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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빈은 박해로 사망, 동시에 납치돼 판결당한 팡광원은 생명 위급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상하이 보도) 산둥(山東)성 출신인 58세 파룬궁수련생 자오빈(趙斌)은 상하이에서 납치돼불법 판결 4년을 받았다. 티란차오(提籃橋) 감옥으로 납치당해 근 한 달 반(46일)만인 2013년 10월 19일 박해로 사망했다. 자오빈과 동시에 납치돼 박해당한 파룬궁수련생 팡광원도 박해로 생명이 위급한데, 지금 상하이시 감옥 총병원에 갇혀 있다.

팡광원은 상하이시 한 물류회사 사장이었고 자오빈은 그의 회사 직원이었다. 2012년 4월 27일 저녁, 팡광원과 자오빈은 상하이시 난화이(南匯)구 싼자오(三灶)진 광밍(光明)촌 1080호의 회사 기숙사에서 악인들에게 납치당했다. 악인들은 다수가 사복을 입었고 다만 두 사람만 경찰복을 입었을 뿐이다. 한 사람은 싼자오진 구역경찰 탕핑(唐平)이라고 불렀고 다른 한 사람은 창닝구 장쑤로(江蘇路) 파출소 경찰이라고 불렀는데, 어떠한 증명서도 보여주지 않았다. 법률에는 경찰은 공무시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니 그들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음 알 수 있다.

中共酷刑示意图:手铐脚镣

중공 고문 설명도: 수갑 족쇄 고문(手銬腳鐐)

팡광원은 창닝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구치소에서 가한 수갑 족쇄 고문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을 했다. 2012년 5월 14일, 경찰은 그에게 손발에 쇠고랑을 서로 채우는 박해를 가했는데 매일 24시간 동안 풀지 않고 대소변을 볼 때도 풀지 않아 그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2012년 5월 22일 팡광원은 단식으로 불법 감금박해를 항의하기 시작했다. 24일부터 창닝구 구치소에 의해 철제의자 위에 고정되어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호스가 강제로 꽂혔던 이유로 팡광원은 심하게 구토했고 비강에서 피가 흘렀다. 5월 27일, 팡광원은 상하이시 감옥 총병원으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다. 몸, 손발은 침대에 고정되어 매일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호스는 장기간 머리 위에 고정해 놓았다. 또 징역살이를 하는 죄수에 의해 감시를 당했고 강제로 주사를 당해 근육이 위축되었으며 무릎관절은 조건반사가 없었고 체중은 15kg이나 줄어들었다.

2012년 8월 1일, 국내외 정의로운 인사들의 도움 하에 팡광원은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됐다. 창닝 국가보안은 가족에게 2만 위안(348만원)을 갈취했는데 말로는 보석 보증금이라고 말했으나 여태껏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납치하고 ‘무죄 추정’ 상황에서도 형구를 쓰고 돈을 빼앗았는데 ‘범죄 조직’, ‘테러리스트’와 같았다.

7월 5일, 법원은 팡광원에게 7월 11일 오후 2시 30분에 불법 재판을 접수하라는 통지를 내렸다. 7월 8일에 팡광원은 창닝구 610[이상하게도 창닝구 위위안로(愚園路) 1173호 5층 501실의 610 주임 웨이궈중(魏國宗)을 찾았는데, 509실의 왕광차이(王廣才)가 접대했음]으로 가서 이치를 따져 그들이 하늘의 이치에 따라 행해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말고 재판을 취소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길 바랐다. 그러나 팡광원의 선량한 소원과는 정반대로 그를 즉시 구류시켰다. 당시 팡광원의 부친은 마침 식도암 진단을 받아 상하이 푸단(復旦)대학 부속종양병원에 입원해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탄압한 자를 찾아가 인연을 선해(善解)하려 했는데, 얼마나 좋은 국민인가! 만약 내심에 음모가 있다면 감히 찾아갈 수 있었을까? ‘집권자’는 억압, 폭력을 행하는 이외에 또 무엇이 남는가? 그날 팡광원은 아내와 딸과 함께 갔었는데 그가 선량하고 당당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자오빈은 2012년 4월 27일부터 시종 창닝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었다. 그 기간에 회사 책임자는 그를 위해 변호사 몇 명을 선임했는데 모두 저지를 당해 현지 변호사 한 명만이 관점이 불명확한 이유로 자오빈을 만나게 됐다. 이 변호사도 ‘무죄변호’를 해줄 생각이 없어 자오빈에 의해 거절당했을 것이다.

7월 11일 오후 2시 30분, 팡광원과 자오빈을 박해한 이른바 ‘사건’은 창닝법원 8호 소법정에서 개정됐다. 법정에서 팡광원에 대해 5년, 자오빈은 4년형을 선고했다. 팡광원은 7월 8일에 구류당했는데 당일 단식으로 항의했다는 이유로 법정심리를 하는 날에 불법적으로 끌려 들어오고 끌려 나갔다. 전반 과정에서 두 눈을 꼭 감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가족이 선임한 베이징 변호사 궈하이웨(郭海躍)는 변호하다가 두 차례나 판사에 의해 발언이 중단됐다. 자오빈은 법원에서 지정한 변호사를 거부하고 스스로 이치 있고 근거 있는 무죄변호를 했다.

2013년 9월 3일, 자오빈은 상하이시 티란차오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고 10월 19일에 갑자기 사망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자오빈의 몸은 건강했다. 정직하고 선량하며 온화하고 장년인 그가 감옥에 들어간 뒤 한 달 반 정도에 사망했는데 어떤 박해를 당했는지 외부에서는 모르고 있다. 그러나 밍후이왕에서 폭로한, 상하이시 티란차오감옥에서 대법수련생을 박해한 수단은 잔인한바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짐작할 수 있다. 상하이시 610(대법제자 박해를 전문적으로 담당한 불법 기구)의 조종 하에, ‘전향’ 장려금의 자극 하에, 티란차오 감옥의 악독한 경찰들은 매일 모두 법률집행인임에도 위법 행위를 했다.

팡광원은 현재 먹은 대로 다 토하고 있으며 이미 박해로 사망한 상하이시 파룬궁수련생 펑신싱(馬新星), 장즈윈(張志雲)도 마찬가지로 이런 증상이 발생했다. 그들은 모두 예전에 음식물 속에 독약을 투입당한 적이 있다.

문장발표: 2013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31/2820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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