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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아내가 붙잡히자 남편, 억울함 호소

글/ 쑨궈양(孫國陽)

[밍후이왕] 헤이룽장성 무링시(穆稜市) 파룬궁수련생 가오위친(高玉琴,여)은 2014년 5월 12일에 경찰에게 납치당했는데, 무단장 제2구치소에 감금당한지 이미 3개월이 지났다. 이것은 가오위친이 4번째 납치당한 것이다. 아래 내용은 가오위친의 남편 쑨궈양(孫國陽)이 현지 민중에게 쓴 공개편지로 마을 사람들에게 가오위친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도움과 구출을 호소하는 문장이다.

저는 가오위친의 남편으로 그녀와 함께 3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지 이미 15년이 됩니다. 가오위친이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수련했느냐고요?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하기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온종일 약을 먹었으며 우리 마을에서 가장 약을 많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건강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지 않아 이치에 맞지 않아도 다퉈서 이겨야 했는데 손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집안일은 전부 저 혼자 해야 했습니다.

高玉琴

가오위친(高玉琴)

파룬궁을 배운 후부터 그녀는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처럼 온몸의 병이 전부 나았고 욕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을 얻어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주사 한 번 안 맞고 약도 한 알 먹은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밭에서 일을 하든 아니면 집안일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저에 비해 더 많이 했지만 고생스럽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백 여 가구의 집이 있었는데 다들 모두 매우 똑똑히 보았습니다. 가오위친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가 그녀의 성격을 고쳐주었고 그녀를 진정으로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쉬촨핑(許傳平)의 집은 우리 마을의 빈곤층인데 밭에 뭘 심으려 해도 종자가 없었습니다. 가오위친은 이 사실을 알고 우리 집 콩 종자를 직접 그의 집으로 보내주고도 돈 한 푼 받지 않아 저조차 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길에서 많은 물건을 주워도 그녀는 분실자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가오위친은 돈을 모두 매우 담담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아주 좋은 사람이 오히려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붙잡은 사람은 헤이룽장성 무링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쑨야쥔(孫雅君), 추이싱궈(崔興國), 리옌춘(李彥春) 및 허시향(河西鄕)파출소 경찰 류즈궈(劉志國) 등으로, 그들은 불법적으로 우리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았고 수색영장도 없었으며 구속영장도 없었습니다. 세 가지 증명서가 하나도 없이 우리 집 안팎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VCD, 컴퓨터를 가져갔고, 핸드폰 2대를 가져갔으며 제 딸이 저에게 사준 카메라도 가져갔습니다. 이런 전자제품은 일반적인 가정에 모두 있는데 이것이 법을 위반한 것입니까? 무링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는 죄목을 뒤집어씌웠는데 그들은 가짜 증거를 만들어 가오위친을 붙잡고 5일 후에야 구류증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률을 위반한 것이 아닙니까? 때문에 저는 매우 부당함을 느낍니다. 천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 사회에서 폭행, 테러범은 상관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는 사람을 공안국에서는 붙잡지 않으며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을 붙잡습니다. 천리로써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무슨 중국은 법제 국가라는 말을 합니까? 제가 보기에 가장 고생스러운 것은 역시 우리 국민입니다.

가오위친은 파룬궁을 배워 15년 동안 이미 4차례나 붙잡혔습니다.

첫 번째는 2002년 5월인데 허시향 파출소 부소장 천즈융(陳志勇)이 차를 몰고 논밭에서 가오위친을 붙잡아 갔습니다. 당시 가오위친이 차에 타지 않자 악독한 경찰은 무차별 폭력을 가해 가오위친을 붙잡아 갔는데 아무런 수속도 없었습니다. 무링시 국가보안대대의 악독한 경찰 쿵칭쩡(孔慶增)은 가오위친의 치아 두 대를 구타해 부러뜨렸습니다. 아내는 2002년 7월 17일에 석방됐는데 당시 구치소에 급식비 330위안(약 5만원)을 내야 했습니다. 허시 파출소에 1천 위안(약 17만원)의 보증금을 냈는데 여태껏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2005년 7월 21일부터 2006년 7월 30일까지 하얼빈(哈爾濱) 노동교양소에서 전부 1년 10일 동안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2007년 8월 하순부터 11월 27일까지 모두 90일 동안입니다. 당시 그녀 위로는 70여 세 할머니가 있고 아래로는 10여 세 아이가 있다며 민중마저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직접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습니다. 40여 명이 일어나서 가오위친을 위해 증명을 섰고 무링시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시 공안국 및 610 사무실에 석방을 요구했는데 마을의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한지 17일 째로, 60여kg인 가오위친은 돌아올 때 35kg도 되지 않아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습니다. 구치소에 낸 급식비는 900위안(약 15만원)입니다.

네 번째는 그녀가 2014년 5월 12일에 집에서 온종일 빨래를 했는데 오후 4시에 집에서 붙잡혔습니다. 갈 때 옷 입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아 속옷과 신발만 신었는데 옷을 갈아입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무링시 국가보안대대장 쑨야쥔은 사사로이 허시 파출소 뒷마당 건물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았는데 떠날 때 가오위친은 배를 붙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오위친을 무단장(牡丹江) 제2구치소로 보냈는데 지금 이미 3개월이 넘습니다.

저는 우호적인 인사가 일어나서 가오위친을 위해 불공정함을 표명해 그녀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와 단란하게 한자리에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맨 마지막에 저는 내심에서 우러난 말로 가오위친을 구조한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감사를 표시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정의로운 좋은 사람들입니다.

북국에는 일월이 없는데

언제면 맑은 날을 볼까

(北國無日月 何時見淸天)

가오위친의 남편 쑨궈양2014년 8월 19일

가족은 가오위친을 위해 2명의 변호사 왕위(王宇)와 탕톈하오(唐天昊)를 선임했다. 검찰원 단계에 변호사는 서류 열람을 요구했는데 업무 담당자 자오진위(趙金玉)는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변호사는 몇 번이나 갔으나 모두 부서에 없다는 말만 했다. 사건은 암암리에 무링시 법원에 넘겨졌다. 법원의 하오구이쥐(郝桂菊) 청장은 이 사건을 책임졌는데 역시 줄곧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가족과 변호사가 법원으로 몇 번이나 찾아갔으나 없다는 말만 했다. 변호사는 서류 열람을 할 방법이 없게 돼 수속을 할 수 없었다.

郝桂菊
하오구이쥐(郝桂菊)

가오위친 사건에 관련된 책임자 전화

검찰원 소송과자오진위(趙金玉) 과장(업무 담당자)

13945399032

0453-3122682

법원 하오구이쥐(郝桂菊) 청장(업무 담당자)

집 전화 3122309

사무실 전화 3138161

핸드폰 13836321519

법원 부원장 두윈칭(杜蘊青)

집 전화 3129051

사무실 전화 3122010

핸드폰 13845389051

법원 청장 룽윈보(龍雲波)

사무실 전화 3123723

문장발표: 2014년 8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21/2962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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