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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무 책임자가 박해 원흉 장쩌민을 고소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광둥 보도) 리단(李丹)은 선전(深圳)의 한 회사 전 재무 책임자였다. 그녀가 파룬궁수련자라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 납치당했다. 직장에서 해고당해 경제적인 내원이 끊기고 수년간의 박해로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이 일체는 장쩌민이 발동한 파룬궁에 대한 박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리단은 박해 원흉을 고소해 빼앗긴 재산과 경제적인 손실을 배상하고 개인의 명예와 가족들의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1. 리단의 박해상황

내 부모님은 1994년 파룬궁을 수련해 온몸의 병이 완치되어 전혀 돌봐드릴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은 오히려 아이를 돌보고 가정일을 도와주셨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법수련의 기적을 목격했다.

2008년, 나도 대법을 수련하는 길에 들어섰다. 수련 중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래 있었던 모든 질병이 전부 사라졌다. 또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많은 도리를 깨닫도록 가르쳤다. 반드시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하 생활하고 일을 처리하며 일사일념은 선타후아(先他後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살아있는 참뜻으로, 이렇게 해야 만이 대법에 동화된 생명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건강해지고 성격도 변화되어 화를 내지 않고 아이도 정성껏 돌보고 직장에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책임을 다했다. 동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자원해서 도와주어 상사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았다.

2011년 8월, 선전에서는 ‘세계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하려 했다. 이러한 세계대회를 앞두고 나는 2011년 3월 26일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하고 납치당해 4월에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광둥(廣東) 싼수이(三水) 여자 노동교양소로 보내진 그날, 싼수이 노동교양소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혈색소가 정상인의 절반도 되지 않은, 겨우 5그램밖에 되지 않은 심각한 빈혈 증상을 발견했다. 수감을 거부당해 선전 난산(南山) 구치소로 되돌려 보내진 뒤, 시 ‘610’은 여전히 각종 구실로 7월까지 불법 감금시키고 풀어주었다. 이 일체는 나의 심신, 가정, 경제, 명예에 예측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그해 내 딸은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어머니가 감옥에 갇혀있어 아이는 심리적 불안으로 공부를 놓아버려 고등학교도 떨어져 앞길을 잃어버렸다. 지금 딸은 온종일 컴퓨터 게임으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다. 나의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그는 20여 명의 사람이 불법으로 가택 수색 하는 과정, 사랑하는 엄마가 사람들에게 강제로 압송되어 가는 참상, 이웃이 둘러싸고 구경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심리적인 충격으로 어린 아들은 미로에 빠지고 말았다. 이 일을 당한 후 성적이 곤두박질쳐 3등에서 20등으로 미끄러졌다. 선생님은 학기 말 평어에서 마치 미로에 빠져 방향을 잃은 새끼 양과 같다고 했다. 아들은 집안의 변고에 대해 감히 친구들과 선생님께 언급하지 못했다.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는 말없이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 말아야 할 극심한 인생의 압력을 감당했다. 부모님은 백방으로 호소하고 석방을 요구하러 다니느라 어린 손자를 정상적으로 돌볼 수 없게 되어 스스로 혼자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고 잠을 잤는데 너무 불쌍했다. 70여 세인 나의 부모님은 외동딸이 불법적인 박해를 당하고 있어 날마다 눈물로 보내며 심각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 부축하며 관할 구역 파출소, 가도 주민위원회, 난산 공안 분국, 시 공안국, ‘610’ 사무실, 노교제도위원회 등으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급하고 지치고 화가 나서 중풍에 걸려 스스로 생활할 수 없고 사유도 똑똑하지 못하다. 80세에 가까운 아버지는 안겨서 내려오고 안겨서 올라가며 밥을 먹이고 화장실로 가고 목욕을 시키는데, 매우 수척해지셨다.

나는 2011년 11월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에서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해고해 나의 경제 내원을 끊었다.

나는 부득이 2012년 3월 새로운 직장을 직접 찾아 가정의 경제적인 부담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2년, 18기 인민대표대회를 앞둔 10월 17일 또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여러 명의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인원이 집안에 들이닥쳐 가택수색하고 캐물었다. 2012년 10월 4일 또 관할 지역 파출소, 안정유지 사무실, ‘610’의 인원 4명이 불법으로 내 집에 들이닥쳐 억지로 나를 세뇌반으로 납치하려 했는데, 당시 아들의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가야 했기에 그들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갔다.

2013년 3월 15일, 아이를 학교 보내려고 문을 열자 사전에 매복해 있던 20여 명의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어떠한 증명서도 보이지 않고 집안에 들이닥쳐 함부로 가택수색을 해 재물을 포함한 많은 개인 물품을 강탈해 갔는데 전 가족의 어른과 아이는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이 한 무리 강도가 강탈하는 행위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또 같은 날 나를 회사 사무실로 찾아와 수사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한 무리의 사람은 떠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하루, 내가 출근하는 도중 또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세 사람이 갑자기 뛰어나와 강제로 차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 휴대폰을 강탈하고는 시리(西麗) 세뇌반에 불법 감금했다. 나는 이런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단식으로 항의했고, 큰소리로 외쳐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하는 이런 비인도적인 악행을 멈추도록 했다! 며칠 동안 불법 감금당한 뒤 석방했다. 강제로 회사에서 수사를 받고, 또 갑작스럽게 감금당해 직장 내에 극심한 공포를 조성했다. 비록 내 업무 능력이 탁월하다고 인정할지라도 그들은 부득이 나를 해고 시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듭 경제 내원을 잃었다.

2. 리단이 박해 원흉을 고소

법치 국가에서 헌법이 부여한 권리인 신앙의 자유, 언행의 자유를 행사한 것은 어떠한 범법행위도 없는데 나는 여러 차례 불법적인 가택 수색, 불법으로 개인의 재산을 강탈당했고, 불법감금, 불법미행, 불법감청 등의 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심신의 자유를 잃고 직업을 잃었으며, 경제 내원을 잃고 명예를 실추당하고 각종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 가정과 아이들 부모님께 메울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나는 장쩌민의 이기적인 질투심에서 국가 선전기구와 공,검,법 기관을 이용해 불법적인 ‘610’을 조직한 것을 고소한다. 16년 동안 일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한 한 무리의 맨주먹인 수련하는 단체에 대해 법을 어겨 파룬궁을 모함하고 획책하고 조직하고 관리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사실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한다. 그리고 내 개인 재물을 되돌려 주고 경제적 손실과 명예를 회복시키고 가정의 심각한 피해를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1/3128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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