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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정신이상이 된 청화대생 류즈메이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 보도) 라이양시(萊陽市) 퇀왕진(團旺鎭) 싼칭촌(三靑村)의 류즈메이(柳志梅), 꽃다운 나이에 원근에 소문 난 이 청화대생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 각급 인원의 박해를 당해 12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상상하기 어려운 학대를 당한 뒤 정신이상이 되었다. 결국, 2015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2월 13일 아침, 류즈메이의 이웃 촌인 시중징촌(西中荊村)의 한 촌민과 아이가 산책하다가 한 우물 변두리까지 걸어갔는데, 아이가 우물 안에 시신 한 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는 아래로 향하고 발은 위로 굽혀진 채 수면에 떠 있었다. 촌민은 경찰에 신고하고 사람을 찾아 건져냈는데, 얼굴 부위는 자색을 띠고 머리 부위에는 상처가 있었으며 얇은 속내의와 스웨터만 입고 있었다. 류즈메이의 사촌오빠는 싼칭촌의 촌장인데 뜻밖에 알아보지 못했다. 류즈메이의 집으로 가서 사람이 실종된 것을 알고서야 사망자가 바로 류즈메이임을 확인했다.

정신이상인 류즈메이가 도대체 어떻게 우물에 빠졌을까. 자신이 조심하지 않아 빠졌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죽여서 입을 막았는지에 대한 상황은 조사해야 한다.

柳志梅

(사진 설명 1): 류즈메이(柳志梅)

1997년, 17살의 류즈메이는 선발시험에서 ‘산둥성 1등’의 성적을 받고, 보증 추천으로 베이징 청화대 화학공업학과에 입학했다. 바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중화대지에서 광범하게 전파되던 때였는데, 그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수련 원칙은 사람의 도덕을 승화시키고 또 몸을 건강히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었다. 류즈메이는 청화대에서 매우 빠르게 열심히 수련하는 수련생이 되었다. 그때의 청화원에서는 천 명 가까이 되는 교수와 학생들이 파룬궁을 배워 연마했었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江澤民), 뤄간(羅幹), 류징(劉京), 저우융캉(周永康) 정치 깡패집단은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류즈메이는 대학 2학년을 채 마치지 못했는데, 청화대 학교 측은 강제로 부모님더러 그녀를 데려가라고 압박했다. 9월, 학교 측은 그녀를 등록하지 않고 강제로 휴학 명령을 내렸다. 게다가 어떠한 서면적인 증명도 내놓지 않았다. 여러 번 납치당하고 구타당하고 또 짧게 감금당한 뒤에도 류즈메이는 파룬따파 ‘진ㆍ선ㆍ인’을 견지하고 수련하여 2001년 3월에 학교에서 제명당했다.

2001년 5월, 류즈메이는 베이징 하이뎬(海澱) 지역의 셋방에서 납치당했는데, 몇 군데의 구치소를 오가면서 그 후에는 또 불법으로 베이징시 공안국 치추(七處) 구치소에 구금당했다. 구금당하던 중에 류즈메이는 머리를 구타당해 변형되었고 흉부는 상처를 입었으며 손톱도 몇 개 빠졌다. 베이징 펑타이(豊臺) 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당한 기간에도 잔인한 혹형을 당했다. 악경은 의자의 한쪽 다리를 류즈메이의 발 위에 올려놓고 의자 위에 앉아서 힘껏 비틀었다. 또 물건으로 그녀의 다리를 때려 류즈메이는 2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절룩거렸다. 더욱더 사람을 분노케 하는 것은 우람한 체격의 남자 몇 명이 류즈메이를 거꾸로 매달고 괴롭힌 것이다. 한 악경은 “말하지 않으면(수련생을 파는 것을 말함) 당신의 옷을 다 벗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류즈메이는 당시 겨우 20살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악경에게 “나이로 보면 당신들이 우리 아버지와 비슷해 보이니 삼촌이라고 부르겠어요. 삼촌들! 절대로 이러면 안돼요. 이렇게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2002년 11월, 22살 된 류즈메이는 10여 개의 죄명을 뒤집어쓰고, 베이징 하이뎬구 중공 법원에서 12년을 판결받고, 산둥(山東)여자 감옥으로(지난에 있다) 옮겨져 계속 박해당했다. 류즈메이가 감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청화대에서 사람 몇 명을 파견해 감옥에 왔는데, 그녀의 대학교수를 포함해서이다. 청화대의 나쁜 학생들과 대학교수는 감옥에 와서 ‘복학’해준다는 미끼로 그녀를 속였다. ‘전향(파룬궁 신념을 포기)’ 하면 그녀의 학적을 유지해준다고 하면서 감옥 식당에서 류즈메이에게 밥 한 끼를 사줬다. 거대한 압력 하에서 류즈메이는 본심에 어긋나는 ‘전향’을 하고, 아울러 나쁜 놈의 앞잡이가 되었다. 믿음에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이 전향을 거부할 때면 악독한 경찰은 그녀를 핍박해 방법을 생각해 내 전향시키도록 했다. 수법이 악랄할수록 극찬했고 여러 차례 그녀에게 사람을 구타하도록 핍박했다. 류즈메이는 가끔 고통스럽게 “……모모의 목은 제가 부러뜨린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갔지만, 다시 복학의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류즈메이는 속은 것을 알고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아 침묵하며 말수가 적어졌다.

산둥성 여자 감옥에 40여 세의 여 교도관 덩지샤(鄧濟霞)는 계장급 간부였다. 2002년 말부터 2008년 류즈메이가 출옥하기 전까지 덩지샤는 늘 류즈메이를 데리고 감옥 안의 작은 병원에 갔다. 감옥의 재소자는 거의 매일 그녀에게 주사를 세 번, 약 50ml를 놓았는데, 그 이유는 ‘정신병’이었다. 2003년에 류즈메이의 정신에 이상이 나타났다. 감옥 교육과에서 항상 류즈메이가 “나는 병이 없다! 주사를 안 맞겠다! 약을 안 먹겠다!”라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2008년 10월, 산둥성 여자감옥은 류 씨 가족에게 11월 13일에 류즈메이를 마중해 집으로 돌아가라고 전화했다. 11월 13일, 오후 2시가 넘어서 류즈메이의 가족은 감옥에서 그녀를 데려갔다. 열차에서 류즈메이는 “3일 전 감옥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 이빨 뒤에 구멍이 생겨서 구멍 한 개 마다 주사를 맞는데 약 600위안(약 10만 원)이 들지만 감옥측은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무료로 주사를 놓았다.”라고 말했다.

집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난 후, 류즈메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것 같았다. 삼일 째 되는 날, 류즈메이는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졌고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류즈메이는 불안해 보였고 엉뚱한 말을 하면서 손과 발은 춤을 추고 팔은 뛰는 자세로 끊임없이 씰룩거렸다. 하루 종일 잠을 자지 않고, 하루에 2시간만 잘 때도 있었다. 류즈메이는 매우 빨리 기억을 잃었다. 심지어 자신이 몇 살인지조차 잘 몰랐고 말은 두서가 없었으며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했다. 매일 보온병 6~7개 정도의 많은 물을 마셨다. 소변을 이불 위에 보고 젖은 이불 위에서 잠을 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친구들은 류즈메이의 치아에 구멍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감옥 측에서 말했던 ‘구멍’은 약물 주사를 놓기 위한 핑계라고 여겼다.

류즈메이의 어머니는 딸이 12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아 매우 빨리 중풍이 들었다. 마침내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딸이 출소했는데, 오히려 멀쩡하던 딸이 며칠 사이에 갑자기 미친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 큰 충격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고, 3개월 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현지 몇 명의 마음씨 좋은 파룬궁수련생들이 류즈메이를 데려와 돌아가며 그녀를 보살펴주었다. 그들은 한 민가에 세 들어 그녀를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다. 모두 약간의 돈을 모아 류즈메이에게 새 옷과 생활용품을 사주었다. 몇 명의 언니들은 돌아가며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해주며 한담을 했다. 류즈메이는 하루에 몇 번이나 오줌을 이불에 쌌다. 그녀들은 류즈메이와 함께 온통 오줌 냄새가 풍기는 구들에서 잠을 잤다. 70세에 가까운 아주머니는 어머니처럼 그녀를 보살펴 주었다. 매번 그녀의 똥오줌을 닦아주고 똥오줌이 묻은 옷과 이불을 깨끗이 빨아주었으며, 한 번 또 한 번씩 류즈메이가 깨뜨려버린 사발과 접시를 치우고는 또 그녀에게 새 밥을 지어주었다……. 때로는 류즈메이가 미친 듯이 구타하고 상처를 입혔으나 한 번도 원망스러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모두의 간고한 대가를 치르고 선의적인 관심 하에 류즈메이는 하루하루 평정해졌고, 병이 도지는 횟수도 점점 적어지고 간격도 점점 길어져 다들 모두 동경과 기대를 품었다.

뜻밖에 2010년 4월 16일, 라이양 공안국의 한 무리의 경찰이 갑자기 야만적으로 담장을 뛰어넘고 집안에 들이닥쳐 류즈메이를 비롯해 그녀와 함께 있던 언니 4명을 전부 붙잡았다. 뜻밖의 죄명은 ‘류즈메이를 보살펴 준 것은 불법 구금이다’였다. 류즈메이를 보살피기 위해 방을 제공한 가오춘훙(高春紅)은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극히 악명이 높은 왕춘(王村) 노교소에서 1년 6개월의 불법 노역을 당했다.

만약 10여 년 전에 청화대생 류즈메이, 이 금봉황의 날개를 부러뜨린 것이 산둥 여자감옥이라고 한다면, 그녀가 곧 건강을 회복해 다시 날 수 있는 희망이 있게 되었을 때 거듭 그녀를 심연에로 몰아넣고 건강 회복의 희망을 부순 사람이 바로 극히 악명 높은 라이양 ‘610’이다.

류즈메이가 심문을 받은 뒤, 그날 오후 경찰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번 야만적인 납치로 인해 류즈메이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충격을 받아 거듭 병이 도졌다. 또 예전의 정신 상태로 돌아갔는데 심지어 더욱 심했다. 그녀는 구들 위, 옷 위에 똥오줌을 누었을 뿐만 아니라, 또 대변을 손에 묻히고 놀면서 벽 위에 칠했다.

인근의 촌민은 “정신병 환자를 보살펴 주는 것은 아주 좋은 사람만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큰 상장을 표창하고 텔레비전에 올려 선전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붙잡고 병이 있는 아이를 다시 충격받게 해 미치게 했는데, 이게 무슨 사람이 할 짓입니까? 이게 무슨 세상입니까! 불쌍한 것은 이 아이는 본래 병이 없이 멀쩡했는데 이렇게 망쳐져 다시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2011년 겨울, 친구가 류즈메이를 문안하러 갔을 때, 그녀는 단지 “무슨 맛있는 것을 가져왔어요?”라고만 물었다. 이것을 제외하고 더는 흥미가 없었으며 보기에 예전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방안에서는 이상한 구린내가 풍겼고 구들목의 벽은 너무 지저분했는데, 모두 그녀가 대변을 발라서 남긴 흔적으로 얼룩졌다.

고향사람들이 예측한 것과 같이 류즈메이는 이렇게 처참하게 몇 년을 시달린 뒤, 몸은 갈수록 수척해져 맨 마지막에 추운 겨울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만약 이번 박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류즈메이는 많은 청화대생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위해 공헌했을 것이며, 만약 이번 박해가 없었다면, 류즈메이는 당신과 나처럼 자신의 직업, 생활과 가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사악한 박해 속에서 얼마나 많은, 류즈메이와 같은 이러한 사람이 억울하게 사망했으며, 얼마나 많은 이러한 가정이 산산조각이 났겠는가. 이러한 비극은 여전히 상연되고 있다. 이번 비극의 제조자, 이것은 중공 장쩌민과 그를 바싹 뒤따른 앞잡이들이다!

류즈메이가 박해당한 사실에 관해 밍후이왕 보도 《영원한 21세(사진)》, 《신주의 큰 재난(神州浩劫,)(14):청화대학 학생 피와 눈물》, 《날개가 부러진 봉황(사진)》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2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2/3054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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