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지린 퉁화시 뤄시전, 또다시 납치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2014년 6월 26일 오후 2시 쯤,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파룬궁수련생 뤄시전(羅希珍)은 둥펑(東風)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사람에게 션윈 시디를 선사했다. 이 사람은 잠깐 후되돌아와 뤄시전에게 시디를 (더) 달라고 했다. 뤄시전은 그에게 시디는 매우 진귀하다며 돌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단번에 뤄시전을 붙잡고 ‘나는 당신에게 또 얼마나 있는지를 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뤄시전은 납치당했다.

오후 4시가 넘을 때, 광밍(光明) 파출소에서는 뤄시전과 함께 세 들어 사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뤄시전의 일부 상황을 문의했다. 거의 이와 동시에 몇 명의 사복경찰은 뤄시전이 일하는 꼬치구이점으로 가서 뤄시전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주인이 캐물어서야 경찰 증명서를 꺼내 보였다. 경찰은 주인에게 뤄시전이 다른 사람과 싸움을 했는데, 구타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그녀가 평소에 어떠했는지, 누가 그녀를 찾은 적이 있는지를 알고자 했다. 주인은 사실대로, 그녀는 평소에 매우 좋으며 또 그녀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인은 또, 기왕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상, 돈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좀 가져가 그녀를 도와주라고 (경찰에게) 부탁했다. 경찰은 급히 ‘필요 없습니다.’는 말을 하고는 떠나갔다.

오후 5~6시 경, 경찰은 뤄시전을 납치해 그녀가 세 들어 사는 곳으로 가서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했다. 전체 과정에서 뤄시전의 두 손은 모두 등 뒤로 채워져 있었다. 방안에 있을 때와 강제로 위층으로 끌려갈 때 모두 경찰이 그녀의머리를 매우 낮게 눌러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경찰은 또 뤄시전의 이웃들에게, 뤄시전이 평소에 어떠했는지, 누가 그녀와 접촉하는지 등을 조사했다. 이웃들은 모두 그녀는 좋은 사람이고 매우 선량하며, 누가 그녀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어떤 경찰이 뤄시전이 거주한 곳에서 시민을 교란하며, 시민에게 ‘이곳에서 살고 있는지’, ‘집에는 모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등을 조사했다.

28일, 가족이 룽취안(龍泉) 파출소로 찾아가자, 경찰은 그들은 업무 담당부서가 아니라고 말하며,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관할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가족은 뤄시전을 매우 걱정하며, 계속 관련 부서로 가서 석방을 요구하겠다고 표시했다.

뤄시전은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부인병(일 년 내내 출혈함), 또 신장염 등의 질병이 모두 약을 먹지 않고도 완쾌되었다. 1999년 7.20일 후, 단지 ‘진선인(真善忍)’의 믿음을 견지해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에 가고, 각종 환경 속에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불법 구류, 불법 노동교양처분과 불법판결 등의 박해를 당했다.

2002년 섣달 열나흘 날, 뤄시전이 집에서 이불을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6~7명의 칭허진(清河鎮) 경찰이 들이닥쳤다. 칭허진 파출소 경찰 둥번쥔(董本軍)이 (무리를) 거느리며 뤄시전의 집을 수색했는데 대법서적과 진상자료를 수색해갔다. 게다가 강제로 뤄시전을 납치해, 칭허진 파출소에 감금했다. 그곳에서 다룽(大龍)이란 별명을 가진 경찰이 뤄시전의 머리카락을 잡고 혹독하게 벽에다 부딪쳤다. 그녀는 머리의 여러 곳이 부딪혀 큰 혹이 생겨났다. 무차별 폭력을 가하며, 입으로는 또 끊임없이 “당신이 다시 도망치면 때려죽이겠다.”고 말했다.

2003년 3월, 뤄시전은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뤄시전은 공갈협박, 수면 박탈, 장시간 세워두는 고문(매일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세웠는데, 한 번 세워두면 보름 동안 세웠음),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파괴적인 음식물주입, 형사 죄수에게 바닥에 눌려 쇠침에 찔리고 ‘대’자형으로 침대위에 묶여져 죄수 푸차오윈(付巧雲)에게 폭력을 당하는 등의 박해를 당했다. 뤄시전은 사악에게 협력하지 않았던 이유로, 20일 동안 불법적으로 형기를 연장하는 박해를 당했다. 2년 20일 동안의 불법 감금을 통해, 뤄시전의 몸무게는 63kg에서 35kg가 좀 넘는 정도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들이 이 꼴을 보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칭허진 파출소 및 진 정부에서는 여러 차례 그녀의 집으로 가서 교란했다. 뤄시전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남편은 매번 교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부부는 떨어져 처량한 생활을 했고, 그녀와 이혼했다. 이런 불행을 본 뤄시전의 83세 된 모친은 늘 눈물을 흘렸는데, 두 눈이 거의 실명했다.

2007년 4월 3일, 뤄시전은 칭허 거리에서 진상을 알렸다가,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함당해, 칭허 파출소의 장구이위(江貴玉) 등 3명의 악독한 경찰에게 불법적인 체포를 당했다. 그 후 지안시(集安市) 사당법원에 의해 3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고 감옥에서 각종 고문을 당했는데, 지금도 손가락을 곧게 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4월 2일, 뤄시전은 집으로 돌아왔다.

문장발표: 2014년 7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2/29416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