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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억울한 옥살이로, 베이징 거페이쥔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베이징보도) 베이징시(北京市) 미윈현(密雲縣) 76세의 파룬궁수련생 거페이쥔(葛培君, 葛培軍)은 2008년에 5년의 불법 판결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베이징 첸진(前進)감옥에서 박해로 전신의 장기가 쇠약해졌는데, 결국 2014년 4월 14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거페이쥔이 노동교양박해를 당한 기간, 그의 아내 류궈화(劉國花)도 세상을 떠났다.

거페이쥔은 베이징시 미윈현 선반연구소의 퇴직직원으로, 중공(중국공산당)의 ‘항미원조’ 중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아내 류궈화와 두 사람은 1998년에 함께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심신이 건강했다.

파룬궁이 박해당한 뒤, 노부부는 2000년 7월에 청원하러 갔다가 차례로 불법 납치돼, 1개월 넘게 감금당한 뒤 석방되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차례로 두 차례 미윈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한 것으로 연루되어 강제로 음식물 주입 및 바오자(包夾, 감시자)에게 반복적인 학대를 당해 사경을 헤맸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납치, 5년의 억울한 판결 당하다

2008년 5월, 거페이쥔은 진상자료를 배포하여 고발당해, 미윈현경찰에게 5월 25일에 납치되어 5년의 무고한 판결을 당했다. 그리고 베이징 첸진감옥으로 보내져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는데, 박해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베이징 첸진감옥에는 매우 사악하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고, 파룬궁수련생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리, 예를 들어 수면, 식사, 화장실 등 여러 측면을 제한했으며, 그들의 인격을 모욕해 그들의 심신에 손상을 주었다. 부감옥장 차오리화(曹利는 악독한 경찰과 형사죄수에게 회의를 열어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 시키기 위해 감형, 가석방 등 일체의 수단으로 형사범을 유혹하고 각종 고문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라고 지시했다.

베이징 첸진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은 특히 9감구역, 10감구역, 11감구역에 감금당해 있었다. 무릇 첸진감옥에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 대부분은, 모두 악독한 경찰에게 전기 충격을 당한 적이 있고 잠자지 못하게 하고 욕을 먹고 구타당한 적이 있으며, 장시간 전기 충격을 당했다. 가장 길게 4시간 동안, 가장 많게는 9개의 전기봉으로 동시에 전기충격을 당했는데, 전기봉 하나에 10여만 볼트였다. 어떤 이는 전기충격으로 피부가 탔고, 어떤 이는 전기충격으로 온몸에 상처가 생겼으며, 어떤 이는 전기충격으로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어떤 이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했고, 어떤 이는 더욱 오랜 시간 잠을 못 자게 했는데 눈을 감기만 하면 구타하고 욕했다. 거페이쥔은 예전에 9감구역, 11감구역에 갇힌 적이 있었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시연: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기

다년간의 잔혹한 박해 및 독극물 주사로 인해 거페이쥔은 전신의 장기가 쇠약해졌다. 2013년 5월 28일에 출소한 뒤 줄곧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결국 2014년 4월 14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酷刑演示:打毒针

고문 시연: 독극물을 주사하다

퇀허 노교소에서 당한 박해

2002년 9월 17일, 직장 부서기 쉬민루이(徐敏銳)와 보위과 궈야황(郭亞皇)이 현지 파출소와 결탁하여 거페이쥔을 납치했는데, 구치소에서 학대당해 사경을 헤맨 뒤에 돌아왔다. 거페이쥔이 집에서 좀 몸조리한 뒤 산책할 때, 어떤 사람이 어째 몸이 이 지경으로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파룬궁이 박해당한 것으로 인해, 공산당 감옥에 갇혔었다고 대답했다. 이 때문에 파출소에서는 또 거페이쥔을 납치해,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

퇀허 노동교양소 2대대에서, 당시 이미 60세를 넘은 거페이쥔은 이른바 ‘보증서’를 거부해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3년 11월 20일부터 통에 앉혀진 채 꼼짝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문을 당했는데, 매일 아침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추운 겨울날이면 통 안은 이상하게도 그늘지고 냉랭해져, 오랜 시간을 통에 앉으면 장년일지라도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거페이쥔은 연세가 이미 많고 다리 부위에 병이 있어 매 순간 극심한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통에 앉을 때는 일반죄수(바오자라고 속칭함) 2명이 지켰는데, 화장실로 가거나 어떤 일을 하든지 먼저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악독한 경찰의 묵인하에 바오자들은 늘 뻔뻔스럽게 욕설을 퍼붓고 마음대로 굴었다. 게다가 그에게 손찌검하고 임의로 체벌을 가해, 노인은 더욱 비인간적인 고통을 당했다.

더욱 악랄한 것은, 대장이 끼니마다 거페이쥔에게 옥수수떡 하나와 짠지 몇 조각만 주었을 뿐이었다. 4일 후에는 짠지마저도 주지 않았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집중훈련대에 갇힌 사람을 포함)은 모두 핍박에 못 이겨 ‘특수 제작’한 옥수수떡 즉, 다 만든 뒤 고의로 오랜 시간을 놓아두어 차고 마르고 굳어진 옥수수떡을 먹었다.

거페이쥔이 단식한 뒤, 바오자 인원은 4~5명으로 늘었다. 그들은 매일 그를 의무실로 끌고 가서 관을 꽂아 음식물을 주입했다. 또 걸을 때는 고의로 머리를 아주 낮게 눌러 모욕하고 박해를 가했다. 관을 삽입할 때는 또 고의로 관을 코와 목구멍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밀고 잡아당겼는데, 음식물 주입하는 관은 늘 피로 가득했다. 악행을 저지른 이 자들은 일반죄수 정타오(鄭濤), 펑진주(馮進柱), 쉬징후이(徐靜輝) 등이다. 악행을 저지른 악독한 경찰은 허진쥔(何金軍), 궈진허(郭金河), 허쿤(何昆) 등이다.

酷刑示意图:摧残性灌食

고문 설명도: 학대적인 음식물주입

베이징 퇀허노동교양소는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소굴 중 하나로, 당시 그 화원식의 표면은 한 건 한 건의 폭행이 써놓은 죄행을 감추지는 못한다. 퇀허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세뇌박해는 매우 체계적인바, 부드러움에서 강함에까지 혹은 강온 양책을 함께 쓰든지를 막론하고, 이들 체계적인 박해의 기본적인 목적은 바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자신의 믿음과 양심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거페이쥔이 노동교양박해를 당한 것에 인해, 직장 보위과에서는 또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그의 아내 류궈화는 정신적으로 매우 충격을 받아 지병이 재발했는데, 결국 2004년 2월 2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4년 4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20/2902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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