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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롄유의 생명 위독, 톈진 빈하이 감옥 측은 가족의 면회 거부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 보도) 톈진(天津) 베이천구(北辰區) 파룬궁수련생 화롄유(滑連友, 滑連有)는 단식으로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의 박해에 항의했는데, 이미 600일에 가깝고 생명이 이미 위험에 처했다. 여전히 빈하이(濱海) 감옥(원 강베이(港北) 감옥)에 불법 감금당하고 있는데, 감옥 측은 이미 연속 몇 달째 가족의 면회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 화롄유의 몸 상태가 매우 걱정스럽다.

2014년 1월 6일 오후, 화롄유의 아내 톈중리(田宗麗)와 딸은 강베이 감옥으로 가서 단식한 지 600일 가까이 되는 화롄유와의 면회를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여전히 행패를 부리며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5감 구역 중대장 가오페이즈(高佩治)는 가족에게 무리한 요구를 제시했는데, 가족이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는 보증서에 서명해야 만이 면회를 허락한다고 했다. 가족은 무엇 때문에 무리하게 가족의 권리를 박탈하는지를 물었다. 가오페이즈는 감옥에서 스스로 결정(이전에는 줄곧 상부에서 결정했다고 말했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가족은 가오페이즈에게 “당신의 말이 감옥을 대표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대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은 화롄유를 병보석으로 풀어주어 치료를 받게 해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그가 감옥 측에 반영해 주길 바랐다. 가오페이즈는 “반영하지 않겠다. 당신들이 어디까지라도 찾아가 봐라.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가족은 그에게 감옥장을 찾아 상황을 반영하도록 했으나, 가오페이즈는 창문을 닫고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5감 구역 부대장 저우웨이(周巍)에게 화롄유와의 면회 요구를 제출했다. 저우웨이는 히죽거리며 “당신이 나와 말을 하려 하면, 내가 당신과 말을 할 것 같은가? 당신이 나를 폭로해라.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다시 그를 불러도 그는 가족을 상대하지 않았다. 옆에서 녹화기를 들고 있던 어린 경찰도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악보를 입는 것이 두렵지 않음을 가리킴)고 말했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접대실의 사람에게 감옥장을 찾도록 했으나, 접대실 사람도 적당히 일을 얼버무리며 관여하지 않았다. 화롄유의 딸은 감옥 안으로 걸어갔다. 경비는 그제야 전화를 걸고 사람을 불러서는 가족이 말썽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가족은 자신의 가족을 면회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경찰 10여 명이 가족을 에워쌌는데, 여전히 누구도 남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이른바 가족이 보증서를 써야 만이 면회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강조했다.

2013년 11월, 감옥 측은 갑자기 화롄유의 생일을 챙겨 주겠다는 요구를 제시하며 가족에게 교자를 빚어 감옥으로 오라고 했다. 가족은 감옥 측과 “지금 화롄유의 이런 상황은 생명마저 모두 위험에 처해 있다. 가족이 무슨 심정으로 교자를 빚겠는가? 단지 화롄유를 만나보고 싶을 뿐이다.”고 말했다. 감옥 측은 가족이 교자를 빚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지금까지도 가족이 화롄유와 면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滑连友
화롄유(滑連友 )

듬직하고 선량한 화롄유(51세)는 원래 수상관(顯像管)공장 회계를 맡았다. 90년대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이래,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한 파룬궁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줄곧 주변 사람들이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장쩌민(江澤民)이 1999년 7월에 파룬궁을 박해한 후부터, 화롄유는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을 견지하여 주변 민중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이야기했다가, 2001년에 5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톈진시 제1감옥에서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2006년에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이미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되었다. 그 후, 파룬궁수련을 견지해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했는데, 뜻밖에 2012년 4월 24일에 또 한 차례 납치를 당했다. 납치를 감행한 구실은 여전히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이었다.

2012년 5월 23일, 납치당한 지 1개월 후, 화롄유는 단식으로 자신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2012년 9월, 화롄유는 베이천구 법원에서 몰래 불법 재판을 당한 동시에 7년의 억울한 판결을 당했고, 2012년 10월에는 빈하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줄곧 단식으로 항의함을 견지했는데, 현지 누계로 이미 600일에 가깝다.

문장발표: 2014년 1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0/ 2855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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