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칭하이 보도) 닝샤(寧夏)의 선량한 농촌 부녀자이자 파룬궁수련생 후훙(胡紅)은 납치된 뒤 칭하이성(青海省) 시저우(西州) 더링하시(德令哈市) 구치소에 감금당해 2개월이 넘었다. 7월 상순에 머리 부위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더링하시 공안국과 구치소는 사건 발생 사실을 후훙의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고, 또 전력을 다해 진상을 은폐하며 후훙을 위협하였고 후훙의 친구에게도 압력을 가했다.
오늘까지도 후훙의 친구는 여전히 후훙이 더링하시 구치소에서 어떠한 박해로 부상당했는지 원인을 알지 못한다.
소식에 따르면, 후훙은 당시 더링하시의 한 병원에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머리 부위 전체, 뺨과 턱마저 가제에 빈틈없이 감겨 있었다. 며칠 동안 응급처치했으나 말하지 못했고, 단지 조금의 의식이 있었을 뿐이었다. 얼굴 부위는 부종 증상이 나타났고 액체를 주입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병원의 병실에는 경찰 2명이 지키고 있었다.
후훙이 부상당하자 병원으로 보낸 뒤, 구치소에서는 때맞춰 후훙의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눠무훙(諾木洪) 농장(후훙이 칭하이에서의 거주지) 파출소의 경찰을 통해 여러 차례 후훙의 동료를 찾았는데, 후훙의 동료에게 병원으로 가서 ‘후훙을 위안’하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후훙이 구치소 안에서 벽에 부딪혀 자살하려 했는데 이미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도 별로 큰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후훙의 동료에게 소식을 누설함을 허락지 않는다며, 누설한다면 후과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위협했다.
1개월 만에 후훙의 가족은 후훙이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후훙은 생사가 불분명했다.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어쩐지 가족은 아무것도 몰랐다. 후훙의 가족이 더링하시 국가보안대대 자오린(趙林)에게 전화를 걸어 후훙의 현 상태를 문의했을 때, 자오린은 위세를 부리며 공갈 협박하는 한편 또 후훙에게 보석 절차를 밟아줄 수 있다고 암시했다. 그러나 시종 후훙이 부상당한 원인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후훙의 가족은 즉시 무조건으로 석방하도록 요구했다. 자오린은 더링하시로 그를 찾아와 면담한 뒤에 다시 말하자고 위선적으로 속여 말했다.
8월 상순, 후훙의 딸 장옌(張豔) 등은 거듭 더링하시로 가서 국가보안대대의 자오린을 찾았는데, 자오린의 태도는 매우 난폭했다. 게다가 후훙이 부상당한 일을 모른다고 말했으며, 다른 사람은 장옌 등을 사무실에서 쫓아냈다. 자오린은 장옌의 질문은 듣지도 않고 덮쳐들어 장옌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현장에서 정보를 조사해 보았다. 뒤따라 공안 부서에서는 곧 차량과 사복 경찰을 통제해 도시 내의 각 도로, 호텔, 식당 등 도처에서 광적으로 후훙의 가족을 추격해서 가로막았고, 전화를 감청했다. 게다가 장옌이 숙박한 호텔 방안으로 가서 수사를 진행했다. 아무런 수확이 없었어도 그들은 계속하여 도처에서 후훙의 가족의 뒤를 밟고 감시했다.
장옌 등은 위협을 당하자 놀라고 불안했으나, 후훙의 소식이 전혀 없었던 까닭에 부득이 거듭 자오린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오린은 장옌에게, 후훙은 이미 7월 22일에 검찰원에 의해 체포령을 받았는데 다음 단계는 법원에 기소하려 한다고 알려 주었다. 자오린은 또 위선적인 얼굴로 “후훙이 거주한 곳에서 수색해 낸 자료는 100부가 되지 않기에, 본래 한두 달 구류시켰다가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밍후이왕에 후훙의 일을 폭로했고, 파룬궁수련생이 또 도처에서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국장을 노하게 했습니다. 국장은 그제야 명령을 내려 후훙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후젠차이(胡建才, 후훙의 남동생이자 파룬궁수련생임)에 대해 지명 수배했습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자오린은 여전히 후훙이 병원에 입원한 상황을 실토하려 하지 않았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 장옌은 구치소로 가서 후훙을 면회하려는 요구를 제출했으나 구치소에서는 허락지 않았다. 후훙이 입원한 이유를 묻자, 당직 경찰은 거짓을 꾸며 “후훙은 고혈압으로 인해 모세혈관이 파열되었는데, 치료를 통해 이미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고 말했다. 다시 묻자 당직을 서는 사람은 아는 체하지 않았다.
더링하시 검찰원 공소과에서는 “절차에 근거해 1개월 사이에, 법원에 기소하거나 혹은 공안 기관에 반송한다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고 답변했다.
더링하시의 3개 병원에는 모두 후훙이 병 치료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는데, 공안 기관과 구치소에서 진상을 감추기 위해 이미 사전에 입 맞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치소, 국가보안대대의 사람은 또 후훙에게 외부에는 자신이 고혈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도록 위협했다.
최근에 입수한 소식으로는, 후훙은 현재 구치소에 있으며 몸 상황은 매우 나쁘다 한다. 그리고 약을 먹는데, 정신 상태가 소침하며 압력이 매우 높다.
후훙은 닝샤(寧夏) 중닝현(中寧縣)의 선량한 농촌 부녀자로, 올해 45세이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전남편이 늘 폭력을 가했던 이유로, 정신적으로 심각한 자극을 받아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다. 이혼 후 혼자서 아들딸을 데리고 간난하게 생활했다. 생계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 1,000km도 넘는 더링하시로 가서 일했다. 2011년 후훙은 파룬궁을 수련한 뒤, 심신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에는 감기에 걸려도 한두 달이 되어야 완쾌되었었다. 게다가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링거를 맞으면서 매번 적잖이 돈을 써야 했는데, 수련 후에는 몸이 완쾌되고 살결도 곱고 부드럽게 변했으며, 성질도 활달해졌다. 그녀는 늘 자신의 심신이 변화한 경험을 친구에게 알려주었다.
2014년 6월 24일 오전 11시, 후훙은 칭하이성 하이시주(海西州) 더링하시 화이터우타라진(懷頭他拉鎮)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악의의 신고를 당했으나, 그녀 본인은 전혀 사정을 몰랐다. 자료를 배포할 때 또 사복 경찰과 마주쳤다. 그녀는 사복 경찰과 화이터우타라진 파출소의 훠원루(霍文璐), 류하이닝(劉海寧) 등에 의해 현지 파출소로 납치당했고, 이어서 거주지를 수색당했다. 그녀의 대법 서적, 진상 자료, 핸드폰과 은행 카드 등 개인 물품도 강탈당했다. 화이터우타라진 파출소에서는 또 눠무훙 파출소 경찰에게 지시하여 눠무훙 농장으로 가서 후훙의 거주지를 확인하고는 후훙의 플레이어, 핸드폰 등을 강탈했다.
뒤이어 후훙은 더링하시 공안국 부국장 싱루쥔(邢汝軍)이 거느린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더링하시 공안국으로 납치됐고 그날 밤 더링하시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더링하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자오린, 경찰 마더쥔(馬德軍), 저우춰마오(周措毛) 등은 후훙에 대한 불법 심문에 참여했다.
후훙이 납치된 그 날, 후훙의 동료 8명도 파출소로 납치돼 차례로 심문기록을 당했는데 그들은 핍박에 못 이겨 후훙의 ‘죄행’을 진술한 뒤 그날 풀려났다.
훠원루, 류하이닝 등은 후훙을 끌고 화이터우타라진의 예전에 진상자료를 배포했던 곳으로 가서 현장을 가리켜 확인했고, 민중을 핍박해 자료를 바치도록 했다. 게다가 후훙과 접촉했던 모든 사람을 조사해, 현지 민중에게 매우 큰 두려움을 조성했다. 훠원루, 류하이닝 등이 후훙을 납치한 뒤인 6월 29일에 또 눠무훙 농장으로 가서 예전에 후훙과 접촉한 적이 있는 모든 사람, 대략 20여 명을 조사하여, 후훙이 제공한 진상자료를 접촉한 적 있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시도했는데, 인위적으로 현지에서 거듭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후훙이 납치된 뒤, 그녀의 딸은 천여 km 먼 길을 떠나 더링하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가서 모친을 면회하려고 요구했다가, 오히려 국가보안대장 자오린에게, 자료를 제공한 사람을 말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자오린은 또 악담으로 공갈 협박했다. 결국, 모녀는 만날 수 없었다.
후훙이 납치되고 얼마 되지 않아, 더링하시 공안국은 인터넷에서 후훙의 남동생 후젠차이(파룬궁수련생)를 지명 수배하기 시작했다.
관련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8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30/2966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