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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사경을 헤매는 상하이의 차오웨링 어머니, 장쩌민을 고소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상하이 보도) 상하이 파룬궁수련생 차오웨링(37세)이 지난 4월 2일 로시먼 파출소 경찰에 납치되어, 푸둥 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경찰이 자백을 강요하며 자행한 고문으로 지병이 도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에 차오웨링의 어머니 천옌(65세)은 6월 5일 고향 랴오닝 푸순시에서, 자신을 비롯 선량한 딸과 가족을 박해한 장쩌민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최고 검찰원과 법원에다 서면으로 제출했다.

陈岩的控告书的回执

고소장을 부친 영수증

차오웨링은 대법을 수련하기 전인 2000년에 질병에 걸렸다. 온몸에 기운이 없고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었고,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면서 두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심지어 잠잘 때 두 눈알이 눈까풀 밖으로 튀어나와 생활하기조차 힘들었다. 당시 그녀는 쌍둥이 아들까지 있어 매일 고통 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상하이와 동북 종합병원은 저칼륨혈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녀는 그 외에도 여러 질병을 앓아 약물로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온몸의 병이 사라졌고 머리카락까지 모두 자라났다.

2015년 4월 2일 상하이 로시먼 파출소 경찰은 그녀를 납치, 불법가택수색 후 황푸구 구치소에 구금했다. 황푸구 국보(國保) 경찰의 모함으로 황푸구 검찰원은 그녀에게 체포령을 내렸다.

초등학생인 그녀의 쌍둥이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로시먼 파출소는 집주인에게 그녀에게 집세를 놓지 말라고 말했다. 구치소에서는 1달 구금 기간인 날짜조차 어긴 채 그녀에게 ‘범죄 무리’를 대라고 협박하며 고문을 가했고, 그녀는 결국 지병이 도져 사경을 헤매다 현재 푸둥 구치소 산하 병원에 있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개인적으로 헌법을 짓밟고, 국가의 모든 기구와 권력을 동원해 파룬궁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하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집단학살의 국가 테러리즘 정책을 했다. 그리하여 수천만 파룬궁수련생이 불법 구류,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졌으며, 폭행치사 당하거나 불구가 되었다. 또, 가족이 흩어져 유리걸식하는 등, 억만 파룬궁수련생의 친척, 친구, 동료, 직장이 연좌제로 고통당했다. 전 중국인은 거짓말에 세뇌당했는데, 그녀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1. ‘610’ 남편 부대 등이 서로 결탁하여 재물을 강탈하다

2012년 11월 5일 차오웨링은 자택에서 바오산구 옌장 파출소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프린트, 컴퓨터, 현금 등을 강탈하고는 바오산구 구치소에다 그녀를 감금했다. 구치소 경찰은 ‘610’의 조종으로 승진과 돈벌이 수단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그녀를 박해해서 가정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차오웨링이 납치되었을 때 그녀의 남편(둥하이 함대 주상하이 1대대)은 외지에 출장 간 상태였다. 차오웨링의 친정부모는 즉시 변호사를 찾았는데, 변호사는 파룬궁 관련 안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2배의 가격을 요구했고, 변호사 사무실 3곳 모두 그 가격을 주지 않으면 수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파룬궁 안건에 대해서는 상부에서 받지 못하게 하니까 위험을 고려해 수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름이 지나도록 출장 간 사위가 안 오자 그녀의 부모님은 사위 직장에 찾아가 저우타오 정위(정치위원)를 만났다. 그는 이미 정황을 다 안다면서 차오웨링의 일을 처리하려면 선물이 2만 위안(약 360만 원) 넘게 드는데 부대에서 지출할 수 없다며 돈을 내라고 말했다. 장쩌민이 만든 ‘610’ 불법조직은, 변호사, 부대 지도자와 결탁해 그녀를 미끼로 온갖 수단을 다 부렸다. 거짓을 꾸며 점점 심하게 돈을 달라고 종용하여 층층의 ‘구미’를 만족하려 했다. 차오웨링이 불법 감금된 6개월 만에 그녀의 남편은 10만여 위안(약 1,800만 원)을 약탈당했다.

2. 연좌 박해에 시달린 군인 남편, 결국 이혼을 요구하다

차오웨링이 박해당하기 전, 그녀의 남편(지금은 이미 이혼)은 부대에서 소위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부대 대장급이었고 연대장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차오웨링이 납치되어 박해받으면서부터 곧장 업무정지를 당한 그는 매일 출근해도 할 일이 없었다. 웅대한 뜻을 품었던 젊은 그에게는 어떤 시련이었을까? 하루 종일 걱정과 한숨으로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두 달 후 부대에서는 남편에게 퇴역 신청하도록 요구하면서 일자리를 찾는 데 1년의 기한을 주겠다고 했다.

2014년 10월 그녀의 남편은 중공의 참혹한 박해에 못 이겨 결국 이혼을 택했고 두 아들은 그녀에게 주었다. 행복했던 가정이 장쩌민, ‘610’ 일당의 폭행에 산산조각이 났는데 지금도 이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상하이 푸둥 구치소에서 당한 고문으로 지병이 도져 혈색소가 2g밖에 남지 않을 만큼 생명이 위독해서 구치소 산하 병원에 보내졌다.

그녀의 무고한 두 아이는 만 10살밖에 되지 않았고 알레르기 천식을 앓는다. 매달 발작을 일으키는데, 발작할 때마다 한 발자국도 걷지 못했다. 2012년 그녀가 구치소에 붙잡혔을 때 두 아이는 갓 1학년에 입학한 상태였다. 엄마가 구금된 상황을 알게 된 아이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늘 엄마가 언제 돌아오는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지? 라고 물었다. 학교 선생님은 이들 부부가 돈을 보내지 않자 늘 아이들에게 벌을 세웠고 훈계가 끊이지 않았다.

3. 파산된 경제

차오웨링은 2012년 11월에 붙잡힌 후 집행유예 3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 5월 22일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6개월 불법 감금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몸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녀는 집행 유예 기간에 일자리 4곳을 알아보았지만, 그녀가 대법을 수련하는 데다 판결을 받았다고 모두 거절당했다. 그녀는 살기 위해서 대법을 수련해 심신이 건강해졌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인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1999년 6월 10일 장쩌민은 개인 의지와 독재 권력으로 중국대륙에다 ‘610 사무실’을 전국적으로 만들었다. ‘610 사무실은’ 헌법과 법률을 능가했고, 테러리즘 조직인 나치스 ‘게슈타포’와 비슷했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비밀 임무를 집행했는데, 이번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추진하여 실행한 불법기구이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장쩌민은 ‘610 사무실’에 계통적으로 ‘쩐싼런(眞善忍: 진선인)을 견지하는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정책을 집행하도록 명령했다. 천옌과 딸 차오웨링은 바로 이런 정책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함께 장쩌민을 고소한 것으로, 장쩌민을 법에 따라 처리하길 바라고 있다.

문장 발표: 2015년 6월 15일
문장 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15/3109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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