 2011년 7월 3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지난시의 74세 마수잉(馬素英)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3년 3월 30일, 우리 두 부부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에 급히 가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바로 이때, 지난시 리샤구 분국 형사경찰대대에서 5~6명이 왔는데 경찰차를 몰고 우리 거주지를 포위해 납치하려 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어머니의 장례를 막 처리하고 도처에서 유랑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해 많은 거짓말을 조작해 많은 현지 주민은 진상을 똑똑히 가리지 못한데다 또 두려워 우리에 대해서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고 바른 시각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두 부부도 이러 저리 숨으면서 이곳에서 이틀을 머물고 저곳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바른 믿음을 잃게 했는데 또 무슨 존엄과 자신을 말할 나위가 못됐다. 이렇게 바로 3년 6개월을 보냈다……지난시 형사경찰대대 부대장 리둥팡도 우리에 대한 박해를 느슨히 하지 않고 아이가 그들을 찾아 우리 두 노부부의 일을 교섭하려 하는 기회를 이용해 갈취했다. 일 년 사이에 각종 크고 작은 명절, ……아이에게, 돈으로 그들 사건처리팀 사람마다 구매카드 한 장를 주도록 했는데 한 장에 3천 위안(약 54만원)이었다. 이 일 년 사이만 해도 5~6만 위안(약 900~1080만원)을 갈취했다.”
36세인 장톈제(張天傑)의 일가족 여러 사람은 잔인한 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고소장 중에서 말했다. “아버지 장위탕(張玉堂)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원래의 요추디스크 등 각종 질병이 모두 나았고 무척 급하던 원래 성격도 없어져 매일 늘 얼굴에 미소를 띠었는데 친구, 친척, 이웃마저 그가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집 다섯 식구는 매일 즐겁게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1999년에 장쩌민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여러 차례 납치돼 판결을 당하셨다. 그 기간에 각종 고문 학대를 감당하셨다. 집은 경제 문제에 직면해 남동생은 이로 인해 학업을 그만뒀다. 모친은 하루 저녁 사이에 머리가 많이 희어졌고 매일 눈물로 보내며 물만 약간 마실 뿐 밥도 드실 수 없었다. 2000년도에 지시(雞西) 구치소에서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부친의 병세가 위중하므로 오라고 했다. 나와 어머니, 남동생은 무거운 심정으로 차를 타고 지시로 갔다. ……아버지는 들것에 들려 나왔는데 눈을 감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것을 예전에는 단지 듣기만 했을 뿐 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를 보고나서 나는 무엇이 ‘피골이 상접하다’는 것인지 알았다. 원래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어떻게 이 모습으로 변했는가? 맨 마지막까지도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했고 한 마디도 하지 못하셨다. 우리 가족은 그저 우는 수밖에 없었다. ……2005년에 아버지가 결국 감옥에서 돌아왔을 때는 원래 행복하던 가정은 이미 산산이 흩어졌는데 당시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여러 차례 우여 곡절을 거쳐 어머니가 돌아왔고 남동생도 돌아왔다. 그러나 2014년 4월에 사복 경찰 몇 명이 우리 부모님 댁에 들이닥쳐 다시 부모님을 납치했다. 아버지를 지금까지 감금하고 석방하지 않고 있다. 1년 넘는 박해로 아버지는 또 몸이 매우 허약해지고 피골이 상접해지셨다. 구치소 안에서 여러 차례 중풍 증상이 나타났다. 2015년 6월 29일부터 30일 사이에 또 아버지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30일에 개정할 때 아버지는 들려서 법정에 들어오셨는데 이미 혼수 상태였다. 그러나 법원 측은 여전히 재판을 진행했는데 법원 사람은 재판 조건에 부합된다고 말했다.”
지난시 리샤구 66세인 사오빙주(邵炳柱)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8년 3월 22일, 올림픽 전야에 나는 톈차오구(天橋區) 반차오(板橋) 재래시장에서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리다가 반차오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 납치를 당했는데, 그날 저녁에 지난시 구치소로 보내졌다. 일주일 감금된 후, 장추(章丘)시 관장(官莊) 산둥성 남자 제2노동교양소 8대대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매일 바오자(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가 강제로 학습, 세뇌를 시키며 저녁 12시 전에 잠을 못자게 했고, 매일 강제로 10여 시간 노동을 시키는 시달림을 가했는데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체벌을 받았다. 급식은 매우 나빴다. 매일 짠지를 먹었고 동과국을 마셨는데 배불리 먹지 못하게 했다.”
지난시 리청구 화가이자 상인인 왕원쥐(王文菊)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1년 정월 17일 영업시간에 우리는 또 납치됐다. 나는 경찰에 의해 강제로 지난시 류창산(劉長山) 구치소로 납치돼 28일 동안 감금됐는데 강제 전향 시달림을 당했다. 그 후 또 중궁진(仲宮鎮) 슈촨(繡川) 후이셴산(會仙山) 세뇌반으로 보내져 보름 동안 박해를 당했다. 그 기간에 강제 노동을 당했고 대법을 비난하는 거짓말을 주입 당했으며 설교를 받았다. 게다가 가족, 친척에게 재물을 갈취했다. 남편은 강제로 중궁진 슈촨 정신병원에 갇혀 근 2개월 동안 시달림, 박해를 당했다.”
지난시 스중구(市中區)의 60세 무수핑(穆書平)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5년 6월, 양계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바이마산(白馬山) 파출소의 자오웨이(焦偉), 딩다하이(丁大海), 촌위원회의 쌍하이(桑海) 등은 강제로 나를 류창산(劉長山) 세뇌반으로 납치해 30일 동안 불법 감금했다.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해 우리 가정에 정신적, 경제적으로 모두 매우 큰 손실과 피해를 조성했다. 당시 우리 집 양계장에는 2천여 마리의 닭이 있었다. 매일 250여 근의 계란을 거둬들였는데 간접적인 손실은 계산하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손실만 4만 5천 위안(약 800만원)에 달했다.”
지난시 톈차오구의 63세 두수잉(杜書英)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2005년 12월, 나는 친정집 인근 마을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사람에게 고발을 당해 지난 가오신구(高新區) 경찰에 의해 지난 구치소로 납치됐다. 이튿날 우리 집을 수색해 파룬궁 서적을 전부 수색해갔다. 일주일 뒤, 나는 지난시 제1여자노동교양소에 갇혀 1년 동안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매일 우리에게 노동을 하도록 핍박했는데 매일 10여 시간을 했다. 심지어 20여 시간을 하여 마찰로 손에 두터운 굳은 살이 생겼고 지쳐서 손뼈까지 아팠다. 내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것 때문에 며느리와 아들은 이혼했다. 아내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던 이유로 고혈압, 심장병에 걸려 매일 약으로 유지하였고 매우 고통스러웠다. 멀쩡하던 한 가정이 박해로 엉망으로 뒤얽혔는데 말하자면 정말 고통스럽다! 이것은 모두 장쩌민 박해집단이 저지른 범죄 증거다!”
문장발표: 2015년 8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8/16/3141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