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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독한 경찰, 고문으로 자백 강요하며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다!”라고 떠들다(사진)

[밍후이왕] 지린 성(吉林省) 눙안 현(農安縣) 파룬궁수련생 한젠핑(韓建平)은 2013년 6월 3일, 눙안 현 국가보안대대의 뤼밍쉬안(呂明選) 등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눙안 현 형사대대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탕커(唐克)라는 한 악독한 경찰은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다!”라고 떠들었다.

한젠핑은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나는 한젠핑이라고 하며, 1963년 11월 27일생으로 51세이다. 올 6월 3일 아침 4시쯤 자리에서 일어나 집 뒤 정원으로 간 나는 낯선 사람 세 명이 우리 집 담장 밖에서 한담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으나,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원 밖으로 가서 문을 열자마자 그 세 사람이 우르르 몰려들어 나를 눌러 넘어뜨리고 입을 막아 말을 못하게 하고는 제타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왜 나를 붙잡죠?”라고 하자, 그들은 “물을 필요 없어.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라고 했다.

그들 중에 피부가 검고 키가 큰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 나는 그가 눙안 현 국가보안대대 부대장 뤼밍쉬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나를 사오궈 진(燒鍋鎮) 파출소 맞은편의 푸샹자 위안서 구(福翔家苑社區)로 끌어갔다. 뤼밍쉬안은 내 아내 쑨옌샤(孫豔霞)가 몇 층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는 “말 안 해도 우리는 알고 있어.”라고 했다. 그는 경찰 2명에게 차 안에서 나를 누르게 하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사복 차림을 한 많은 경찰이 와서 위층으로 가서 문을 부수었다.

시의 국(市局)에서 왔다는 한 사람이 경찰 두 명에게 나를 차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발을 놓는 곳에 눌러 넘어뜨리라고 했다. 그들은 앞좌석의 걸쇠를 최대한 크게 풀어놓고 나를 힘껏 밀어 제쳤다. 눙안 현 국가보안대대장 탕커는 내 허벅지를 멍이 들도록 세게 꼬집었다. 그들은 한 사람은 머리를 밟고 한 사람은 다리를 밟았다. 나는 밟혀 숨을 쉴 수 없었으며, 몸을 구부리고 있어 매우 괴로웠다.

中共迫害法轮功学员的刑具:铁椅子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형구: 쇠 의자 고문

한 시간쯤 지나 그들은 나를 사오궈진 파출소로 끌고 가서 내 손을 파출소의 쇠 의자에 채웠다. 뤼밍쉬안의 지시를 받은 파출소의 경찰은 내 몸을 뒤져 413 위안(약 7,200원)을 찾아냈다. 약 20분 후 뤼밍쉬안이 들어와서 그 돈을 전부 자기 호주머니에 넣었다. 점심때가 되어도 밥을 주지 않고 오후 한 시경까지 채워놓았다. 그리고 나를 또 눙안 현 형사대대로 끌어갔다.

그들은 나를 붙잡을 때부터 눙안 형사대대로 갈 때까지 어떠한 증명서도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차는 번호판도 없었다. 눙안 현으로 가는 도중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당신들의 차는 왜 번호판이 없습니까?”라고 묻자 한 사람이 “우리의 차는 모두 새로 인수한 차다.”라고 했다. 내가 “당신들은 전에 차가 없었습니까?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습니까?”라고 하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눙안 현 형사대대로 끌어가서 컴컴한 방의 쇠 의자에 채워놓고 한 젊은 경찰에게 감시하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말하지 못하게 했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국가보안대대의 한 지도원(30여 세, 둥근 얼굴에 170cm 정도의 키)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집안의 현수막은 누가 썼는지, 누가 물건을 위층으로 옮겼는지를 물었다. 그는 내가 모른다고 하자 뺨을 네댓 대 때렸다. 나는 눈앞이 번쩍거렸으며, 얼굴이 부어올랐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내가 “당신이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나를 때립니까?!”라고 하자, 그는 “당신이 모르기 때문에 때리는 거야!”라고 했다.

그는 나가서 20여 세 정도의 아주 수척한 형사대의 한 남자를 데리고 와서 함께 나를 고문했다. 두 사람은 나를 눌러 넘어뜨리고는 두 팔을 등 뒤로 하여 수갑을 채웠다. 그 후에 들어온 어린 경찰은 내 머리를 땅에 눌렀다. 그들은 내 바지를 벗겨 밀대로 엉덩이를 잔인하게 때렸다. 얼마나 때렸는지 엉덩이가 부어올랐다. 나는 심한 고통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구타하다 지치면 수갑을 스팀 파이프의 윗면에 채우고는 시멘트 바닥에 앉혀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들이 밥을 먹으러 간 후 30분쯤 지나 국가보안대대장 탕커와 부대장 뤼밍쉬안이 와서 내가 무엇을 고백했는지를 물었다. 국가보안대대 지도원이 “고백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자 탕커는 내게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한테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잠시 후에 사람을 바꿔 당신을 혼내 주겠다!”라고 했다. 그 후 탕커는 뤼밍쉬안과 국가보안대대 지도원에게 또 나를 눌러 땅에 엎드리게 하라고 지시했다. 뤼밍쉬안은 내 발을 밟았고, 지도원은 팔을 등 뒤로 당겨 머리꼭대기로 비틀어 올렸는데, 이것을 ‘카이페이지(開飛機)’라고 불렀다. 나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비명을 크게 질렀다. 이렇게 그들은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서너 차례나 괴롭혔다.

한 경찰은 의자의 각목을 쪼개 내 손톱과 귀에 꼭꼭 끼웠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가장 세게 켜서 얼굴과 코를 태웠으며,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놓아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을 쉬면 비닐봉지가 코와 얼굴에 붙어 질식할 것 같았다. 그들은 이렇게 나를 이튿날 새벽 한 시 반까지 괴롭히고, 또 교통지휘센터 1층(눙안 현 공안국 뒤에 있는 건물, 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아감) 심문실로 끌어가서 쇠 의자에 채웠으며, 국가보안대대 지도원이 방에서 나를 지켰다. 나는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도록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

아침 7시쯤, 탕커는 밀대 하나를 들고 와서 나에게 “나는 어제 저녁에 잠을 아주 편히 잤다. 일어나서 당신을 가지고 단련하겠다!”라고 했다. 탕커는 밀대로 내 앞가슴과 등, 두 팔을 힘껏 때렸다. 그리고 무릎, 종아리 영풍골(迎風骨), 발 복사뼈와 같이 살이 없는 곳을 때렸다. 나는 손이 쇠 의자에 채워져 있어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때리다 지치면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와서는 밀대로 또 때렸다.

내가 “왜 때립니까?!”라고 묻자, 탕커는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다!”라고 했다. 이렇게 반복해서 10여 분에 걸쳐 서너 차례 때렸다. 나는 척주와 팔, 목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는 때리다 지치자 저우다하이(周大海)에게 나를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탕커는 밀대를 저우다하이에게 주면서 잠시 후 다시 나를 톡톡히 혼내주라고 했다. 저우다하이는 밀대로 10여 분간 때렸다.

그들은 내게 37시간 동안 밥과 물을 주지 않았다. 6월 4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뤼밍쉬안과 한 경찰이 나를 눙안 현 우궁리(五公裏) 유치장으로 보내 보름 동안 불법 구류했다. 유치장에 있을 때 뤼밍쉬안은 상소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하라고 나를 핍박했다.

문장발표: 2013년 10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6/2808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