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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6개월 억울한 재판 당한, 랴오닝 번시시 윈정췬 박해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遼寧) 번시시(本溪市) 파룬궁수련생 윈정췬(運政群, 運正群)은 7년 6개월 억울한 재판을 당했는데 선양(瀋陽) 둥링(東陵)감옥에서 돌아온 지 겨우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2015년 2월 13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윈정췬의 아내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곧 “그가 들어갔다가 7년 6개월 만에 돌아왔어요. 저는 지나치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아요. 그가 돌아와 저와 설을 쇠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이는 음력으로 섣달에 생일을 쇠고 음력 섣달 25일 떠나갔어요. 다시는 이렇게 좋은 남편을 찾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윈정췬은 1951년 1월 31일 출생했고 1994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친척과 친구들도 모두 그가 공인받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윈정췬은 2007년 4월 12일, 시후(溪湖)분국의 10여 명 사람이 한밤중에 방안에 들이닥쳐 납치해갔다. 당시 불법 경찰은 그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윈정췬이 누구인지를 묻자 그들은 아래층 사람이라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를 묻자 그들은 아래층에 물이 샌다고 말했는데, 그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자 불법 경찰은 문 스위치를 내리고는 문을 부수고 벌떼처럼 들어왔다. 당시 윈정췬은 여러 차례 110에 신고 전화를 걸었으나 그들은 회피했다. 경찰은 문을 부수고는 밀고 들어와서 녹화기를 메고 덮쳐들며 윈정췬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윈정췬은 순식간에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윈정췬의 아내(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음)는 상황을 보고 다가가서 그들을 때렸는데, 이것 때문에 3년형 판결을 당했다. 중공인원이 꾸며낸 구실은 그녀가 진상 자료 수송을 도와 진상 자료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감옥 안의 사람은 모두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는데도 잡혀 들어왔음을 알고 있다.

윈정췬과 아내는 번시 다바이러우(大白樓)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그 기간, 윈정췬은 한 차례에 치아가 6개나 부러졌다.

윈정췬은 7년 6개월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선양(瀋陽) 둥링(東陵)감옥에서 박해당했다. 2014년 10월 12일 억울한 재판 기한이 만기 되어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학대로 두 발뒤축에 각각 크기가 계란만 한 검은색 혹이 생겨나 걷기가 어려웠고 늘 각혈했으며, 음식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또 오줌을 누지 못해 끊임없이 구토했다.

병원에서는 윈정췬의 상황을 장암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병원에 도착해 10일 만에 의료비용을 지급하지 못했던 이유로 곧 퇴원했다. 결국, 윈정췬은 2015년 2월 13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선양 둥링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엄폐되고 잔혹했다. 2007년 10월, 푸순시(撫順市) 칭위안현(清原縣) 파룬궁수련생 장유진(張友金)이 박해로 사망했고, 2008년 8월 19일, 44세인 선양시 파룬궁수련생 정서우췬(鄭守君)이 박해로 사망했다. 칭위안현 파룬궁수련생 쉬다웨이(徐大爲)는 선양 둥링감옥에서 시달림받아 전신의 장기가 쇠약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며,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8년의 형기가 만기 되어 집으로 돌아온 13일 만에, 즉 2009년 2월 16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번시시 파룬궁수련생 캉톄웨이(康鐵偉)는 윈정췬과 마찬가지로 역시 2007년 4월 13일 이른 아침, 집에서 납치돼 6년 6개월 불법 판결 당했는데, 둥링감옥 4감 구역에서 다리가 구타로 부러지고 치아가 구타로 떨어졌다. 중공 ‘18기 인민대표대회’를 소집하기 전, 둥링감옥에서는 모든 감옥 내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한 사람씩 강제 ‘전향’을 시키고자, 잠을 못 자게 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구타하는 고문을 가하여 불구가 되게 했는데, 그 사악한 정도는 치가 떨릴 정도다.

문장발표: 2015년 3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24/3061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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