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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신민시 법원, 미술교사에 불법 법정심리 감행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2013년 1월 9일, 랴오닝(遼寧) 신민시(新民市) 법원은 선양시(瀋陽市) 슝스(雄獅) 미술학교 교사 차오양(曹陽)에 대해 불법 법정심리를 감행하였다. 이는 중공(중국공산당)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인원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 법을 어기며 선량한 사람을 박해한 죄악을 두드러지게 했다. 변호사가 이른바 고소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출하자 신민 공안은 의도적으로 거짓을 꾸며 모함했다. 그럼에도 자기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꾸며대지 못하자 법관은 황급히 휴정을 내리고 이후에 2차 재판을 열려고 준비했다.

검찰관 지싱중(計興中) 및 판사 왕멍(王萌)는 신민 경찰이 차오양의 집에서 강탈한 CD, ‘명혜주간’, 비닐 밀봉기 등 29종의 물품과 차오양이 서명한 것을 이른바 ‘증거’로 삼아 그들이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목적을 이루려고 망상했다.

베이징 변호사는 그들이 제공한 이른바 증거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신민 경찰이 먼저 가택수색을 한 뒤에 사람을 납치한 이 행위 자체에 바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게다가 15분 사이에 29종의 물품을 수색해 낸 동시에 수량 (그중 CD 300장, 소책자 150권 등 다른 수량의 물품을 포함)을 자세히 조사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그중에 거짓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제시한 증거에 신민 국가보안대대 부대장 양빙위안(王炳園)의 일부 서명이 있는데, 빙위안이라는 이름을 적을 때 한자를 다르게 적은 곳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빙자를 炳으로 쓴 것도 있고 丙으로 쓴 것이 있는가 하면, 위안 역시 圓, 園, 元이라고 다르게 쓴 곳이 있었다. 변호사는 왕빙위안이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인지, 무슨 의도가 있는지를 지적했다. 이것은 나쁜 짓을 저지른 자가 마음이 켕기고 자신의 죄행이 이후에 드러나 청산을 당할까 두려워함을 설명한다. 그들은 변호사가 지적한 반대 의견에 대해 합리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다.

법정심리 과정 중에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검찰장 신변에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한 사람이 직접 차오양에 대해 질문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것은 법률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재판을 열기 전에 공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법관은 교활하게 궤변을 하며 “이것은 검찰장의 비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판사’ 왕멍은 법정심리 과정 중에 일부 법률 근거가 없는 말로 파룬궁과 차오양을 공격했다. 또한, 차오양이 예전에 파룬궁을 수련해 9년의 판결을 당한 적이 있기에 이번에 그렇게 많은 수량을 조사해내지 못했을지라도 이 물건들만으로도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가소롭고 황당한 말인가? CD 내용도 모르면서, CD가 있는지 혹은 얼마나 있는지 혹은 다른 물품 예컨대 컴퓨터, 비닐 밀봉기, 프린터 등을 처벌 증거로 삼는 이 자체가 바로 법을 어긴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알면서도 법을 어긴 것이다. 차오양이 예전에 9년 판결을 당한 것에 대해 말하자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는데 억울한 재판을 당한 것이다. 이번에 법률적 근거도 없이 거듭 좋은 사람을 모함함은 더욱 뻔뻔스러운 것으로서 거듭 죄를 지은 것이다.

차오양은 법정에서 자신의 서명에 대해, 말한 대로 하기만 하면 매우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던 국가보안의 말에 속아 한때 사리분별을 못하고 서명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집안의 CD도 그렇게 많지 않고 겨우 10여 장밖에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중에 일부는 또 자녀의 교육용 CD이고, 또 자신이 보는 일부 ‘명혜주간’이 있는데, 수량이 실제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차오양(1977년 출생)은 랴오닝성 신민시에 거주하며, 1998년에 다롄(大連) 외국어대학에 합격했다. 부친 차오광푸(曹廣富)와 모친 자오민(趙敏)은 모두 병원에서 근무했다. 일가족 세 식구는 모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그들은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가정이 화목했고, 동료와 친척,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차오광푸와 자오민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근무를 했으며, 진심으로 모든 환자를 대해 동료와 환자에게 깊은 사랑과 호평을 받았다. 차오양은 성실하게 사람을 대하며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했는데, 연장자들은 모두 보기 드문 좋은 청년이라며 그를 칭찬했다.

2001년 5월 2일, 선양 톄시(鐵西) 칭궁(西輕) 파출소에서 차 두 대를 몰고 가 신민에서 차오양 일가족 세 식구를 납치한 동시에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해 강탈했다. 부친 차오광푸와 모친 자오민도 동시에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차오양은 톄시구 구치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2002년 7월에 7년의 불법 판결을 당해 랴오양(遼陽) 덩타화쯔(燈塔鏵子) 감옥에 감금당했다. 당시 핍박에 못 이겨 노예노동 생산에 매일 10여 시간씩 종사했다. 그 기간에 또 다베이(大北) 감옥에 2개월 넘게 감금당했다. 차오양은 지니고 들어갔던 사부님의 설법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가 발각되어 영창에 6개월 동안 감금당했다. 1평방미터의 작은 방안에 갇힌 채 수갑과 족쇄를 3개월 넘게 찼으며, 또 형기가 3년이나 연장되었다. 그 후에 그는 다롄 난관링(南關嶺) 감옥으로 이송, 감금당했다.

2010년 10월,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차오양은 후이리치(惠麗綦)와 서로 사랑에 빠졌다. 결혼한 뒤에 딸 톈신(天馨)을 낳았는데, 영리하고 귀여운 딸은 전 가족의 보배였다. 2012년 8월 28일, 9개월이 된 톈신이 막 옹알옹알하며 아빠를 부를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때마침 차오양이 또 납치돼 구치소에 불법으로 갇히는 바람에 부녀는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친구와 동료는 “왜 선량하고 정직한 이가 믿음 때문에 거듭 당국에 박해를 당하는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라고 호칭하는 정부가 왜 이토록 인민에게 상해를 가하며 함부로 자신이 제정한 법률을 짓밟느냐.”라며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역주 : 박해에 관련된 기관과 책임자는 원문을 참조하기 바람.

문장발표: 2013년 1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2676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