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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저우 파룬궁수련생 6명, 여전히 구치소 감금 박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간쑤보도) 간쑤 성(甘肅省) 란저우 시(蘭州市)의 파룬궁수련생 투위춘(塗玉春), 자오리리(焦麗麗), 왕위룽(孟玉榮), 두수전(杜淑珍)은 란저우 시 공안국 26처(또 ×교과라고 부름, 중공이야말로 진정한 사교임)에 의해 2014년 9월 15일 집에서 납치된 후 현재까지 란저우 시 제1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어 있다.

孟玉荣

멍위룽

王毓蓉

왕위룽

파룬궁수련생 5명이 납치된 후 가족은 심신에 큰 상처를 받았으며, 수련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2015년 5월 12일, 어떤 가족이 청관 구(城關區)로 가서 자신의 가족이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를 묻자, 법원 측은 “파룬궁수련생 5명의 서류를 청관 검찰원으로 반송했습니다.”라고 했다. 가족이 검찰원으로 다그쳐 가서 상황을 묻자, 검찰원에서는 “법원에서 서류를 검찰원으로 반송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는 공안기관에 서류를 가져가라고 통지했습니다.”라고 했다. 5월 15일 아침, 가족은 또 란저우 시 공안국 26처로 가서 서류에 관해 묻자, 공안기관에서는 서류에 관한 통지를 받지 못했으며, 서류는 공안기관에 없다고 말했다. 가족이 검찰원으로 찾아가자, 검찰원에서는 변명하며 서류가 공안기관에 도착했다고 했다. 두 개의 사법부서는 이런 식으로 파룬궁수련생의 가족을 이리저리 밀었는데, 결국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가서 보라고 했다.

란저우 제1 구치소의 노역은 주로 자동차용 매트를 재봉하는 일이었다. 몸이 불편한 투위춘을 제외한 나머지 파룬궁수련생 4명은 강제 노역했다. 한 사람에게 적어도 하루에 매트 3개가 할당됐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사람은 저녁에 당직을 서야 했다(저녁에 서서 당직을 서고 잠을 자지 못했는데,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두 시간 동안 당직을 섰으며, 한 팀에 두 사람이었음). 만약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곧 체벌 받아 당직을 서야 했는데 잠자지 못하게 했다. 여름엔 아침 5시 40분, 일어나서 6시 30분부터 일해야 했다. 겨울엔 6시 20분에 일어났는데, 임무가 많을땐 6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했다. 가장 늦게는 7시부터 일을 했다. 구치소 14대(隊)의 임무가 비교적 많았다. 일이 있을 때면 일하고 일이 없을땐 방안에서 군대 훈련, 달리기 등을 해야 했다. 급식은 좋지 않았다. 아침에는 옥수수가루로 쑨 죽이었고, 점심에는 끓인 채소와 만두였다. 2014년 연초에는 우연히 급식을 한 번 개선해 고기를 좀 넣었으나, 그 후에는 고기를 보지 못했다. 어떤 때는 구치소에서 일이 아주 많아 점심때 밥을 주지 않고 만두 몇 입만 먹게 하고는 계속 일을 시켰는데, 이런 경우가 많았다.

사정을 아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투위춘은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어 있을 때 연공과 법 공부를 할 수 없었기에 현재 당뇨병과 고혈압이 나타났으며 심전도가 비정상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뇨병 합병증이 나타나자 구치소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2015년 4월, 투위춘을 다사핑(大砂坪) 노교병원으로 보냈다. 투위춘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자 또 구치소로 보내져 계속 불법 구금되었다. 지금 등에는 커다란 혹이 생겼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자오리리가 구치소에 불법 감금된 8개월 동안, 그녀의 모친은 딸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약으로 수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3월의 어느 날, 딸을 그리워하던 노인은 설을 쇨 때 부주의로 약을 너무 많이 마셨다가 아들, 딸들에 의해 란저우 모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처치를 받았다.

왕위룽은 강제노역을 하는 중 눈이 보이지 않아 가족이 안경을 사서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구치소에서 정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걸핏하면 체벌 받아 저녁 내내 서 있어야 했다.

멍위룽 역시 강제노역 했는데, 그의 아내와 부모는 매우 걱정했다. 외아들이었던 멍위룽의 딸은 겨우 5세였는데 사람을 만나면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할머니는 “아이가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집에서 늘 엉엉 웁니다. 늙은이와 아이는 가족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했다. 멍위룽의 장인은 4월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겹친 격이 된 그의 아내는 날이 갈수록 초췌하고 수척해졌다.

두수전은 치아가 좋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구치소에서는 그녀에게, 일하는 사람에게 바늘과 실을 나눠주고, 물을 부어주는 일을 시켰을 뿐이었으나, 그녀는 장기간의 영양실조로 매우 수척해졌다. 가족이 라면을 보냈으나, 구치소에서는 끓인 물의 양을 제한했기에 근본적으로 라면을 먹을 수 없었다. 가족은 이로 인해 매우 걱정하였으며 괴로워했다.

파룬궁수련생 루윈페이(盧雲飛)는 란저우 제3 구치소에 불법 구금되어 있는데, 그의 팔순 모친은 아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불편한 몸을 돌보지 않고 여러 부서를 찾아다니며 아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녀는 “나는 80세입니다. 나는 굳세게 살아가며 아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아들이 돌아올 때 내가 집에 있으면 그는 집이 있을 것이나, 내가 쓰러지면 그는 집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2015년 1월 19일 집으로 돌아온 란저우 파룬궁수련생 둥궈훙(董國紅)은 5월 이후 지역사회에서 날마다 교란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삼서(三書) 쓰지 않으면 다시 잡아가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박해에 참여한 책임자 명단 : 원문 참조

문장 발표: 2015년 5월 20일
문장 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20/3097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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