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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칭메이, 산둥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산둥(山東) 안추시(安丘市) 파룬궁수련생 류칭메이(劉清梅) 여사는 2003년 중공(중국공산당)에 12년의 무고한 판결을 받았는데, 고혈압 증상으로 감옥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하지만, 2008년 산둥(山東)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당해 옷을 벗긴 채 거듭 고문박해를 당했고, 한때는 정신이상이 되어 걷질 못했으며, 고혈압 증상과 신장염이 도졌다. 결국 2013년 9월 3일 저녁 8시경 안추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 겨우 54세였다.

류칭하이 여사는 안추시 스두이진(石堆鎮) 다샤포촌(大下坡村) 사람이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만성 담낭염, 위염, 12지장염(十二指腸球炎)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은 적이 있어서 한약과 신약을 적잖게 먹었다. 약은 한줌씩 먹었고, 심각할 때는 링거를 맞았지만 여전히 온종일 아팠다. 1998년에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 그녀의 모든 질병이 사라지면서 심신에 건강을 얻었다. 대법, 대법 사부님 리훙쯔(李洪志)선생이 그녀의 생명을 구했다. 그녀의 감격스러운 심정은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고, 대법을 굳게 수련하려는 마음은 반석과 같이 튼튼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류칭메이는 파룬따파(法輪大法)에서 이로움을 얻은 자로서, 파룬궁에 관한 진상을 민중에 알려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했다. 이로 인해 거듭 중공 경찰에게 납치, 감금, 고문학대를 당했다. 감옥에서 류칭메이는 살인범에게 인생을 철저히 깨닫게 했다. 2002년 전후, 그녀가 안추 구치소에 있는 동안 살임범 후광타이(胡光太)도 함께 있었다. 후광타이의 사형집행을 앞두고 4월 14일에 구치소에서는 그녀를 풀어주어 실외 복도를 왔다갔다 거닐게 했다. 후광타이가 류칭메이의 감방까지 걸어갔을 때 그녀는 후광타이에게 “후광타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를 기억하세요!”고 알려주었다. 후광타이는 들은 뒤 즉시 복도 안에서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를 외쳤다. 그런 뒤 또 비통하고 고통스럽게 “내가 일찍이 ‘진, 선, 인(眞ㆍ善ㆍ忍)’을 배웠더라면, 오늘 같은 날은 없었을 겁니다. 내가 일찍 ‘진선인(眞ㆍ善ㆍ忍)’을 배웠더라면, 저는 지금 무사 평온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전기 충격, 매달기 고문, 쇠의자에 채우기, 널판지로 가혹한 구타, 독침 주사하기

1999년 7월 20일부터 2000년 말까지, 류칭메이는 6번이나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경찰에 납치, 불법감금, 고문학대를 당했고 또 4,300위안을 갈취 당했다.한 번은 그녀가 안추시 공안국 정보과 청수핑(程淑平)에 끌려 돌아와 안추공안국 정보과 사무실에 갇혔다. 악독한 경찰 리성화(李昇華)는 그녀의 두 손을 거꾸로 채워 시멘트 바닥위에 앉힌 뒤 두 다리를 곧게 펴게 하고는, 곧 빗자루로 일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폭행해 줄곧 빗자루가 부러질 때가지 때렸다. 이어서 구치소에 가두었지만 그곳에서도 그녀가 단호히 박해를 저지하자, 악독한 경찰 마시옌(馬喜彥)은 큰 쇠고랑이를 채워 쇠고랑마저 녹슬었다. 족히 10~15kg되는 쇠고랑을 5일 동안 채웠다. 그리고 연공했다는 이유로 악독한 경찰 저우신즈(周新志)는 전기봉으로 머리, 목, 손, 다리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전기 충격을 가한 뒤에는 또 그녀를 층계 위(두 발은 간당간당 땅에 닿도록 했음)에 매달았다.

2001년 7월, 류칭메이는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구거(賈戈)파출소로 납치당했다. 악독한 경찰 구짜이쥔(賈在軍)에게 가혹한 폭행을 당한 뒤 안추 구치소에 갇혔다. 그 곳에서 쇠의자 위에 채워져 강제로 음식물 주입(인민병원의 간호사도 도와서 주입했음)을 감행했다. 공안국 부국장 쑹윈칭(宋雲清)은 또 호스를 뽑아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어서 다시 주입하는데 편리하게 했다.

2002년 정월, 류칭메이는 웨이팡(濰坊) 대법제자의 집에서, 웨이팡 가오신(高新) 개발구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 납치당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그녀의 한쪽 손을 어깨 위에서 비틀고 다른 한 손은 몸 뒤에서 비틀어 함께 채우려고 시도했다(이것을 ‘다베이카오(大背銬)’고문이라고 부름). 4~5명의 악독한 경찰은 그녀를 땅바닥에 누른 채, 팔을 비트는 사람, 머리를 누르는 사람, 무릎으로 그녀를 꿇어앉히는 사람이 있었다. 한나절을 그렇게 해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갈팡질팡하며 그녀의 두 손을 거꾸로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꼬박 하루가 지난 뒤, 안추의 악독한 경찰 리성화, 구짜이쥔은 거꾸로 채운 수갑을 끌어올리며 그녀를 경찰차에 밀어 넣어 안추 구치소로 끌고 돌아갔다.

악독한 경찰의 고문에 온몸이 엉망이 된 그들을 구치소에서는 감히 수감하지 못했다. 리성화는 곧 그녀를 구치소 사무실 쇠의자에 채워놓고,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감시하도록 했다. 이에 단식으로 항의하자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은 곧 형사죄수 리훙민(李宏民)에게 지시를 내려 그들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게 했다. 무엇을 주입했는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 토했다. 스두이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런쩡차이(任增才, 지금 이미 전근되었음)는 손바닥으로 일체를 고려하지 않고 그들을 가혹하게 구타하며 “다시 토해 보라”고 마구 폭언을 퍼부었다.

이틀 후 류칭메이는 스두이 파출소에 의해 스두이진으로 끌려와 스두이 병원에 갇혀 강제로 독침주사와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주사관(針管)과 식관(食管)을 뽑아내며 무죄석방을 요구했다. 악독한 경찰 한원빈(韓文彬)은 그녀의 두 손을 따로따로 침대 양편에 채워놓은 뒤, 널판자로 혹독하게 그녀를 구타하자 병원의 간호사가 저지했다. 또 한 번은 류칭메이에게 독극물을 주사하자 온몸이 칼로 에이는 듯이 괴로웠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저항해 주사바늘을 뽑아내자 악독한 경찰 한원빈(韓文彬)은 곧 마성이 발작했다. 그는 문을 닫아 다른 방안의 간호사와 환자가 듣지 못하도록 해 놓곤 큰 널판자로 류칭메이의 다리와 둔부를 필사적으로 구타해 시커멓게 멍들게 했다. 살을 에이는 고통에 류칭메이는 오래도록 몸을 뒤척이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악인들은 그렇게 21일 동안 학대하여 그녀의 부상이 심각해서 수시로 생명의 위험이 있었다. 인명 사고가 날까 두려워진 악한 경찰은 그녀를 석방해 집에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박해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파출소 소장 양쉬둥(楊旭東, 이미 전근되었음)이 악독한 경찰을 거느리고 류칭메이의 집으로 가서 악의적으로 교란, 공갈 협박했다. 그녀는 거듭된 핍박으로 유랑생활을 했다.

2002년 4월의 어느 날 저녁, 유랑생활을 하던 류칭메이는 웨이팡 거주지에 불법 침범한 한 무리의 악독한 경찰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안추시 악독한 경찰 리성화, 구짜이쥔(賈在軍)에 의해 안추로 끌려 돌아와 구치소에 4일 동안 불법 감금박해를 당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핍박에 못 이겨 오래도록 유랑생활을 했다.

12년 간 불법판결을 당하다

류칭메이는 장시기 유랑생활을 하며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고, 아이가 있어도 보살펴 줄 수 없어 이웃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일요일에 쉬는지 물었다. 일이 발생한 후 전화가 감청 당했음을 알게 되었고, 이웃까지 악독한 경찰에게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한 동시에, 납치돼 안추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5일 후 핍박에 못 이겨 2천 위안을 바쳐서야 풀려났다.

2002년 9월 26일 일요일, 류칭메이는 겨우 아이와 한자리에 모였다. 그날 저녁 10시경 그녀와 딸(중학생)이 한참 잠을 자는데, 스두이(石碓)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한원빈이 몇 명의 악독한 경찰을 거느리고 담장을 뛰어넘어 불법으로 그녀 집에 들이닥쳐, 방문 유리를 부수고 방안에 들이닥쳐 그녀를 경찰차에 납치해 갔다. 악독한 경찰 한원빈은 기사에게 경적을 울리게 한 동시에 “대담하게 붙잡아라.”고 소란을 피우며 나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스두이 파출소 소장 리징보(李景波)는 또 몇 명의 악독한 경찰을 거느리고 밤새껏 그녀의 집을 수색했고 그녀의 딸은 부들부들 떨며 놀랐다. 집안의 모든 가구를 전부 비틀어 열어 고장 냈다. 그녀의 딸이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고 말하자, 악독한 경찰 리징보는 “땅을 석자 판다해도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악독한 경찰이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함은 바로 돈을 찾아내려는 속셈이었는데, 찾지 못하자 곧 류칭메이의 집의 보험궤(류칭메이가 신용소에 있을 때 나눠준 것임)를 파출소로 끌고 갔다. 리성화, 구짜이쥔은 일찍이 그곳에서 기다리며 전기 송곳을 빌려와 문을 연 뒤 약간의 돈이 있음을 발견했다. 리징보는 곧 화가 나서 류칭메이의 몸을 수색해도 돈은 없었다.

류칭메이는 리성화, 구짜이쥔에 의해 강제로 안추 구치소로 보내졌다. 한 길에서 악독한 경찰들은 류칭메이를 산 채로 묻어 버릴 건데 합당한 곳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큰 소리쳤다. 구치소에 도착했으나 구치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리성화는 천방백계로 앞뒤를 뛰어다닌 뒤 억지로 그녀를 불법으로 구치소에 넣었다.

구치소에서 류칭메이는 단식으로 항의했다. 감옥 의사 장위안팅(張元亭)은 그녀를 쇠의자에 매달고, 형사 죄수 리훙민(李宏民)을 교사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리훙민은 대법제자에 대해 매우 악독했다. 매번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할 때마다 때리고 욕했다. 어떤 때는 또 대법수련생의 다리를 발로 걷어찼고, 어떤 때는 머리를 구타했다. 이마에는 늘 맞아서 혹이 생겼다. 류칭메이는 고문학대로 정신을 잃은 채 깨어나지 못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악인이 뭐라고 말하면 그대로 하면서도 그녀도 몰랐다. 감옥 의사 장위안팅(張元亭)은 발로 그녀의 입을 걷어차며 살았는지 보겠다고 말했다. 류칭메이는 21일 동안 학대를 당해 사경을 헤매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사악은 그제야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2년 10월 28일 저녁, 류칭메이는 안추시 셋집에서 안추 악독한 경찰 리성화, 구짜이쥔에 납치당해, 안추시 구치소에 불법으로 갇혔다. 구치소에서 류칭메이는 단식을 견지하다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 장위안팅에 의해 쇠의자 위에 채워진 동시에 교사당한 죄수 리훙민(李宏民)에게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장위안팅은 또 죄수를 교사해 만터우를 씹어 그녀에게 먹이게 했다. 그녀는 악인의 모욕을 저지해 입을 꽉 다물었다. 죄수는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머리를 당겨 쇠의자 등에 눌러놓고는, 그녀의 압 안에 물을 쏟고 만터우를 씹어 먹였다. 그녀는 학대로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 마시옌도 죄수를 지시해 만터우를 씹어 먹이려 해 그녀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마시옌은 곧 수갑으로 그녀의 입을 비틀어 연 뒤에 그녀의 잇몸을 사납게 찔려서 청자색으로 변했다.

그녀가 단식한 지 20여 일 후, 장위안팅은 죄수 리훙민을 불러다 몽둥이로 그녀의 두 손을 꼬박 9일 동안 거꾸로 채웠다(수갑에 비해 더 지독했음). 그녀는 저녁에 잠을 잘 때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깨와 등이 마치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극렬하게 아파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함께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저녁에 일어나 앉아서 자신의 몸에 기대어 잠깐 앉아있게 했다.

악독한 경찰은 이른바 ‘체포증(批捕書)’을 가져다 그녀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이치에 맞게 엄숙하고 단호하게 “내가 대법을 수련함을 무죄입니다. 단호히 서명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악독한 경찰 리성화는 “당신이 서명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대신해 서명하지요.”라고 말했다.

2002년 섣달 말에 곧 설을 쇠게 되었다. 그녀는 구치소 소장 판치루(潘其錄)에게 “무조건 저를 집에 돌려보내세요. 제 아이가 저와 함께 설을 쇠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판치루는 석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도관을 불러다가 그녀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워 쇠의자 위에 꼬박 5일 동안 앉혀 놓았다. 그녀의 다리, 발은 고통에 못 이겨 아주 심각하게 부어올라 화장실마저 걸어갈 수 없었다. 그녀를 풀어준 뒤에도 여전히 계속 수갑과 족쇄를 채운 채 20여 일 동안 지속했다.

2003년 2월 21일, 류칭메이는 큰 쇠고랑이를 찬 채 안추시 법원으로 들려 들어가 불법 법정심리를 당했다. 재판장이 그녀에게 할 말을 묻자 무조건 석방을 요구했다. 열흘 째, 그녀는 이른바 12년의 무고한 판결을 선고 받았다. 악독한 경찰은 그녀에게 서명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단호히 서명하지 않았다. 악독한 경찰은 ‘서명하지 않아도 효력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며칠 뒤, 구치소의 판 대대장, 장위안팅, 유팡(遊芳)은 류칭메이를 지난(濟南)감옥으로 보냈다. 도중에 경찰차는 가로수에 부딪혔다. 안추 구치소로 되돌아가서 또 20여 일간 불법 감금한 뒤, 장위안팅에 의해 산둥성(山東省)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감옥 측은 그녀가 고혈압이 너무 높다고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석방해 집에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거듭 된 박해, 감옥에 납치돼 고문사 당하다

2004년 3월 어느 날 저녁, 눈이 오는 데 스두이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본촌의 촌지부서기 한후이원(韓會文)과 결탁해 류칭메이의 집으로 찾아와 그녀를 속이며 문을 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기회를 틈타 벗어났다.

이튿날, 파출소에서는 진(鎮) 정부와 결탁해 차량 3대에 19명을 파견해 그녀의 집을 포위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악인은 불법으로 담장을 뛰어넘어 열쇠를 비틀어 열고 함부로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3~4일 후, 사당의 악인은 백주대낮에 거듭 그녀의 집을 불법 수색했다. 집안의 재물, 먹을 것과 사용하는 것은 깡그리 강탈당했고, 악인은 정원에 무우를 묻는데 사용하는 흙까지 뒤졌다.

2006년 7월 13일 저녁 무렵, 류칭메이가 집에서 머리를 씻는데 스두이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한징징(韓靜靜)이 문을 두드리며 “큰어머니, 문을 여세요.”라고 말했다. 류칭메이가 이웃 집 소녀인 줄 알고 문을 열자 악독한 경찰 한원빈, 당상스(黨上史), 류구이타오(劉桂濤), 한징징이 승냥이와 이리처럼 달려들어 두말없이 그녀를 납치해 갔다. 그녀가 “저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어요. 무슨 근거로 절 납치하죠?”라고 묻자, 악독한 경찰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몇 명의 악독한 경찰은 힘껏 그녀의 발가락을 밟아 피범벅이 되었다.

악독한 경찰은 류칭메이에게 쇠고랑이를 채워 검은색 승용차 안에 밀어 넣었다. 그녀는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다. 악독한 경찰 당상스는 남색 불꽃을 내뿜는 전기봉으로 그녀를 위협했다. 잇달아 한원빈은 또 그녀의 집을 수색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소장 양메이타오(楊海濤)가 “철저히 수색했습니까?”고 묻자, 한원빈은 “철저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양메이타오는 또 한원빈, 류구이타오(劉桂濤)를 거느리고 밤새 그녀의 집으로 갔는데, 촌 주임 한젠우(韓建武)가 거느리고 그녀의 집으로 갔던 것이다. 그녀 가족 모두 집에 없는 상황에 악독한 경찰들은 불법으로 열쇠를 열고 방안에 들이닥쳐 함부로 구석구석 뒤져서 먹을 수 있는 것과 사용할 수 있는 것 모두 깡그리 강탈해 갔다.

류칭메이는 안추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뒤, 감옥 의사 장위안팅이 교사한 죄수에 의해 두 손을 거꾸로 쇠의자에 채워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호스를 콧구멍 안에 꽂아넣은 뒤에 테이프로 머리 위에 붙인 채 뽑아내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 땀이 흐르자 호스가 붙지 못해 떨어지자 그녀는 무릎으로 뽑아냈다. 이때 죄수 푸위항(付宇航)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콧구멍 안에 호스를 꽂았는데, 호스가 기관 안에 꽂혀져 그녀는 하마터면 질식할 뻔 했다.

류칭메이가 박해당한 지 40여 일 후, 구치소의 감옥 의사 장위안팅, 여 교도관 류슈샤(劉秀霞), 멍판리(孟凡麗)는 그녀를 산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했다. 그곳에서 검진한 결과 고혈압 증상, 심장병, 관심병 증상이 있어 감옥에서는 수감하지 않았다. 8월 24일, 류칭메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류칭메이는 안추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는 동안 40여 명을 중공 사당조직에서 탈당시켰다. 그 중에 직접 그녀를 박해한 악독한 경찰과 죄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류칭메이가 납치당한 뒤, 그녀 딸(안추 1중학교 학생), 아들(지난(濟南)대학생)과 친척은 함께 안추시 공안국의 사악한 대대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사악한 대대장 장진(張進)이 그녀의 아들 얼굴과, 목을 후벼놓아 피가 흘렀고, 또 공갈협박을 했다. 이튿날, 딸은 집에서 스두이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 납치돼 하루 불법 감금당했다.

2008년 3월 1일 오전, 류칭메이는 집에서 스두이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 납치돼, 안추시 구치소에서 2개월 이상 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5월에 산둥성 여자감옥에 갇혔다.

류칭메이는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병원에 끌려갔고, 병원에서 나온 뒤 감옥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집중훈련대’ 안에 갇혔다. 악독한 경찰 두목 쉐옌친(薛彥勤)은 유다(猶大) 추슈친(邱秀欣, 칭다오(青島)) 등을 교사해 그녀에게 잔혹한 박해를 감행했다. 추슈친은 10여 명과 함께 그녀를 구타했고,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화장실에 보내지 않고 핍박해 바지에 오줌을 누게 했다. 생리가 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구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다리는 걷지 못해서 엎드려서 길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정신이상이 되었다.

그 후 류칭메이는 6감 구역에 갇혔다. 악독한 경찰 덩이샤(鄧藝霞)는 왕추샤(王秋霞), 메이구이(梅桂), 왕훙제(王紅傑) 등 죄수에게 지시하여 연공을 견지하는 류칭메이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모조리 벗겨 강제로 시멘트 바닥에 앉히고, 또 펑유징을 그녀 압에 주입했다. 류칭메이는 박해로 혈압이 자주 190-200으로 높아지고 신장염이 도졌다. 그리고 늘 병원으로 납치돼 독극물주사 박해를 당했다.

2013년 9월 3일 저녁 8시경, 고문학대에 시달려온 류칭메이 여사는, 안추시 병원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54세였다.

류칭메이 박해에 참여한 일부 악인의 명단은 원문을 참조하기 바람.

문장발표: 2013년 9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8/2792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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