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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스폿 방송해 10년의 억울한 판결 당한 장웨이, 감옥에서 고문당해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다롄(大連) 파룬궁 수련생 장웨이(張偉)는 스폿 방송으로 국민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 2005년 10월에 납치당했다. 그 후 10년의 억울한 판결을 당해 잉커우(營口)감옥, 판진(盤錦)감옥, 선양(瀋陽) 둥링(東陵)감옥 및 톄링(鐵嶺)감옥을 전전했다. 그 기간에 교도관에게 고문 학대당했다. 현재 장웨이는 박해로 심각한 폐결핵에 걸려 호흡하기 어렵고 몸이 극도로 허약하다.

张伟
장웨이(張偉)

진상을 스팟 방송하여 10년의 억울한 판결 당하다

장웨이(올해 44세)는 다롄 시(大連市) 중산 구(中山區) 지칭 가(吉慶街) 103호에서 살고 있다. 박해당하기 전에 다롄 시에서 자영업에 종사했다. 박해당한 후, 믿음을 견지해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감금과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은 1999년 7월에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뒤, 전 국가 선전기구를 이용해 파룬궁에 먹칠했고 민중을 속여 세상 사람들이 파룬궁에 대한 원한을 일으켰다. ‘진선인(眞善忍)’의 세상 가치를 위호(衛護)하기 위해,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를 위호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알 권리를 위호하기 위해, 장(江) 씨 이익 집단의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하는 절멸 정책하에, 중국 대륙이 정상적으로 파룬궁 진상을 밝힐 경로가 없는 상황에서, 대륙 민중 여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생명 위험을 무릅쓰고 구술, 스스로 만든 접착테이프를 붙이고 스스로 만든 전단을 배포했으며, 편지를 부치고 전화를 걸고 텔레비전방송국과 방송국 등을 이용해 광대한 민중에게 진상을 알렸다. 장웨이 역시 이 많은 파룬궁 수련생의 일원이다.

2005년 10월 13일, 장웨이 등 파룬궁 수련생은 랴오양(遼陽)에서 파룬궁 진상을 스폿 방송했다는 이유로, 다롄 시 국가보안대대, 천신(陳欣)을 우두머리로 한 국가보안경찰에게 폭력적인 납치를 당했다. 납치 과정 중, 한 파룬궁 수련생은 현장에서 경찰봉에 의해 오른쪽 위팔이 부러졌다. 경찰은 또 나무 몽둥이로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해 바닥에 기절시켰다.

10월 22일, 장웨이 등 파룬궁 수련생은 비밀리에 랴오양 시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장웨이는 단식으로 무리한 박해를 항의했던 이유로, 몇 번이나 혼미 상태에 빠져 응급처치를 받아 생명이 위급해졌다. 가족은 공안국으로 가서 즉시 무죄로 장웨이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경찰은 국가안전국, 랴오닝 성 공안청에서 지령을 내렸는데, 석방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죽어도 석방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2006년 4월, 장웨이는 랴오양 현 법원에 의해 10년의 억울한 판결을 당해, 5월 20일에 잉커우(營口)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당했다.

감옥에서 고문 학대당하다

중공감옥에서 처참하게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사실이 폭로됨이 두려웠기 때문에, 줄곧 엄밀하게 소식을 봉쇄했다. 이곳에서, 가족이 한계가 있는 몇 번의 면회에서 요해해 낼 수 있는 상황과다른 파룬궁 수련생이 전해온 소식에서 8년 이래 장웨이가 고문 학대당한 빙산의 일각을 요해하도록 하자.

잉커우감옥에서 장웨이는 박해로 걸을 힘이 없었다

2007년 12월, 장웨이는 비밀리에 판진감옥 4감 구역으로 이송되었다. 판진감옥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수단이 잔인하고 형식이 음독해 ‘인간의 지옥’으로 불렸다. 민간의 경로를 통해 전해온,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황청(黃成), 우롄톄(吳連鐵), 황리중(黃立忠), 루광린(盧廣林), 판전궈(范振國), 왕카이밍(王開明), 취청예(曲成業) 등이다.

장웨이는 판진감옥에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갇혀 박해당했다. 독방에 갇힌 파룬궁 수련생은 이어서 발에 걷어 채이기, 전기봉에 전기충격 당하기, 호랑이 의자에 올리기 등 각종 고문 학대당했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시연:전기봉에 전기 충격 당하기
酷刑演示:老虎凳
호랑이 의자 고문 시연:발밑에 벽돌을 몇 장을 받쳐 치켜들게 한 다음, 무릎은 나무 몽둥이나 끈으로 아래로 잔인하게 누른다.

2011년에 이르러 가족은 그제야 장웨이가 박해로 폐결핵에 걸려 두 팔을 들수 없게 되고, 몸이 매우 허약해져 4감 구역에서 감옥병원 입원부로 옮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장웨이가 폐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로, 독극물을 주사(중공의 감옥에서 감옥 측은 또 약물 방식을 채용해 파룬궁 수련생의 신경 및 몸에 손상을 입힘으로써 파룬궁 수련생에게 믿음을 포기시키려 했는데, 심지어 입을 막으려는 목적이었음)하려고 했다가 장웨이에게 거부당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약물을 사용함에 협력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는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큰소리쳤다. 가족이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은 “이곳에는 폐결핵에 걸린 사람이 많다. 석방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장웨이의 남동생과 올케는 짧은 반 시간의 면회 중에, 장웨이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고 두 팔은 움직이지 못하고 운동마저 못하며, 열 손톱이 흰색을 띤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열 손가락의 첫손가락 마디는 뜻밖에 검은 자색을 띠고 있었다. 가족이 가져간 물건을 경찰은 직접 장웨이에게 넘겨주지 않고, 가족에게 물건을 매점주인에게 주도록 하여 그가 다시 보내오게 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20위안의 전송비를 내게 했다.

2012년 7월, 장웨이는 비밀리에 선양 둥링감옥으로 이송되어, 감옥병원 전염병 독방에 불법 감금 당했다. 이때의 장웨이는 폐 부위에 심각한 구멍이 생겨 호흡이 어려웠으며, 매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몸이 극도로 허약했으나, 여전히 감옥 측에 의해 강제 ‘전향’ [강제로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합법적인 권리를 포기시킴을 말함]‘ 당했다. 가족이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제출하자, 감옥 측은 가족에게 신체검사 비용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가족이 천 위안의 신체검사 비용을 바쳤는데, 감옥 측은 오히려 근근이 40~50위안만 써서 엑스선 사진을 찍고는 대강대강 일을 끝냈다. 나머지 9백여 위안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2012년 9월, 10월 사이에 장웨이는 비밀리에 톄링 감옥병원으로 옮겨졌다. 그의 상황에 대하여 가족은 매우 걱정하고 있다.

랴오닝톄링감옥병원(遼寧鐵嶺監獄醫院):

교환대 024-78752025

랴오닝톄링감옥:

주소:랴오닝성톄링시인저우구링둥가(遼寧省鐵嶺市銀州區嶺東街) 우편번호 112000

전화 024-78754692

문장발표: 2013년 6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3/6/20/2755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