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충칭 보도) 충칭시에 사는 63세 파룬궁수련생 위췬팡(喻群芳) 여사는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로 10여 년 동안 3번이나 불법노동교양처분을 당하면서 몸과 마음 모두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그녀는 결국 2014년 7월 9일 오후 2시경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30㎏밖에 되지 않았다.
위췬팡 여사는 충칭시 장베이구(江北區) 다스바(大石壩)에 거주했고, 생전에 충칭시 창안1공장(長安一廠)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노동자다. 1995년에 인연이 닿아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심신에 적잖은 이로움을 얻었다. 그녀는 수련하기 전 여러 질병을 앓아 반신불수, 실명 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뒤 질병이 없어지고 신기하게 새롭게 광명을 보았다.
1999년 ‘7.20’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 위췬팡은 현지 다스바 파출소, 다스바 가도 사무실, 다스바 중수퉈(忠恕沱) 지역 사회에서 중점 박해대상에 올라 3번이나 불법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충칭 사바오(沙堡) 여자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되어 각종 사악한 박해를 당했다.
1999년, 위췬팡은 베이징에 청원 갔다가 납치당했고, 다스바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장전화(張真華)는 그녀를 장베이구(江北區) 구치소에 37일간 불법 감금했다. 2000년 6월 30일, 창안1 분국에서 납치된 뒤, 장베이 유치장에 보름 동안 있었다. 그런데 또 악독한 경찰 옌샹밍(晏詳明)이 화윈산(華雲山) 세뇌반으로 납치해 가서 20일간 감금했다. 악독한 경찰 옌샹밍, 라오장(饒江)은 거짓으로 서류를 꾸며 그녀에게 불법노동교양처분 1년을 내렸다. 그녀는 먀오자산(茅家山) 여자노동교양소에서는 악독한 경찰 아이(艾) 모, 쉬(許) 모에게 20일 동안 계속해서 매달기(吊銬)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구린 양말과 붙임 딱지로 입 막기, 혹독한 구타, 세워두는 고문, 쭈그려 앉히기 고문, 목욕을 못 하게 하는 등, 각종 악랄한 방식으로 박해하며 상해를 입혔고,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교양처분 기한을 6개월 연장했다.
고문 시연: 매달기 고문(吊銬)
2002년에 진상을 알릴 때, 위췬팡은 위베이 공안분국에 납치돼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독방에 갇히기, 화장실 사용횟수 제한하기, 체벌, 그리고 매일 10여 시간의 노역으로 손가락이 변형되어 회복되지 않았고, 강제 세뇌, 정신적 학대 등의 고통을 당했는데, 박해에 참여한 악인은 악독한 경찰 다이원쥐안(代文娟), 허(何) 모, 왕진(王晉)이다. 위췬팡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장기간 악인 추이쩌룽(崔澤容)에게 감시당했다.
2007년 3월 18일, 장베이구 다스바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구이리(桂莉) 일행 6~7명이 위췬팡의 집에 들이닥쳐 납치를 시도했다. 악독한 경찰은 지역 사회로 하여금 위췬팡을 엄밀하게 감시하려 했다. 7월 3일, 장베이구 공안분국 량스빈(梁世濱), 다이융(代勇)은 거듭 위췬팡의 큰딸이 근무하는 직장까지 가 교란하면서 위 씨의 행방을 추적했고, 위췬팡의 둘째 딸이 사는 충칭 주소를 알아내려 했다. 악독한 경찰은 ‘직접 담당하는 경축일이 지나서 별일 없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좀 확인하려는 것으로, 둘째 딸을 어떻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감언이설을 했다. 큰딸이 모른다고 대답하자 악독한 경찰은 “대답에 문제가 있다. 당신들이 협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방법이 있다. 지명수배하겠다.”라고 위협하며 말했다.
위췬팡은 치장현(綦江縣)에서 외손녀를 돌봐주었다. 2008년 7월 8일 오후 4시 넘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진상에 명백하지 않은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녀는 치장공안기구 국가보안에 의해 치장현 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구류박해를 당했고, 뒤이어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충칭시 사바오 여자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노동교양기간에 전향하지 않는다고 늘 악독한 경찰에게 매달리는 고문을 당해, 55kg 이상 유지하던 몸무게가 출소할 때 겨우 35kg에 불과했다.
충칭 사바오 여자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수련생은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지 못했고, 매일 10여 시간의 강제노역노동,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39㎏ 분량의 사탕을 포장했다. 젊은 파룬궁수련생은 42㎏~54㎏을 비닐에 싸야 했는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형기를 늘이고 점심시간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전에 다만 2번씩 화장실 출입만 허락했고, 오후에도 2번 화장실 출입을 허락했을 뿐, 그 외의 시간은 화장실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도 손을 씻지 못하게 했고 계속 사탕은 싸야 했다. 완성품 사탕은 수많은 중바이(重百) 슈퍼, 융후이(永輝) 슈퍼로 운송되어 헐값으로 판매되었다.
위췬팡은 39㎏ 분량의 사탕을 다 싸 내지 못하면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형기가 연장되고, 벽을 마주해 군대자세로 세워두는 고문을 당했으며, 또 삼복더위 뙤약볕에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 악독한 경찰은 모든 파룬궁수련생에게 삼서(三書)를 써서 전향하도록 핍박했다. 협력하지 않으면, 저녁에 잠을 안 재우고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다. 매일 악독한 경찰이 파견한 바오자(마약복용 인원)는 ‘사상회보’(실제로 자백을 강요한 것임)를 쓰도록 핍박했다. 문화수준이 없는 파룬궁수련생은 바오자(마약복용 인원)가 대신해 베껴 쓴 뒤 강제로 본인의 지장을 눌렀다. 그리고 파룬궁수련생끼리 말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서로 눈길을 건네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약 복용자에게 폭력과 구타를 당했다. 밥 먹고, 잠자고, 노역하고, 화장실 가는 등, 24시간 모두 바오자(마약복용 인원)가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2012년 6월 28일, 위췬팡 노인은 한 절름발이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가 사복경찰임을 어찌 알았으랴? 절름발이는 가장한 것이었다. 그 경찰은 휴대폰으로 몇 명의 악독한 경찰을 불러 위췬팡을 납치했으나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되어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해 집으로 돌아왔다.
위췬팡이 불법 감금당한 기간, 노동교양소 악독한 경찰, 다스바 파출소, 다스바 가도 사무실, 다스바 중수퉈 지역사회 창안1 공장 책임자와 함께 못된 짓을 했는데, 강제로 위췬팡의 남편에게 그녀와 이혼하라고 핍박했다. 이혼하지 않으면 곧 그녀의 남편을 공직에서 해고하겠다고 했다. 중공 사악 권세의 위협으로 화목했던 가정은 깨졌다. 이혼 후 위췬팡은 거주할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치장구에 있는 막내딸의 셋집에서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공은 그녀에 대한 박해를 늦추지 않았다. 다스바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수차례 집으로 찾아가서 위협하고 공갈 협박했다. 위췬팡은 몸과 마음 모두 심각한 손상을 입어 결국 2014년 7월 9일 오후 2시경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전에 장베이구의 51세인 파룬궁수련생 탕샤오이(唐孝毅) 여사는 장시간 박해당해, 2014년 5월 12일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탕샤오이는 충칭 양식국 간부로, 충칭시 장베이구 다스바에서 거주했다. 1995년에 인연이 닿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2001년 7월에 충칭 바난구(巴南區) 위둥(魚洞) 다장 공장(大江廠)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다 잠복 감시하던 악독한 경찰에 납치돼, 2001년 7월 7일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강제로 충칭 융촨(永川)감옥에서 매일 10여 시간의 노역노동 박해를 당했다. 동시에 직장에서도 해고되어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2005년 7월 출소한 그녀는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 도처에서 일을 했는데, 직장에도 감히 요구하지 못했다. 결국, 2014년 5월 1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4년 7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27/2952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