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 보도) 지린성(吉林省) 이퉁(伊通) 만족자치현(滿族自治縣) 파룬궁수련생 천징루(陳敬儒) 여사는 중공(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이 1999년 7.20부터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잔악무도한 박해를 당했다. 두 차례의 불법 노교와 한 차례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그리고 187일 동안(기간에 음식물주입을 당했음)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한 뒤, 핍박에 못 이겨 8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그 후 중공 인원의 끊임없는 교란과 공갈, 협박 하에 결국 2012년 10월 24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49세였다.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長春黑嘴子勞教所)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천징루 여사는 믿음이 확고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 교도관 웨쥔(岳君), 리훙(李紅), 시구이룽(席桂榮), 왕리화(王麗華) 등의 사람에게 여러 차례 오랫동안 혹독한 구타와 전기충격을 당했다. 그녀는 전기충격을 당해 전신 경련을 일으켰고, 목은 충격으로 머리와 마찬가지로 굵어졌으며 온통 물집이 생겼다. 방안에는 살과 머리카락이 탄 냄새가 났다.
천징루 여사는 원래 이퉁현 양식국 재무과 회계로, 1998년에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열심히 근무하고 책임졌다. 사람됨이 착하고 너그러우며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했기에, 양식계통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린성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야만적인 전기고문으로 심한 손상을 입다
1999년 7.20 이후,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의 잔혹한 파룬궁 박해 시작이래, 천징루 여사는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인민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몸에 ‘만언서(萬言書)’를 지니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그녀는 순선(純善)한 마음으로 국가의 민원국에 파룬궁 사실을 반영했으나, 이 때문에 베이징 공안에게 구류 당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30여 일 동안 단식으로 항의한 뒤에 풀려 돌아왔다. 1999년 10월 25일 밤, 이퉁현 공안국 정보과에서 천씨를 부모집에서 불법으로 납치했으며, 동시에 1999년 11월 15일에 지린성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로 보냈다. 매일 노동교양소에서 핍박에 못 이겨 15~16시간의 고된 노역을 했으며, 언제 어디서나 악독한 경찰 교도관과 다른 유형의 노교인원의 모욕, 욕설, 무차별 폭력을 당했다. 천징루 여사는 믿음을 견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러 차례의 혹독한 구타를 당했고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했다. 세상을 뜨기 전까지 머리는 여전히 여러 곳의 모낭이 전기충격을 당해 머리카락이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말, 천씨는 경문을 건네주었다는 이유로, 3대대의 악독한 경찰 부대대장 시구이룽(席桂榮)과 악독한 경찰 교도관 진리화(金麗華)는 천씨를 교도관실로 불렀다. 그 두 사람은 각각 하나씩 강압전기봉을 들고, 한편으로는 천씨의 얼굴 위를 향해 충격을 가하고 한편으로는 경문 출처를 캐물었다. 천씨는 얼굴, 목이 모두 전기충격을 당해 붉게 부어오르고 크고 많은 물집이 생겼다.
2000년 8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천씨가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악독한 경찰은 천씨를 6대대 1소대로 보냈다. 그곳에 도착한 뒤, 그녀들은 먼저 한 무리 또 한 무리의 사오한 자(邪悟者)를 이용해 공격했으나 천씨는 단호히 읽지 않았다. 악독한 경찰은 파상 공격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함을 보고 곧 방식을 바꾸었다. 세 번째 날 오전, 천씨는 교도관실로 불려 갔다. 관리과 과장 웨쥔과 6대대장 리훙이 방안에 있었는데, 사무실 책상위에는 두 개의 강압 전기봉을 배열해 놓고 있었다. 웨쥔과 리훙은 곧 광적으로 천씨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천씨는 충격으로 뛰어올랐고 머리카락은 다수가 탔으며 얼굴 위는 붉게 부어오르는 동시에 큰 물집이 생겨났다. 방안은 머리칼과 살이 탄 냄새가 코를 찔러서 천씨는 줄곧 목이 탈 지경이었다. 웨쥔은 또 전기봉으로 천씨의 입술을 충격했다. 천씨의 입술은 전기 충격을 당해 아주 많이 부어올라 윗입술은 거의 코끝에 닿았고, 입술은 전기 충격을 당해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 후 리훙은 끊임없이 충격을 가했는데, 천씨의 팔, 얼굴, 목 여러 곳은 모두 전기충격을 당했다. 대략 2시간 동안 충격을 가한 후, 웨쥔은 나가서 6대대의 4~5명 여 교도관을 불러왔다. 한 사람이 가볍게 한 번 발길질을 한 외에, 나머지는 일제히 천씨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어떤 이는 결사적으로 천씨의 귀 뺨을 쳤고, 어떤 이는 발로 힘껏 천씨를 걷어찼다. 웨쥔은 더욱 광적으로, 통제력을 잃고 귀 뺨을 때렸으며, 주먹으로 혹독하게 천씨의 가슴을 쳤다. 이어서 그녀는 또 천씨의 옷을 붙잡고 기를 쓰며 천씨의 머리를 벽에 부딪혔다.
천 씨에 대해 두 차례 전기고문 박해를 감행한 뒤, 악독한 경찰들은 또 천씨 가족이 면회함을 허락하지 않기, 천씨가 목욕을 함을 허락하지 않기, 천씨가 먹는 용품을 주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등 각 방면의 박해를 하였다. 2000년 9~10월 사이에, 시구이룽 부대대장과 대오를 인솔한 교도관 짱리(臧麗)는 천 씨에게 체벌을 가해, 매일 14~15시간을 쭈그려 앉게 했다. 게다가 다른 교도관에게 넌지시 감독하게 시켜, 조금만 움직이면 곧 욕설을 퍼부었다. 잠깐 쭈그리고 나면 곧 두 다리가 시큰거리고 아팠으며 줄곧 뜨거운 땀방울이 돋아났다. 시간이 길어지면 더욱 참기 어려웠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갈 때마저 감히 걷지 못했고, 또 정상적으로 걷는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천 씨에게 이렇게 40여 일 동안 체벌을 가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천씨에게 정원으로 가서 일을 시키고 점심에 돌아오게 했다. 다른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잠깐 휴식할 수 있었으나, 사오한 사람 위(於)모는 천씨가 침대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여전히 쭈그려 앉도록 천씨를 핍박했다. 며칠이 지난 뒤, 그녀들은 이 수법도 효과를 보지 못함을 보고서야 흐지부지 그만두었다.
구타해도 소용없고,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감행해도 소용없어지자, 악독한 경찰은 2000년 11월 17일에 또 천씨에 대해 더욱 잔혹하게 세 번째 전기고문 박해를 감행했다. 그날 오전 9시쯤, 왕리화 교도원은 천씨를 교도관실로 불렀다. 왕리화와 시구이룽은 위에는 검은색 양모 셔츠를 입고, 아래는 남색 경찰용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시구이룽은 교도관실에서 재봉일을 하는 주리제(朱立傑, 이른바 전향한 파룬궁수련생)를 나가게 했다. 시구이룽은 천씨에게 감옥규정을 외우게 했으나, 천씨는 외우지 못했다. 시구이룽과 왕리화는 각각 강압 전기봉 하나씩을 들고 천씨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천씨의 얼굴, 머리, 목, 어깨와 등은 모두 광적인 전기충격을 당했다. 천씨는 전기봉에 충격을 당해 아주 높이 튕겨 올라 슬리퍼마저 아주 멀리 떨어졌다. 천씨의 손이 본능으로 밖을 향해 전기봉을 밀자, 그녀들 두 사람은 곧 천씨의 손을 뒤로 결박하여 몸 뒤에 채워놓았다. 본래는 문어귀에서 천씨에게 충격을 가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천씨는 갑자기 안에 있는 침대 근처에까지 퉁겨졌다. 시구이룽은 곧 밖으로 천씨를 잡아당기며 “좀 밖으로 나와, 피를 뿜어내지 마라, 우리 침대를 더럽히겠다.”라고 말했다. 전기봉은 팍팍 소리를 냈고, 모발과 살이 탄 혼합냄새가 교도관실에 가득 찼다. 천씨는 사람 전체가 구타를 당해 자맥질하는 잉어처럼 굽어졌다. 이번의 광적인 전기충격은 2시간 넘게 지속되었다. 천씨의 머리칼은 대부분이 탔고, 두피는 전기충격을 당해 많고 큰 물집이 생겨났으며, 얼굴과 목은 심각하게 붉게 부어올라 변형되었다. 그리고 얼굴과 목 등마저 큰 물집이 생겨났고, 목 앞면은 전기충격으로 기장쌀 만한 고름으로 된 반점이 생겨났으며, 등은 충격을 당해 검은 색을 띠었고 전체 윗몸은 부어오르고 변형되었다.
대략 일주일이 지나서야, 천씨의 부기가 가라앉았다. 그제야 천씨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등의 극렬한 아픔은 한 달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얼굴과 목 위의 물집 딱지가 떨어진 뒤, 천 씨의 얼굴과 목의 상처흔적은 오랜 시간 동안 여전히 남아있었고, 두피 위의 물집은 딱지가 앉은 뒤 많은 머리칼이 뽑히게 되었다. 그 후 천 씨는 2001년 봄부터 대면적으로 탈모 되기 시작해, 원래의 머리칼은 잇따라 모두 빠졌다(그 후, 머리칼이 전부 자라났음).
그녀가 시종 자신의 믿음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1년의 형기를 연장 당했다. 이런 압력하에서, 그녀의 남편은 감당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이혼했다. 2001년 10월에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뒤, 천징루 여사는 즉시 대법 실증함에 뛰어들어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했으며,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을 도와 바른길에 들어서게 했다. 그러나 돌아온 지 약 2개월 만에, 또 현지 공안국에 의해 불법 납치를 당해 두 번째로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그녀가 시종 믿음을 견지해 사악에 타협하지 않고, 또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들어선 노동교양소의 사람을 적극 도와줬다는 이유로, 또 40일 동안 기한을 연장한 박해를 당했다.
거듭 된 납치박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천징루 여사가 2003년 2월 4일에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뒤, 공산당을 도와 잔악한 짓을 하는 공안국은 그녀를 중점 미행 대상으로 기록했다. 동시에 12월 4일 아침, 이퉁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저양가(正陽街)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강제로 천징루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집에서 들고 나와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한 뒤, 강제로 그녀를 구치소에 보냈다. 악독한 경찰은 그녀에게 판결을 내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녀는 줄곧 단식으로 항의했다.
이퉁현 구치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 천징루 여사는 심각하게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소장 양중청(楊忠誠), 쑨춘광(孫春光)이 지휘하고 뤼리(呂力), 왕쉐(王雪) 등의 사람은 부녀들이 자궁을 받치는 철기를 그녀의 입안에 꽂아 넣어 치아는 비틀려서 몇 대나 손상을 입었다. 주입한 묽은 음식물 안에 난로 재, 머리카락과 땅콩 알맹이를 섞어 넣었다. 뤼리는 또 일부러 묽은 음식물을 그녀의 머리 위, 옷 위에 뿌려 놓으며 저질스러운 말을 했다. 매일 음식물 주입을 당한 뒤, 천씨는 가슴이 아프고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187일 동안의 잔악무도한 음식물주입을 겪고, 몇 번이나 생명의 위험이 나타났던 천징루 여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맨 마지막에 구치소를 떠날 때 몸무게는 원래의 75kg에서 25kg쯤으로 줄어들었다. 헤이쭈이쯔 감옥으로 보냈을 때, 성 공안병원에서 심각한 폐결핵이란 진단을 내리자 헤이쭈이쯔 감옥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2004년 6월 10일 이른바 병보석을 당했고, 가족이 업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6개월의 몸조리를 거쳐 몸이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도 않았으나, 중공 사당인원은 또 몸 검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거듭 납치하려고 시도했다. 천징루는 이로부터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가족은 예전에 장시기 교란, 공갈, 협박과 감시를 당한 적이 있다.
천징루 여사는 홀몸으로 8년 동안 밖으로 떠돌아다녔다. 그녀는 생계도 유지해야 했고, 또 온당한 거주지도 찾아야 했다. 사당에게 지명수배를 당했기에 성과 이름을 감추었다. 가까운 시기 중공 18기 인민대표대회 때, 불법 요원은 또 대규모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공포를 만들었다. 13년의 고난을 겪은 천징루 여사는 몸에 심각한 병 상태가 나타났고, 결국 2012년 10월 24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2년 11월 1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7/2655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