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성 보도)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살고 싶어요……”이것은 자오야링이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한 말이다. 그녀는 납치돼 창사(長沙)시 제4구치소에 2개월 넘게 감금당했다. 작년 6월에 심각한 질병 상태가 나타난 이유로 그제야 병보석됐다. 2015년 1월 12일, 이른 아침에 6개월 동안의 고통스러운 시달림을 경험한 자오야링은 병원 병상에서 호흡을 멈추었다. 당시 69세였다.
2주 후, 창사현 법원 제10청에서는 8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8명 변호사가 파룬궁과 피고인을 위해 무죄변호를 진행했고, 아울러 법정에 피고를 석방하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소식에 따르면 8명 파룬궁수련생은 여태껏 인신 자유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시에 불법 체포영장을 받은 자오야링은 개정 전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10년을 하루 같이 양친을 보살펴 드린 효녀
자오야링은 창사시 런치(人汽)회사 퇴직 직원으로 전통적이고 소박한 중국 여성이다. 유창한 표준어를 할 수 있었고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와 이웃들은 그녀의 목소를 들으면 익숙하고도 친절함을 느꼈다. 자오양링의 노부친은 예전에 창사시 이공대학 퇴직 교수였다. 이 노 교수와 그의 아내는 만년에 불행하게 중풍에 걸려 마비되었다. 이 대학 내의 많은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자오야링은 십 년을 하루같이 부모님을 알뜰하게 보살펴 드려 일 년 내내 마비돼 자리에 누워 있는 두 노인에게 욕창의 고통을 받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몸 안팎을 늘 깨끗이 씻어드렸다. 의사도 보고 찬탄할 정도였다.
2003년, 80여 세 고령인 양친은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자오야링은 과로로 인해 몸에 즉시 위험한 신호가 왔다. 그때 자오야링은 이미 60세에 가까웠는데 심각한 심장 쇠약에 걸려 건강이 하루하루 나빠졌다. 걷는 것마저 매우 어려워 채소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면 매우 오래 휴식해야 했다. 가족들은 보고 걱정을 금할 수 없었다. 자오야링은 일찍이 이혼하고 다시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 수년간 부모를 보살펴 드림은 거의 그녀 생활의 전부가 됐다. 오늘 부모님이 떠나가자 그녀는 마치 정신적인 기둥을 잃은 듯 몸이 순식간에 위험해져 어쩌면 자신도 뒤따라 갈 것 같았다. 바로 이때 어떤 마음씨 착한 사람이 자오야링에게 파룬궁을 연마해 질병을 없애고 건강을 되찾도록 건의했다.
대법은 그녀에게 생명의 귀착점을 찾게 하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하며, 차츰 다른 사람을 위하는 더욱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한다. 동시에 매일 연공해 단련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반시간에서 한 시간 가부좌를 연마한다. 수련자는 차츰 심령이 정화되고 도덕성이 향상되어 몸도 매우 빨리 뚜렷한 개선이 있게 되고 차츰 젊고 건강한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1999년 7월, 신주(神州) 대지에서는 갑자기 파룬궁과 연공하는 민중을 탄압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중앙에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텔레비전에서부터 신문에 이르기까지 반대하고 모독하는 말이 온 천지를 뒤덮었다. 행운스럽게도 자오야링은 1999년 전에 인연이 있어 파룬궁을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연공은 하지 않았지만, 유언비어를 날조한 선전은 조금도 그녀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양친이 병으로 사망한 후 자오야링은 한가한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자신의 몸을 위해 그녀는 ‘전법륜(轉法輪)’을 받쳐 들고 2004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섰다.
자오야링은 매우 빨리 자신의 몸에 상상하지도 못한 기쁜 변화가 발생했음을 발견했다. 심장 쇠약 증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걷는 것도 자유자재롭고 매우 가벼웠으며 온몸이 가뿐했다. 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기운도 왕성해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매일 그렇게 즐겁고 충실하다는 것이었다. 자오야링은 만약 대법이 없었다면 한 외로운 늙은이로 그녀가 얼마나 고독하고 처량할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파룬따파 수련은 그녀에게 생명의 귀착점을 찾게 했다. 이것은 가장 큰 감수와 수확으로, 어떠한 금전 물질로도 바꿀 수 없다.
기쁨 끝에 자오야링은 또 유감스러움도 있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더욱 빨리 대법을 수련할 수 있었다면, 오랫동안 병으로 몸져누운 부모도 이 불법(佛法)을 들을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과 소망에서 자오야링은 늘 열심히 신변에 익숙하거나 낯선 친구를 도와 파룬궁을 알려주고, 사람들에게 대법이 좋음을 알려주었으며, 파룬궁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고 있으나 중국 대륙에서만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진상을 진술했다.
수련 후, 자오야링의 생활은 간단하고 순조롭고 평범했다. 남다른 것은 그녀는 매우 젊어 보여 단지 50여 세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당신은 이렇게 젊은데 어떻게 노년 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라고 캐묻는 정도에 이르렀다.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눈 깜짝할 사이에 자오야링은 수련한 지 10년째가 됐다.
깊은 밤에 갑자기 납치당해
2014년 3월 29일 깊은 밤, 여러 대의 흰색 경찰차, 오토바이가 창사시 이공대학으로 질주해서 길 입구, 거리 옆에 정차했다. 그리고 수 십 명 경찰, 사복 경찰이 모 주택 단지에 집중해 들어가 포위했다. 주민과 길을 지나가던 행인은 야심한 밤에 이 긴장한 상황을 보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12시 이후(30일 0시가 지난 뒤), 자오야링은 걸어나가 보았는데 경찰이 바로 그녀를 강제로 진판링(金盆嶺) 파출소로 납치했다. 잇달아 집으로 찾아가서 조사, 압수했다. 자오야링은 30일에 창사 지역 류양(瀏陽)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이날 밤중에 경찰차, 경찰이 창사시 이공대학 안팎을 감시한 것이 바로 연세가 칠순인 선량한 노인을 납치하기 위해서임을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창사 경찰 측에서 통일적으로 납치 행동을 진행한 일부분일 뿐이다.
2014년 3월 29일 이날, 창사의 근 백 명 경찰은 자오야링을 포함한 9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납치자는 창사시 공안국, 톈신구(天心區), 푸룽구(芙蓉區), 위화구(雨花區) 공안분국과 창사현, 닝샹현(寧鄉縣) 공안국 및 허화위안(荷花園), 쭤자탕(左家塘), 진판링, 싱사진(星沙鎭) 등 파출소 및 지역 사회에서 왔으며, 사용한 것은 모두 창사현 공안국에서 통일적으로 발급한 형사구류증이었다. 이전인 3월 25일, 다른 두 명의 창사시 주민이 톈신구 공안분국, 위난가(裕南街) 파출소에 의해 납치당했고, 아울러 창사현 경찰에게 형사 구류처분을 당했다.
갑자기 닥쳐온 이 한 차례의 납치는 이렇게 자오야링 노부인의 안정된 생활을 끝장냈다. 일이 발생한 후 소식을 들은 친구는 마음이 무척 조급해 절박하게 주소를 문의해 구치소로 급히 갔다.
‘대사건’을 꾸며 일반 민중을 모함
자오야링은 평일에 매우 적게 외출하고 또 시내 지역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로 창사현과도 그다지 연계가 없었다. 그녀가 갑자기 창사현 공안국에 의해 형사구류처분을 당하자 이웃들은 매우 이해할 수 없었다. 매우 빨리 각 파출소에서 전해온 소식이 드러났는데 납치 명령은 고위층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공안부에서 지휘한 이른바 ‘대사건’이다. 후난성(湖南省) 공안청에서 조직한 전문사건팀은 이미 창사현 현지에 주둔해 있었다.
사정을 아는 인사가 폭로했는데, 중국공산당 당국은 민중이 알 권리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함에서 출발해, 장시기 파룬궁 연공 민중에 대해 불법 감시를 진행해 이른바 ‘정보’를 수집하고 더 나아가서는 입안하고 정찰했는데, 법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박해를 진행했음이 사실이었다. 지방에서 보고해 올린 이른바 중점 방공(防控) 대상에 대해 사람이거나 일을 포함해서, 국가 공안부에서는 감독 전문사건에 끼워 넣었다. 게다가 성급 공안청 국가보안 총대대에서 책임졌다. 2013년 초, 공안부 국가보안 총국에서 서면으로 지시한 후난성 공안청 국가보안총대대에서 책임진 감독 전문사건(부호 ‘F1307’)이 바로 유사한 이른바 전문사건 중 하나다.
1년 후, ‘F1307’ 전문 사건은 거대한 인력, 물력과 재력을 소모하며 공안부에서 엄밀하게 감시해 장악한 이른바 상황에 근거해,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제작했다고 인정되는 민중을 확정해 납치와 가택수색을 했다. 2014년 3월, 창사현 경찰에 의해 납치당한 11명 파룬궁수련생과 그들의 가족은 모두 자신이 이미 비밀리에 미행, 감시, 감청당한 지 몇 달, 1년 또는 더욱 오랜 시간이 되었음을 모르고 있었다.
소식에 따르면, 자오야링과 가족은 모두 비밀리에 감시를 당했다. 목격자가 실증한 데 따르면, 납치 몇 달 전에 의심스러운 낯선 사람이 그녀가 거주하는 인근에서 맴돌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오야링이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함을 미행했다고 한다. 당시 ‘F1307’ 전문 사건을 책임진 국가보안은 일찍이 싱청(星城) 민중에게 함정을 설치했다. 하는 일이 없는 이 사람들은 배후에서 몰래 한 무리 국민의 일상 행적, 갔던 곳, 만난 사람, 한 일, 말한 것을 엿보았다. 그런 다음 딴 속셈을 가지고 통합 조정해 보고했다. 그들이 이른바 정보가 있음을 가늠하거나 취사하는 표준은 국가 법률이 아니라, ‘F1307’의 최종 목표—파룬궁 진상을 봉쇄해 박해 범죄를 은폐함에 영합하는 것이었다.
감시, 이 스파이 행위는 마치 암흑 속에서 자오야링에게 마수를 뻗친 것 같았는데 이 노부인은 이에 대해 전혀 몰랐다.
몇 달 사이 노인이 세상을 떠나다
류양(瀏陽)시 구치소에 하루 이틀 가둔 후 경찰은 또 자오야링을 창사시 제4여자구치소로 옮겨 감금했다. 그날 류양 구치소 감방에서 나온 자오야링은 마침 급히 온 친구를 만났다. 이것은 이유 없이 붙잡힌 후에 매우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 자오야링은 즉시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다. 이 무고한 노인에게 정의로운 인사의 공정한 언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2014년 4월 30일, 납치당한 11명 파룬궁수련생 중 2명이 풀려난 것을 제외한 외 자오야링 등 9명은 모두 창사현 검찰원에 의해 체포영장을 받았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구치소에 감금된 자오야링 머리 위에 큰 혹이 생겨나 출혈하고 고름이 흘렀다. 6월 중순, 병세가 지속해서 악화되고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오야링은 ‘병보석’ 명목으로 석방되어 돌아왔다. 이것은 노부인이 감금당한 지 2개월 후 ‘병세’로 자유를 얻은 것이지만 그녀는 이로 인해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했다.
그 후 공안국 국가보안, 파출소 경찰, 검찰원 직원 등은 끊임없이 집으로 찾아오거나 혹은 전화로 물었다. 2014년 6월 30일, 창사시 공안국 국가보안이 임시 주도한 전문사건팀은 이른바 사건 서류를 창사현 검찰원에 직접 건넸다. 같은 해 11월 17일, 현 검찰원은 구치소에 감금한 8명 일반 민중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이른바 사건처리 단계 전후로 불청객이 여러 번 자오야링의 건강 상황을 ‘점검’했다. 만약 다소 건강을 회복한 것이 발견되면 자오야링은 여전히 불법 기소와 판결에 직면할 수 있었다. 노인이 정신적으로 어떠한 압력을 감당했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몸은 이에 따라 날로 악화되었는데 결국 2015년 1월 1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본래 건강하고 선량하던 이 노인은 그 깊은 밤에 난폭한 납치를 당한 후 몇 달 사이에 죄명을 뒤집어쓰고 이렇게 총망히 떠났다. ‘F1307’ 전문사건, 이 공포적인 행동의 참여자는 그 재앙을 피하지 못하며 모두 반드시 끝까지 추적 조사당해 일일이 청산될 것이다.
(역주: 관련 전화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3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15/3062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