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산둥 린이시 파룬궁수련생 첸파쥔, 노동교양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산둥성(山東省) 린이시(臨沂市) 린강구(臨港區) 좡강진(壯崗鎮) 둥옌마촌(東演馬村) 파룬궁수련생 첸파쥔(錢法君, 45)은 노동교양소의 박해로 자립할 능력을 잃었다. 2012년 1월 산둥 제2남자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몸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어 결국 2013년 4월 17일 밤 9시경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 지역의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은 첸파쥔의 집에서 박해진상을 감추려 하고 있다.

노동교양소 83병원에서 첸파쥔의 오른쪽 발에 독극물을 주사해 중상을 입어 곪아서 고름이 흐르다

노동교양소 83병원에서 첸파쥔의 오른쪽 발에 독극물을 주사해 중상을 입어 곪아서 고름이 흐르다

첸파쥔은 린이시 린강구 좡강진(전 쥐난현(莒南縣) 옌마향(演馬鄉)) 사람으로 1969년 생이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성질이 불같다고 ‘이름’ 났는데, 독선적인 사람들도 감해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부터 온화하고 선량하게 변했다. 중공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자 첸파쥔은 정의와 양심을 견지하다 수차례 현지 중공 경찰에 납치 당해 장기간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으며, 수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과 고문학대를 당했다. 그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던 연로한 아버지도 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钱法君

첸파쥔(錢法君)

2011년 9월 23일, 집에서 한창 가을걷이에 바쁘던 첸파쥔은 현지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 불법 인원에 의해 린이시 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그는 늘 ‘610’의 악인 쑤웨이(蘇偉), 천쥔(陳軍) 등에게 가혹한 폭행과 강제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심지어 음식물 속에 독극물을 넣어 심각한 상해를 당했는데 이로 인해 걷지 못해 화장실에 갈 때도 다른 사람에게 부축을 받아야 했다.

2011년 10월 28일, 심각하게 상해를 당한 첸파쥔은 린이시 린강구 610두목 마중타오(馬宗濤), 린강의 한 인원, 좡강(壯崗) 파출소 소장 펑쉐중(彭學忠), 경찰 리훙썬(李洪森), 좡강 사당위원회 운전기사 지(汲) 씨에 의해 장추(章丘)에 위치한 산둥 제2남자노동교양소로 끌려갔다. 83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검사결과 첸파쥔의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규정에 따라 더는 노동교양소에 감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중타오 등 4명은 강제로 첸파쥔을 들어서 노동교양소 정원으로 데려갔다.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교도관 왕신장(王新江)은 노동교양인원에게 명령을 내려 첸파쥔을 들어 옮기고 7대대 1작업실의 저장실에 감금했다.

이것은 첸파쥔이 세 번째로 장추 노동교양소에 갇혀 박해를 당한 것이다. 첸파쥔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다 장기적으로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해 상처를 입었다. 매번 악독한 의사 장(張) (경찰번호:3731063)씨가 당직을 설 때 첸파쥔에게 호스를 꽂았다. 그는 첸파쥔을 악독하게 학대했다. 고의로 호스를 꽂은 다음 다시 아래로 잡아당겼다가 좌우로 돌리면서 첸파쥔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 번은 첸파쥔이 대중 앞에서 2003년에 장 씨가 자신을 박해한 악행을 폭로했다. 이에 장 씨는 이지를 잃고 미친 듯이 호스를 가져다가 첸파쥔의 코에서 안으로 사납게 찧으면서 꽂았다. 함께 갔던 일반 죄수는 당시 그의 이런 인간성이 파괴된 악행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일반 죄수는 10반으로 돌아와서 “그것은 호스를 꽂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첸파쥔의 코 안을 향해 사납게 찧고 사납게 꽂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첸파쥔이 악독한 교도소 의사 장 씨에게 고의 학대를 당해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괴로워했다. 그러나 일반 죄수는 또 감히 감옥 의사 앞에서 말을 더 하지 못했다.

첸파쥔은 학대로 늘 경련을 일으키며 침대에서 떨어졌고, 어떤 때에는 침대에 오줌을 눴다. 맨 마지막에 10반의 일반죄수 인원마저 첸파쥔의 상태가 확실히 위험한 것을 보아냈다. 10반의 일반죄수들은 첸파쥔이 10반 안에서 죽어 악독한 교도관이 자기들의 형기를 연장할까봐 두려웠다. 그들은 생산작업실에서 모두 주동적으로 대장과 대대장 뤄광룽(羅光榮)을 찾아 첸파쥔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을 반영했다. 한 번은 7대대 대장 리 씨가 그들의 반응을 듣고 오히려 작업실에서 “당신들은 뭐가 두려운가. 그가 죽으면 그를 밖으로 메어다가 버리라.”고 소란을 피웠다. 악독한 교도관은 이렇게 또 첸파쥔을 들어다가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했다. 첸파쥔은 호스를 뽑으면 모두 토해냈다. 호스를 꽂은 감옥의사(3731085)마저 왕신장과 7대대장은 효과가 없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맨 마지막에 노동교양소에서는 사경을 헤매는 첸파쥔을 ‘83’병원으로 끌고 가 이른바 ‘응급처지’를 실시한다며 독극물을 주입했다. 며칠 후에 첸파쥔은 말은 할 수 있었으나, 이때 첸파쥔을 지키던 일반 죄수 저우푸잔(周付展)은 악독한 교도관에게 첸파쥔이 응급처지를 받고 돌아와서 어떻게 변했고 목소리는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일러 바쳤다.

12월 21일 오전, 린강구 610 두목 마중타오는 운전기사 지 씨에게 운전하게 했다. 좡강진 간부 쉬헝제(徐恆傑), 한 청년 인원과 결탁해 첸파쥔의 셋째 누나도 데려와 83병원으로 가서 첸파쥔이 누운 채로 이불을 들어다 미니버스에 태워 집으로 갔다. 원래 건장했던 그가 박해로 그 모양이 된 것을 본 친척과 친구는 마음이 아파 모두 악인의 죄행을 질책했다.

첸파쥔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몸이 줄곧 좋지 않았고 장기간 걸을 수 없었다. 그 후에는 집안에서 지팡이를 짚었다. 저녁이 되면 온몸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고 걸음걸이도 휘청휘청했다. 노동교양소 측이 83병원에서 오른쪽 발 부위에 독극물을 주입한 탓에 심하게 곪아 고름이 흘렀다. 그 후,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아 먹고 마시고 대소변까지 전부 간호에 의지했으며, 침대에서 일어날 힘마저 잃었다.

문장발표: 2013년 4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4/21/2723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