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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페이 공업대학 퇴직한 교의 장추이핑, 박해로 세상을 떠남(사진)

[밍후이왕] 허페이(合肥) 공업대학 퇴직한 교의 장추이핑(蔣翠萍) 노인은, 중공(중국공산당) 사당(惡黨)의 끝없는 교란, 공갈·협박, 가택수색, 납치 중 결국 2013년 2월 2일 이른 아침 4시 30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였다.

蒋翠萍
장추이핑(蔣翠萍)

장추이핑 여사는 키가 크지 않고 온화하고 착하며 오랜 시간 혼자 살았다. 1993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근 20년 이래, ‘진선인(眞善忍)’ 대법에 따라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며 말없이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길 요구했다. 1999년 7.20 중공 사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뒤, 장추이핑 여사는 거듭 박해를 당했으나, 또 종래로 대법을 떠난 적이 없었다.

2012년 8월, 루양구(廬陽區) ‘610’ 조직 안칭로(安慶路) 파출소와 허베이 공업대학(허공대(合工大)로 약칭함) 보위처에서 집으로 찾아와 관심 갖는다는 명목으로 교란했는데, 몇 쌍의 교활한 눈은 곳곳을 수색했다. 9월 하순, 집에 갑자기 몇 명의 체격이 우람한 사나이가 뛰어들어, 안칭로 파출소의 사람이라고 자칭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장추이핑, 당신은 정더밍(鄭德明)을 알고 있지요?”라고 물었다. 장추이핑이 모른다고 말하자, 이들 악독한 경찰들은 큰 소리로 “흥, 솔직하지 않네요. 정더밍이 당신 이곳이 자료점이라고 말했고, 당신에게 컴퓨터가 있고 프린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소리 질렀다. 장추이핑은 “당신들은 내가 자료를 만드는 사람으로 보입니까?”라고 말했다.

중공(중국공산당) 악독한 경찰들은 다짜고짜로 큰 소리를 지르면서 “교활하게 변명하지 마세요. 갑시다, 우리와 함께 갑시다.”라고 말하면서 장추이핑을 연속 잡아당기면서 아래층으로 끌어 내려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안칭로 파출소로 납치했다. 일부 악독한 경찰은 장추이핑을 지키면서 심문을 했고, 일부 악독한 경찰은 차를 몰고 되돌아가 장추이핑의 집을 수색했다. 집안을 뒤집어 놓고 모든 대법서적, 자료, MP3, MP5, USB 등을 모조리 강탈해갔다. 그날 밤, 아들은 그제야 그의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노부인은 집으로 돌아와 특별히 처량한 감을 느꼈다. 중공의 강압하에 온종일 근심 걱정에 시달리며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천천히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10월에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폐암 가상으로 진단이 내려졌다. 수련생의 도움아래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바로 11월 중공 18기 인민대표대회가 지난 뒤, 또 한 무리의 악독한 경찰들은 갑자기 노인의 집에 들이닥쳤다. 바오허구(包河區) ‘610’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하공대 남구(南區) 학교 보위처의 경찰과 함께 협력해 10여 명이었다. 또 말끝마다 “당신은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당신의 집을 수색하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이 우리와 함께 다녀오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장추이핑 노인은 “나는 어디도 안가네. 이곳은 나의 집이요.”라고 말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면서 우르르 몰려와 장추이핑 노인을 강제로 아래층으로 들어다가 경찰차에 밀어 넣고는, 직접 허페이시 ‘610’ 에서 조직한 세뇌반으로 보냈다.

노인이 생전에 집에서 납치당한 조우를 자술하다

노인은 생전에 이번 집에서 납치당해 강제로 세뇌반으로 납치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2012년 11월 22일 오후 4시가 넘어서, 갑자기 두 명의 부녀자가 소리치기에 나는 집 문을 열어 보았다. 순식간에 7~8명의 사람이 내 집으로 뛰어들어 왔다. 2명의 여자가 그들은 하공대 남구 사회구역 주민위원회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 키가 큰 남자는 성이 왕(王, 그 후 그가 바오허구 강제세뇌반의 서기임을 알았음)씨였고, 다른 한 젊은 남자는 그가 정법위의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또 안칭로 파출소의 경찰과 우리 학교 북구(北區) 보위과의 사람도 있었다. 복도입구에도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 집에 들이닥친 것을 보고, 즉시 “이 몇 년간 당신들은 여러 차례나 우리 집에 뛰어들어 나를 박해했어요. 내가 진선인을 수련함은 잘못이 없으며,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어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때려도 되받아치지 않고, 욕을 해도 말대답하지 말라고 가르쳤어요. 당신들이 나에 대해 여러 차례 가택수색을 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어긴 것으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몸은 당신들에게 박해당해 몇 달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는데, 당신들이 아직도 나를 박해하러 왔나요?”라고 말했다.

그 정법위의 남자는 “이번에 당신의 집을 수색하지 않고, 당신이 남구 사회구역 주민위원회로 가서 대화하여 일을 똑똑히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두 시간이면 곧 돌아옵니다(실질적으로 나를 속여 세뇌반으로 보내 박해를 했음).”라고 말했다. 나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법위의 그 사람은 오히려 “안 됩니다. 꼭 가야 합니다. 잠시 후에 당신을 집으로 데려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그들은 곧 손을 써서 우리 집 열쇠를 가져가려 했다. 나는 급히 우리 집 열쇠를 잡고, 그들을 함께 문밖으로 이끌어 내고는 곧 문을 닫았다. 나는 복도의 통로 위에 누워서, 일이 있으면 이곳에서 말하라고 했다. 그들은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가지 않자, 그들 몇 명의 남녀는 곧 나를 안아 일으켜 손과 다리를 들어서 억지로 나를 아래층으로 이끌고 갔다. 차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나와서 나를 함께 차로 들고 갔다.

그들은 이렇게 나를 교란하고 납치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나에게 업무증, 구류증을 꺼내 보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집법 기관의 업무인원으로서, 그들은 어디에 조금이라도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의식이 있는가?!

차를 세뇌반까지 몰고 간 뒤, 또 나를 한 여관의 2층 방안으로 데려갔고, 2명의 바오허 사회구역위원회의 근무인원을 파견해 나를 감시했다. 나를 납치하는데 참여한 나머지 인원은 모두 음식점에 가서 술을 마구 마시며 미친 듯이 기뻐했다(그 후 그 왕 서기가 말하기를 그도 강제로 술을 먹고 취했다고 했음). 공업대학 남구의 단위에 돈이 있었던 이유로, 그들은 사람을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또 돈을 내어 세뇌반을 조직해 파룬궁수련생 박해를 지지했다. 나는 “내 몸이 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당신들은 여전히 나를 박해합니까?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때려도 되받아치지 않고, 욕을 해도 말대답하지 않는 노인을 말입니다. 당신들의 양심은 어디에 있나요?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말하자, 세뇌반의 왕 서기가 왔다. 나는 “당신들에게 나쁜 일을 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모두 온몸에 기운이 있어 하는데, 당신들은 알아야 하네. 사람의 마음에 일념이 생기면 천지는 다 알고 있는바, 선악에 인과응보가 없다면 건곤은 분명 불공평한 것이네.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가 있네.”라고 말했다. 감시 인원은 들은 뒤에 말했다. “당신은 주요하게 지난번에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해서 국가보안에게 붙잡혀 가택수색을 당했습니다(7월 23일). 지금은 세뇌반에 와서 4서(四書)를 쓰면 곧 당신을 석방해 집에 돌려 보낼 겁니다.” 나는 “노인의 목숨을 요구한다면 여기에 있지만, 4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네. 헌법에는 신양은 자유라고 규정되어 있기에, 내가 진선인을 믿는 것은 잘못이 없고 자료를 배포함도 잘못이 없네. 그 자료들을 당신들은 보았는가? 모두 좋은 사람으로 되도록 가르친 것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네.”라고 말했다. 세뇌반의 왕 서기는 들은 뒤에 “듣기로는 당신이 아주 완고하여 당신들 베이구에서는 모두 당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더군요. 당신들은 공산당을 반대하여, 2004년에 당신들을 ‘반동조직’으로 정했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파룬궁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요.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했기에, 파룬궁은 세상 사람에게 공산당은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리려 했네. 실질적으로 공산당은 자신을 타도하여 여러 차례 정치운동(삼반, 오반, 반우파, 반우경(反右傾), 문화대혁명, 64, 파룬궁을 박해)에서 8천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했네. 지금의 국민은 사람마다 다 욕을 하는데, 그들은 들은 뒤 말을 하지 않네.”

납치당한 그날 저녁에 가족은 내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아주 조급해했다. 아들딸들이 현지 파출소에 가서 묻자, 파출소의 경찰은 “우리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아들(세인)이 공업대학 북구 보위처로 가서 문의하자, 말로는 남구 보위처로 가서 문의하라고 했다. 이튿날 아들은 나를 납치하기 전에 억지로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고 입원하게 했던 병력서를 가지고 남구 보위처로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세뇌반으로 갔는데, 그제야 나를 석방해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장추이핑 노인은 이렇게 중공 불법인원이 끝없는 박해 속에서 공갈·협박과 강압 중에 지병이 도져, 불행하게 2013년 2월 2일 이른 아침 4시 30분에 세상을 떠났다.

관련 인원의 전화번호를 붙임:
허페이 공업대학 보위처(合肥工業大學保衛處): 커(柯)처장0551-2901153
샤오(肖)과장 2900031

문장발표: 2013년 2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11/2697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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