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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시 쉬시왕, ‘법제교육반’에서 독극물 주사로 살해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우한시(武漢市) 신저우구(新洲區) 장애인 쉬시왕(徐喜望)은 2011년 3월 18일 이른 아침 5시쯤, 싼뎬가(三店街) 사회치안종합사무실 주임 청사오안(程紹安)과 그가 데려 온 산덴가 사회치안종합사무실, 파출소(차량 두 대 동원) 인원에게 납치돼 신저우구 류지(劉集) 세뇌반(이른바 ‘법제교육반’)에서 박해를 당했다. 쉬시왕은 혹독한 구타, 독극물을 주사당해 당시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게다가 늘 정신이 흐리멍덩해져 집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익숙한 사람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2012년 11월 9일, 쉬시왕은 쇠약해진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겨우 53세였다.

쉬시왕은 우한시 신저우구 싼뎬구가 류시촌(柳溪村)에 거주했다. 어릴 적부터 불구였던 왼쪽 팔이 약하고 작았다.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뒤부터 심신이 건강해져 많은 이로움을 얻었다. 그는 파룬궁을 연마한 뒤로는 자기 힘으로 생활했고, 신문을 팔아 사회의 부담을 덜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뒤, 쉬시왕은 단호히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적어도 두 차례나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고, 두 차례 세뇌반으로 납치당해 무수한 협박을 당했다.

2011년 3월 18일 이른 아침 5시 경, 쉬시왕과 그의 이웃들은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놀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알고 보니 진 파출소, 사회치안종합사무실 및 현지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임)’ 인원이 쉬시왕의 집 창문을 사납게 부수고 광적으로 걷어차고 있었다. 담이 작은 이웃들은 놀라서 이불로 머리를 덮었고, 담이 큰 사람은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우람한 체격의 사나이 10여 명이 쉬시왕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 다음 “사람 살려요.” 하는 외침이 들리더니 뒤이어 쉬시왕을 힘껏 밀치며 경찰차에 태웠다. 집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류지는 이른바 ‘법제교육반’인데, 실질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 세뇌박해를 실시하는 사설 감옥으로서 통상적으로 세뇌반이라고 불렀다. 안에 납치당한 모든 파룬궁수련생은 몇 명의 이른바 ‘방교(幫教-보도 교육)’가 직접 단속하며 출입을 제한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미행하고 감시했다. 화장실, 식사, 잠까지 포함해서 ‘방교’가 감시했는데, 인신의 자유가 조금도 없었다. 감옥의 일반 죄수들보다 더 심한 감시를 당했다. 법 공부와 연공, 파룬궁수련생 사이의 교류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강제로 사부님과 파룬따파를 모독한 녹화를 보게 했고 강제로 모독 숙제와 ‘연공하지 않는 보증서’를 쓰도록 했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훈계를 듣고 욕을 먹고 구타당했으며 심지어 고문까지 당했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욕을 먹고 구타당했으며 고문당했다. 이곳에서는 각종 수단으로 박해를 감행했는데, 예컨대 혹독한 구타, 나무 안기, 고문학대, 잠 못 자게 하기, 며칠 동안 차바퀴식의 ‘전향’세뇌를 진행했다.

세뇌반에서는 두 사람을 바오자 겸 졸개로 삼아 쉬시왕을 감시하도록 배치했다. 이른바 ‘전향’의 표준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늘 쉬시왕을 무차별 폭행하고, 심지어 신발 바닥으로 머리를 거칠게 쳤는데, 쉬시왕은 두 눈이 번쩍거렸다.

세뇌반에서는 신체검사 명목으로 쉬시왕에게 독극물을 주사했다. 팔꿈치의 정맥에 주사를 두 대 맞은 뒤, 두뇌가 흐리멍덩하고 사유가 중지되며 기억력을 상실한 상태가 나타났다. 게다가 걸음걸이도 이상해졌고, 손발을 떨면서 몸을 휘청거렸다. 쉬시왕에게 주사를 놓은 사람은 신저우구 인민병원 30대 남성이다.

쉬시왕은 3월 29일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감히 집에 있지 못했다. 그는 혼자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걸어갔는데, 익숙한 사람마저 알아보지 못했으며 정신이상의 참혹한 상황이 나타났다. 결국 2012년 11월 9일, 쉬시왕은 쇠약해진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겨우 53세였다.

문장발표: 2012년 11월 2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5/2658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