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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은 살해당하고, 지린 여교사는 또 박해로 피골이 상접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보도) 지린(吉林) 수란시(舒蘭市) 쑹옌췬(宋彥群)과 여동생 쑹빙(宋冰)은 모두 우수한 전업인재로,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다가 모두 10여 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여동생은 잔인한 박해로 2009년에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쑹옌췬은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는데, 2012년 3월에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옷이 깡그리 벗겨진 채 구타를 당했으며, 핍박에 못 이겨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9개월 후 석방되었을 때는 피골이 상접했다. 조금 회복한 뒤인 2013년 9월 7일, 다시 감옥으로 납치되어 계속 박해를 당해 피골이 상접해졌고, 2014년 1월 20일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되었다’.

거듭해서 4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한 쑹옌췬의 몸무게는 겨우 34kg밖에 되지 않았고 극도로 허약해지고 장기가 쇠약해져 음식을 먹기 어려웠다. 감옥에서는 보석금 명목으로 재차 2천 위안, 5천 위안을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쑤란 사법국 왕충위안(王崇園), 리촨자(李傳佳)는 거주지를 감시하려 했고, 강제로 가족에게 핸드폰, 전화카드를 사도록 했다가 거부당했다. 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백 위안을 바쳤으나 영수증도 주지 않았다.

遭迫害前的宋彦群                 被迫害得骨瘦如柴的宋彦群
      박해당하기 전의 쑹옌췬(宋彥群)  박해로 피골이 상접해진 쑹옌췬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교도관은 죄수에게 쑹옌췬을 감시하고 박해하도록 지시하고 그들의 행위를 방임했다. 어떤 죄수는 그녀가 연공하지 못하도록 아침에 때로는 솜신발, 솜옷을 가져갔고, 또 땅바닥에 물을 뿌리고 창문을 열어 추위에 떨게 했다. 판핑(潘萍), 장판(張帆), 쑨리(孫麗)는 또 화장실로 가서 여러 차례 그녀를 구타했고, 죄수 구잉쥔(顧英君)과 왕추솽(王秋爽), 양솨이빙(楊帥冰)은 다리를 잡아당겨 복도, 계단 땅바닥으로 끌고 가서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신발이 끌려서 벗겨졌다. 교도관이 없을 때면 또 수시로 그녀를 구타했다. 음식물을 주입하고 주사를 맞힐 때, 몇 사람은 쑹옌췬의 몸 위에 앉아서 그녀의 머리를 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주사를 놓을 때, 주사 바늘이 부풀어 올라도 뽑지 않아 몸에 하나씩 큰 혹이 생겼고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어느 한 번, 죄수 옌샤오제(閻小傑)가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하여 당시 쑹옌췬의 목구멍 안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그 후에 그녀가 진상을 알리고 교도관에게 박해를 폭로함으로써 상황이 다소 바뀌었다. 죄수들은 또 쑹엔췬의 종이와 펜을 빼앗아 거서 상소자료를 쓸 합법적인 권리를 박탈했다.

지린 여자감옥안의 폐쇄된 강제 관제, 강제 세뇌, 강제 전향, 연공 저지, 강제 음식물주입, 강제 검진, 각종 학대, 예컨대 욕설을 퍼붓기, 인격 모욕, 체벌, 구타, 심지어 고문 등으로 많은 파룬궁수련생의 체력이 약해지고 잔병이 많아졌는데, 매일 그녀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중 박해를 가했다. 쑹옌췬과 비슷한 경우를 당한 사람은 또 궈잉솨이(郭英帥), 양수메이(楊淑梅)가 있고, 또 형기가 10년인 사람도 8감구역에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류샤(劉霞), 왕칭원(王慶文)도 장기간 몸이 좋지 않다.

쑹옌췬 여사는 1971년에 출생했고, 창춘(長春) 상업고등전문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했으며, 하얼빈(哈爾濱) 대득(大德)일어학교 영어교사였다. 그녀가 후원한 학생은 수십 명이나 되었다. 여동생 쑹빙(1973년 출생)은 창춘 우전학원 정공교환전업(程式控制交換專業)을 졸업해 먼저 IT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후, 수란시 전신국에서 근무했다. 쑹옌췬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도처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며, 자신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지라도 다른 사람과 이해 관계를 따지지 않았다. 그녀가 막 졸업한 뒤, 수란시의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해 필기시험에서 전시 수석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는 사람에게 청탁을 하거나 뒷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이듬해 그녀는 또 시험에 응시했는데, 그녀가 지원한 그 근무처에서 그녀는 수석을 했다. 하지만 결과 또 마찬가지로 불합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 대해 그녀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평온하게 웃어넘겼다. 그녀는 수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원망이 없고 자연스럽게 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2003년 11월 27일, 궈웨이(郭威)를 우두머리로 한 수란시 공안국 악독한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쳐 쑹 자매를 납치했다. 당시 악독한 경찰들이 여동생 쑹빙의 머리카락을 잡고 팔을 거꾸로 비틀어 뒷짐을 지게 하고는 머리와 목을 소파에 끼우고 받쳐놓아 숨을 쉬지도 말도 하지도 못했다. 그런 다음에 두 자매의 입을 테이프로 봉하고, 머리를 옷과 바지로 단단히 가리고는 수갑을 채워 그녀들을 경찰차로 납치했다.

수란 난산(南山)구치소에서 수란시 공안국장 신허(辛河), 악독한 경찰 리줘(李卓), 리야오천(李耀臣), 리자저(李甲哲), 왕팅바이(王庭柏) 등은 두 자매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감행한 고문은 호랑이 의자에 묶기, 가늘고 긴 뾰족한 물건으로 귓구멍과 눈 찌르기, 겨자기름 주입하기 등이다. 그들은 겨자기름을 언니 쑹옌췬의 입안에 콸콸 주입했다. 그녀는 사레가 들려 대량으로 구토하고 기침을 했다. 그 후로 한 달간, 쑹옌췬은 흉강 안이 겨자기름 때문에 타들어 가 고통을 느꼈으며 호흡하기도 힘들었다. 얼굴은 타서 살가죽이 한 층 벗겨졌고, 입가의 살은 밖으로 뒤집혀졌는데, 손과 발 그리고 입가는 1년이 지나도 여전히 깊은 검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시연: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동시에 옆방에서 그들은 여동생 쑹빙의 팔과 손을 뒤로 비틀고 다른 한 팔은 머리 위로 감아서 뒤로 비틀었다. 그렇게 한 팔은 위로 다른 한 팔은 아래로 향하게 해서 단단히 등에 채웠다. 이어 악도들은 등에 수건을 하나 매고 위쪽 팔을 누르면서 위로 향하게 매달았다. 이렇게 고문하며 그녀에게 자백하도록 핍박했으나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두 졸개는 또 협력해 한 사람은 뒤에서 잡아당기고, 다른 한 사람은 물건으로 그녀의 얼굴에서 민감한 부위를 찌르고 귀와 콧속에 반복적으로 꽂았다. 그들은 이런 고문도 약하다고 생각했다. 졸개(야위었음)는 쑹빙을 찌르던 물건을 던져버리고, 겨자기름 한 병을 가져왔다. 쑹빙의 뒤에 있던 졸개는 쑹빙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머리가 뒤로 젖혀져 넘어갈 뻔했다. 팔은 등 뒤로 수갑으로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그들은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막은 다음, 그녀가 코로 호흡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숨을 쉬면 졸개들은 그녀의 코 안에 겨자기름을 주입했다. 폭행을 가한 자들은 겨자기름병을 쑹빙의 코에 눌러놓고 주입했는데, 그녀의 코 안에 겨자기름을 가득 채워 주입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숨을 쉬지 못해 거의 폭발할 듯 했다. 겨자기름은 쑹빙의 폐안, 기관, 코에서 함께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쑹빙은 극렬하게 기침을 하며 구토했다. 졸개들은 또 쑹빙의 코를 막고 그녀의 입안에 겨자기름을 주입해 넣었다. 그녀가 입을 벌리지 않으면, 졸개들은 곧 쑹빙의 두 뺨을 잡고 그녀에게 입을 벌리도록 핍박했다. 겨자기름은 위장 안으로 주입되었고, 그녀는 이로 인해 전혀 호흡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입안에 겨자기름을 가득 주입 당했다. 주입당해 사레가 들려 겨자기름을 입 밖 도처로 뿜어냈다. 졸개들은 겨자기름을 그녀의 온 얼굴에 쏟아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酷刑演示:灌食

고문 시연: 음식물 주입

그 후, 수란시 공안국에서는 이른바 증거자료를 꾸몄는데, 내용은 허황하고 터무니없이 허위적으로 날조한 것이었다. 비밀리에 불법 개정을 할 때, 수란시 공안국장 신허(辛河)는 검찰관 양광유(楊廣友)에게 손을 흔들어, 법률을 돌아서 피하도록 의사를 표시했다. 법정에서 쑹빙이 리자저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사실을 폭로하자, 리자저는 뒤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맨 마지막에 쑹옌췬은 불법으로 12년의 억울한 판결을 당했고, 쑹빙은 불법으로 14년의 억울한 판결을 당했다. 2004년 5월 25일, 쑹옌췬 자매는 창춘 헤이쭈이쯔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박해를 심각하게 당한 탓에 감옥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쑹빙에게 폐결핵이 발견되었다. 이에 감옥에서 쑹빙을 거부했다. 그 후, 쑹빙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는데, 건강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2009년 7월 30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지린성 창춘여자감옥에서 쑹옌췬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굳게 수련하고 이른바 ‘5서’를 쓰지 않아 오랫동안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하고 독방에 갇혔다. 박해로 그녀는 폐에서 각혈 증상이 나타났다. 교도관은 곧 4명의 ‘바오자(包夾:24시간 밀착감시)’를 배치해 온종일 그녀를 감시하고 박해했다. 그리고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욕설을 퍼부으며 혹독하게 그녀를 구타했다. 쑹옌췬은 예전에 5층 작은 어두운 방에 갇혀 침대에 묶여 있었다. 사지를 침대에서 대략 20cm 높이로 공중에 띄워 놓고 대소변을 침대 위에서 치르게 했다. 악인 류춘양(劉春陽)은 또 솜이불을 쑹옌췬의 배 위에 놓았다.

酷刑演示:抻床

고문 시연: 늘이는 침대 고문

지린 여자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가장 사악한 수단은 바로 ‘늘이는 침대’고문이다. 먼저 박해를 당하는 수련생의 옷을 깡그리 벗기고, 사지를 침대 위에 묶어 고정해 놓고 가는 끈으로 조였다. 악인은 수련생의 몸을 늘일 때, 몸을 허공에 뜨게 늘이면서 그 위에 적재 중량을 견디게 했는데,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길어지면 곧 불구가 된다. 2005년 5월, 창춘 여자감옥에서는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에게 새로운 한 차례 강제 ‘전향’을 감행했다. 쑹옌췬은 병원에서 교육대로 끌려가 포위 공격식의 폭력적인 ‘전향’을 당했다. 쑹옌췬이 협력을 거부하자 악독한 경찰은 그녀를 ‘사인 침대’위에 마치 ‘오마분시(五馬分屍,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각각 다섯 마리의 말에 묶은 후 말을 몰아 잔혹하게 죽임을 가리킴)’처럼 끈으로 단단히 묶고 사지를 힘껏 밖으로 늘였다. 대소변을 보는 것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늘이는 고문’으로 그녀는 다리 부위에 전혀 감각이 없었고 온종일 매우 차가워 혈맥이 통하지 않았다. 오른팔 뼈 전체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고, 특히 심하게 손을 떨어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대뇌 반응이 느려졌다. 동시에 두 갈빗대, 폐 부위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으며 폐결핵은 굉장히 빨리 악화되었다. 지금까지도 발 복사뼈 부근에 여전히 상처를 볼 수 있다. 박해에 참여한 악독한 경찰은 차오훙(曹紅)과 교도관 후(胡, 이미 전근) 모이고, 악인은 류춘양 등이다.

2012년 4월 12일에 면회할 때, 쑹옌췬은 어머니에게 어제 저녁(11일)에 바오자 4명이 교도관의 교사 하에 그녀의 옷을 깡그리 벗기고 한바탕 혹독하게 구타했고, 또 몸, 다리, 발을 악독하게 밟아 온몸이 상처투성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한 바오자는 날마다 그녀의 뺨을 때린다고도 했다.

쑹옌췬의 부모는 이미 칠순이 넘었는데, 10여 년 가까이 두 딸의 자유, 생명을 위해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부서를 분주히 뛰어다니며 여러 차례 고난을 겪었다!

문장발표: 2014년 1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7/2863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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