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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빙촨현 법원 불법재판 감행, 검찰관 흑백을 전도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윈난 보도) 윈난성(雲南省) 빙촨현(賓川縣) 진뉴진(金牛鎮) 진톈허우(金殿後) 바톈촌(壩田村)의 왕위린(王玉林)은 올해 3월에 빙촨현 공안국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 강탈, 납치, 모함을 당했다. 10월 12일 아침, 빙촨현 법원은 왕위린에 대해 불법으로 개정하여 심리를 감행했다. 가족은 광둥(廣東)과 베이징의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해 그를 위해 무죄변호를 했으며 무죄 석방을 요구했다.

10월 12일 아침 8시가 넘어서, 윈난성 빙촨현 법원 문어귀에서 왕위린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이미 기다리고 있었는데, 8시 반에 곧 왕위린에 대해 개정해 심리를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장에 간 친척과 친구는 모두 40명쯤 되는데, 모두 법정에 들어가서 방청했다.

검찰관은 왕위린이 ‘사교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 (중공은 진정한 사교임)라고 모함했다. 이른바 ‘죄증’은, 왕위린의 집에서 션윈 CD, 예언과 인생이란 CD를 수색해 냈다며 그가 집에서 CD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선포하기 전, 현지 진 정부의 조교(幫教)요원이 왕위린의 집에 가서 그에 대해 조교를 감행했는데, 그의 CD 및 CD를 굽는 설비를 본 것으로 그를 신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조교 인원’은 현장에 도착해 증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위린 집의 CD를 놓은 방안의 열쇠는 왕위린 부부한테만 있기에, 다른 사람은 근본적으로 그 방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또 이 CD 및 CD를 굽는 설비를 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런 변명은 완전히 모함이다.

검찰관의 이런 변명에 겨냥해 변호사는 이치에 맞게, 예리하고도 엄격하게 지적했다: 1. 이른바 ‘증거’는 근본적으로 왕위린을 고발하는 죄명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그것을 증거로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만약 기어이 이것으로 판결하려 한다면, 법정에서 반드시 실물을 꺼내놓고, 또 CD 내용을 풀어놓고 그 내용이 도대체 어느 조례의 법률을 위반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2. 중국의 현행 법률에서 파룬궁이 사교임을 인정한 것이 한 조례도 없다. 이 때문에 형법 3백조는 성립되지 않는다. 3. 재판하기 전, 변호사는 줄곧 왕위린을 만나지 못했다. 공안, 검찰원에서부터 법원에 이르기까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백방으로 변호사가 당사자를 면회함을 저지했다. 동시에 왕위린에 대해 위협, 공갈 협박을 감행하여 그에게 죄를 승인하도록 핍박했다. 4. 빙촨현(賓川縣)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은 왕위린의 집에 가서 가택수색을 함에 모두 경찰복을 입지 않고 사복차림을 했는데, 이런 행위는 법을 어긴 것이다. 5. 왕위린에 대해 체포, 감금, 가택수색 및 심판한 전체 과정은 모두 법을 어긴 것이다.

검찰관은 법정에서 고의적으로 왕위린을 오도(误导)해 그로 하여금 주관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범죄의 불법 심판을 위해 합리한 허울을 썼다. 법률은 사실에 따라야 하는바, 왕위린 본인의 태도가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판정하는 의거로 삼지 못한다. 만약 법원에서 당사자 본인의 태도로 유죄한지 아니면 무죄한지를 판정한다면, 그럼 또 하필 법원에서 개정해 심리할 필요가 있는가? 하필 머리를 짜내 생각해 증거를 찾을 필요가 있는가? 중국에서 현재 여전히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자신이 죄가 있음을 승인하지 않고, 모두 자신은 무죄하다고 말하는데, 무엇 때문에 어느 한 법원에서도 파룬궁수련생을 무죄로 석방하지 않는가? 이 때문에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세뇌하고 위협하며 공갈 협박을 함으로 세인들을 속이려고 시도하고, 자신의 불법 행위의 합리화함을 망상함은, 더욱 사악한 거동이다.

왕위린을 위해 무죄변호한 변호사는 이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종 총결을 지을 때 법원에서 왕위린을 무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장내의 가족 및 친척과 친구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정의로운 목소리는 법원 안팎에 울려 퍼졌다.

이번 불법 개정에는 모두 3명 법관이 있었다. 그중의 한 법관은 스핀리(史品利)라고 불렀고 한 명은 서기원이다. 그리고 흑백을 전도하며, ‘610’ 경찰을 도와 억울한 사건을 만든 이른바 ‘검찰관’ 2명이 있었다. 개정한 뒤에 한 사복경찰은 재판 현장에서 줄곧 녹화기를 들고 녹화를 찍었다. 모든 현장의 친척과 친구들에 대해서도 녹화를 찍다가 친척과 친구에게 저지당해 다시 감히 녹화를 찍지 못했다. 불법 개정은 모두 3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11시가 넘어 개정이 끝난 뒤, 친척과 친구가 법정에서 나온 뒤에 또 어떤 사복경찰은 그들에 대해 휴대폰으로 녹화를 찍다가 거듭 가족들에게 저지당했다.

왕위린은 빙촨현 진뉴진 진톈허우 바톈촌 사람이다. 그의 부친은 뇌혈전에 걸렸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뒤에 병이 아주 빨리 호전되었다. 대략 보름 동안 병증이 완전히 소실되어, 50kg 되는 화학비료도 그는 어깨에 메고 산에 오르고 밭으로 나가도 힘들지 않아 했다. 이 소식이 즉시 주변에 전해지자, 한 시기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 수가 급증했다. 1998년의 노인절에 촌에서는 또 부친을 청해 직접 강단에 올라 공법 시범을 보여주도록 하여 다들 모두 와서 배우게 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을 박해했다. 2001년에 설을 쇠기 전, 당시에 빙촨현 공안국 정보과 과장을 맡은 샹융샹(向永祥)은 경찰을 거느리고 왕위린의 집에 가서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했고, 왕위린을 구치소로 납치해 보름 동안 불법 감금했다. 구치소에서 나온 뒤에 또 그를 또 일 개월 동안 세뇌반에 보냈다.

올해 3월 20일 오전 10시가 넘어서, 왕위린의 모친 장쥐잉(張菊英)은 혼자 집에 있었는데, 이때 두 대의 경찰차로 대략 6~7명 경찰이 집안에 들이닥쳤다. 어떤 경찰은 경찰복을 입었고, 어떤 경찰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왕위린의 남동생 왕레이원(王雷文)과 제수는 밭에서 일하다가, 모친의 전화를 받았다. 모친은 전화에서 말투가 매우 조급해하며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옆에 있던 경찰은 모친을 위협해 그녀에게 집에 경찰이 왔다는 말을 못하게 했다.

왕레이원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 6~7명 경찰이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함을 보고 현장에서 경찰의 위법행위를 제지했으며, 그들이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함을 지적했다. 경찰은 수색영장을 꺼내어 그에게 한 번 보여주며, 그에게 윗면에 서명하도록 하고는 곧 수색영장을 가져갔다. 이번 불법 가택수색에 참여한 경찰은 빙촨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장 양위(楊瑜), 전 빙촨현 공안국 정보과 과장 샹융샹(向永祥)이다. 이 무리 사람은 왕레이원의 집에서 물건을 다 강탈한 뒤에 또 본 촌에 거주한 왕위린의 집에 가서 문을 부수고 강탈을 감행했다. 물건을 강탈한 뒤에 아무런 증거문건 증명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왕위린과 허자펑(何家鳳) 부부를 차위로 납치했으며, 또 왕레이원의 집에 가서 그의 모친도 차에 오르도록 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을 빙촨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납치했으며, 또 왕레이원에게 또 자신의 차를 몰고 그들을 따라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가도록 했다.

불법 경찰은 일가족 네 사람을 따로 불법 심문을 감행했다. 왕레이원과 모친, 형수가 국가보안대대에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저녁 10시가 넘었다. 그러나 형 왕위린은 오히려 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떠나갈 때,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양위는 왕레이원에게 파룬궁수련생과 접촉하지 말고, 가택수색 및 그의 형 왕위린을 납치한 일을 폭로하지 말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형에 대해 불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샹융샹은 또 왕위린이 판결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왕레이원이 국가보안대대로 가서 대장 양웨이에게 왕위린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 때문에 집에 돌려보내지 않는지를 문의했다. 양웨이는 그날 저녁에 가족이 떠난 뒤, 왕위린은 빙촨현 구치소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왕위린의 가족은 각종 경로를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여 정당한 법률 경로를 통해 왕위린을 구조했다. 5월 3일, 변호사가 빙촨현 국가보안대대에 가서 왕위린을 면회함을 요구하자, 국가보안대대의 경찰은 변호사에게 속여 말했다. “왕위린은 며칠만 지나면 곧 석방될 것입니다, 면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를 속여서 왕위린을 위해 병보석을 신청한 자료 한 부를 쓰게 했으나, 변호사가 왕위린은 면회함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왕위린은 줄곧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6월 16일, 빙촨현 국가보안대대의 3명 경찰은 왕위린의 집에 가서 그의 아내 허자펑(何家鳳)에 게 말했다. “사람을 석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한 대로 하지 않습니다!”

6월 25일, 변호사는 다시 한 번 빙촨 검찰원에 가서 왕위린의 사건을 문의하는 동시에 면회를 요구했다. 검찰원에서는, 왕위린의 사건은 이미 증거가 부족한 이유로 또 빙촨 공안국으로 되돌려 보내졌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빙촨 공안국에 다그쳐가자, 공안국 및 국가보안은 여전히 백방으로 가로막으며 변호사에게 왕위린을 면회시키지 않았다.

문장발표: 2012년 10월 1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16/2640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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