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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글쓰기 중 마음을 깨끗이 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많은 수련생들이 교류문장에서 꿈속 사존께서 자신에게 신필(神筆)을 하사하신 후로부터 글의 구상이 샘솟듯 했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 2년 동안 나도 글을 쓰고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고 있었지만 여태껏 이런 체험이 없었고 이런 느낌도 희소했다. 글쓰기는 나에 대해서 한차례 심혈을 기울이는 여정이었다. 거의 매번 문장을 쓰는 동시에 뼈를 사무치는 듯한 심성관을 넘어야 했고 고비를 넘어야만 문장이 순조롭게 만들어졌다. 등재됐더라도 또 한 차례 심성고험을 직면해야 했으므로 나는 줄곧 글쓰기는 내가 이전에 한 법을 실증하는 모든 일보다 더욱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늘 이런 편애를 받은 수련생이 너무 부러웠고 그들의 글쓰기 재능도 질투했다. 하지만 2년 후 돌이켜 보니 자신의 일부 이상하고 완고한 근본적인 집착이 바로 곤두박질하면서 조금씩 제거됐고 마음이 갈수록 순정하고 자상하게 됐으며 비록 글쓰기 수준은 비록 전문가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사악을 폭로하고 중생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이것이 바로 사존께서 고심하게 배치하신 결과가 아니신가? 사존께서 매 제자에 대한 아낌과 보호는 미혹 중에 있는 우리가 만분의 일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글쓰기 여정에 오르다

2011년 현지 수련생의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썼는데 보도된 후 밍후이왕 편집부 수련생이 내게 메일을 보냈는데 밍후이왕을 위해 종합보도를 쓰겠는가고 물었다. 메일을 본 후 나는 바로 기뻐 날뛰었다. 밍후이왕을 위해 글쓰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영광이었다. 하지만 이공과 대학 출신이고 자주 글을 쓰지 않았으며(십 여년간 10편의 문장도 쓰지 않았음) 문필이 서툰데 어찌 이 신성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마음속으로 전혀 자신감이 없었다.

편집부의 요구를 물어보고 어려운 글 쓰는 여정을 걷기 시작했다. 무엇이 종합보도인지 몰랐고 어떻게 써야하는지는 더욱 얼떨떨했기 때문에 나는 우선 신문학 교재를 찾아서 신문지식으로 가득 충전했다. 그리고 밍후이왕에서 같은 부류의 문장을 검색해보고 그대로 모방해 교묘한 수단으로 일주일 내에 겨우 첫 편의 원고를 완성했다. 비록 거의 수련생 문장에서 복제한 것이고 다만 실례와 내용을 손에 있는 자료로 바꿨을 뿐인데 뜻밖에 편집부 수련생들의 긍정과 격려를 받았다. 편집부 수련생들의 포용을 느꼈기 때문에 비로소 이 길에서 걸어가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말하기에 쉬운 것 같지만 당시 압력이 매우 크고 거의 내가 감당해야 할 극한을 초월했다. 매 편 문장의 자료수집, 분류, 취사선택만 해도 매우 번거로웠고 또 많은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또 어떻게 문장을 구성하고 배치해야 하고 단락사이에 어떻게 맺고 문맥이 잘 통하는지, 논리가 적합한지를 고려해야 했으나 나에 대해 이 모든 것은 매우 낯설었다. 늘 심혈을 기울이고 머리를 쥐어짠 후에도 여전히 엉클어진 실타래 같았고 어떤 때는 장기간 발정념을 해서야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간신히 원고를 완성하고 나면 한차례 격렬한 전투를 겪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피로했다.

전혀 과장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는 길에 들어서서야 나는 무엇이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득했다. 다른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면 매우 수월해보였기 때문에 때때로 ‘편집부 수련생들이 잘못보지 않았을까? 난 아예 글쓰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길은 나에 대해 너무 어렵다. 글을 쓸 줄 아는 수련생보고 하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럴 때마다 공교롭게도 즉시 문장이 채용되는 기쁨이 생기거나 혹은 편집부 수련생들이 견지하라고 격려해줬다. 이때면 나는 낙담한 생각을 모두 버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계속했다.

협조해 보도하는 중 근본적인 집착을 제거하다

내가 글쓰기 길에 들어섰을 때 투고하는 외에 현지 협조인을 협력해 일부 진상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각자 생각과 인식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늘 의견이 갈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자신의 일(글쓰기 학습과 투고)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교류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협력은 언제나 순조롭지 않았다.

기억하건데 의견 충돌이 가장 심했던 것은 현지 재판 보도였다. 협조인 몇 분은 마땅히 어떤 방면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마땅히 다른 방면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수집해 온 자료가 예상과 현저한 차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수련생은 나보고 어느 때가 됐는데 아직도 사람의 사상이냐고 비난했다.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괴로워지자 말하는 태도도 좋지 않게 됐으나 여전히 될수록 분노를 참고 내가 필요한 자료를 상세하게 열거해주자 간신히 협조인도 협력했고 사실 정황을 똑똑히 알아보고 내게 전달해줬다. 그러나 이것은 겨우 번뇌의 시작이었다.

협조인 몇 분은 여전히 내 보도의 중심이 방향을 빗나갔다고 생각해 나의 문장을 폐기하고 다른 한 수련생을 찾아서 또 한편 썼으며 그의 문장을 최종 문장으로 결정하고 밍후이왕에게 보냈다. 그 문장에서 비록 수련생의 정념정행을 강조했지만 그 중 표현한 것은 매우 강한 쟁투심이고 수련인의 자비의 체현이 아니었다고 생각해 협조인의 동의를 얻은 후 서로 보충되도록 나의 원고도 보냈다.

문장은 매우 빨리 등재됐는데 뜻밖에 편집부 수련생들이 채용한 것은 내가 쓴 문장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의 문장 중 일부 내용(글 쓸 때는 몰랐음)을 내 문장에 보충했다. 그 결과 다른 수련생들은 내가 두 편의 문장을 종합한 후 보낸 것으로 여기고 오해했으며 자신의 의견만 견지하고 스스로 결정한다고 나를 비난했다. 당시 나는 몹시 억울했고 속으로 ‘당신들 문장이 발표되지 않았는데 어찌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고 원망하는가?’라고 생각했다. 오해를 푼 후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번거로움이 많이 생긴다고 다시는 그들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생이 지적한 다른 하나 문제는 회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원고를 보낼 때 흐리멍덩하게 초고도 보냈고 그 안에는 속인이 비밀로 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장이 등재한 후에야 발견했다. 중대한 과실을 직면하고 나는 드디어 안을 향해 자신의 문제를 찾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내가 생각하는 보도 각도는 정확한 것 같았다. 줄곧 나는 자신의 학습과 투고를 제1임무로 생각했고 현지 보도에 진심으로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협조인이 밀어줘서 가는 것이었으며 의견이 엇갈려도 시간을 지체할까 봐, 새로운 번거로움을 있을까 똑똑히 해석하려 하지 않았고 다만 속전속결, 빨리 손을 떼려고만 했다. 그 결과 다급한 마음과 원망하고 저촉하는 마음은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했고 우리 정체에 간격이 생기게 했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끊이지 않게 됐는데 이는 과실을 초래한 진정한 원인이었다.

안을 향해 찾아 나는 또 시간을 다그쳐 학습하고 글쓰는 기술의 제고를 추구하는 그 배후에 사실 매우 강하고 근본적인 집착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배우자는 사당 대변인 매체의 기자였는데 사당의 압력 하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혼했고 거의 동시에 나도 유랑생활을 하게 됐다. 좋은 일자리와 가정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거주할 곳이 없었고 도처에 유랑하는 나는 마치 구름 속에서 계속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았다. 이후에 환경이 좋아지자 나의 사람 마음이 나왔고 주왕(紂王)을 도와 잔인무도한 짓을 하는 대변인 매체를 마음에 두기 시작했다. 늘 거액의 돈을 낭비해 만들어진 사무실 빌딩을 보면서 ‘어느 날이 되서 대법제자가 만든 매체가 들어가면 자기가 제일이라고 뽐내던 대변인들은 기가 죽어 빌딩에서 걸어 나갈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기쁘고 위안이 되는 일인가! 만약 내가 글쓰기를 배웠고 만약 그때 내가 마침 매체 중의 일원이면 더욱 통쾌할 것이다’라고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의 노력도 기염을 토하는 시각을 위해 준비했던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은 증오와 균형을 잃은 심리이지만 나는 그것의 뿌리는 정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모든 마난은 모두 정 때문에 생긴 것이고 정의 고비도 줄곧 나의 수련에 가장 큰 고비였다. 이번에 그것은 또 음험하게 이런 균형을 잃은 마음 뒤에 숨어있으면서 그것을 남겨두면 끊임없이 제고하려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게 했다. 그것이 바로 법을 실증하는 큰 방해가 됐고 나와 수련생이 협력하는 방해가 됐을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증하기 위해 노력하게 했고 서약을 실행하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게 했다.

좋지 않는 마음들을 제거한 후 나는 협조인의 어려움을 봤다. 그는 매번 간난신고를 겪고 위험을 무릅쓰고 수집해 온 소재를 갖고 글쓰는 수련생을 하나하나 찾았지만 늘 나처럼 자신의 각도에서 생각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었다. 바쁘거나 협조인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으면 거절했으나 그는 여태껏 여러 사람의 태도를 따지지 않았고 한번 또 한 번 재촉했으며 거의 시간과 정력을 모두 이 방면에 놓았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상대 수련생을 이해해주고 탄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드디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심으로 협력했다. 한동안 매우 좋게 협력한 후 나는 이후 자신의 글쓰기와 현지를 위한 글쓰기 시간을 어떻게 합리하게 분배해야 하는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매우 생생한 꿈을 꿨다. 꿈에서 많은 사람이 대형 광장에서 사람마다 손에 자기가 쓴 답안지를 쥐고 광장 정면에 있는 전자 네온사인 스크린에 있는 답안을 보고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문제마다 50점씩 작은 문제 두개가 있는데 모두 맞추면 100점을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내가 많은 100점을 받아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다. 깨어난 후 사존께서 격려해주시고 글쓰는데 어느 방면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없애고 순정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다

나는 줄곧 자신의 정이 비교적 많고 명을 추구하는 마음은 매우 담담하다고 생각했다. 글쓰는 과정 중 비로소 이 마음이 심상치 않게 강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마음이 울렁거렸고 이 문장이 꼭 채용될 수 있고 꼭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외부의 교란을 받으면 지체될까 마음이 불안했다. 매번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대뇌는 뜨겁고 더럽고 걸쭉한 물질로 가득 채워지고 따라서 혼돈상태에 처해있어 할 수 없어 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피해를 매우 많이 받았지만 그것을 없애겠다는 결심을 내리지 못했고 이런 상태를 글쓰기 수준이 높지 않고 원숙함에 달하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다. 속으로 만약 글쓰기 기술을 크게 한발자국 내디딜 수 있다면 다른 수련생처럼 펜을 들면 문장이 되고 휘저으면 완성되어 방해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존께서 나의 이런 이기적인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상태에 이르기 전에 크게 곤두박질하게 하셨다.

그동안 나는 또 글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장악한 지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문장을 쓰기 전마다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나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수월하게 마음대로 쓰고 싶었다. 결과 게으른 마음이 생기자 연속 몇 편의 문장은 모두 채용되지 않았다. 나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해 고민했고 또 기쁘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에 속으로 ‘다른 매체에 시험해 볼까, 내 문장이 정말로 그렇게 보잘 것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투고할 때는 생각이 많아 감히 서명(가명)하지 못하고 투고했다. 뜻밖에 이 밍후이왕이 채용하지 않은 문장은 다른 매체에서 특별 보도 형식으로 등재됐다. 나는 갑자기 멍했다. 밍후이왕과 다른 매체의 요구가 이렇게까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더욱 괴로운 것은 서명하지 않아 이름을 날리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으며 매우 긴 시간동안 가슴 아파했다.

내가 괴로워하고 후회 속에 빠져 있을 때 무의식 중에 매체에서 어떤 사람이 “허명(虛名)에 집착하는 그 자체가 바로 글쓰는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표현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은 그야말로 나를 향해 말한 것이었다. 사실 자신의 내심이 허약하다는 것을 매우 똑똑하게 잘 알지만 ‘글쓰는 길에서 아직은 서툰 신인인데 자신감이 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이런(이름을 날리는) 행운이 있기가 어려운데’고 끊임없이 생각했기 때문에 비로소 아쉬워했던 것이다. 이런 혼란한 생각은 거품처럼 자꾸 밖으로 나왔고 내 앞을 가로막았지만 ‘허명’이란 두 글자를 대면하기 싫어했다.

사존께서는 “명(名)에 집착함은, 유위(有爲)적인 사법(邪法)이라, 만일 세간(世間)에 이름을 날리려면 기필코 말은 착하게 하나 마음에 마(魔)가 있어 중생을 미혹시키고 난법(亂法)하게 된다”[1]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인으로서 ‘명’의 위해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아직 내려놓기 싫어하는가? 나는 수련생 앞에서 자신의 어릴 때부터 자랄 때까지 비슷한 마음을 사정없이 분석한 결과 뜻밖에 또 다시 아직 없애지 못한 근본적인 집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허영심과 색욕심, 편안함과 안일심 등등. 그것들은 내가 앞에서 말한 그 보복하려는 환상 배후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수련생의 도움 하에 나는 드디어 침착해지고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봤다. 동시에 그 몇 편의 문장이 밍후이왕에게 채용되지 않는 원인도 알게 됐다. 사존께서는 “진실하고 정확하며 깨끗하고 사람의 정(情)을 갖지 않는 문장은 속인이 능히 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내경(內境)은 청정(淸靜)한 것이기 때문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몇 편의 문장을 쓸 때 나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과시했으며 상상한 것은 문장이 발표된 후의 도취감이었으며 거기에 또 공명에 대한 만족감, 게으름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강렬한 자아를 가지고 쓴 문장이 어떻게 대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때 나는 또 처음에 편집부 수련생이 나의 문장은 깨끗하고 명백하다고 격려해준 것이 떠올랐다. 이것은 아마 나에게 순정한 마음으로 쓴 문장이야말로 대법이 필요한 것이라고 일깨워준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실증이고 수련자의 자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런 문장이야말로 더욱 좋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밍후이왕이 속인 매체와의 요구가 다른 원인일지도 모른다.

순정한 마음으로 돌아오자 문장은 또 매우 좋게 채용됐고 나도 신기하게 드디어 다시는 그런 붓을 들면 혼돈이 되는 상태가 없어지며 좀 수월하게 쓸 수 있었다. 비록 다른 수련생의 상태와 비해 아직 격차가 매우 크지만 이후에 착실하게 법공부하고 순정하며 사심 없는 마음을 유지하고 수련인의 가장 좋은 상태로 사람을 구하는 법기를 다루는 것을 노력해야 바른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맺음말

2년 동안 글쓰기 길을 돌이켜 보면 정말로 감개무량하다. 이 길에서 비록 고생이 많고 참기 어려운 적적함이 있었으며 각종 간난신고가 있었지만 대법 수련과 용합된 것이기 때문에 남긴 것은 속인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한줄기 신기함이었다. 나는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문외한에서 글쓰는데 숙달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마음속은 환골탈태의 변화가 생겼고 참고 포용하며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배웠다.

얼마 전에 수련생에게 “예전의 나는 마치 화로 중 맹렬하게 타는 불처럼 내심이 안절부절 했지만 지음 글을 쓰면 내 생명에 맑은 샘물을 주입한 것처럼 점차적으로 조용해지고 자신의 사상의 두서를 똑똑하게 정리하며 이지적으로 인간세상의 사람과 일을 대할 수 있다. 이것이 아마 성숙이며 이성의 시작일 것이다”라고 했다. 수련생도 매우 감동해 이 2년간 확실히 많이 성숙됐다고 했다.

나는 드디어 사존께서 왜 나에게 이 비할 바 없이 어려운 길을 배치해 주셨는지 알았다. 특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글을 쓰는 중 자비와 선념(善念)이 솟아오를 때 마음속으로 사존의 고심을 깊이 느낄 수 있었고 그때는 늘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눈물을 줄줄 흘렀다.

제자는 사존께서 구도한 은혜에 보답할 수 없고 오직 이후의 길을 안정하게 잘 걷고 순정한 마음으로 더욱 좋은 문장을 써내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수밖에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 금기(修者忌)’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성숙’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0/282151.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11/1431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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