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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옥살이 9년에 집과 가족 잃은 여류시인, 또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성(遼寧省) 파룬궁수련생이자 여류시인 푸잉(伏英)이 최근 선양(瀋陽)에서 현지 경찰에 납치당했다. 푸잉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에 불법판결 9년형을 당했고, 그녀의 가정은박해로 불행해졌다.

출소한지 2년 만에 또 납치당하다

2013년 8월 30일 오후 1시경, 한무리 경찰이 들이닥쳐 황구구(皇姑區) 셋집에 기거하던 파룬궁수련생이자 여류시인 푸잉을 납치했다. 또 푸잉의 컴퓨터를 비롯해 조카의 컴퓨터까지 강탈했고, 푸잉의 개인 물품 한 상자도 강탈해 갔다. 그날 밤 11시30분경 랴오허(遼河) 파출소 인(尹)경찰은 푸잉의 가족에게 그녀를 불법형사구류 했다고 일방적으로 전화통보 했다. 31일 오전 경찰은 푸잉을 선양시 제1구치소로 그녀를 이송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납치에 참여한 곳은 선양 국가보안지대, 황구 국보대대, 랴오허 파출소이다.

푸잉(45세, 미혼)은 다재다능한 여류시인이다. 그녀는 랴오닝 문학원(文學院)에서 공부했고, 북경대학 서양언어학과와 베이징 영화학원(電影學院) 연구팀에서 연수했다. 안산시(鞍山市) 석탄가스회사 홍보부, 베이징 샤오칭(曉慶)잉스(影視)회사, 베이징 텔레비전, ‘과세기인재(跨世紀人才)’ 잡지사에 근무했다. 시집 ‘정녀(靜女)’를 단독 출간했고, 합작품 ‘비창을 향수(享受悲愴)’도 공동출판했다.

푸잉은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뒤 심신의 건강이 증진됐다. 1999년 7월 중공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푸잉도 각종 박해를 당했다.

1999년에 푸잉은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의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안산시 리산(立山)분국에 15일간 구류 당했다. 구류당한 기간에 안산시 석탄가스회사에서는 그녀를 불법 해고했다. 2000년에 푸잉은 톈안먼에서 납치되었고, 다시 안산시 톄둥구(鐵東區)분국에 15일간 불법구류돼 있었다. 게다가 루산(爐山)파출소에서는 5천 위안의 벌금을 갈취했다.

2001년 7월, 당시 34살이던 푸잉은 베이징 아시안게임촌 거주지에서 베이징 자오양(朝陽)분국 경찰에 납치된 뒤 베이징 중급인민법원에서 불법판결 9년형을 받은바 있다. 2003년 4월, 랴오닝 여자감옥에 이송된 그녀는 억울한 옥살이를 9년간 하면서 학대당해 얼굴이 완전히 변했고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졌다. 2010년 7월 10일에 출소한 그녀는 감옥에서 대량의 시가를 썼지만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푸잉은 출소한 뒤 줄곧 연로한 어머니와 미성년인 조카를 보살펴 주었다. 언니 푸옌(伏豔) 여사는 파룬따파를 수련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남편에게 이혼 당했는데, 오갈 곳이 없어진 조카는 외할머니 집에서 돌 볼 수밖에 없었다. 2012년 8월 조카가 선양 중등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이모인 푸잉이 선양에 따라가 아이 뒷바라지를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는데, 갑자기 중공경찰에 납치당한 것이다.

 

푸잉이 박해당하기 전 찍은 사진

푸잉의 노모 퉁수핑(여, 78세)은 랴오닝성 다스차오시(大石橋市)에서 살았다. 그녀는 뇌혈전증세, 당뇨병, 골질증식, 심장병, 결장염 등 10여 가지 질병을 앓아 갖은 치료를 해도 완쾌되지 않았다. 1998년 퉁수핑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부터 약탕관을 던져버려도 병이 사라지고 온몸이 가벼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한 알 먹은 적이 없다. 19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부터 퉁수핑은 적어도 세 차례 중공 경찰에게 납치당해 세뇌반에 갇힌 적이 있고, 또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퉁수핑의 딸 푸챵(伏强)은 다년간 마비된 장애인이었지만,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99년 ‘720’이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푸챵은 국가의 책임자에게 편지를 적어 자신이 파룬궁을 연마한 후 심신이 이로움을 얻었음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경찰에 의해 보름동안 불법구류 되었고, 불법 노동교양 3년 처분을 받았다가 후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2002년에 또 잉커우시 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돼 보름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퉁수핑의 딸 푸옌은 베이징에서 장사를 했다. 그녀는 2001년 8월 베이징 집에서 중공경찰에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 3년 처분을 받아 마싼자 교양원에 감금당했다.

2003년 2월 17일, 다스차오 경찰은 이미 불법 노동교양 중이던 푸옌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불법 판결 8년을 내렸다. 푸옌은 다스차오 구치소에서 박해로 심장병 증상,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병원에 보내져 치료를 받을 때 병원에서 탈출했으나 2개월 후 안산에서 다시 납치되어 2003년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다스차오시 법원은 랴오닝성 여자감옥까지 따라가 푸옌에게 불법으로 5년 6개월 형을 내려 총13년 6개월간 억울한 형을 받았다. 원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그녀가 중형 판결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자 그녀의 남편은 2008년에 이혼을 했다. 그녀의 딸 샤오칭취안(小清泉)은 당시 3살이었는데, 그때부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

푸옌(伏豔) 일가족

2001년, 푸잉과 푸옌 자매가 차례로 납치, 판결, 감금당했다. 그녀의 어머니 퉁수핑은 한때 지병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03년 두 딸이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한 뒤, 70살이 넘은 퉁수핑, 푸청융(伏承勇) 노부모는 3살된 외손녀 샤오칭촨(小清泉)을 데리고 가난하게 생활하면서 매 달 다스차오와 여자감옥 사이를 분주히 오가야 했다.

아버지 푸청융(伏承勇)은 충격과 무거운 압력으로 2008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3개월 후에는 셋 째 사위가 불구인 아내와 2살 된 딸을 남기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일가족은 외손녀와 과부가 된 모녀들만 남게 되었다.

퉁수핑(佟書萍)이 생전에 찍은 사진

천리는 공정한데 언제 명확하게 밝혀질까?

푸잉은 파룬궁수련생으로서,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여 타인을 선하게 대했다. 그녀의 옷은 누구든 가져다가 입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힘껏 도왔다. 그녀의 큰 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마비 되었을 때 푸잉은 선양으로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2개월간 돌봐 주었다. 큰 언니를 고향 집으로 갓 돌려보낸 뒤 막상 그녀가 중공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감옥에 감금된 것이다.

퉁수펑 일가는 眞善忍(쩐싼런)을 견지한 이유만으로 흉악한 당이 가정을 파괴하여 목숨을 앗아갔다. 천리는 공정한데 언제 명확하게 드러날 것인가(天理昭昭,何日明鑒)?

직접 박해한 책임단위 및 인원:

황구구 랴오허 파출소(皇姑區遼河派出所):024-86227493 부소장 천쥔이(陳軍義)

선양(瀋陽) 국가보안지대, 황구구(皇姑區) 국가보안대대, 황구구 분국

문장발표: 2013년 9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7/2792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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