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후난통신원 보도) 2014년 2월 14일, 중공(중국공산당) 감옥에서 수차례 박해당해 사경을 헤매던 후난(湖南) 창사시(長沙市) 파룬궁수련생 탄샹위(譚香玉)가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 나이는 66세이다. 그녀의 남편 셰우시(謝務希) 역시 3년 전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탄샹위는 후난성 솽파이현(雙牌縣) 난링(南嶺) 화학공업공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다 퇴직했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감옥에 수차례 갇혔고, 그곳에서 박해당해 몇 번이나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다.
셰우탕, 탄샹위 부부
파룬궁은 부부의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다
예전에 탄샹위와 셰우탕 부부는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다. 셰우탕은 뇌경색, 고혈압, 디스크, 위장병,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온몸이 고달팠고, 그의 아내탄샹위는 지난 십여 년간 기관지염, 폐기종 치료를 위해 곳곳을 찾아다녔으나 효과가 없었다.
1996년 6월, 온갖 질병의 시달림을 받던 이들 부부는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다. 수련을 시작한 후 그들을 괴롭히던 질병은 2, 3개월 만에 기적처럼 사라졌다. 아들, 딸은 기력을 찾고 건강해진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감옥에서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다
1999년 7월, 중공 장(江) 일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현지 파출소의 경찰과 가도 사무실, 주민위원회 직원들은 24시간 불법 감시를 하면서 끊임없이 이들 부부를 찾아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만약 수련포기 ‘각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집밖으로 쫓아내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심지어 벽돌로 문을 막기까지 했다. 결국 괴롭힘을 피해 이들은 집을 떠났다.
2001년 1월 설 기간에 경찰에 납치된 셰우탕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01년 3월 어느 날 밤, 손자와 잠자던 탄샹위는 여러 명의 경찰에게 강제 연행됐는데, 2살된 손주는 침대에 버려진 채였다. 그녀는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壟) 여자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받은 그녀는 폐결핵, 폐수종(가슴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생명이 위독해지자, 같은 해 9월 신카이푸(新開鋪) 노동교양소에서 중풍에 걸린 남편과 함께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온 이들 부부는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여 건강을 회복했다. 이 사실을 안 경찰은 보름동안그들은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2003년 8월 22일, 탄샹위는 창사시(長沙市) 톈신구(天心區) 공안분국 정보과 경찰 푸성원(付勝文) 등에게 10여 시간이나 고문당했다.
2004년 6월, 그녀는 창사시 톈신구 법원에서 3년 6개월 불법 수감을 선고받았고, 11월에는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된 뒤 그곳에서 강제 세뇌교육과 장시간 강제노동을 당했다.
2005년 9월, 그녀는 비인간적인 학대에 또 다시 위독해져 폐에 구멍이 뚫리고 간 기능 저하로 전신이 누렇게 떴고, 발에 부종이 왔고, 각혈했으며 음식을 먹지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158㎝인 그녀의 몸무게는 겨우 30㎏밖에 나가지 않았다. 사경을 헤매는 그녀에게 의사는 폐결핵과 황달성 간염으로 진단하면서 곧 죽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가 병보석으로 풀려나자 옥경(감옥경찰)은 그녀의 자녀에게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사망하면 감옥에 통지하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녀는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나날이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또 다시 납치당할까 걱정된 그녀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12월, 후난성 여자감옥에서는 그녀를 재수감하기 위해 창사 파출소 경찰과 주민위원회 위원들을 동원해 그녀의 친척 집까지 샅샅이 수색했다. 심지어 천리나 떨어진 예전 직장이었던 후난 융저우시(永州市) 솽파이현 난링 화학공장까지 찾아갔다. 후난성 여자감옥의 악독한 경찰은 ‘이번에는 병으로 죽어도 절대 그녀를 감옥에서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2007년 7월 14일, 이들 부부는 창사시 톈신구 징완쯔(井灣子) 중톄(中鐵) 12국 숙소 거주지에서 톈신구 국가보안 푸성원 경찰일당에게 또 다시 납치당했다. 그리하여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된 그녀를 교도관은 5개월이나 ‘특별관리’하며 박해했다. 2007년 12월 16일, 형기 만료로 출소될 때 그녀는 박해로 폐결핵이 심화되어 세 번째로 생명이 위독했다.
남편이 세상을 뜨다
그녀와 함게 납치되었던 남편 셰우탕은 4년 8개월 불법판결을 받았다. 2008년 2월, 창더(常德) 우링(武陵)감옥으로 이송된 그는 이미 몸이 허약해진 상태였는데, 요독증, 전립선 비대증, 고혈압, 전립선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가족들은 몇 번이나 병보석을 요청했으나 감옥 측은그가 ‘4서(四書, 수련하지 않고, 자료를 적발하는 등 보증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2010년 2월 셰우탕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3월 1일 창사병원으로 이송되어 전립선암이 뼈까지 전이되어 수술불가 진단을 받으니까, 감옥측은 비로소 병보석을 허락했다. 사경을 헤매던그는 겨우 집으로 돌아갔으나 1년 이상 병고를 겪은 뒤, 2011년 4월 12일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탄샹위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
출소 후 집으로 돌아 온 탄샹위는 ‘610’의 감시를 받았다. 여자감옥에서 간기능이 저하되었던 그녀는 2012년 말 간복수 진단을 받았고, 2014년 2월 14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행복한 생활을 하면서 선을 행하던 이들 노부부는 결국 중공의 비인간적인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 노부부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박해에 참여한 모든 책임자를 폭로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3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15/2887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