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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국가보안 특무가 미행 박해, 좋은 사람 연속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7월9일 점심,다롄(大連)중산구(中山區)즈런가(智仁街)에 거주하고 있는 예칭리(葉青麗)의 부친은 집안에 들어섰는데,집안이 아수라장으로 뒤져지고 대법 사부님 법신상,컴퓨터,대법 서적 등 물품이 모두 자취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노 부친은 즉시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던 딸이 또 불행한 일을 당했음을 인식했다.노 부친은 비통해 온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7월10일,노 부친은 그 후 이웃으로부터 딸 예칭리가7월9일 아침에5~6명 경찰에 의해 건물 아래의 한 미니 버스에 태워져 압송되어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예씨 부친은 집 주변의 타오윈가(桃源街)파출소,차이잉가(葵英街)파출소,다롄 구치소,다롄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갔으나,모두 이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 36시간 후에도 여전히 어떠한 소식이 없었다.

7월13일 아침에 이르러,예칭리의 노 부친은 다롄 시강(西崗)공안분국 샹궁가(香工街)파출소에서 부친 등기 우편 한 통을 받았는데,이 편지 봉투의 날짜 도장 시간은7월11일이었다.편지 속에는 다롄시 공안국 시강분국의 붉은 도장이 찍힌 불법‘구류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예칭리는 선량한 여성 파룬궁수련생이다.듣기로는 이번에 납치당한 것은,파룬궁수련생 왕위쓰(王語絲)가 조우를 당함과 관련된다고 한다.

왕위쓰 여사는 다롄 외국어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10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고,선양(瀋陽)다베이(大北)감옥에서10년 동안 감금돼 능욕을 실컷 당하고 여러 가지 고문을 당했다.그때 그녀의 딸은 겨우2살밖에 되지 않았다.남편은 중공(중국공산당)의 압력을 감당하지 못해 그녀와 이혼했고,멀쩡하던 가정은 중공에 의해 파괴됐다.

왕위쓰는 출소한 뒤,영어 과외 보도 교사를 맡기 시작했다.교학을 잘 가르치고 비용을 낮게 받았던 이유로,학부모와 학생들은 모두 그녀에게 감사를 드렸다.그녀는“사람은 양심에 비추어야 합니다.저는 학생을 자신이 돈을 버는 도구로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2013년8월29일 저녁7시쯤,다롄 국가보안 왕궈장(王國江),왕시량(王璽良)등20여 명 경찰은 집안에 들이닥쳐 왕위쓰를 납치해 세뇌반(전 다롄 교양원)에 불법 감금했다.동시에 그녀의 모친을 다롄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납치해5일 동안 불법 감금해서야 풀어주었다.노인은 이 때문에 고열이 내리지 않아 몸져누웠다.결국2014년3월15일 이른 아침4시에 억울함을 품고 처참하게 세상을 떠났다.왕위쓰가 납치당한 뒤,줄곧 다롄 국가보안 특무는 왕위쓰와 내왕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미행하고 납치했다.

2013년8월30일,왕위쓰는 마둥메이(馬冬梅)와 만날 약속을 했다.그러나 전날에 납치당했던 이유로,왕위쓰는 약속한 장소로 갈 수 없었다.마둥메이는 이유를 몰라,왕위쓰의 전화를 눌렀다.받는 사람이 없게 되어 마둥메이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하루가 지나서,바로2013년8월31일,마둥메이는 집에서 납치당함과 동시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했다.지금 마둥메이는 여전히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으며,이미 불법 개정을 당했다.

왕위쓰가 납치당한 뒤로부터,집은 연로하신 사람은 연로하고 어린 것은 어려 생활이 어렵고 고생스러워 실의에 빠졌다.특히 왕위쓰의 어머니가 비분 속에서 세상을 뜬 뒤,집안 생활은 더욱 혼란해졌다.왕위쓰의 딸은 겨우10여 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공부를 해야 했고,한평생 집안일을 한 적 없는 왕위쓰의 부친은 또 밥을 할 줄도 몰라 하루 세끼도 문제가 되었는데,또 감옥에 갇힌 왕위쓰를 걱정해야 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형편을 보고 마음이 급해 늘 왕 씨 집으로 이 노인과 아이를 보러 가서는 힘이 닿는 데까지 무엇이라도 좀 해주었다.특히 선량한 예칭리는 매주 모두 왕 씨 집으로 보러 가서는,또 늘 아이를 동반해 하룻밤을 잤는데,아이와 많이 이야기를 나눠 그 나이 어려 상처받은 심령을 위안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선행은,오히려 중공 특무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2014년7월9일,예칭리는 중공에게 납치당했다.왕위쓰의 딸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줄 수 있었던 예 이모는 이렇게 실종되었다.아이의 몇 번이나 상처를 입었던 심령은 또 한 차례 낮은 상태로 떨어졌다.

문장발표:2014년7월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16/2947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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