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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더 우링감옥 폭행

– 쇠 봉에 매달아 폭력적 구타, 물 주입

[밍후이왕] 황유쥔(黃佑軍, 42세)은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후난성(湖南省) 웨양시(岳陽市) 첸량후진(錢糧湖鎮) 청산(層山) 종이공장에서 일했는데,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해 박해한 후부터, 종이공장은 파산되어 황유쥔은 어쩔 수 없이 웨양루구(岳陽樓區)로 가서 스스로 직업을 찾아 생계를 꾸렸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감옥에 불법 감금돼 박해당했다. 그는 스스로 이 기간에 당한 조우를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구타로 기절

2009년 6월 7일, 웨양시 쥔산구(君山區) 국가보안대대 웨화(岳華), 장런우(姜仁武) 등은 차이쌍후진(採桑湖鎮) 파출소 소장 선원신(沈文欣), 교도원 돤더량(段德良), 당시 첸량후진 사법소 소장 펑젠민(彭建民) 등 10여 명 악독한 경찰과 결탁해 나를 셋집에서 웨양 모 호텔로 납치한 동시에, 악도 자오원화(趙文華)와 선원신을 파견해 나에 대해 모진 고문을 가해 자백을 강요했다. 돤더량은 직접 나의 얼굴을 한 대 쳤는데, 나는 콧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 후 자오원화는 나의 손과 발을 둘 다 묶어 창문에 매달았다. 그들은 뜻밖에 발로 끊임없이 나의 머리 부위를 걷어찼다. 이 때문에 나는 오랜 시간을 기절했다. 나는 혼미 속에서 정신을 차려 의식을 회복했을 때, 바닥에 누워 있음을 발견했다. 이때 그들은 또 나에게 이른바 ‘위법’ 사실을 고백하도록 위협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웨양 구치소 -수갑 채우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그 후 그들은 나를 웨양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악독한 경찰들이 사용한 것은 토수갑(土銬子)인데, 나는 꼬박 3일 동안 채워졌다. 두 손은 채워져 매우 높이 부어올랐고 아픔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단식으로 그들의 불법 행위에 항의하며 무죄 석방을 요구했다. 그들은 뜻밖에 나를 문짝에 묶고 수갑과 족쇄를 채워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했는데,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그 후 또 토수갑으로 나를 13일 동안 밤낮 채웠는데, 이때 나는 두 손을 들 수 없었다. 며칠 후에 웨양루구 법원에 의해 억울하게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동시에 납치당한 사람은 또 자오췬란(趙群蘭), 쉬궁위안(許功元) 두 명의 여사이다. 그녀들도 악도들의 구타와 토수갑 시달림을 당했다. 특히 쉬궁위안은 체형이 비교적 뚱뚱했는데, 악독한 경찰은 죄수 런더푸(任德福)에게 지시를 내려 강력하게 두 손을 채워놓았다. 선혈이 줄줄 흐르고 매우 아팠다.

창더 우링감옥의 폭력 박해 – 쇠 봉에 매달아 폭력적 구타, 물 주입

여러 곳을 거쳐 진스(津市)감옥으로 압송되어 2개월을 넘긴 뒤, 나는 창더 우링감옥으로 납치당했다. 그들은 나를 전향해 수련을 포기시키려고 시도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연속 3개월 동안 ‘엄한 관리’를 진행했는데, 밤낮 배가 고팠다. 그리고 또 60~70근(36~42kg) 무게인 쇠고랑에 채워져, 사람 전체는 시달림을 당해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교도관 장신화(張新華)는 흉악하고 난폭하게 날뛰며 무자비하게 때렸는데, 욕설을 퍼붓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2011년 4월, 감옥 측은 또 한 차례 대법제자에 대해 폭력적인 박해를 감행했다. 그들은 수감인원에 대해 ‘교육, 구원’한다고 말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잔혹하게 학대한 것이다. 7월에 이르러 나를 40일 동안 감옥 중의 감옥으로 납치해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벽에 의지해 서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제로 대법을 비난한 CD와 서적을 보도록 했으며, 동시에 요구에 따라 이른바 심득 체험을 쓰라고 했다. 듣지 않으면 곧 무차별 폭력을 가했는데, 이 때문에 나는 두 다리가 부어올라 화장실로 가도 쭈그려 앉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침대보를 천 조각으로 찢어서 나의 손발을 둘 다 묶고, 눈을 가려 쇠 봉 위에 매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와’ 소리를 지르며 몇 시간 동안이나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어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겠는가! 어느 한 번, 두 악인은 나의 두 손과 머리 부위를 누르고, 다른 한 악인은 끊임없이 머리 부위에 물을 부었다. 연속 몇 시간 동안 부어 귀마저 물이 들어갔다. 그 후 귀 안에서 고름이 나왔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화근이 남아있다.

酷刑演示:吊挂毒打
고문 시연: 매달고 잔혹하게 구타

2012년 3월 20일, 교도관 장이(張毅)는 겉옷을 벗어 버리고, 4명의 악도에게 나를 누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경찰몽둥이를 잡고 전력을 다해 난폭하게 때렸다. 나는 구타당해 전체 둔부가 청자색을 띠었고, 또 아프고 부어올라 걷기가 어려웠다. 그는 또 늘 술을 마셨는데, 술을 마신 뒤 고의로 귀찮게 하며 폭행을 가해 나를 때렸다. 어느 한 번, 내가 손으로 한 번 막으며 그가 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그는 곧 내가 경찰을 습격했다고 무고하게 신고했다. 그리고 또 형사 죄수를 지시해 위증을 만들어 서명시켜, 내가 경찰을 습격한다고 신고했으며 나를 보름 동안 엄한 관리로 감금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듯하게 ‘춘풍화우(春風化雨, 양호한 교육)’라고 말했다.

이 5년 동안은 또 한창 내가 젊고 혈기 왕성한 젊은 날인데,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보냈다. 더욱 몹시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사람 구하는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박해당한 진술도 다만 빙산의 일각을 언급했을 뿐이다. 이곳에서 이것으로 사당의 진면모를 폭로해, 소중한 동포들로 하여금 진상을 요해하고, 선악을 분명히 가려 공동으로 박해를 제지하고자 한다.

문장발표: 2014년 6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6/21/2937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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