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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파룬궁수련생 91명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종합보도) 2014년, 중국공산당은 지속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및 ‘610(파룬궁 박해 전문 기구)’이 불법적으로 조직하고 통제한 상황에서 박해는 파룬궁수련생의 직장, 주민위원회, 공안국, 세뇌반, 감옥 등 장소에서 발생하고 있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괴롭힘, 공갈 협박과 위협, 납치, 가택수색, 강탈, 불법 감금, 불법 재판, 판결, 갈취, 감시, 강제 채혈, 혈서 쓰기 등 박해를 당했고,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2014년 이전의 노동교양 박해 이후 계속 괴롭힘, 공갈협박과 위협을 당했으며,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고,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감옥 박해를 당했으며,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세뇌반에게 심신의 손상을 입었고,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공안국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 구치소의 고문 학대를 당했다. 이로 인해 2014년에 파룬궁수련생이 잔혹한 박해로 사망한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본문은 2014년에 실증된 중국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한 사례에 대한 통계다. 중국공산당의 정보 봉쇄로 아직도 많은 박해 사례가 폭로되지 않았다. 본문의 정보 출처는 모두 밍후이왕이며 마감 날짜는 2014년 12월 31일이다.

1. 2014년에 확인된 파룬궁수련생 박해 사망자는 123명

밍후이왕에서 공개한 2014년 통계에 근거하면, 새로 실증된 파룬궁수련생 박해 사망자는 최소 123명으로, 그중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사람은 91명이다. 2013년 박해 사망자는 17명이 추가됐고 2013년 이전에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은 15명이 추가됐다. 문장 뒤 ‘부록: 2014년 새로 실증된 파룬궁수련생 박해 사망자 명단’을 참고하라.

다시 말해서. 2014년에 중국 대륙에서 2개월 동안 약 15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한 것이다.

图1

2014년에 새로 실증된 파룬궁수련생 박해 사망자

사진 1은 2014년에 새로 실증된 박해 사망자 중 일부 파룬궁수련생으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 이름(지역, 박해 연도)은 각각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줄: 츠메이친(遲美芹, 랴오닝, 2014) 취후이(曲輝, 랴오닝, 2014), 샹샤오보(헤이룽장, 2014), 가오제(高傑, 랴오닝, 2014), 탄샹위(譚香玉, 후난, 2014), 양스펀(楊世芬, 푸젠, 2014), 장수셴(張淑賢, 지린, 2014), 뤄장핑(羅江平, 2013), 사오징메이(邵敬梅, 저장(浙江), 2014)

두 번째 줄: 쉬옌샹(許豔香, 허베이, 2014), 왕옌(王岩, 지린, 2014), 왕하이진(王海金, 허베이, 2014), 바관난(巴冠男, 랴오닝, 2014), 양춘링(楊春玲, 랴오닝, 2014), 쑨추거(孔秋閣, 신장, 2014), 저우궈창(鄒國強, 헤이룽장, 2014), 우쩌슈(吳澤秀, 구이저우, 2013), 류루샹(劉路香, 랴오닝, 2014)

세 번째 줄: 취웨이(曲偉, 랴오닝, 2014), 런수원(任淑雯, 랴오닝, 2014), 왕민(王敏, 랴오닝, 2014), 장구이즈(張桂芝, 지린, 2014) 리례펑(李烈鳳, 장시(江西), 2014) 천리즈(陳麗芝, 구이저우(貴州), 2014) 양밍펀(楊銘芬, 광둥, 2014), 저우바이성(周柏生, 후난, 2010), 장유웨이(張友維, 베이징, 2011)

네 번째 줄: 주진루이(朱金瑞, 헤이룽장, 2014), 왕하이톈(王海田, 지린, 2014), 우자쥔(吳加俊, 산둥, 2014), 저우쩌췬(周澤群, 충칭, 2014), 장쥔(張俊, 구이저우, 2014), 추위샤(邱玉霞, 헤이룽장, 2013), 판웨이(潘維, 지린, 2008), 러량전(樂良臻, 후난, 2014).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사람 91명 중 랴오닝성 21명, 지린성 15명, 헤이룽장성 9명, 충칭(重慶) 5명, 후난성 5명, 허베이성 4명, 산시(陝西)성 3명, 산둥(山東)성 3명, 쓰촨(四川)성 3명, 베이징 2명, 장쑤(江蘇)성 2명, 구이저우(貴州)성 2명, 간쑤(甘肅)성 2명, 신장(新疆) 2명, 푸젠(福建)성 2명, 톈진(天津), 닝샤(寧夏), 산시(山西), 안후이(安徽), 윈난(雲南), 저장(浙江)에 각각 1명이다. 아래의 도표2에 표기돼 있다.

图2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인원과 지역 분포도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91명 중 남성은 38명으로 41.8%, 여성은 53명으로 58.2%를 차지하는데 아래 도표 3에 표기돼 있다.

图3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의 성별 분포도

이 밖에 새로 추가된 2013년 박해 사망자 17명 중 남자는 8명이고 여자는 9명이다.

새로 추가된 2013년 이전 박해 사망자 15명 중 남자는 6명이고 여자는 9명이다.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91명 중 80명의 연령은 확인됐다. 가장 어린 사람은 28세이고 가장 연령이 많은 사람은 80세다. 연령 분포: 28~45세 13사례, 46~60세 25사례, 61~65세 16사례, 66~70세 14사례, 70세 이상은 12사례다. 아래의 도표4에 표기돼 있다.

图4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의 연령 분포도

2. 2014년 중국 파룬궁수련생의 박해 사망 원인 분석

2014년에 박해로 사망한 91명 중국 파룬궁수련생 중에,

여러 차례 괴롭힘, 공갈 협박과 위협, 납치, 가택 수색 및 강탈, 불법 감금, 갈취, 감시, 강제 채혈, 혈서 쓰기 등 박해로 사망한 사람이 21명으로 총 인원의 23.1%를 차지하고,

감옥 박해를 당해 사망한 사람은 28명으로 30.8%를 차지하며,

노동교양소 박해로 사망한 사람은 8명으로 8.8%를 차지하고,

사악한 세뇌반의 박해로 사망한 사람은 7명으로 7.7%를 차지하며,

공안국, 구치소의 괴롭힘으로 사망한 사람은 17명으로 18.7%를 차지하고,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은 10명으로 11%를 차지한다.

아래 도표5에 표기돼 있다.

图5

2014년에 중국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한 원인

3. 2014년에 중국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한 유형 사례

(1) 공안국 박해로 사망한 사례: 도문시 장수셴, 납치되어 하루 만에 살해돼

장수셴(53세, 여)은 지린성 도문(圖們)시 곡수(曲水)촌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다. 2014년 8월 7일, 도문시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납치당해 하룻밤 사이에 박해로 사망했다. 그녀 가족은 장수셴의 시신이 가슴부터 허벅지까지 온통 검푸른 상처투성이인 것을 확인했다. 장수셴의 허벅지살은 찢겨졌고 음부 주변은 모두 전기봉 충격을 당해 탄 상처가 있었으며, 등에는 또 밟고 걷어찬 신발 핏자국이 있었고 치아도 구타로 빠졌는데 고급 인민검찰원 검시관은 피해자가 고문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张淑贤

장수셴(張淑賢)

8월 7일 입추, 장수셴은 오후 3시경에 5선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는데 이미 몇 시간이나 잠복 감시하던 악독한 경찰 오길룡(吳吉龍)이 전용철(全勇哲) 및 여러 악독한 경찰들을 지휘해 작은 차를 몰고 그녀를 추적했다. 장수셴이 차에서 내릴 때 경찰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그녀를 변방 향상(向上) 파출소로 납치했다. 이 악독한 경찰과 변방 향상 파출소 무장경찰들은 곧 수갑에 채워진 장수셴에게 덮쳐 전혀 망설임 없이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전기봉으로 장수셴의 아랫배 부위에 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장수셴 등에게 진상자료를 만드는 상황을 알아내려 했다.

장수셴은 악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제 자백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또 법률 집행자가 위법한 행위에 대해 호되게 질책했다. 이때 경찰은 무척 화가 나서 더욱 심하게 때렸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장수셴은 학살당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2. 구치소 박해로 사망한 사례: 90일 동안 비인간적 학대를 당한 친황다오시의 왕하이진이 푸닝 구치소에 의해 박해로 사망

2014년 4월 22일, 왕하이진(王海金)은 푸닝현(撫寧縣)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베이다이허(北戴河) 하이닝로(海寧路) 파출소, 푸닝현 뉴터우야(牛頭崖) 파출소에 의해 납치된 동시에 가택 수색을 당했고 그날로 푸닝 구치소로 보내졌다. 감금 3개월 동안에 잔혹한 구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노역 등을 당해 몸은 휘청거리고 정신은 흐러멍덩해져 눈길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못한 채 딴 곳을 바라보는 상태였으며 온몸이 탈진했다.

王海金

왕하이진(王海金)

그는 90일 동안 비인간적인 혹독한 박해를 당하고 집에 돌아왔다. 예전에 키 178cm에 체중 90kg의 건장한 체격이었던 왕하이진은 온몸에 뼈만 남을 정도로 여위고 온 얼굴에 수염이 가득 자랐으며 허리가 굽어진 노인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치아는 구타로 부러졌고 밥을 보기만 해도 구토가 났으며, 죽을 먹고 싶어 약간 먹으면 잠시 후면 전부 토했다. 정신은 흐리멍덩하고 밤낮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우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밤새도록 침대에 앉아 있거나 방안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때는 너무 졸려 기대서 잠시 잠이 들지만 단 몇 분 만에 갑자기 놀라 질겁하며 일어나 앉는다. 그렇게 놀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 대자 형으로 결박당해 호스를 꽂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했던 자세를 취했다. 게다가 여전히 푸닝현 공안국 국가보안, 파출소 경찰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 괴롭힘을 당했다. 이로 인해 이미 상처를 입었던 심장은 극한에 이르러 두 차례나 병원에 입원해 응급 치료를 받았다.

가족들은 그의 눈앞에는 늘 여전히 구치소에서 혹독한 고문과 구타, 강제노역 당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 매우 과묵해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구치소 안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할 정도로 심한 고문박해를 당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2014년 10월 9일, 왕하이진은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겨우 46세였다. 따스했던 가정은 이번 박해로 집과 가족을 다 잃었다.

3. 노동교양 박해로 사망한 사례: 자무쓰 샹샤오보,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어 사망

项晓波

샹샤오보(項曉波)

샹샤오보는 원래 자무쓰시 제약공장 기술 담당이었다.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는 이유로 2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12년 10월, 헤이룽장성 계독 노동교양소(戒毒勞教所: 마약범 노동교양소)에서 9개월 넘게 불법 감금을 당했다. 그 기간 교도관이 샹샤오보에게 무엇을 주입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치아는 붉고 누렇게 변했다. 그리고 샹샤오보에게 주사를 놓았는데 매일 5~6병이나 놓았다. 무슨 약을 주입했는지 모르며 그들은 포도당을 주입했다고만 했다. 샹샤오보는 주사를 맞고 손까지 부어올랐다. 주사를 맞은 후부터 그녀는 특별히 흥분했고 바닥을 닦고 침대 밑을 닦을 때도 동작이 매우 빨라졌다. 이런 상태는 3~4시간 지속됐는데 예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어떤 때 그녀는 스스로 벽을 향해 말했고 어떤 때는 흥분해 함부로 달려 늘 머리를 부딪쳐 온통 큰 혹이 생겼다. 이후에 매일 그녀에게 주사를 맞혔는데 대략 1개월 동안 놓았다. 그리고 비교적 심각한 간헐적 정신이상 상태가 나타났는데, 특히 밤에는 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큰소리로 외쳐 거의 온밤 잠을 잘 수 없었다. 병보석으로 집에 돌아왔을 당시 샹샤오보는 뼈만 남아 앙상했고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줄곧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 2014년 2월 20일 오후, 극도의 고통 속에서 억울하고 참혹하게 숨을 거뒀다. 당시 나이는 겨우 55세였다.

4. 감옥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산시성 원수이현 한하이밍이 구타로 사망

산시(山西)성 원수이현(文水縣) 67세 한하이밍(韓海明) 노인은 2012년에 3년 6개월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아, 2012년 4월 10일에 진중(晉中) 감옥으로 납치됐다. 억울한 옥살이가 끝날 무렵이던 2010년 4월 4일 저녁에 진중 감옥에서 박해로 머리 왼쪽에 큰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병원으로 보내졌다. 결국 8일 0시쯤 세상을 떠났고 시신은 즉시 화장됐다.

2014년 4월 4일 전, 한하이밍은 2감시구역 교도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중 교도관 린단루이(林丹瑞)는 듣기는커녕 또 감방 팀장 링화이샹[淩懷祥, 또는 린화이싱(林懷星)]에게 “한하이밍을 엄밀하게 감시하고 그가 누구와도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명령을 내렸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4월 4일, 링화이샹(린화이싱)은 한하이밍이 다른 사람과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장시간 구타를 가해 주먹으로 한하이밍의 머리 부위를 사납게 때렸다. 8시부터 9시가 넘을 때까지 때렸는데 이로 인해 한하이밍은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땅바닥에 마비되어 쓰러졌다. 생명이 위급해져서야 산시(山西) 대형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위독 통지서를 내렸다. 한하이밍은 당시 의식장애가 있어 말을 하지 못했다. 늘 신체적인 고통으로 신음하고 왼손을 마구 꼬집고 자신도 모르게 떨었다. 왼쪽 머리는 탈모 증상이 뚜렷했으며 약간의 출혈 흔적이 남아 있었다. 머리 다른 부위에는 구타로 인한 혈반이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 뒤이어 한하이밍은 전신이 마비되고 머리 아래는 완전히 감각이 없었으며 단지 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호흡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4월 8일 0시 경에 한하이밍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5. 세뇌반 박해로 사망한 사례: 지린시 왕하이톈이 고문 학대와 독극물 주입으로 사망한 것으로 의심

王海田

왕하이톈(王海田)

지린성 지린시 촨잉구(船營區) 파룬궁수련생 왕하이톈(王海田, 몽골족)은 이전에 바오원쥐(包文菊)라고 부른 적이 있다. 2013년 10월 18일, 지린시 공안국, 즈허(致和) 파출소 경찰이 결탁해 지린시 베이지가 민족골목 8호 건물의 왕하이톈 집 문밖에서 그를 사허쯔(沙河子)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그 기간 국가보안대대와 형사경찰대대 경찰에게 고문 시달림을 당했는데, 두 손 거꾸로 채우기, 족쇄 차기, 검은색 머리 씌우개 씌우기, 코로 담배 피우기, ‘고춧물’ 주입, ‘겨자기름’ 바르기 등 박해를 당했다. 2013년 12월 5일에 세뇌반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 매우 고통스러웠다. 결국 2014년 2월 2일(음력 정월 초사흘)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겨우 45세였다. 당시 그의 입 전체는 검은 자색을 띠고 얼굴 전체가 청색을 띠었다. 왕하이톈이 세상을 떠난지 3일째 되던 날, 화장한 후 골회 안에 쌀알 크기의 검은색 과립이 있었다. 그의 가족은 왕하이톈이 생전에 얘기했던, 경찰이 그에게 상해를 입힌 수단에 근거해 세뇌반에서 유독성 약물을 주입한 것으로 추측했다.

中共黑狱酷刑演示:烟熏

고문 재연: 담배 두 대를 동시에 붙여 파룬궁수련생 콧구멍에 꽂아 넣고 입을 막는다. 담배 연기로 사레가 들리고 질식하는데 극히 고통스럽다.

6. 핍박에 못이겨 유랑하다 사망한 사례: 10년 동안 유랑한 베이징의 정중예가 억울하게 사망

정중예(鄭宗業)는 1953년 출생했고 베이징시 시청구(西城區) 퉁징대원(銅井大院) 36호에서 거주하는 베이징 팡좡 오수처리공장(方莊汙水處理廠) 직원이다. 1995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이로움을 적잖게 입어, 치료를 위해 국가의 돈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약을 먹은 적이 없었으며 가정도 평온했다. 1999년에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한 후, 베이징시 시청분국, 시창안가(西長安街) 파출소, 주민위원회 사무실, ‘610’, 국가보안은 그의 직장과 연합해 끊임없이 그에게 박해를 가했다. 게다가 여러 차례 이른바 당국의 ‘민감한 날’이 되면 그를 파출소나 주민센터로 납치했는데 심지어 보안이 집 출입구에서 감시했다. 구역 경찰 리중바오(李忠寶)를 포함해 시창안가 파출소의 6~7명 경찰들은 심지어 중학교에 다니는 그의 딸 학교까지 와서 괴롭혔다.

2000년 3월 28일, 직장에서는 베이징시 팡좡 팡싱위안(芳星園)에 있는 그가 거주한 집을 몰수했는데 구실은 외지에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온 파룬궁수련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일가족 세 식구는 어쩔 수 없이 핍박에 못이겨 9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방안에서 거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1년 2월, 중국공산당이 연출한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 사건이 발생한 후, 각급 ‘610’, 공안은 기회를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에게 더욱 광적인 박해, 강제 세뇌를 진행했다. 파출소에서는 정중예를 납치해 이른바 ‘면담’을 진행했다. 정중예와 아내는 차례로 납치돼 강제 세뇌를 받았다. 겨우 15세인 딸도 끌려가 정신 및 육체적 시달림을 겪었다.

장시기 시창안가 파출소, 사무실, 주민위원회와 직장의 엄밀한 감시 하에 처했으며 수시로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수시로 납치를 당해 일가족은 근본적으로 정상적인 생활, 근무와 학업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2002년, 정중예는 또 베이징 후루파(葫蘆垡) 세뇌반으로 납치돼 강제 세뇌를 받았다. 2002년 11월 25일, 아내 팡슈중(龐秀中)이 핍박에 못이겨 유랑생활을 1년간 한 후, 정중예는 마침내 딸을 데리고 유랑생활 길에 올랐다. 이로부터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10여 년 동안 일가족은 몇 번이나 경제력이 없어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게다가 파출소, ‘610’, 주민위원회 및 직장의 반복적인 추격으로 끊임없이 집을 이사했는데 20여 차례나 이사했다. 이렇게 줄곧 생활이 어려워서 도처를 떠돌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다. 2014년 1월 7일, 정중예는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해 병원에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현지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를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 씨를 냉대해 한쪽에 두었다. 결국 정중예는 10여 년 동안의 잔혹한 박해를 당한 후 억울하게 사망했다.

7, 괴롭힘, 공갈 협박과 위협, 납치, 가택수색 강탈, 불법 감금, 갈취, 감시를 당해 사망한 사례: 지린시 류위셴이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

지린시 파룬궁수련생 류위셴(劉玉賢)은 중국공산당 요원, 경찰의 지속적인 위협, 공갈 협박 하에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2014년 9월 20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는 겨우 56세였다.

류위셴은 지린시 창이구(昌邑區) 하다완 탄소공장(哈達灣碳素廠) 주택 시허(西河) 지역사회에 거주했다. 2014년 4월 18일 오후, 하다완 파출소 경찰에 납치됐다. 그날 오후 4시 경, 경찰은 차를 몰고 류위셴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감행해 모든 파룬궁 서적, 전자책 및 파룬궁 진상자료 등 물품을 강탈했다. 류위셴은 보름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5월 3일, 불법 구류 기한이 만기됐는데도 류위셴은 또 하다완 파출소 경찰에게 빈 집으로 납치됐다. 여러 명 경찰과 지역사회 서기 쑤웨이(蘇微)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저생활보장을 취소하고 집을 압수한다며 그녀에게 연공하지 않고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했다.

5월 5일, 지역사회 서기 쑤웨이, 주임 등 4명은 또 류위셴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에게 “당신과 당신 남편, 아이 전화는 모두 감시를 당했다. 당신 건물 앞과 뒤에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길을 가도 미행하는 사람이 있고 당신은 베이징으로 간 적이 있는데 다시 발견되면 붙잡아 최소 5년 감옥살이 판결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그 후 쑤웨이는 또 늘 가서 류위셴을 괴롭히고 공갈 협박해 그녀에게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류위셴은 매일 극도의 공포 속에서 지냈는데 늘 그녀 집을 주시하는 사람이 있는 느낌이 들어 감히 다른 수련생 집으로 가지 못했고 정신이 긴장하고 우울하고 억눌린 감을 느꼈다…. 보름 후, 그녀는 메쓰꺼워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증상, 목이 아픈 증상, 온몸이 무기력한 증상, 걸을 수 없는 증상 등 증세가 나타나 매일 오후만 되면 몸이 차가와지고 떨렸다…. 결국 2014년 9월 20일에 류위셴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부록: 2014년 새로 실증된 파룬궁수련생 박해 사망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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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정보 출처는 모두 밍후이왕이며 마감 날짜는 2014년 12월 31일임.)

문장발표: 2014년 1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3/3026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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