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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뤄장핑, 윈난 제1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중국대륙보도) 쓰촨(四川) 파룬궁수련생 뤄장핑(羅江平)은 2012년 1월에 윈난성(雲南省) 추슝주(楚雄州) 난화현(南華縣)에서 납치돼 불법판결을 받았다. 윈난성 제1감옥에서 족쇄 수갑 고문(腳鐐手銬), 강도를 초과한 노동, 독방 감금 등 박해를 당했는데, 생명이 위급해져 2013년 12월 23일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5일 만인 28일 오후 5시가 넘어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51세였다.

뤄장핑은 생전에 독침을 주사 당했다고 직접 진술했다. 생전에 그는 독침을 맞은 손을 가족에게 보여주었고, 또 독침 부위가 새까맣다고 말했다. 뤄장핑은 출소할 때,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윈 상태였다. 윈난 제1감옥에서는 간경화 말기라고 했으며, 이 때문에 그제야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되었으나 그들은 또 온갖 방법으로 가족을 못살게 굴었다. 12월 16일, 가족은 분개하여 감옥 측에 “오늘이 지나면 내일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장담하기도 어려운데 당신들은 질질 끌고 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옥 측은 오히려 “이것은 수속 문제이다.”리고 말했다.

뤄장핑은 쓰촨 판즈화시(攀枝花市) 미이현(米易縣) 싸롄진(撒蓮鎮)에서 거주했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했고, 10여 세일 때에는 두 발이 아팠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집이 가난해 병을 치료할 돈이 없었기에 고통 속에서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1996년에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섰고,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의 도덕 수양을 제고했다. 5장 공법 수련을 거쳐 몸은 가볍고 건강해졌으며, 다리가 아픈 증상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1999년 7.20에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이래, 뤄장핑은 이로움을 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것 때문에 여러 차례 미이현 공안국, 미이현 공안국 수사대대, 정보과, 미이현 싸롄진 정부에 의해 납치, 체포, 가택 수색, 갈취를 당했다. 2005년 초에는 5년의 불법 판결을 당해 쓰촨 더양(德陽)감옥에서 각종 고문학대 및 강도를 초과한 노역 노동을 당했다.

윈난에서 납치, 억울한 판결 당하다

2012년 1월 6일에 뤄장핑, 장지메이(張吉美, 미이 파룬궁수련생임)은 위난성 추슝주 난화현 룽촨진(龍川鎮) 산상촌(山上村)에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했다가 룽촨진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 후에 뤄장핑은 난화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고, 장지메이는 추슝주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1월 18일, 뤄장팡의 77세인 어머니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난화현 국가보안대대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다. 난화현 국가보안대대장 마샤오윈(馬曉雲), 업무 담당자 지윈(紀雲)은 결정할 수 없다며 회피했다. 난화현에 도착할 때까지 멀미가 심해 줄곧 토한 뤄 씨 어머니는 한 번 오기가 매우 쉽지 않아 오후에 거듭 마샤오윈, 지윈을 찾아 아들 뤄장핑과 단 한 번의 면회를 요구했다(구치소 측은 반드시 국가보안대대의 비준이 있어야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음). 그런데도 마샤오윈은 농촌으로 내려간다는 이유로 피하며 만나주지 않았고, 지윈은 강제로 뤄 씨 어머니를 사무실에서 나가게 한 뒤, 문을 닫고 거들먹거리며 가버렸다. 뤄 씨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되어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내 아들은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이렇게 울고 외치고 토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1시였다.

4월 11일 오후 2시 40분, 난화현 법원은 뤄장핑, 장지메이에 대해 불법재판을 열었다. 베이징의 변호사가 그들을 위해 파룬궁은 합법적이며 파룬궁을 선전함은 합법적이라는 무죄변호를 했다. 재판장, 검찰관, 서기원, 판사마저 이름을 걸지 않았다. 재판장 장뱌오(張標)는 악의적으로 변호사가 변호하는 것을 중단, 제지시켰으며, 또 뤄장핑, 장지메이의 발언을 허락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뤄장핑, 장지메이의 인신자유를 회복시키라는 요구를 제출했다. 법정에서는 현장에서 판결을 내리지 않고 택일하여 선고한다고 말했다. 불법 법정심리가 끝난 뒤, 재판장과 판사, 경찰 십여 명은 변호사를 공격, 위협하면서 모든 자료를 자신들에게 넘기게 했다. 그리고 나서야 변호사들에게 법정을 떠나게 했다. 이 일이 있기 전인 4월 10일, 난화현 610, 정법위의 양쩌핑(楊澤平)과 마샤오윈(馬曉雲)은 경찰을 파견해 변호사를 교란하고 위협했다. 법원의 형사청 리청장, 판사 장뱌오는 직접 변호사가 머물러 있는 위안상(原尚)호텔 206호 방안으로 들어가서 두 변호사를 법원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게다가 변호사가 합법적으로 검열하여 출력한 사건 증거 ‘추처사검발(楚處辦檢發) [2012]1호’ 문건을 가져갔으며, 변호사의 컴퓨터를 망가뜨렸다. 그리고 변호사가 자료를 출력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변호사를 미행까지 했다.

그 후, 뤄장핑은 난화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에게 자신과 장지메이가 각각 3년 6개월과 4년 6개월의 무고한 판결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상소를 제출하려 했다. 그러나 4월 23일까지도 가족은 여전히 어떠한 전화 통지나 이른바 판정서도 받지 못했다. 그 후, 뤄장핑은 윈난성 제1감옥으로 보내졌고, 장지메이는 윈난성 제2여자감옥으로 보내졌다.

두 베이징의 변호사는 2013년 8월 29일에 이르러서야, 윈난성 제1감옥에서 뤄장핑을 면회했다. 이 전인 5월 15일, 두 변호사는 윈난성 제1감옥에 가서 당사자 – 파룬궁수련생 뤄장핑과의 면회를 요구했다. 감옥 관리구에 들어간 뒤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그의 뒤를 바짝 뒤따랐으며, 또 녹화기를 꺼내 몰래 녹화했다. 변호사는 발견한 뒤, 현장에서 뭘 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세 남자는 그제야 녹화기를 거둬들였다. 변호사는 감옥 옥정과에 가서 뤄장핑의 어머니가 서명한 위탁서를 과장 천(陳) 모에게 주었다. 천 과장은 이 위탁서는 법원을 겨냥한 것이라고 고의로 난처하게 굴면서 변호사에게 감옥을 겨냥한 위탁서 한 부를 새로 쓰도록 했다. 게다가 위탁인과 위탁받은 사람의 모자 관계를 증명하는 현지 파출소의 증명서를 요구했다. 천 과장은 이것을 구실로 변호사가 당사자 파룬궁수련생 뤄장핑을 면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박해로 생명 위험, 가족의 석방 요구 힘들어

2013년 12월 16일, 뤄장핑의 어머니와 친척이 뤄장핑을 면회하러 윈난 제1감옥으로 갔다. 뤄장핑은 윈난성 제1감옥 6중대에 불법 감금당해 있었고, 중대장은 둥(董) 모였다. 둥 모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뤄장핑이 감옥중심병원에 있다며 면회하려면 모두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뤄장핑의 가족은 그가 간경화 말기라는 말을 듣고 급히 왔고, 또 환자를 보러 병원을 찾는 사람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듣지도 못했다고 했다.

말을 하는 과정 중에 경찰은 녹음하고 녹화를 했다. 친구가 경찰에게 “당신들이 사사로이 녹화하고 녹음하는 것은 우리들의 초상권을 침범한 것으로서 위법이다. 뤄장핑이 박해로 곧 죽게 생겼는데, 또 우리까지 못살게 구는가? 당신들은 무슨 수작인가?”라고 했다. 가족은 뤄장핑의 변호사가 그를 면회할 때만 해도 몸이 아주 좋았다고 했는데, 어찌 겨우 3개월 사이에 간경화 말기 진단이 내려졌느냐며 물었다. 경찰은 그를 아주 좋게 대했다며, 믿기지 않으면 당신들이 들어가서 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가족은 “매일 10여 시간의 과부하 노동을 하는데, 누가 견뎌 내겠는가? 당신들은 견뎌낼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맨 마지막에 신분증이 있는 가족 3명이 면회를 허락받았다. 뤄장핑이 삼륜차에 태워져 나왔는데,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 얼굴에 가죽만 붙어있었고, 손과 발은 부종이 생긴 상태였다. 뤄장핑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내가 널 보러 왔다.”고 말하자 아들은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본 어머니는 기절했다. 어머니가 기절한 것을 보고 실신한 뤄장핑은 삼륜차에서 미끄러져 밀려들어간 바람에 응급처지를 받았다. 가족은 “우리는 당신들이 뤄장핑을 좋은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하는 줄 알았는데, 당신들 이 병원 치료는 외부만 못하다. 외부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거나 병보석을 풀려나 치료를 받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정문을 나선 가족은 2감구역 정문 등에서 당시 사진을 찍고 그들을 데려가 면회를 시킨 경찰이 나오자 그들의 차를 막고 뤄장핑의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물었다. 경찰은 차에서 내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당신들이 병보석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또 상부에 지시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하며, 가족에게 내일(17일) 오전에 1감옥으로 가서 담판하라고 했다.

이튿날 오전, 가족은 6중대 대장 둥(董)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1감옥으로 가라고 말했다. 가족이 1감옥에 도착한 뒤, 그들은 가족을 안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이미 녹화기 두 대와 녹음기를 준비해 놓고 그곳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은 매우 화가 나서 “당신들은 뭘 하려는 것인가? 어제 이미 당신들에게 경고를 했는데, 당신들은 오늘 또 이렇게 하는가.”라고 말했다. 한 경찰은 어깨에 매우 작은 녹음 녹화 장치를 해두었다. 가족이 이를 발견하고 잡아당겨 그들에게 이것이 뭘 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들은 감시기라고 말했다. 그 중의 한 경찰의 경찰 번호는 5305798이었다. 다른 경찰은 전부 일반 경찰복을 입고 있었고 경찰 번호가 없었다. 가족은 “당신들은 우리를 속였다. 당신들이 우리와 이야기할 성의가 없는 이상, 우리는 가겠다.”고 말했다.

뤄장핑의 어머니는 울면서 “내 아들을 풀어 달라.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그만 가봐라. 나를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아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가족은 말했다. “집에 있는 가족은 현재 그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뤄장핑이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어머니도 아들을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할뿐이다. 우리는 그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그를 집으로 데려가려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80여 세인데, 어제 당신들도 보았듯이 그녀는 아들을 보고 이미 기절했다. 오늘 우리는 어머니도 당신들에게 맡긴다. 그녀가 아들과 함께 가겠다고 하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가족은 전부 떠났다.

걸어 나오는데 집에 있는 가족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족은 서둘러 돌아가서 경찰에게 전화를 듣게 했다. 경찰은 한 사람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족은 스피커를 눌렀다. 전화를 건 가족은 “상관하지 마라. 당신들은 전부 돌아와라. 인명 사고가 생기면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해 그들을 고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은 떠날 때 “당신들이 잘 고려해 봐라. 우리 어머니는 80여 세이고, 집에는 또 중병에 걸린 아버지가 계신다. 우리가 올 때, 다른 사람에게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뤄장핑과 80여 세인 어머니 두 사람 목숨은 당신들 손에 있다. 만약 인명 사고가 생기면, 우리와 집에 있는 가족들은 절대 당신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 12시 이전에 반드시 답변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에 가족은 거듭 1감옥으로 갔다. 1감옥에서는 뤄장핑에게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 받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의 사진을 찍었는데, 말로는 수속을 밟는 데 필요하다고 했으며, 또 서명을 요구했다. 게다가 또 미이로 가서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가족 두 명이 뤄장핑의 친여동생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면서, 그런 다음에야 된다고 말했다. 가족은 “사람(뤄장핑)이 완전 이 지경이 되어 오늘이 지나면 내일 (이 세상에) 사람이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또 질질 끌고 가 그를 죽이려 하는가?”라고 했다. 그들은 이것은 수속 문제라고 말했다.

윈난성 제1감옥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1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2851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