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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처치’ 배후의 죄악

[밍후이왕](밍후이 통신원 대륙종합보도) 최근 허난성(河南省)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받아 치사당한 사례를 정리하면서, 악경이 죄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을 병원에 끌고 가 ‘응급처치’한 추태를 여러 건 발견했다. 사례는아래와 같다.

1. 쑨스메이(孫士梅)의시신을 병원에 눕히고 주사를 놓다

2003년 ‘610’ 우두머리 뤄간(罗干)이 허난에 와서 박해를 독촉하자 이른바 ‘봄 우레 행동’을 일으켰다. 이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허난 파룬궁수련생들이 학살되었는데, 허난 샹청시(項城市) 쑨스메이가 바로 피해자 중 한명이다.

쑨스메이(孫士梅,여,40여세)는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고 진상을 알리다 불법 노동교양에 처해져 정저우 스바리허(郑州十八里河)여자노교소에 감금되었다.

2003년 5월 22일, 그녀는 노교소에서 혹형 ‘구속복(约束衣)’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다가 5월23일 풀려났을 때는 이미온몸이 얼음장이었다. 노교소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마약복용자 펑옌핑(馮燕萍)과 푸진위(付金玉)에게 그녀의 시신을 인근 병원에 업고 가 주사를 맞힌 뒤 ‘지병으로 급사’했다고 거짓말하도록 명령했다. 쑨스메이 가족은 그녀의 시신이 상처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곤 즉시 화장하려고 하지 않았다.하지만, 경찰은 영안실에 며칠 시신을 안치한 후 강제로 화장해 증거를 없앴다.

‘구속복[约束衣]’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백 가지 혹형 중 하나로, 일설에 따르면 원래 정신병 환자 전용으로 사용한 것인데 움직일수록 바짝 죄여드는 기구다. 이 옷은 가는 범포로 제작되었고,앞에서부터 옷을 입혀뒷등에 끈을 묶고, 옷소매는 손목보다 약 25센티미터나 길고 벨트가 있다. 이 형벌을 당한 사람은 즉시 양팔이 망가지는데 우선 어깨, 팔꿈치, 손목부터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갈라지며, 박해당한 시간이 긴 사람은 등뼈가 전부 끊어지는 고통을 산채로 당하다 죽음에 이른다.

이 혹형은 허난 제3노교소(쉬창[许昌]노교소라고도 함)에서부터 파룬궁수련생의 몸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목적은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하여 신앙을 포기시키는 것이었다(이른바 ‘전화’시키는 것). 악경은 이 옷을 파룬궁수련생에게 입힌 뒤 수형자의 팔뚝을 등에 끌어다가 양팔을 교차시켜 옭아맨다. 그런 후 양팔을 어깨 넘어 가슴 앞까지 끌어오고, 다시 두 다리를 묶어서 공중에 띄우고는 철창문에 매단다. 귀에는 이어폰으로 파룬궁을 비방하는 말을 끊임없이 방송하면서 입은 또 천으로 틀어막는다.

악경 취쐉차이가 허난 스바리허노교소 소장으로 전근한 후 이 혹형을 도입했다.

2003년, 중공 ‘610’ 우두머리 뤄간은 사스(SARS)를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허난에 와서 박해를 독촉했다. ‘전화율’을 98%~99%에 달하도록 요구했고, 또 두 ‘죽음의 장소’를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10일만에 허난 스바리허노교소는 구속복을 이용해 여성 파룬궁수련생 쑨스메이(孫士梅), 장야리(張雅麗), 관거(管戈), 장바오쥐(張保菊) 등 4명을 잔인하게 학살하였고, 웨이구이룽(韋桂榮)은 두 팔이 망가져 장애인이 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3대대는 마약복용범 펑옌핑(馮燕萍)과 푸진위(付金玉)로 하여금파룬궁수련생들에게 ‘구속복[约束衣]’를 입히게 했다. 6월 14일, 허난성노교국 국장 류모모는 직접 두 살인흉수를 표창하였고, 해교표(解教表)[범죄자에 대한 강제노동을 해제]가 도착하면 즉시 승인하겠다고 말했다. 이 두 흉범은 2003년 6월 15일 2개월 앞당겨 ‘해교’되었다. 석방 전 3대대 대장 쟈메이리(賈美麗)는 두 범인에게 누구에게도 모살사건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위협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가족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고 했다.

2. 리젠(李健) 사망한지 2시간 후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

리젠(34세,장애인)은 주마덴(駐馬店市)시 정양현(正陽縣) 변호사로 주마덴시 정양현 검찰 가족구역에 살았다. 그는 2000년에 납치되었고, 2001년 4월말에도 쉬창(许昌)노교소에 납치되어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불법노동교양기간, 그는 수차례 각종 시달림을 당했다. 승형(绳刑), 강제 ‘세뇌’, 초강도 고역, 잠 안 재우기 등…… 리젠은 심신의 고통 속에서 과로로 인해 밥 먹을 때도 입에 밥을 물고 잠들 정도였다.

승형(绳刑), 이것도 아주 잔인한 혹형이다. 고문을 가할 때 파룬궁수련생의 솜옷을 강제로 벗긴 뒤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게 한다. 다리는 반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팔뚝은 뒤로 해 밧줄로 단단히 묶고, 끝없이 위로 극한에 이르게 하는데, 팔뚝이 단단히 묶여진 고통은 칼로 에이는듯하다. 양 옆에 있는 사람은 고통을 주려고 끊임없이 팔뚝을 들어서 움직인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밧줄에 목과 복사뼈가 한데 묶인 채, 머리를 들 수 없고, 손목은 조여들어 검은색을 띠었다.

악경은 리젠을 박해하면서 그의 가족까지 속이고 이간시키는 방법으로 그를 박해했다. 리젠의 아버지는 정양현 법원(혹은 검찰원)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가 리젠을 면회왔을 때 악경의 이간질에 넘어가 일시적으로 분노해 아들을 무자비하게 때렸고 악경은 싸움을 말리는 척 했다. 악경은 또 리젠이 아내를 금, 토요일 저녁에 쉬창노교소에 불러다 담화한다는 핑계로 괴롭히며 잠자지 못하게 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새벽 1시~2시까지 괴롭혔다. 그런 뒤 날이 밝기도 전에 또 그를 핍박해 노예노동을 시켰는데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적게 하면 안 되었다.

2001년 12월, 리젠은 고압적인 박해로 본심과는 다르게 수련을 포기하겠다고 타협했다. 하지만 2002년 3월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후, ‘전화(转化)’를 폐지하고 새롭게 견정히 수련할 것을 성명했다. 이로 인해 3대대 대대장 탄쥔민(譚軍民)은 더욱더 리젠을 박해하며 괴롭혔다. 2002년 4월 26일 새벽 1시경 호흡곤란에 고통스러워하다 새벽 3시경 사망했다. 리젠이 사망한지 2시간 후, 악경 탄쥔민은 그의 시신을 병원에 끌고 가 ‘응급처치’를 하였다. 인공호흡과 강심제 주사 등, 진실을 거짓으로 덮어 감추었다. 그리하여 노교소는 이른바 법적 절차에 따라 쉬창시 검찰원이 정상적으로 사망했다는 진단을 내리고는 리젠의 가족을 내쫓아 버렸다.

리젠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떠한 질병도 없이 아주 건강한 상태였다. 그러나 노교소에서 혹형의 시달림과 장시간 과부하 노역을 당하다 보니, 그는 임종 전에 설령 밥을 먹지 못하게 하더라도 5분간만이라도 휴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악경은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는 이렇게 무참하게 괴롭힘을 당하다 사망한 것이다.

3. 한밤중에 사망한 자오팅윈(趙廷雲), 아침에 병원에다 시신을 들고 가서 ‘치료’

자오팅윈(여,54세)은 원 신샹시 버스공장 직원으로 신샹시 버스공장 기숙사(家属院)에 거주하며 1998년 정월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수차례 불법 감금되어 박해 당했다. 2006년 1월 6일, 자오팅윈은 잠복근무하는 경찰에 납치되자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하다 9일 후 치사했다.

15일 밤 9시경, 신샹시 감옥 관리지대 대장 쉬챵(许强)은 구류소에서 그녀의 남편을 속여 시체검사보고서에 서명하게 했다. 그렇지만 악경은 시체검사결과와 시신에 남겨진 외상에 대해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구류소에 감금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1월 14일 오후 자오팅윈이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당한 후 두 경찰이 그녀를 끌고 감방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걸을 수 없었다. 그날 밤 1시~2시경 감방의 형사범은 그녀의 몸이 이미 차가운 것을 발견했는데, 사망시간은 추정할 수 없었지만 일찍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놀란 그녀는 큰 소리로 사람이 죽었어요! 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구류소 경찰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15일 아침 5,6시경 경찰은 시신을 중심병원에 실어갔다. 소식에 의하면 의사는 보자마자 사람이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 왜 또 이곳으로 보냈는가? 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어서 자오팅윈의 시신은 신샹의학원 3부속병원에 실려가 16일에 시신을 부검했다. 가족은 그녀의 얼굴표정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목이 비틀어졌으며, 얼굴이 탈상한 것을 보았다. 가족이 그녀의 목을 바로잡아주고 머리를 매만져줄 때, 목에 약 4~5촌 길이의 붉은 상처가 있었고, 왼쪽 귀 위쪽에도 1촌길이의 상처가 있었으며, 살이 밖으로 터져 있었다. 머리 뒤에는 종기(肿块)가 가로모양(横条状)으로 나타나 있었다.

4. 이미 굳어진 쟈쥔시(賈俊喜)의 시신을 악경은 병원에 실어다가 ‘응급처치’

쟈쥔시(남,58세)는 푸거우현(扶溝縣) 다신향(大新鄉) 첸샤오좡(前小庄) 싱정춘(行政村) 마을 사람이다. 그는 2005년 8월 18일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 경찰에 납치당했고, 8월 28일 푸거우현 간수소 독방에 갇혀 박해 당했다. 악경은 4명의 범인을 시켜 경찰봉으로 그를 혹독하게 폭행하게 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당시 비상벨이 크게 울렸고 그 후 24시간 방문이 꼭 잠겨 있었다고 한다. 멀쩡하던 쟈쥔시는 그곳에서 무참하게 폭행치사 당했다.

8월30일, 악인은 세상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 쟈쥔시의 굳어진 시신을 현병원에 실어갔다. 의사는 죽은 사람을 이곳에 보내 무엇 하려 하느냐며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악경은 할 수 없이 시신을 병원 복도에다 놓았다.

8월 30일 오후 6시경, 쟈쥔시의 가족은 푸거우현 공안국으로부터 사망통지서를 받았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신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을 꽉 물고 있었고 한 손은 한쪽 다리를 꽉 쥔 채로 절반 구부리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왜 이렇게 참혹한가? 어떻게 죽었는지 묻자 악경은 급성심장병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하자 악경은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 북경에 고발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불법 경찰은 쟈쥔시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시신을 화장했다. 쟈쥔시의 아내는 유골함을 받쳐 들고는, 나갈 때는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돌아올 땐 죽어서 한줌의 재가 되었다며 애통해했다.

감방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쟈쥔시는 고문당하기 전에 병세가 없었고 말도 똑똑하게 했는데, 경찰이 데려간 후 다시는 감방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5. 악경은 장준리(張准麗)를 때려죽인 후 4층에서 아래로 던지고, 다시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하다

장준리(여,55세)는 허난산현(河南陝縣)사람이다. 산현 국보대대는 2006년 1월 8일부터 갑자기 이곳에 살던 20여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하며 납치했다. 1월 13일 아침, 악경들은 또 갑자기 대법제자 장준리의 집을 불법 수색해 일부 대법서적과 경문을 강탈하고 아이들의 컴퓨터도 강탈해 갔다. 그 후 그녀를 산현 국보대대 4층에서 고문하며 대법서적과 경문의 출처를 강제 자백하라고 했다. 악경들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그녀에게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책임이 두려웠던 악경들은 그녀의 시신을 4층에서 아래로 던져,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다. 그런 뒤 시신을 산현 2병원에 실어가 이른바 ‘응급처치’를 했다.

사람의 행위를 하늘은 보고 있다. 중공 졸개들이 어떻게 죄악을 덮어 감추든지, 최후에는 모두 매서운 천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6월2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톱기사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23/2757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