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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칭 장빈 재차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2개월 남짓 거듭 박해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2012년 8월 27일 오후, 다칭 파룬궁수련생 장빈은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는 일이 있다며 외출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에도 출근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그를 찾았지만 전화도 받지 않았다. 3일 후에 가족이 직장에 찾아가서야 장빈이 직장에서 ‘610’의 결탁에 의해 이춘세뇌반으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해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더욱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장빈은 10년 동안 줄곧 박해를 당했다. 아들 장자루이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유랑생활을 했고, 장빈이 불법 감금을 당했을 때 탁아소, 이모집, 친구 집에 맡겨졌다. 공부할 나이가 되었지만 장빈이 정상적으로 아이를 보살필 수 없었기 때문에 자루이는 늦게 학교에 입학했고 의식주마저 해결하기가 아주 어려워 매달 할아버지가 2백 여 위안(약 3만5천원)의 돈으로 손자를 키웠다. 지금 자루이는 17세로 호리호리하게 키가 크고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는 현재 학업을 그만두고 외지에서 돈을 벌고 있다.

현재 장빈은 이춘세뇌반으로 납치되어 박해를 당하고 있다. 전 직장의 서기 옌더창과 결탁한 ‘610’ 인원은 가족에게 함께 강제세뇌를 하러 가라고 했다. 그리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갈까봐 두려워서 18기 인민대표대회가 끝나면 석방한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선량한 가족들은 장빈이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라나서 아무 일도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고려한 적이 없으나 파룬궁을 수련한 뒤에 환골탈태 되었다고 말했다. 한번은 장빈이 외지에 거주하는 늙은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그리워요. 아버지를 뵈러 갈게요.”라고 말했다. 부친은 눈물을 흘렸고 손에 든 전화를 한참 후에야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분개하여 “직장에서는 돈을 내어 전향을 시키면서도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장빈의 생활이 어려운데도 상관하지 않나요? 장빈이 파룬궁이 좋아서 연마하는데 당신들이 어떻게 그를 포기시킬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장빈은 원래 다칭 석유화학회사 화학공업3공장 폴리스티렌 작업실의 직원으로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고 술주정했으며 생활이 퇴폐했고 체질이 아주 허약했다. 1997년 11월에 그는 아내와 이혼했다. 당시 법원은 18개월이 되는 아들 장자루이의 양육권을 장빈에게 주었다. 장빈이 1998년 초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뒤 심신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불량한 기호를 버리고 아들 장자루이를 열심히 양육했다.

1999년 7월, 대법이 박해를 당한 뒤로 심신에 대법의 이로움을 얻은 장빈은 각종 압력에서도 수련을 견지했고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 이 때문에 현지 파출소에 의해 불법으로 룽펑구치소에 약 3개월 동안 감금당한 뒤 다칭노동교양소로 보내져 1년 동안 박해를 당했다. 2000년 말, 장빈이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다칭 석유화학 총공장에서는 그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노동합동을 유상해제 하도록 핍박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를 해고 하겠다고 했다. 장빈의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대신 노동합동을 해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1년, 장빈은 석방된 뒤에 아이와 함께 생활했지만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현지 파출소 경찰의 불법 교란이 끊이지 않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문을 부수었다. 장빈은 핍박에 못 이겨 겨우 5세인 아들을 데리고 유랑하며 도처를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생활을 했다.

2004년 12월, 유랑생활을 하던 장빈이 수련생의 거처에 갔다가 잠복해 있던 다칭시 랑후로 공안분국 인랑파출소의 경찰에게 납치되어 싸구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싸구구치소에서 장빈은 56일 동안 단식으로 불법 감금에 항의하다가 야만적인 음식물주입과 56일 동안 쇠의자에 앉히기 고문을 당했다. 사경을 헤매던 그는 또 불법으로 다칭노동교양소에 보내졌다.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여 다칭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그러나 다칭시 ‘610’악도는 다칭노동교양소에 압력을 가해 “당신들은 장빈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어 걷지도 못하는 장빈은 다른 사람에게 업혀서 다칭노동교양소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2005년 3월 15일, 악경은 낭아수갑으로 장빈을 손을 뒤로 채워서 쑤이화노동교양소로 납치해 3년 동안 박해를 가했다.

2007년 말, 장빈이 직장으로 돌아와 생활비를 요구하자(노동합동을 유상해제한 직원은 출근하지 않아도 최저 생활비를 지불해 줌), 책임자는 장빈에게 매일 직장에 가서 도착보고를 하라고 괴롭혔다(실질은 그를 감시하는 것임). 그 후 장빈이 가지 않자 최저생활보장금도 주지 않고 철저히 장빈 부자의 수입원을 끊어놓았다.

2008년 5월에 베이징 올림픽을 열기 전 장빈은 또 원래 직장에서 모함당해 다칭시 룽펑구치로에 3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했다. 몸이 허약하여 다칭시 제5병원에 보내져 족쇄에 채워진 채 링거를 맞았다.

장빈은 핍박에 못 이겨 원래 직장을 떠난 뒤 한 민간기업에서 근무했다. 파룬따파의 법리인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과 바이어의 호평을 얻었고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진선인’은 전 세계, 전 인류에게 평화로움, 상화함과 복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전 인류가 ‘진선인’을 접수하여 따를 수 있기를 희망하며, 또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진심으로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하루 빨리 깨닫고 악보의 비참한 결과를 피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1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2648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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