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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14년 지린성 연변 파룬궁수련생 박해사례 총론(4)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4. 정신적 학대, 세뇌 강화

‘세뇌’는 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이 수 십 년간 중국인에게 해독을 입힌 상투적 수법이다. 그리고 ‘세뇌반’은 사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후의 산물로서 15년 동안 광적으로 중국 대지에서 함부로 거리낌 없이 잔악한 짓을 했다. 그 사악한 정도는 감옥, 노동교양소 등의 소굴에 못지않았다. 세뇌반의 주요 목적은 수감자에게 육체적으로 학대를 가하고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히는 수단을 병행해 일정한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것인데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스스로 믿음을 배반하고 도덕적 승화와 몸을 건강하게 하려는 마음을 강제로 포기시키기 위해 핍박하는 것이다.

연변 지역의 면적은 4만여 평방미터로 인구는 200여만 명이다. 하지만 연변주 연길시는 전국 각 구(區), 현(縣) 세뇌반에서 파룬궁수련생을 학살한 인원 순으로 볼 때 10위권을 차지했을 정도로 그 사악한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연변 지역 각 현(縣) 시(市) ‘610’은 해마다 세뇌반을 설립하고 조직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그들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미행하고 감시하며 괴롭히다가 불법적으로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했다. 그곳에 끌려가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은 일체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는데 가족과 면회하는 권리조차 차단되는 등 일체 자유가 박탈된다. 단독으로 독방에 감금되어 핸드폰 등 모든 개인소지품을 강탈당하고 24시간 감시체제 하에서 가족을 포함한 일체 외부인과의 접촉이 차단된다. 파룬궁수련생은 장시간 세뇌반에서 이런 감독과 통제를 당했다. 그러나 공산당 그것들은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감금해 핍박을 가하면서도 개인과 직장으로부터 관련 소요비용을 내도록 강요했다. 그것들이 요구하는 소요경비 액수는 심지어 고급호텔 숙박비 액수보다 적지 않았는데 그 비용을 파룬궁수련생 가족으로부터 갈취하거나 직장에 명령해 수련생 월급에서 빼내갔다.

중국공산당은 세뇌반 소굴 안에서 파룬궁수련생을 감금시켜 박해를 가하는 한편 또 일반 민중에게도 세뇌를 가한다. 연변의 현지 중국공산당 악도들은 일반 민중을 세뇌시키기 위해 지역사회 가도(街道: 주민센터에 해당)에 파룬궁을 비난한 선전화보, 현판, 현수막에 파룬궁을 모독한 전단지를 게시하고 주민들에게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약속 카드’에 서명을 시키는 등등의 짓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연변 조간신문’은 중국공산당을 도와 독소를 퍼뜨리는 역할을 했는데 그 보도내용을 특별히 눈에 띄게 했다. 관련 책임자는 신문을 이용해 사악한 박해를 위해 날조를 했는데 심지어 가짜 신문을 만들 정도로 파룬궁수련생을 먹칠하는데 혈안이 됐다.

(1) 세뇌반 박해 사례

세뇌반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방식은 극히 사악하다. 그것들은 강제 세뇌 방식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는데, 유다(배신자)를 조종해 사부님을 모독하고 대법을 왜곡하고 수련생을 이간질시켰다. 밥을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수련생에게 대법을 먹칠하는 CD, 다른 법문(法門)의 주문, 사오(邪悟)한 자가 꾸민 이른바 노래 등을 주입시켰다. 강제로 수련생에게 이른바 ‘전향 과목’을 수업 받도록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수업할 때 반드시 기록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수련생에게 이른바 ‘체험 수기’를 쓰도록 핍박했는데 체험 수기는 반드시 세뇌반 요구에 부합되어야 했다. 만약 그것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면 매일 정신적 학대를 반복적으로 가했다. 사당의 악인들은 ‘전향’하지 않는 수련생에 대해 ‘징역형’ 방식으로 위협하고 공갈 협박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직접 고문을 가해 순종을 강요했다.

2000년 11월부터 2001년 12월, 이 1년 기간에 연변주 위원회 및 연길시 선전부, ‘610’ 등 부서 악인들이 연길시에 4기 세뇌반을 조직한 후, 도합 20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했다. 세뇌반 박해는 점점 심해졌다. 그 후부터 ‘세뇌반’은 연변 지역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전형적 수단이 됐다. 세뇌반 박해는 바이러스처럼 지저분하고 사악했으나 은폐적이고 은밀한 활약상을 보였다. 게다가 이런 유형의 강제적인 ‘전향’ 방식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래 내용은 지난 15년간 연변 지역 세뇌반에서 자행됐던 박해 사례 중에서 일부 폭로된 상황이다.

▲ 1999년 여름, 안도현 백하(白河) 버스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파룬궁수련생 왕리쥔(王麗君)의 집으로 가서 그녀에게 안도현의 한 학교 모임에 참가하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왕리쥔은 학교에 도착한 후 납치돼 귀가하지 못했는데 당시 그를 포함한 50여 명 파룬궁수련생들이 강제 수용됐다. 이때는 여름방학 기간이라 학교에는 학생들이 없었으므로 왕리쥔 등은 학교에 연금된 채 먹고 자면서 감시를 받았는데 화장실 갈 때도 안도현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기관원(조선족 남성)이 화장실 밖에서 지키는 등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매일 어떤 사람이 ‘강의’를 했는데 전부 대법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7일 기한 학습반을 끝낸 뒤에야 귀가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999년 겨울, 왕리쥔은 또 강제로 이도(二道) 정부 회의실에 조직한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세뇌반 안에서는 3명이 공공연하게 대법을 비난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30여 명에게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표시하라고 강요했다. 악인은 왕리쥔에게 태도를 표시하라며 난폭하게 꾸짖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적어 넣은 후 세뇌를 시켰는데 그렇게 이틀 동안 지속했다. 그 기간 왕리쥔은 아침에 출석했다가 오후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 1999년 말,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텅스쥔(滕世軍)은 그의 직장인 정유공장에서 석현진 둥린(東臨)산장에 조직한 세뇌반으로 끌려가 강제 ‘전향’을 당했다. 그런데 반드시 1일 50위안의 급식비를 내야 했다. 텅스쥔은 매일 강제로 파룬궁을 비난하는 자료를 봐야 했고 또 군대식 훈련과 한 동작을 고정시켜 세워두는 체벌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텅스쥔이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일 동안이나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을 자게하고는 5시에는 기상시켜 평일처럼 군대훈련을 시켰다. 그렇게 30일 동안 구금을 당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0년 말, 텅스쥔은 연변 정유공장 공안 직원의 속임수에 빠져 다시 석현 둥린산장 세뇌반으로 끌려가게 됐다. 책임자는 도문시 정법위서기 왕(王)모 씨, 무장부의 눙즈가오(農志高) 등이었다. 텅스쥔은 보름 동안 갇혔다가 풀려나 집으로 돌아간 후 15일 만에 또 한 차례 납치돼 30일 동안 구류처분을 받았다. 음력 섣달 그믐날을 유치장에서 보내야 했다.

▲ 2000년 말, 연길지역 중국공산당 관계기관에서는 연길 파룬궁수련생이 새해 원단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연길지역 파룬궁수련생 전원을 석현 종이공장(산 위에 있음)에 집단 수용시켜 세상과 격리시킨 후 ‘전향’박해를 진행했다. 연길시 보도소장 김선옥(金善玉) 등 노동교양소에서 ‘결렬서’를 쓴 적이 있는 몇 명 사람을 이용해 소위 ‘전향보고회’를 열었다. 만약 파룬궁과 결렬하겠다는 각서를 쓰지 않으면 계속 학습반에 남게 하여 강제로 ‘전향’시켰다. 특별히 신념이 확고한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있으면 곧 창춘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노동교양소로 이송해 박해를 가했다.

▲ 연변주 중국공산당악도는 도문시 석현 비수이(壁水) 산장에 세뇌반을 개설해, 뻔뻔스럽게 파룬궁수련생의 정상적인 근무와 생활을 교란했고, 속임수를 쓰며 인유하는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심지어 80여 세 노인과 10여 세 아이마저 가만두지 않았다. 어떤 수련생은 그들에게 심각한 박해를 당해 사경을 해매기도 했다. 마지막 석방할 때 또 직장 책임자나 가족에게, “수련생이 이후에는 연공을 하지 않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돈을 내도록 강요했다. 이 악도는 한편으로는 수련생을 박해하고 한편으로는 수련생 가족과 직장 책임자를 속여 수련생의 숙박비 핑계로 금품을 갈취했고 수련생의 가족을 동원해 사상공작을 하게 했는데, 그들에게 협력해서 수련생을 구타하고 욕하도록 해서 박해를 가중시켰다. 그리고 수련생 직장 책임자에게 “직장에 만약 파룬궁수련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책임자도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퇴직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 2000년 11월, 연길시 ‘610’은 제1기 ‘세뇌반’을 개설할 때 연길 파룬궁수련생 쑹궈루(宋國茹)가 납치돼 함께 수용됐다. 중국공산당 악도는 세뇌반을 운영하면서 각종 수단을 동원해 쑹궈루 등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혔다. 강제로 대법을 모독하는 서적과 녹화를 보게 했고 강제로 이른바 ‘전향’과목을 보게 하여 세뇌를 강요했다. 또 그들은 고문수단으로 작은 의자에 몇 시간동안 두 손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으며, 얇은 옷만 입힌 채 영하 20여 도 혹한에 서있도록 하여 추위에 얼어 감각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경찰관은 욕설과 구타를 가하면서 “전향하지 않고 이곳에서 걸어 나가겠다는 망상을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위협했다. 이른바 군대훈련을 16시간이나 시키면서 조금의 휴식도 취하지 못하게 했는데 잠을 재우지 않고 수련생을 격리시키는 방법으로 의지를 꺾으면서 향후 직장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위협을 가해 수련생들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 2001년 1월,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김영남은 갑자기 월궁가 파출소 김창수(金昌洙) 등에게 납치돼 도문시 석현진 종이공장 양로원으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세뇌박해를 당했다. 김영남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뇌반에서 구치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구치소에서 세뇌반으로 돌려보내졌다. 4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겨우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 2001년 8월, 도문시 월궁가 파출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 김성권(金成權, 金成全)을 집에서 납치해 도문시 석현진 종이공장 양로원 세뇌반에 감금해 박해를 가했다. 김성권은 같은 날 성공적으로 벗어났다.

▲ 2001년 8월 30일 저녁, 연길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지휘문(池輝文)은 불법적으로 중국공산당에 납치돼 연길시 이란진(依蘭鎭)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지휘문은 그 전에 이미 가택수색을 당했는데, 연난(延南)파출소에서 극심한 박해를 당했으므로 구토증으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경찰관들은 지휘문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계속 잠 안 재우기, 세워두기, 운동장 몇 십 바퀴씩 달리게 하기, 구타와 욕설 등 고문학대를 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도록 핍박했다. 2001년 10.1 기간에 파출소지도원은 또 한 차례 지휘문의 집을 급습해 불법 가택수색을 한 후 지휘문을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했다. 지휘문이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경찰관들은 그에게 잠 안 재우기 등 각종 고문수단으로 괴롭혔다. 그로 인해 지휘문은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걷기조차 힘들게 됐다. 세뇌반 두목 박남수(朴男洙) 등은 지휘문의 건강상태가 위급해지자 사망할까 두려워 지휘문의 아내로부터 100위안을 갈취한 뒤 풀어줬다. 그러나 풀려난 뒤에도 연남파출소와 가도사무실에서는 여전히 엄중한 감시를 하면서 이른바 소위 무슨 ‘민감일’만 되면 그의 집을 찾아와 괴롭혔다.

▲ 2001년 10월,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신옌쥔(辛延俊)은 연길시 시대광장에서 진상 현수막을 걸다가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사복경찰관에게 납치됐다. 꼬박 하루 동안 잔인무도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뒤, 다음날 연변주 ‘610’두목 우징린(吳景林)에 의해 직접 연길시 이란진 세뇌반으로 보내져 ‘전향’당했다. 신옌쥔은 세뇌반 안에서 며칠 동안 고문학대를 당해 완전히 탈진상태에 빠졌다. 그런 다음 다시 우징린에 의해 연길시 구치소로 보내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 2002년 초, 바이허(白河) 임업국 중국공산당 사당위원회 서기 양훙빈(楊洪斌), 톈창제(田昌傑)는 비밀리에 모의 세뇌반을 설립한 후 그곳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켰다.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샤오궈빙(肖國兵)은 세뇌반에서 정당하고도 엄숙하게 대법을 실증했는데, 그날 오후, ‘610’의 쉬원화(徐文華), 국가보안과의 위칭이(于慶一) 등이 샤오궈빙을 납치해 유치장에 유치시켰다. 현재 그들 악인들은 모두 퇴직한 상태다.

▲ 2003년 11월 4일, 퉁화(通化) 철도분국 정법위서기 장(張) 씨는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주야셴을 찾아와 말하기를 “‘5서(수련 포기 각서 따위)’를 쓰라고” 했다. 그녀가 그의 말대로 ‘5서’를 쓰지 않자 그녀를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시켰다. 20일 후인 11월 24일 날이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 차무구간(車務段)의 사당서기 왕중하이, 정류소 경찰관 유칭우(遊慶武) 등이 자동차로 주야셴을 선양(瀋陽) 푸순(撫順) 뤄타이산장(羅台山莊) 세뇌반으로 이송시켜 1개월 동안 박해했다. 그곳에는 이른바 ‘방교단(幫教團)’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향’ 박해를 가하는 곳이었다.

▲ 2004년 10월 25일 오후,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텅스쥔(滕世軍)은 우유회사에서 우유배달을 하려고 할 때 가도 치안주임이 향상가(向上街)파출소 경찰관을 대동하고 와서 텅스쥔을 납치해 도문시 사당학교 3층의 ‘강제세뇌반’으로 끌고 가 감금했다. 도문시 ‘610’사무실의 양창청(楊昌成), 비원거(畢文革), 푸옌후(付彥虎) 등은 창춘에서 온 사오한 자를 이용해 그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텅스쥔이 단호히 거절하자 화룡시에서 ‘숭상(崇尚)’이라고 불리는 고청(古城) 두메산골에 설치한 세뇌반에 감금시켰다. 악도들이 옆에 바싹 붙어 따라다니며 텅스쥔을 감시했다. 악인 4명이 그를 에웨 싸고 그에 대해 정신적 공격을 가했다. 텅스쥔은 그 후 벗어났지만 그때부터 유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 2004년 11월, 도문시 ‘610’과 성에서 온 사오한 자 4명이 도문시 사당학교에 설립한 세뇌반으로 부임해 와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됐다. 그중에 한 사오한 장징쉬(張靜旭)라는 자는 파룬궁수련생을 한 방안에 가두고 사오한 자들의 궤변으로 끊임없이 떠들어대며 수련생이 전향서에 서명할 때까지 온갖 박해를 가했다. 세뇌반은 맨 마지막 11월 말에 끝났다.

▲ 2004년 11월 말, 연변 기타 지역에서는 계속 세뇌반이 설립돼 다수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납치됐으나 그들은 은밀하게 추진하면서 납치와 세뇌반 박해소식을 봉쇄했다. 소식에 따르면 연길시 배신자 머우옌(牟燕)이 몇 명의 경찰관들을 거느리고 용정시 파룬궁수련생 차이푸천(蔡福臣)의 처갓집에 들이닥쳐 연로한 차이푸천의 장인을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했다고 한다. 이미 차이푸천은 그해 5월 26일 연길시 이란파출소에 의해 납치된 후 당일 저녁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게 되어 스스로 몸을 처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는데 생명이 위독해졌다.

▲ 2005년 11월 18일, 연변 정법(政法)사무실 세뇌요원 오미화(吳美花)는 훈춘시 ‘일송정(一松亭)’ 하달문(哈達門)에서 이도구(二道溝)로 가는 그 일대의 두메산골에 세뇌반을 설립해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세뇌 ‘전향’을 시켰다.

▲ 2006년 5월 24일부터 25일 사이에 훈춘시 ‘610’과 공안은 본시의 각 기관과 기업 그리고 사업부서 직원들을 소집해 이른바 ‘X교 방범 업무회의(防範X教工作會議)’라는 것을 열었다. 회의에서는 구두로 지시하기를 “하반기에 세뇌반을 설립해 대법제자를 박해하도록 한다”는 계획안을 발표하는 동시에, 이미 8명의 이른바 ‘중점대상’을 내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더구나 그 회의에 참석한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른바 “중국공산당은 이미 파룬궁을 반동조직으로 정했다. 만약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과 일에 연루된 사람이 있으면 직장 책임자는 연좌 책임을 지고 직책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정책적 명령을 시달했다. 그러면서 회의에 참석한 직장과 개인에게 “대법을 선전한 자료와 수련생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하도록 하라”는 협박적 지시를 내렸다.

▲ 2006년 9월, 성에서 사람을 파견해 화룡시에 세뇌반을 설립했는데 그자는 스스로를 가오즈루(高自路)라고 칭하는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다. 첫 번째로 비밀리에 세 명의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아동경찰훈련기지(亞東警察訓練基地)에 감금하고 ‘5서’에 서명시킨 뒤 9월 13일 오후 풀어줬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생 쑤이슈셴(隋秀賢)은 그곳에서 세뇌 받았으나 악도들에게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날인 14일 오후 9시경 자택에서 그것들에게 강제로 납치되어 끌려간 뒤 실종된 상태고, 9월 18일 저녁 연길시 북산(北山)파출소는 파룬궁수련생 리호철(李虎哲)의 집 문을 강제로 열고 들이닥쳐 리호철을 납치해 연길시 북산파출소로 끌고 간 후 다시 화룡시 세뇌반으로 보내 박해를 가했다.

▲ 2007년 5월부터 시작해 중국공산당 사당은 올림픽과 17기 인민대표대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각 가도 파출소, 사무실, 지역사회 보안요원을 동원해 집집마다 호구조사를 하며 명단을 작성해 파룬궁수련생의 상황을 조사했다. 그런 다음 6월 비밀회의를 통해 8월 초부터 연변 전 지역의 각 현과 시에 소재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8월 사당은 화룡시 아동경찰훈련기지에 세뇌반을 설립해 즉시 7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세뇌반에 구금시켰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생의 신체적 자유를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파룬궁수련생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협박했다.

▲ 2007년 10월 12일, 왕청현 천교령진 좐자오러우촌(轉角樓村) 파룬궁수련생 최광영(崔光泳)은 공안경찰에 의해 납치돼 세뇌반 박해를 당했는데, 오후 4~5시경 왕청현 공안국 경찰관은 최광영의 집에 들이닥쳐 “OO 회의에 참가하라”고 말했다. 최광영이 농사일이 바쁜 이유를 들어 거절하자 경찰관은 “당일 저녁에는 돌아올 수 있다”고 속여 차에 타게 했다. 그렇게 그를 납치해 직접 왕청현 세뇌반에 감금했다. 연로한 최광영의 모친은 이튿날 천교령진 공안국을 방문해 아들의 석방을 요구하자 그들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25일에는 돌아올 겁니다”라고 속였다.

▲ 2007년 10월 12일, 왕청현 경찰은 대낮에 파룬궁수련생 리슈펀(李秀芬), 린기핑(林基平)과 천구이펀(陳桂芬) 부부 등을 납치했고, 아울러 가족에게 짐을 공안국으로 보내도록 통지했다. 그들은 왕청현 배추구진 인근의 한 만천성(滿天星)이라고 부르는 관광지에 세뇌반을 설립했는데, 납치된 파룬궁수련생들을 모두 그곳에 불법 감금됐다. 그때 납치범죄에 참여한 자들은 왕청현 대천(大川) 파출소와 왕청현 국가보안대대 경찰관들로, 그들은 “제17기 인민대표대회를 열기 전에 석방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 2007년 10월 12일, 왕청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서는 현지 ‘610’ 및 각 파출소와 결탁해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현재 단지 정리쥔(鄭立君)만이 왕청현 중안(仲安)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당해 있을 뿐, 그 외 20여 명의 다른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만천성 세뇌반에 감금됐다. 정리쥔의 집에는 막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 정샹(鄭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본래 그들 부자는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갔다. 아이는 아버지를 석방하도록 요구하러 그곳에 가려고 했다. 사정을 아는 사람에 따르면, 어떤 일반국민이 청원한 것마저 문제 삼아 그곳에 감금당했는데 사당 회의가 끝나야 석방한다고 말했다.

▲ 2008년 7월 11일 오후, 왕청현 공안국, ‘610’, 국가보안대대에서는 각 파출소와 결탁해 올림픽성화봉송을 한다는 이유로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당시 납치는 사전에 모의한 후 통일적인 행동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리쥔, 리유춘(李優存), 러우추펑(婁秋風) 모녀, 노부인 첸(錢) 씨, 장(張) 씨 등이 납치됐음이 확인됐다.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은 왕청현 만천성 세뇌반에 불법적으로 감금됐는데 사악한 자들은 “올림픽이 끝나기 전에는 석방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역시 납치된 그 외 20여 명 파룬궁수련생들 중에 밝혀진 이름은 왕수펀(王淑芬), 김정자(金貞子), 리구이화(李桂華), 장수쥔(張樹鈞), 리(李) 씨, 렴춘월(廉春月), 텅커메이(滕克梅), 첸위메이(錢玉梅), 허금숙(許今淑), 허숙자(許淑子), 장원쥔(張文君), 린쥔리(林君立), 왕구이룽(王桂榮), 오영자(吳英子), 펑페이친(馮佩芹), 위모순(禹末順), 장펑즈(張風芝), 윤정철(尹正鐵) 등이다. 이들은 다수가 60~70세인 노인인데 어떤 이는 몸을 움직이기조차 불편했고, 어떤 이는 몸을 다친 상태였으며, 어떤 이는 집에 10여 세 어린이가 있으나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다. 당일 저녁 납치된 수련생 가족은 대천파출소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가 모두 경찰로부터 욕설, 공갈 협박 위협을 당했거나 심지어 구타를 당할 뻔했다. 7월 11일 저녁, 악도는 큰 버스 한 대를 이용해 이들 선량한 파룬궁수련생들을 왕청현 삼도구(三道溝) 인근에 위치한 만천성 저수지 세뇌반으로 끌고 가서 박해를 가했다. 7월 16일 저녁에 이르러 올림픽성화봉송이 끝나서야 이 파룬궁수련생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경찰은 “세뇌반은 계속 설립할 것이다”라고 큰소리쳤다.

▲ 2008년 8월 7일 9시, 바로 베이징올림픽대회가 개막되기 전날, 훈춘시 ‘610’은 이 시의 영안진(英安鎭) 웨이원(悅逸園)에서 회의를 열고 “각 10명의 파룬궁수련생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반드시 파룬궁수련자와 관련책임자가 회의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바로 그 건물 2층의 한 방에 파룬궁수련생들을 집합시킨 후 강제로 대법을 모독하는 DVD를 시청하도록 핍박하며 세뇌를 시도했다. 그 기간에 한 수련생이 방영을 저지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수련생들이 정념으로 협력한 작용을 일으켜 오전 10시경 ‘610’은 그중 9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번 쇼를 대충대충 결말지었다. 나머지 한 명 파룬궁수련생도 그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사악의 활동을 계획하고 조직한 자는 훈춘시 정법위 및 ‘610’인데, 그 두목 리(李) 모씨와 김 모씨가 직접 관여하고 참가했다. 당시 방영한 사악한 내용의 DVD 제작기관은 이른바 지린성의 ‘반X교협회’(사실은 중국공산당사당이 국민의 신앙자유를 박해하는 사악한 모임)이며, 지린성 지방 희극단에서 각본을 쓰고 연출해 2008년 3월 출판했으며 비공개로 제작해 은밀히 지린성 ‘610’ 내부에서 세뇌박해 전문용으로 하달된 것이다.

▲ 돈화시 황니허(黃泥河)진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2008년 8월 현지 사당관원은 이른바 ‘올림픽’ 명목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세뇌반을 설립해 박해를 진행했다.

▲ 2008년 9월, 연길시 ‘610’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 위해, 연길시 대성(大成) 인근의 입공(立公)호텔에 세뇌반을 설립했다. 입공호텔 세뇌반은 연길시 외곽 도로변에 위치한 대성과 연집(煙集, 도문, 왕청) 도로 구간에 위치해 있는데 면적이 매우 넓다. 안에는 ‘610’ 요원이 있고 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직접 참여한 자는 오미화, 박영자 등의 배신자가 있다. 소식에 따르면 이미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되어 이곳으로 끌려와 박해를 당했다고 한다.

▲ 2008년 9월 9일 이른 아침, 돈화시 황니허 정법위에서는 ‘610’주임 탕옌추(唐豔秋), 우야호빈(武耀彬) 및 국가보안대장 장중쑹(張忠松), 리보(李波), 주지(糾集)파출소, 가도, 법원, 검찰원 등 각 부서 40여 명이 합동으로 6명의 파룬궁수련생을 강제로 납치해 인적이 드문 먼 곳으로 끌고 가서 강제로 ‘전향’시켰다. 그들은 대법을 비난한 문건을 낭독하고 CD를 방영했으며 강제로 체험담을 쓰도록 핍박했다. 수련생마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대다수 경찰관들은 모두 병을 앓게 되어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등 현상이 나타났다. 일주일 후 그 추악한 사건은 끝났다.

▲ 2009년 8월 초, 왕청현에서는 또 삼도구 만천성 저수지에 위치한 왕청현 공안국 경찰훈련기지에 세뇌반을 조직해 대대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9월 중순까지 40여 일간에 걸쳐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이 이곳에 구금됐다. 그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오영자, 김정자, 사오윈하이(邵耘海), 취싱우(曲星武), 쑨빙링(孫秉玲), 텅커메이(滕克梅) 등이다. 이 외 다수가 포함돼 있었으나 여러 명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또 정리쥔, 리유춘, 쉬훙산(徐洪山), 장펑즈(張風芝) 등 수련생의 집 주변에서는 줄곧 공안국에서 돈으로 고용한 순찰원이 감시하며 괴롭혔다. 어떤 때는 밤중에도 경찰관이 직접 수련생 집에 찾아와서 사람을 찾으며 괴롭혔다.

▲ 2009년 9월 24일, 화룡시 팔가자진 파출소 경찰관은 파룬궁수련생 류쥔(劉俊)의 집을 찾아가 그녀에게 파출소로 가자고 했으나 류쥔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24일 아침 류쥔은 아이를 학교로 보내는 중에 납치돼 아동저수지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됐다가 그 후 30일 오전 10시 집으로 돌아왔다.

▲ 2009년 10월 15일, 왕청현 경찰이 재차 악행을 저질러 동광진(東光鎭) 파룬궁수련생 왕수펀을 납치해 삼도구 세뇌반에 감금했다. 그러나 건강상태 때문에 감히 감금하지 못하고 그날 저녁에 풀어주었다. 그들은 계속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를 가하려 시도했다.

▲ 2010년 1월 16일 이후, 연길시 파룬궁수련생들은 전면적으로 사악으로부터 박해를 당했는데 여러 명이 자택에서 강제로 납치됐다. 납치당한 수련생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왕수화(王淑華), 장싱차이(張興財), 류원원(劉文文), 징메이잉(景美英), 조학순(趙學順), 무더룽(穆得榮), 허(許) 씨, 쑹(宋) 씨, 최(崔) 씨 등이다. 악도들은 연길시 공업학교(동일로[東一路] 종점 인근)에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세뇌반 안에는 이미 연변 각지에서 납치된 몇 십 명 파룬궁수련생들이 감금돼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납치된 파룬궁수련생들이 계속 끌려와 감금되고 있다고 했다.

▲ 2010년 5월 20일,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자들은 훈춘 춘화 삼림농장(春化林場) 세뇌반에서 농장직원 위덩쿠이(于登奎), 왕샤오민(王曉敏) 등을 연금시켜놓고 해고하거나 노동교양처분을 내리겠다고 위협하면서 강온 양면책을 쓰며 계속 이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 2010년 6월 9일,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에서는 아동저수지에 세뇌반을 조직한 후 마안산(馬鞍山) 삼림농장의 장허우청(張厚成) 부부, 선봉(先峰) 삼림농장의 류밍루이(劉明睿), 황구(荒溝) 삼림농장의 웨더저우(岳德洲), 왕위제(王玉傑) 부부, 팔가자의 왕옌춘(王豔春), 팡쉐메이(房雪梅), 윤옥화(尹玉華), 리씨 노년 부부 등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시킨 후 박해를 가했다.

▲ 2010년 9월 10일 정오, 연길시 공안국 공원파출소의 7명 경찰관은 파룬궁수련생 최건일(崔建日)의 부친을 미행해 그의 집까지 따라가서 납치한 후 연길 이란진 세뇌반으로 끌고 가 박해를 가했다.

▲ 2010년 9월 10일 아침, 도문시 석현진의 경찰관 2명이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장칭쥔(張慶君)의 아내 장수화를 속여 남편의 출근 장소를 안내하도록 하여 현장에서 부부를 함께 납치한 후 송림(松林)양로원에 설립한 세뇌반으로 끌고 가 감금했다. 그 후 장아이쥔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열흘 뒤 세뇌반에서 도문시 안산(安山)구치소로 옮겨져 감금박해를 당했는데, 가족이 면회를 하려 해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노동교양처분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 2010년 11월 24일, 안도현 명월진(明月鎭)의 다수 파룬궁수련생은 안도현 국세접대소(國稅招待所) 세뇌반으로 납치돼 ‘전향’ 세뇌박해를 당했다.

▲ 2011년 3월부터 연길시 ‘610’은 연길시 각 가도사무실과 결탁해 답방한다는 명목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납치했으나, 그 후부터는 그런 가면을 벗고 노골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의 집에 직접 찾아가 납치해 세뇌반으로 끌고 가서 감금 박해를 가했다. 만약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이 단호하게 전향을 거부하며 계속 대법을 수련한다고 하면, 그것들은 즉시 이미 서명이 돼 있는 ‘노동교양처분 1년 6개월’이란 통지서를 꺼내든다. 악인들은 최근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한춘화(韓春花)와 양수샹(楊淑香)을 납치했는데 마침 양수장 집에 놀러온 왕청 파룬궁수련생까지 납치했으며, 연길시 조양천진의 남숭희(南崇熙), 박동철(朴東哲) 등 4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기도 했다. 연길시 ‘610’은 성(省) 내의 이른바 ‘교육단(說教團)’이란 것을 거느리고 세뇌반으로 가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 2011년 3월 30일, 연길 파룬궁수련생 주희옥은 진달래광장에서 아침연공을 하다가 경찰관에게 납치돼 대성(발전)세뇌반으로 끌려갔다. 당시 그녀는 강제로 난폭하게 경찰차량 위로 끌어올려지는 바람에 팬티까지 찢어졌는데, 경찰은 강압적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잡아서 머리칼이 많이 뽑혀나가기까지 했다. 그렇게 끌려간 주희옥은 고정틀 위에 한 시간 동안 묶여 있는 등 며칠 동안 온갖 시달림을 당해 피골이 상접해졌다. 악도는 어쩔 수 없이 주희옥을 세뇌반에서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그러면서도 판결을 받게 해 처벌하겠다고 큰소리로 위협했다. 그 후 6월 9일 저녁 경찰관이 또 주희옥의 집 문을 두드리며 열려고 했으나 주희옥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6월 10일 아침 정보과 악인들이 주희옥 집을 불법적으로 급습해 주희옥을 납치해 대성세뇌반으로 끌고 가 감금했다. 그러면서 “만약 주희옥이 잘못을 승인하지 않으면 곧 3년 형 판결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래도 주희옥이 승인하지 않자 곧 다시 “7~8년형 판결을 내리게 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만약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판결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다. 주희옥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 2011년 연길시 중국공산당 ‘610’, 공안국 국가보안경찰은 세뇌반을 조직해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납치해 ‘전향’ 박해를 진행했다. 연길시 리창화, 리창리, 류화 등 6명 파룬궁수련생은 연길 경찰에 납치됐다. 이전에 이미 5~6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돼 세뇌반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 2011년 5월 31일 8시가 넘어서 도문시 석현진 파룬궁수련생 장영란은 집안에서 현지 파출소 경찰관에 의해 납치되어 송림(松林)세뇌반에 감금됐다. 이번에 납치당한 사람은 6명이었으며 현재는 두 명이 남았는데 모두 여성수련생이다.

▲ 2011년 6월 1일 오전, 도문시 6중 교사인 파룬궁수련생 왕페이중(王培忠)은 출근을 하던 중에 몇 명 경찰관에게 납치돼 도문시 정법위로 끌려가 불법적으로 조직된 세뇌반에 감금됐다.

▲ 2011년 6월 22일,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경찰은 주희옥의 집으로 가서 억지로 주희옥을 끌고 대성세뇌반으로 갔다. 그날 오후 4~시경 법원관계자가 와서 이른바 판결문을 하달했는데 “주희옥에게 4년형을 판결한다”는 불법적인 판결 내용이었다. 판결문을 전달하면서 주희옥에게 ”10일 안에 상소기한이 있다”고 고지했다. 그리고 주희옥에서 서명하도록 했지만 주희옥은 단호히 거절하며 서명하지 않았다. 22일에 세뇌반은 끝났고 주희옥은 세뇌반에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 2011년 6월 22일, 룡정시에서 세뇌반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위치는 동부 지역인 것 같다. 이미 알려진 바로는 장위슈(張玉秀)와 조선족 여성 파룬궁수련생 리 씨가 있고, 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다.

▲ 2011년 6월 말 이후 훈춘시 정법위, ‘610’사무실은 연속적으로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교란, 납치해 슈주(秀竹) 여관으로 끌고 가 감금한 후 세뇌반을 조직했다. 7월 2일 경 훈춘시 삼동방(三棟房)에서 또 파룬궁수련생을 교란했는데 이미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하는 파룬궁수련생까지 추적감시하며 납치를 도모했다.

▲ 2011년 7월 20일 이래, 화룡시 팔가자 국가보안은 광적으로 칠순 파룬궁수련생 청수전(程淑珍) 노인과 그녀의 딸 양(楊)씨를 납치했다. 동시에 또 류가이환(劉改煥), 리옌성(李彥勝), 우펑셴(吳鳳賢) 등 수련생도 납치돼 연길시 대성세뇌반으로 끌려가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 지린성 ‘610’은 안도현 이도백하에 주재하고 있는 장백산 관리위원회 하급조직인 몇 개의 ‘610’, 공검법사(공안, 검찰, 법원, 사법) 등이 이도백하 톄베이(鐵北) 초등학교에 ‘세뇌반’을 설립한 후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2011년 8월 9일경, 안도 이도백하 파룬궁수련생 정즈후이(鄭智慧)는 집에서 경찰에게 납치됐고 8월 13일, 파룬궁수련생 웨징제(岳靜傑)도 근무지 직장에서 납치됐다. 그리고 8월 14일 71세 노년 파룬궁수련생 왕구이친(王桂芹)도 지린성 ‘610’, 연변 바이산 관리위원회 조직부 부부장 렁징(冷靜), 바이허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장 류원거(劉文革) 등 악인들에 의해 납치돼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 2011년 12월 1일 오전, 안도현 이도백하 장백산 관리위원회 ‘610’, 정법위 등은 올해 ‘전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츠베이(池北) 공안분국, 국가보안대대 등에 지시해 현지 톄베이 초등학교에서 세뇌반을 조직하려고 미리 모의하면서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했다.

▲ 2012년 3월 19일, 연변 지역 중국공산당 사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돌격적인 배치를 했는데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경찰차량을 동원해 24시간 동안 온 거리를 순시하도록 했고 경찰관들이 집집마다 호구조사를 하면서 소위 ‘약속카드(承諾卡)’를 작성했는데 서명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팔가자 임업국은 온 거리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하고 또 매월 800위안의 급료를 지급하며 사람을 고용해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현재는 팔가자 임업국에서 또 아동저수지에 세뇌반을 설립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있다.

▲ 2012년 4월 7일, 돈화시 임업국 직원 장옌링(張豔玲)은 출근하던 중에, 돈화시 임업국 제1파출소 및 돈화 임업국 국가보안대대 궈전린(郭振林) 등 10여 명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돼 돈화 임업국 숙소에 설립한 세뇌반에 감금됐다. 장옌링의 남편 왕융창(王永強)은 소식을 접하고 국가보안을 방문하여 (부인의 납치) 이유를 문의하다가 그 역시 5~6명 경찰관에 의해 강제로 납치돼 경찰차에 태워져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 2012년 5월 5일,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유치원 교사 쑨칭쥐(孫慶菊)는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자오즈쿠이(趙志奎), 왕자후이(王家輝) 등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쑨칭쥐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뇌반 악인에게 고문학대를 당해 팔이 부러지고 머리 부위가 심한 타박상을 당해 부어올랐다. 5일 저녁, 쑨칭쥐 등 6명 파룬궁수련생은 이도백하의 지점이 분명하지 않은 한 곳으로 이송 감금됐다. 그러나 쑨칭쥐는 골절됐다는 이유로 수감을 거부당하게 되어 다시 팔가자 임업국 설송(雪松)숙소 세뇌반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계속 박해를 당했다.

▲ 2012년 5월 9일, 두 다리가 불구인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자이춘메이(翟春梅)와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두 다리가 불구인 그녀의 아들이 납치됐는데 아마도 세뇌반으로 보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5월 12일 오전, 파출소경찰관은 세뇌반으로 가서 이른바 ‘학습’ 명목으로 또 도문시 공상국에서 근무하는 파룬궁수련생 장(姜) 씨를 붙잡아갔다. 정확한 소식에 따르면, 도문시 ‘610’은 또 세뇌반을 설립을 도모했는데 세뇌반 안에 악인 배신자로 보충하게 될 사람은 인전원(尹振文), 스슈훙(石秀紅) 등으로 알려졌다.

▲ 2012년 5월 15일 전후, 파룬궁수련생 최향란(崔香蘭)은 도문시 정법위, ‘610’ 등에게 납치돼 송림양로원 세뇌반에 감금됐다. 5월 17일 점심시간, 도문 석현 파룬궁수련생 츠수링(遲素玲)은 근무처 직장에서 석현진 파출소의 7~8명 경찰관에게 강제로 납치돼 송림양로원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이미 박해로 고혈압 증세가 나타났다. 같은 날 이 세뇌반에 감금된 사람은 또 도문 곡수(曲水) 파룬궁수련생 장수셴(張淑賢)도 있다.

▲ 2012년 6월, 훈춘시 ‘610’ 두목 리솽창(李雙強)은 그의 수하 김영전(金永全) 등을 거느리고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의 집에 들이닥쳐 교란했고,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슈주 여관 세뇌반으로 끌고 가서 박해를 가했다.

▲ 2012년 6월 28일, 연길시 철남 부원(富元) 주택단지 노년 파룬궁수련생 김인태(金仁泰)는 중국공산당에 납치당한 뒤 대성 세뇌반에 감금됐다. 파룬궁수련생 톈구이란(田桂蘭)도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한 뒤 세뇌반에 불법 감금됐다. 소식에 따르면 그곳에는 또 돈화 지역 파룬궁수련생이 감금돼 있었다고 했다.

▲ 2012년 7월 1일, 연길시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안영희는 근무지에서 일을 하던 중에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및 ‘610’ 경찰관에게 납치돼 연길시 세뇌반에 감금됐는데 그곳에서 사악한 거짓말의 세뇌박해와 고문으로 능욕을 당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 2012년 7월 9일, 연길시 ‘610’과 룡정시 ‘610’은 합동으로 룡정시에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세뇌반을 설립했다. 이번에 납치된 파룬궁수련생은 연길시의 리호철, 안영희, 리기옥(李奇玉), 리샤(李霞), 룡정시의 림춘식(林春植), 룡정시 개산툰진(開山屯鎭)의 리샤오샤(李小霞), 룡정시 천보산(天寶山)의 루치싱(盧起興) 등이다. 그 중 리호철은 감옥에서 연길시 세뇌반으로 이송됐다가 다시 룡정시 세뇌반으로 온 것이다. 악인은 이전에 이미 연길시에서 한 차례 세뇌반을 조직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창춘 지린 지역의 사오한 자[즉 그들이 자칭한 성(省) ‘교육원’임]와 연길의 사오한 자를 함께 고용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이 사오한 자들은 사오링(邵玲), 류솽후이, 류수룽(劉淑榮), 멍셴빈(孟憲斌), 왕슈친(王秀琴) 등이다. 세뇌반 안에서 박해에 참여한 사람은 또 이름을 모르는 연길 지역 사회요원이 있었다. 7월 24일 이번 세뇌반이 끝난 후 또 화룡시로 옮겨 한 차례 조직했다.

▲ 2012년 6월 25일부터 7월 30일 동안 연길시 ‘610’은 연길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는 성 ‘610’의 지시를 받아 연길시, 룡정시, 화룡시에서 연속 3기 사악한 ‘세뇌반’을 각각 조직한 후 배신자를 모두 끌어 모아 교육원과 졸개로 충당시켰다. 그것들은 ‘610’, 국가보안대대 경찰관과 함께 어울려 못된 짓을 저질렀는데, 그 수법은 기만과 유인, 위협, 공갈과 협박을 가하거나 고문 등 모든 잔악한 짓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했다. 두 다리를 틀어올려 단단히 묶고 두 손은 등 뒤로 목과 함께 연결해 묶어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으며 화장실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수련생이 그것들이 요구하는 대로 보증서를 쓰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줄곧 그렇게 묶어놓고 풀어주지 않았다. 만약 풀어준 뒤에 또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다시 묶었다. 이렇게 혹독한 고문을 반복했는데 시간이 길 때는 40여 시간 동안 계속 묶어두기까지 했다.

▲ 2012년 8월 7일, 안도현 명월진 발재촌(發財村) 파룬궁수련생 샤팡시(夏芳溪)는 안도현 명월진 재정국 요원에게 납치돼 안도현 세뇌반에 감금됐다.

▲ 2012년 10월 25일, 연길 파룬궁수련생 김명호(金明浩)는 집 입구에서 잠복 감시하던 ‘610’ 경찰관에게 공격을 받았다. 경찰은 그의 목을 조여 거의 질식할 뻔했다. 결국 납치되고 말았다. 그 사악한 경찰은 김명호를 납치한 후 그의 가택을 수색해 한 대 밖에 없는 컴퓨터를 강탈했다. 10월 26일, 김명호의 아내 정은월(鄭銀月)도 경찰에게 속아 남편에게 옷을 차입해 주러갔다가 납치돼 구류처분을 당했다. 당시 김명호 부부는 이란 ‘전향’소 세뇌반에 불법 감금됐다.

▲ 2012년 10월 26일 이른 아침 7시경 연길시에 거주하는 파룬궁수련생 김진금(金珍今)과 남편은 야채를 팔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집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철수(鄭哲洙) 등 8명의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납치돼 경찰차에 감금된 후 자택을 수색당해 컴퓨터와 대법서적을 강탈당했다. 이들 두 노인은 국가보안대대로 끌려가 감금됐다. 김진금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 외손자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요구한 뒤에 풀려났다. 그러나 김진금은 직접 세뇌반으로 이송돼 감금됐다.

▲ 2012년 10월 12일부터 24일까지 연길시 중국공산당 요원은 룡정시에서 개산툰으로 가는 한 고속도로 요금소에 주(州) 내 각지에서 납치한 9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했다. 10월 25일부터 11월 8일까지, 연길시 중국공산당요원은 이란 구조소에 10명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감금했다. 그중 천광우(陳光武), 왕구이샤(王桂霞)는 구치소에 감금됐고, 양수잉(楊淑英)은 국가보안에 의해 세뇌반에 감금됐다. 세뇌반에 불법적으로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은 또 김명호, 정은월 부부, 김정금(金貞今), 한련화, 쑨쩌린(孫澤林), 왕위제(王玉傑)와 60세 노년 여성 파룬궁수련생 등이다.

▲ 2013년 5월 20일, 도문시 ‘610’과 국가보안대대에서는 석현진 송림 양로원에 조직한 세뇌반에 은행에 출근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최향란을 납치해 감금했다. 최향란이 송림 양로원 세뇌반에 감금돼 박해를 당할 때 그곳 세뇌반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참여한 공범자는 사오한 가오옌(高燕), 윤전문(尹振文), 류훙(劉宏), 사오링(邵玲, 창춘) 등이었다.

▲ 2013년 9월 7일부터 9월 18일 연변주 임업관리국 정법위 ‘610’악도는 또 연길시 구조소에 세뇌반을 조직했다. 이번에 모두 8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당했는데 그들은 훈춘 임업국 춘화(春化)삼림농장의 왕샤오민(王曉敏), 팔가자 임업국의 팡펑셴(龐鳳仙), 중웨이쥔(仲偉君), 왕웨이핑(王偉平), 리영화(李英華) 등이었고, 또 돈화 임업국의 파룬궁수련생 왕(王)씨, 장(張)씨 부부, 대석두 임업국의 파룬궁수련생 류(劉)씨 등이었다. 그때 팔가자 임업국 ‘610’주임 장원신(張文信)은 파룬궁수련생 우펑셴(吳鳳賢)의 가족을 시켜 우펑셴에게 “세뇌반으로 가라”고 전해주도록 했다. 9월에 이미 한 차례 교란했으나 결과가 없었다. 이번 세뇌반 박해에 참여한 악도는 주 임업관리국 정법위 ‘610’주임 장이리(張毅利), 팔가자 임업국 정법위 ‘610’주임 장원신(張文信), 종합치안관리사무실의 위리쥐안(于麗娟), 훈춘 임업국 ‘610’ 주임 룽(榮)씨 등이다. 그리고 배신자 쑹슈친, 인전원과 외지에서 세뇌반으로 온 사오링, 류솽후이 등이 박해에 참여했다.

▲ 2013년 9월 22일, 돈화 세뇌반에는 청위중(程玉中), 왕샹쥐(王相菊) 등 5명 파룬궁수련생이 불법 감금됐는데, 그중 3명의 파룬궁수련생 이름은 상세하지 않고 한 명은 태평령(太平嶺) 사람이다. 이 세뇌반은 성에서 추진해 조직한 것으로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거부한 파룬궁수련생을 전문적으로 감금하는 곳을 만들어 납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 외에 판이원(潘義文), 왕웨신(王悅欣)은 세뇌반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졌는데 정확한 상황은 분명치 않다.

▲ 2013년 10월, 연변주 ‘610’은 또 연길 구조소에서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박해에 참여한 배신자는 연길시 쑹슈친, 화뎬(樺甸)의 사오링, 푸위(扶余)의 류수룽, 창춘 위수(榆樹)의 리전제(李振傑) 등이었다.

▲ 2014년 7월 19일 정오, 도문시 ‘610’의 자오카이(趙凱), 국가보안대대 김용철(全勇哲), 정철수(鄭哲洙) 등 5명 경찰관은 슈퍼에서 근무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쑹리제(宋麗傑)를 강제로 납치해 시 제2고중학교(고등학교) 세뇌반에 불법적으로 감금했다. ‘전향’박해에 참여한 사오자는 가오옌, 인전원, 사오링 등이다. 최근 도문시 ‘610’은 다시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이미 쑹리제 등 6명 파룬궁수련생이 각각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됐다. 그리고 여러 명 수련생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세뇌반은 여전히 계속 파룬궁수련생을 납치감금하고 있다.

▲ 2014년 8월 말, 화룡시 ‘610’ 악도가 아동저수지에 세뇌반을 조직했고 팔가자진 파출소에서 류쥔(劉俊)을 납치했다. 소식에 따르면 그곳에는 또 다른 파룬궁수련생이 불법 감금돼 있다고 한다. 화룡 정법위 ‘610’ 두목 리춘식이 그곳에서 박해를 주도했다.

▲ 2014년 11월 18일, 화룡 팔가자의 파룬궁수련생 류화잉(劉華英), 판구이룽(范桂榮)이 납치됐다. 판구이룽은 팔가자 임업국 직원병원장 궈젠린(郭建林)으로부터 “회의를 연다”는 거짓말에 속아 그곳에 갔다가 하북(河北) 파출소장 자오바오린(趙保林)에게 납치되어 연길 이란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됐다. 그곳의 악도는 2박3일 동안 판구이룽에게 잠 안 재우기 고문을 가하면서 대법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2) 극히 악명 높은 세뇌반 소굴

▲ 연길 대성 세뇌반, 이란진 세뇌반

2000년 11월부터 연길시 ‘610’사무실 두목 박남수(朴南洙)와 후샤오옌(胡曉燕)은 연변주 서기 톈쉐런(田學仁)과 연길시 선전부부장 한룽건(韓龍根), 천위장(陳玉江)의 지시 하에 연길시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세뇌반을 조직했다. 2001년 8월 30일, 연길시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지휘문도 연길시 이란진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세뇌반에서 악도들은 지휘문이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구토 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불고하고 강제로 잠 안 재우기, 세워두기, 구타, 욕설 등등의 고문을 자행하거나, 운동장을 몇 십 바퀴씩 달리게 하는 육체적인 고통을 주었고, 또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녹화 프로그램을 시청하도록 강요하며 핍박했다. 2001년 10.1기간에 파출소 지도원은 또 한 차례 지휘문의 가택을 급습해 불법 수색과 함께 지휘문을 납치해 세뇌반으로 끌고 갔다. 지휘문이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경찰들은 잠 안 재우기 등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를 괴롭혔다. 이로 인해 지휘문의 건강은 극도로 허약해져 거의 걸을 수 없게 됐다. 세뇌반 두목 박남수 등은 지휘문이 세뇌반에서 죽을까 두려워 지휘문의 아내로부터 100위안을 갈취한 후 지휘문을 석방했다.

2001년 10월,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신옌쥔(辛延俊)은 국가보안대대 사복경찰관에게 납치당한 후 이튿날에 연변주 ‘610’두목 우징린에 의해 직접 연길시 이란진 세뇌반으로 보내져 ‘전향’당했다. 신옌쥔은 세뇌반에서 며칠 동안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해 탈진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후 다시 연길시 구치소로 이송돼 계속 혹독한 박해를 당했다.

2010년 9월 중하순, 연길시 ‘610’은 이란진 유랑아동수용소에 세뇌반을 조직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방마다 침대 4개가 있었고 세 사람이 온종일 지켰는데 4명의 수련생을 납치 그곳에 감금했다. 2011년 3월 30일, 연길 파룬궁수련생 주희옥은 진달래광장에서 아침 연공을 하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대성세뇌에 감금됐다. 세뇌반에서 주희옥은 고정틀 위에 1시간 동안 묶여 있는 등등의 고문을 당하며 며칠 동안 계속 학대를 당해 피골이 상접해졌다. 2011년 5월, 파룬궁수련생 둥구이주, 김명화, 리창화, 리창리, 류화, 야오수핑(姚淑萍), 왕슈윈(王秀雲), 장슈친(張秀琴), 박순자(朴順子) 등은 납치되어 연길시 대성세뇌반에 감금됐으며 세뇌반에서 연변 국가보안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박해를 당했다.

2012년 7월 1일, 연길시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안영희는 근무지에서 일하던 중에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및 ‘610’ 악인에게 납치되어 연길시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세뇌반에 끌려가서 안영희는 먼저 강제로 ‘세워두기 고문’을 당했는데, 서있을 수 없을 정도가 됐을 때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몸으로 그녀를 받치다시피 억지로 한 단락 시간을 ‘세웠다.’ 그 후 철창 난간에 채워놓고, 두 손등이 매우 부어서야 겨우 풀어주었다가 이내 다시 묶었다. 그들은 강제로 가부좌를 시킨 후 끈으로 묶고 또 목과 묶여 있는 양다리를 뒤로 결박한 양손과 함께 묶어놓아 허리를 굽힌 자세로 만드는 고문을 가했다. 그런 자세로 침대에서 근 하루 동안 앉아있게 했다. 2013년 9월 7일부터 9월 18일 연변주 임업관리국 정법위의 ‘610’악도는 또 연길시 이란진 구조소에 세뇌반을 조직해 주 내의 임업계통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박해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모두 8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됐다. 2014년 5월, 연길시 이란진 석현촌 구조소에 또 세뇌반을 조직해 박해를 실시했다.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이 괴롭힘을 받았고 10여 명이 납치돼 감금당했다. 2014년 10월 31일,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파룬궁수련생 양수펀은 연변주 정법위 및 팔가자 임업국 ‘610’주임 장원신 등에게 납치돼 연길시 대성세뇌반에 감금되어 박해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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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 이란진 석현촌 구조소 세뇌반

▲ 화룡 아동저수시 세뇌반

2010년 6월 7일,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정법위, ‘610’사무실, 공안국 국보과(國保科) 등 부서에서는 화룡시 아동저수지에 세뇌반을 조직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팔가자 임업국 정법위 서기 자오징(趙晶)은 성, 주 중국공산당 사당정법위, ‘610’ 등을 바싹 뒤따라 20여 명 경찰, 30여 명 업무요원을 양성해 불법 조사를 전개했는데 이미 6명 파룬궁수련생이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이 세뇌반은 6월 9일에 시작돼 6월 23일에 끝났는데, 매일 근 1만 위안의 거금을 소모했다. 박해에 동원되어 참가한 자는 50여 명이고 4~5대의 차량을 이용했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에 참여한 ‘교육원’이란 자들은 매월 7천여 위안(성, 연변주, 팔가자마저 일부분을 줌)의 보수를 받았는데 그들은 이번 박해의 주요한 공범자들이다. 연변주 정법위의 전문요원 장(張)씨가 직접 지휘하고, 팔가자 정법위서기 자오징, ‘610’사무실 주임 장원신(張文信), 공안국부국장 진성관(金升官), 국가보안대대 대장 자오즈쿠이(趙志奎), 국가보안대대 교도원 왕자후이(王家輝), 공안국경찰관 등 10여 명, 그리고 가도사무실, 직공병원, 파출소에서 고용한 관리협력원(協管員-거리의 파룬궁전단지를 수거하는 사람) 등이 박해에 참여한 자들이었다.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생 1인에게 2명의 ‘바오자(包夾, 감시자)’가 배정됐는데, 그들이 신체적 자유를 제한했다. 세뇌반 요원은 감옥, 노동교양소 등지에서 사오한 자들을 차출하여 ‘교육원’으로 채용했다. 그 중에 연길시의 쑹슈친(宋秀琴), 바이산시의 왕리(王麗), 도문시의 인전원(尹振文) 및 지린 농촌의 마(馬)씨와 수란(舒蘭)의 리씨가 있었다. 매일 오전, 오후, 저녁이면 이 ‘교육원’들은 파룬궁수련생의 방안으로 가서 사오한 이론을 주입하고 대법사부님을 모독하며, 밍후이왕을 모독하면서 파룬궁수련생으로 하여금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그것들은 심지어 수련생에게 공갈협박하며 ‘전향’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2012년 7월, 화룡시 ‘610’은 아동저수지에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화룡시 정법위 서기 리춘직(李春值)이 세뇌반의 정치부주임이었다. 7월 22일, 화룡시 서성진 파출소의 쑹샤오웨이(宋曉偉)와 경찰관 최 씨 등 6~7명은 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서성진 이도(二道) 9대촌의 파룬궁수련생 펑메이(馮梅)를 납치해 강제로 아동저수지 세뇌반에 감금시켰다. 세뇌반의 악인은 펑메이에게 대법을 모독하고 사부님을 모독하는 영상을 시청하도록 핍박했는데 만약 시청하지 않을 때는 배신자 박영자가 책으로 펑메이의 다리를 구타했으며, 심지어 그녀의 손등을 바늘로 찌르기까지 했다. 당시 펑메이는 혹독한 고문의 시달림으로 머리가 흐리멍덩해지고 심장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아주 괴로웠다. 그래서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세뇌반의 유다는 또 펑메이를 2층으로 끌어다가 구타했다. 그리고 길이가 2~3미터의 천으로 만든 끈 두 개로 각 한쪽 발을 묶은 다음 가부좌를 틀게 한 후, 두 손 위에는 다른 한쪽 끝을 묶어 두 팔을 힘껏 들어서 뒤로 넘겨서 마치 나뭇잎으로 음식을 말아 감싸듯이 몸을 단단히 묶었다. 이런 고문을 당한 적 있는 사람에 의하면 “그 고문을 당할 때 항문이 2~3치나 나왔다”고 했다. 그 잔인함의 정도를 가히 집작할 수 있다. 펑메이는 세뇌반에서 공갈, 협박 등을 당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2층 창문 아래로 뛰어내려 다리와 요추가 골절됐다.

2012년 7월, 연길시 조선족 노년 파룬궁수련생 리기옥(李奇玉)도 화룡 아동저수지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14년 7월 21일, 리기옥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가 68세였다. 2014년 8월 말, 화룡시 ‘610’ 악도는 또 아동저수지에서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파룬궁수련생 류쥔(劉俊)은 팔가자진 파출소에 의해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됐다. 그곳에는 또 기타 파룬궁수련생이 감금돼 있었다. 화룡 정법위, ‘610’두목 리춘직은 여전히 그곳에서 박해를 주도하며 계속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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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저수지 세뇌반

▲ 안도 국세접대소 세뇌반

안도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현‘610’, 정법위 등 기구는 끊임없이 파룬궁수련생을 납치, 모함하며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를 진행했다. 2010년 11월, 량강진(兩江鎭), 명월진의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이 신체적인 자유를 불법적으로 제한당했다. 11월 24일 몇 명의 명월진 파룬궁수련생들은 안도현 국세접대소로 납치돼 이른바 ‘전향’세뇌를 당했다. 2012년 8월 6일 이래, 안도현 공안은 ‘안정유지’란 허울을 쓰고 파룬궁수련생 6명을 불법 납치한 후 안도현 국세접대소 2층에 감금했다. 그곳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무기한으로 강제세뇌를 시키는 박해 소굴이었다. 8월 7일, 안도현 명월진 발재촌 파룬궁수련생 샤팡시(夏芳溪)는 명월진 재정국 악인에게 납치되어 안도현 국세접대소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 박해를 당했다.

安图县国税招待所正门

안도현 국세접대소 정문

安图县国税招待所侧面

안도현 국세접대소 측면

▲ 왕청 만천성 세뇌반

왕청현 세뇌반은 왕청현 동광진 삼도구촌(三道溝村)에 위치했는데, 원래는 현 공안국 경찰훈련 기지였다. 삼도구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곳으로 매우 은밀한 곳인데 앞뒤로 주택이 없는 2층 건물이다. 전신은 만천성저수지를 건축하는 지휘부였다. 이곳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앞면으로 몇 백 미터를 가면 그곳이 바로 저수지 제방이므로 사람에게 발견되기가 매우 어렵다. 이곳에서 파룬궁수련생의 언행과 활동을 제한하는데, 화장실 가는 것 등을 포함해 일거일동에 모두 경찰이 따라다녔다. 악도는 또 대법을 비난하는 CD를 틀어놓고 수련생에게 대법을 비난하는 서적을 읽도록 강요했다.

왕청현 공안국장 김동문(金東文)은 2007년 부임한 이후 현 위원회상무위원이자 정법위서기 리핑(李平), ‘610’종합과 및 안정유지과 부서기인 김명, 공안국 국가보안대장 관칭유(管清友) 등과 협조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책임을 진 주요 악인이다. 그는 불법적으로 4차례나 세뇌반을 조직해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여 강제세뇌를 진행했다. 그는 수련생 및 가족에게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극심한 상해를 조성했다. 2007년 10월 12일, 그들은 또 왕청현 백초구진(百草溝鎭) 인근 만천성에서 세뇌반을 조직했다. 여러 명의 수련생은 모두 납치당한 후 그곳에 불법 감금됐는데 경찰은 “사당 17기 인민대표대회 전에는 석방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쳤다. 2008년 7월 11일 오후, 왕청현 공안국, ‘610’, 국가보안대대는 각 파출소와 합동으로 올림픽성화봉송을 이유로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했다. 이번 납치는 미리 모의를 한 후 통일적인 행동으로 납치행각을 벌였다. 7월 11일 저녁, 대형 버스 1대에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압송해 왕청현 삼도구 인근에 위치한 만천성 저수지로 보내 세뇌박해를 진행했다. 2008년 7월 24일부터 2008년 9월말까지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또 이곳에서 한 차례 세뇌반을 진행했다.

2009년 8월 초, 왕청현에서는 또 만천성 저수지 경찰훈련기지에 세뇌반을 조직해 대량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지린성에서 파룬궁 박해를 책임진 악인 중 한 사람인 저우쥔(鄒軍)은 직접 파룬궁을 배반한 일부 배신자를 거느리고 2009년 10월 전후 왕청현으로 뛰어와서 왕청 지방의 악도와 합세해 악행을 저질렀다. 세뇌반으로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매번 그들은 모두 파룬궁수련생에게 ‘파룬궁수련 포기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그들에게 납치돼 강제로 세뇌박해를 당한 적이 있는 파룬궁수련생은 근 30명에 이르는데 거의 60~70세의 노인이었다. 어떤 이는 움직이기 불편했고 어떤 이는 몸을 다쳤으며 어떤 이는 집에 10여 세의 아이가 있는데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다. 납치당한 수련생의 가족이 관련 기관으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경찰관들로부터 욕설, 공갈과 협박 등 위협을 당했으며, 일부 가족은 또 구타 위기를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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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공안국 경찰 훈련기지세뇌반

전신은 만천성저수지 제방 지휘부다. 창문 위에는 전부 쇠난간을 설치했다. 남쪽 면은 만천성저수지 제방이다.

▲ 훈춘 춘화 삼림농장 세뇌반, 슈주 여관 세뇌반

2010년 5월 20일, 중국공산당의 악인들은 훈춘 춘화(春化) 삼림농장에 조직한 세뇌반에 삼림농장 직원이자 파룬궁수련생인 위덩쿠이(于登奎)와 왕샤오민(王曉敏)을 감금했다. 악도는 해고와 노동교양처분으로 위협을 가하며 강온 양면책의 압박을 가했는데 끝내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후 사오한 자인 쑹바이팡(宋百芳, 여, 60세 정도, 대석두 임업국 출신), 인전원(남, 50여세, 도문시 출신)에게 지시해 삿된 이론을 주입했는데 삼림농장 직원 안젠우(安建武), 야오지핑(姚吉萍), 류즈쉰(劉植舜), 웨이칭(魏清) 등을 ‘바오자(감시자)’로 삼아 수련생들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연변주 정법위, ‘610’이 직접 지휘하고 훈춘 임업국 부서기 마(馬) 모씨, 정법위서기 장티리(張體力), 춘화 삼림농장 농장장 무궁쥔(慕貢軍), 서기 쉬젠원(徐建文), 춘화 파출소장 장훙리(張宏利), 부소장 한청룽(韓成龍), 교도원 왕융후이(王永惠), 훈춘 임업공안국 형사경찰관 장잉(張穎), 임업공안국 류위안팅(劉婉婷) 등은 모두 박해에 참여한 자들이다.

2011년 6월 말, 훈춘시 정법위, ‘610’사무실은 훈춘 슈주 여관에서 세뇌반을 조직해 연속적으로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을 교란하고 납치했다. 2012년 6월 훈춘시 ‘610’은 또 슈주 여관에서 조직한 세뇌반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610’ 두목 리솽창(李雙強)은 그의 수하 김영전 등을 거느리고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의 집에 들이닥쳐 교란하며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여 세뇌반에 감금 후 박해를 가했다.

▲ 도문 석현진 송림양로원 세뇌반

2001년 1월,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김영남은 월궁가 파출소 김창수 등에게 납치돼 석현진 종이공장 송림양로원으로 끌려가 세뇌박해를 당했다. 박해에 참여한 자는 연변주 사법국 박 모씨, 주 ‘610’, 도문시 정법위서기 왕바오중(王保中), 월궁가 파출소 등이다. 세뇌반으로 납치당한 수련생은 아침 4~5시부터 줄곧 저녁 9~12시까지 시달림을 당했는데 밥 먹고 잠 자는 것마저 감시를 당했다. 그리고 강제로 중단 없이 달리기, 제식훈련, 대법을 모독하는 녹화 프로그램 시청하기, 세워두기 등등의 고문을 당했으며 또 모욕, 욕설 등 인신공격을 당했다.

2010년 9월 10일,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장칭쥔(張慶君)이 직장에 출근 후 도문시 석현진 두 명의 경찰관으로부터 속임수를 당한 아내 장수화가 남편의 출근현장으로 그들을 안내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부부가 함께 납치되어 송림(松林)양로원에 위치한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됐다. 도문시 ‘610’, 국가보안대대, 정법위 및 파출소, 가도 등 몇 십 명은 강제적으로 그들 부부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2011년, 도문시 정법위에서는 시 ‘610’, 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 지시를 내려 차례로 관옌샤(官豔), 왕페이중(王培中) 등 몇 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송림양로원 세뇌반에 감금해 강제 세뇌박해를 진행했다. 이번에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또 딩수셴(丁淑賢), 류야셴(劉雅仙), 장수화(張淑華) 등이고, 배신자 인전원이 이 세뇌반에서 졸개로 보충됐다. 2011년 5월 31일, 도문시 석현진 파룬궁수련생 장영란은 집에서 현지 파출소에 의해 송림양로원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말에 따르면, 세뇌반 내에는 성 정법위의 천(陳) 모씨가 있는데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전향’ 박해를 진행했다고 한다.

2012년 5월 15일 전후, 파룬궁수련생 최향란이 도문시 정법위, ‘610’ 등에게 송림양로원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5월 17일, 석현 파룬궁수련생 츠수링(遲素玲)은 석현진 파출소 7~8명 경찰관에게 강제로 송림양로원 세뇌반으로 납치됐는데 이미 박해로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같은 날 이 세뇌반으로 납치당한 사람은 또 곡수(曲水) 파룬궁수련생 장수셴(張淑賢)이 있었다. 2013년 5월 20일, 도문시 ‘610’, 국가보안대대에서는 또 석현진 송림양로원에 세뇌반을 조직했다. 세뇌반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에 참여한 공범자는 사오한 자 가오옌, 인전원, 류훙, 사오링(창춘) 등이다.

(3) 기타 방식의 세뇌 박해

중국공산당 사당이 몇 십 년 동안 중국인에 대한 통제는 매우 강했는데 그것들이 강제적이고 반복적으로 그 한 세트의 사악한 궤변을 주입하며 중국인을 세뇌했고, 대중 매체를 이용해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고 중독되게 만들어 한 세대, 한 세대 중국인에게 해독을 끼쳤다. 사람들에게 도덕과 인륜을 배반하는 변이된 사상을 주입시켜 매우 자연스럽게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게 하고 표현하게 했다. 그것들은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정기적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해 지정된 일정한 장소에 감금하는 ‘세뇌반’을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악도들은 또 매체, 각종간행물과 교육계통 등을 이용해 일반 국민들을 세뇌시켜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증오하게 선동했다.

▲ 연변 인민대학출판사에서 출판한 ‘××백자초등학생작문선(××百字小學生作文選)’이 있는데, 편집장 장훙페이(張宏飛, 張傑)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모독한 내용이 편입되어 있다. 문장은 모두 초등학생이 쓴 것으로, 어떤 문장에는 편집자의 평과 주를 달았다. 이런 문장들이 사회에 유입되어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초등학생들에게 해독을 끼쳤겠는가? 더구나 그 책의 발행부수는 매우 많았다. 그중 ‘300자 초등학생작문선’만 하더라도 한 차례에 5천 권씩 발행했다.

▲ 연길시의 정치 졸개들은 몇 해 동안 라디오방송국, 텔레비전방송국, 신문 등 각종 언론매체를 이용해 여러 차례나 파룬궁을 모독해 연길시 인민에게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선동했다. 악도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가만두지 않았다. 강제로 전체 시 학생들에게 파룬궁을 비난하는 영화를 관람시키고,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학생들을 조직해 ‘진선인(眞善忍)’을 반대하는 서명을 받도록 했으며, 심지어 일부 기만당한 교사들을 선동해 수업시간에 함부로 파룬궁을 공격하게 했는데, 아이들 마음속에 증오의 종자를 심는 등 짓을 자행했다.

▲ 안도현 량병진(亮兵鎭) 청림촌(青林村)의 사당서기 한야오리(韓耀利)는 2003년 7월 안도현 ‘610’사무실 두목 정안춘이 대법을 모독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중앙텔레비전방송국의 취재를 받으면서 마음을 어기고 거짓말을 꾸며댔다. 이 일은 중앙텔레비전 정오 반시간 동안 보도되어 극히 나쁜 영향을 조성했다.

▲ ‘도문강보’(국내 통일잡지 코드 CN22-0012, 우편발행 코드 11-60)는 2006년 5월 8일 제86기 제3판(시사 광고판) 오른쪽 귀퉁이에 신화사 베이징 5월 6일자 ‘외교부에서 미국이 사교를 대신해 부추긴 것을 비난(外交部譴責美替邪教張目)’이란 제목으로 전문을 전재했는데, 전문 내용은 외교부 대변인 류젠차오(劉建超)가 5월 6일에 기자에게,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 연례 보고에서 중국에 연루된 내용을 질문한데 관한 답변이라고 했고, 그중에 대법을 모독한 내용이 있었다. ‘도문강보’는 현지에서 그 영향력이 넓다. 이 때문에 또 현지 민중에게 해독을 끼칠 수 있었다. 그날 발행된 보도편집 담당자는 류구이란(劉桂蘭)이란 자이고 책임교정은 마리리(馬麗麗), 좡류민(莊劉敏)이며, 컴퓨터 제작은 쑨링(孫菱)이었다.

▲ 훈춘시 ‘610’, 시위원회사무실, ‘도문강보신문사, 시위원회 선전부에서는 2006년 7월 전체 시 각계 부서에서 이른바 일명 ‘×교 반대, 과학 숭상’ 이란 제목의 글쓰기 현상공모를 했는데 그 설문지를 내보낸 수량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였고, 유효한 설문지만도 2천 부 정도를 거둬들였다. 더구나 7월 20일 ‘도문강보(훈춘 주간)’ 첫 면에 수상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수상자는 8월 1일 전까지 시 ‘610’사무실애서 상금을 수령하라는 통지문을 보도했다. 이것은 이 시의 사악이 전면적으로 중생에게 해독을 입힌 또 하나의 사례이자 증거다. 주요한 참여자는 각 가도, 기관의 사악한 조직이다. 취재한 기자는 장윈난(張雪楠)이다.

▲ 안도현 제5중학교[또 안림(安林)중학교라고 부름]에서는 2006년 11월 7학년 학생들에게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중국공산당의 가짜 조작사건)을 낭독해 대법을 모독했다. 그리고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사상보고를 쓰게 한 후 이른바 ‘체험’을 말하게 하여 사회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쳤다. 안도현 제3실험 초등학교[또 홍기(紅旗)초등학교라 함]에서는 2006년 11월 학생에게 천안문 분신자살사건 녹화 프로그램을 방송해 파룬궁에 대해 유언비어를 조성하고 비난했으며, 시청이 끝난 후 학생에게 강제로 감상문을 쓰게 했다. 다른 초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 방법을 썼다. 안도현 교육국은 전체 현의 초중학교에 강제로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방송해 학생들에게 해독을 끼쳤으며 학생들에게 심득체험을 쓰도록 했다. 안도현 교육국 장은 짱징린(臧景林)이고 부국장은 톈창순(田長順)이다.

▲ 2001년 초 연길시 하남초등학교에서는 반복적으로 ‘분신자살 가짜사건’ 등 파룬궁을 모독하고 대법 사부님을 모독하는 영화를 방영해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초등학생과 교사에게 해독을 끼쳤다.

▲ 2008년 5월 23일, 연길시 북산초등학교 교정에는 파룬궁을 모독하는 많은 만화를 발표해 학생에게 해독을 끼쳤다. 게다가 사람을 해치는 서명활동을 실시했는데 원래는 5월 27일 연변주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녹화촬영을 하기로 했으나 마침 비가 내렸던 관계로 정해진 시간에 촬영을 하지 못하게 됐자 비가 그친 뒤 촬영을 한다고 했다.

▲ 2008년 10월, 연길시 하남 초등학교 측은 모든 학생들에게 모두 ‘×교 반대, 과학 숭상’이란 제하의 글을 직접 써서 심득체험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쓰도록 했다. 또 교사가 검사하고 교장이 심사했다.

▲ 최근 연변 각지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요원들은 사회의 각지와 가도 등 도처에 파룬궁을 비난하는 내용을 책으로 발행하고 또 게시판과 대형현수막에 게시했다. 연길시 지역사회 가도 직원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약속카드(承諾卡)’에 서명시키며 세인들에게 해독을 입혔다. 어떤 이는 복도에 많이 붙였고 어떤 이는 길에서 행인을 가로막고 서명을 받았는데, 만약 서명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곧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다”라고 비난조로 말했다. 그 중에서도 표현이 특히 사악한 자들은 팔가자 임업국이었다. 2012년 4월 임업국 정법위서기 자오징, ‘610’주임 장원신의 지휘 하에 경찰 자오즈쿠이, 왕자후이는 경찰관 둥(董)씨와 함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약속카드’에 서명하도록 핍박했다. 파룬궁수련생이 서명하지 않으면 곧 납치했다. 최근 팔가자 임업국 정법위, ‘610’과 각 지역사회 직원은 파룬궁을 모독하는 전단지, 약속카드 등을 발급했다. 임업국의 전체 선전란에는 파룬궁을 모독한 그림과 잡지를 게재했는데 그것으로 민중들에게 해독을 끼쳤다. 연변 지역의 중국공산당 악도가 거짓말을 꾸며대고 선전해 파룬궁을 모독한 활동 중에서 ‘연변 조간신문’은 공산당을 도와 나쁜 짓을 저질러 독소를 크게 퍼뜨렸는데, 그 표현이 아주 두드러졌다. ‘연변 조간신문’의 관련 책임자는 신문을 이용해 종종 사악의 박해를 위해 기세를 올렸다. 그것은 이미 예전에 가짜신문을 게재해 파룬궁수련생을 먹칠한 적이 있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2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6/3054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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