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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세상을 뜬 헤이룽장 우창시 파룬궁수련생 쑨사오민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우창시(五常市)의 파룬궁수련생 쑨사오민(孫紹民)은 13년 동안 여러 차례 중공(중국공산당)에게 납치된 후 감금, 불법 노동교양, 10년의 불법 중형 판결 및 잔혹한 고문학대를 당해 심신이 전부 상처를 입었다. 2012년 5월 29일 이른 새벽 2시 30분,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54세였다.

'孙绍民'
쑨사오민(孫紹民)

다음은 쑨사오민이 박해당한 상황이다.

우창시 우창진에서 사는 쑨사오민(남, 1958년생)은 우창시 극단 직원이다. 농촌에서 태어난 쑨사오민은 어릴적에 부친(그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 7세 때 폐심증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났음)을 잃고 어머니와 다섯 형제들과 함께 지냈다. 한꺼번에 생활의 곤란함이 밀려왔을 뿐만 아니라 또 마을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아 성격이 괴팍해진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모든 화풀이를 했다.

이런 환경은 쑨사오민을 책임감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달이 되게 했다. 담배를 피우고 마작하는 것을 재미로 삼고 진보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심장병 기외수축증, 유전성 폐심증 등 고질병에 걸려 있었다. 매번 병이 도질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고통스러워 했고, 그 참혹함은 사람들이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매번 폐병을 앓은 후 그는 담배를 끊겠다고 맹세하곤 했지만 결국 더욱 심하게 피웠다. 1990년 초 견딜수 없었던 그의 아내는 그와 이혼수속을 밟았다.

1996년 8월 쑨사오민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파룬따파 수련은 쑨사오민으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게 했다. 법공부를 한 이튿날, 그는 고질적이던 담배 인을 끊어버렸다. 오래지 않아 그의 온 몸에 나타났던 병증과 좋지 못한 습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사상경지도 끊임없이 승화되었다. 쑨사오민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했다. 그를 잘 아는 모든 사람들이 느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납치되어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정치깡패집단 두목 장쩌민(江澤民)은 질투심 때문에 다시 한 번 권력을 남용해 굳은 신념으로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따파에 대해 선악이 뒤바뀐 정치적 박해를 실시했다. 그리고 중공을 이용해 ‘모든 수단을 사용해 파룬궁을 없애’고, ‘명예를 훼손하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절멸정책을 실시했으며,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없애겠다’고 큰소리쳤다. 모든 사악한 당 단위, 가도 주민위원회는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일에 협조해야 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집에서 연마하더라도 안되었다. 우창시위원회 서기 샤오젠춘(肖建春), 현임 우창시 공안국 부국장 천수린(陳樹森), 우창시 ‘610’두목 주셴푸는 임직기간 중에 명령을 내렸고 직접 ‘진선인’을 믿는 민중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다. 1999년 7월 22일, 쑨사오민은 강제로 세뇌반에 납치당했다.

2000년 2월 15일, 쑨사오민은 베이징에 가기 위해 우창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베이징의 국가 책임자에게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한 뒤 심신에 이로움을 얻은 진실한 상황을 이해시키려 했다. 기차가 베이인허(背蔭河)역에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악한 경찰들이 쑨사오민 등을 강제로 납치했고, 우창시 정보과 아이춘밍(愛春明), 양쑹펑 등이 우창시 행정유치소[소장, 우훙장(吳洪章)]에 불법 감금했다. 이틀 후에 우창시 제1구치소[소장, 뤼보(呂波)]로 이송해 불법 감금했지만 정념으로 벗어났다.

2000년 12월 5일, 쑨사오민은 다시 한 번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는 호소할 방법이 없는 정황 하에, 당당하게 톈안먼 광장에 걸어들어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높이들고 세상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나 광장에 밀집한 경찰에게 쫒겨 현수막을 강탈당했다.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파룬궁수련생 쑨사오민은 뒤에서 쫓아오는 경찰들을 따돌리며 한편으로 외치면서 광장을 반바퀴 달렸다. 결국 더욱 많은 악한 경찰들에게 포위당해 이웨이커(依維柯) 차에 납치된 후 쳰먼(前門)파출소에 불법 감금됐다. 우창 국가보안대대 왕즈밍(王志明) 등은 쑨사오민을 베이징 주재 우창사무실로 납치했다. 4일 후에는 우창 국가보안대대 잔즈강(戰志剛) 등에 의해 우창시 행정유치장으로 납치됐다. 당시 우창 행정유치장에 감금당했던 우창 파룬궁수련생은 90여 명에 이르렀다. 10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감방 안에 20여 명(일반 죄수를 포함함)을 감금시킨 채 식사는 물론 대소변까지 치루게 했다. 당시 유치장 소장은 우훙장(吳洪章), 부소장은 마궈량(馬國良)이었다. 공안국과 정보과는 그들의 석방을 거부했고 노동교양처분으로 박해를 계속 가중시키려 했기에 파룬궁수련생들은 부득이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다. 쑨사오민은 단식 14일 만에 정념으로 유치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쑨사오민은 우창시 ‘610’두목 주셴푸(朱憲福)와 공안국 국장 천수린(陳樹森), 주관 국장 쭝이원(宗藝文), 정보과 과장 류팡(劉芳), 법제과 옌유(閻有) 등 악도들에 의해 하얼빈 ‘610’, 공안국에 의해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01년 1월 8일 저녁, 쑨사오민은 속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위해 우창시 두자진(杜家鎮)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갔다가 두자진 파출소 소장 쭤펑허(佐鳳和)와 몇 명의 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쭤펑허는 이 일로 우창 공안국의 포상을 받은 동시에 1천 위안(약18만원)의 포상금 받았고 이후 더욱 광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쭤펑허는 공안국, 정보과의 악경과 결탁해 쑨펑민을 강제로 납치한 후 우창시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들은 총망히 쑨사오민과 다른 한 수련생을 하얼빈시 창린쯔(長林子) 노동교양소로 불법 납치했다.

창린쯔 노동교양소의 잔인한 ‘코로 음식물 주입’ 고문

창린쯔 노동교양소는 파룬궁수련생을 장기간 잔혹하게 박해했다. 노동교양소 교도관들은 매일 ‘전향’하지 않는 수련생에게 강제로 저녁 12시까지 벽을 마주보는 체벌을 가했으며, 늘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했다. 쑨사오민은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도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가장 완고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심신에 대한 잔혹한 학대를 감당해야 했다. 몸에 옴이 가득 생겨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가족과의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계절이 바뀌어 갈아 입을 옷을 보냈으나 지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는다면 각종 방법을 다해 당신을 다스리겠다’고 협박했다.

2001년 2월 초, 한 파룬궁수련생이 노동교양소에서 조직한 이른바 ‘친목회’에서 무죄석방을 요구하다 혹독한 구타를 당한 뒤 독방에 갇혔다. 장기간에 걸친 고문 박해로 쑨사오민을 비롯 1백 여 명의 신념이 확고한 파룬궁수련생들은 7월 2일 부터 집단단식으로 항의하며 무죄석방을 요구했다. 7월 4일 노동교양소는 단식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생에게 두 차례에 걸쳐 강제로 호스를 꼽고 음식물을 주입했다.

헤이룽장 하얼빈 창린쯔 노동교양소 소장 스창징(石昌敬)은 단식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생에게 일률적으로 코에 음식물을 주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코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것은 잔악무도한 박해 방식이다. 박해자는 관을 콧구멍에 밀어넣은 후 비벼 돌리기를 반복했는데 선혈이 낭자했다. 음식물에는 소금 함량이 극히 높아 주입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껍게 했다. 파룬궁수련생 쑨사오민이 코로 음식물을 주입당한 횟수는 무려 1백 여 차례에 달했다.

7월 25일(단식한지 23일째 날), 쑨사오민의 가족은 쑨사오민의 병세가 위독하니 면회를 오라는 노동교양소의 통지를 받았다. 노동교양소에 면회간 가족은 고문으로 쑨사오민이 심장병이 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노동교양소 측은 가족을 회유하여 그에게 음식물을 먹이라고 권유했다. 10살 난 아들은 본래 장대하던 아버지(노동교양소에 납치되기 전 체중이 75~80kg이었음)가 학대로 피골이 상접해 사람 모습이 아닌 것을 본 후 심령에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쑨사오민은 가족에게 “상심하고 고통스러워 하지 마시오. 우리는 선량한 마음으로 세상사람을 구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좋은사람을 박해했으니 죄를 지은 것입니다. 나는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무죄석방을 요구하겠습니다”며 안심시켰다. 가족들은 음식을 권유해 달라는 노동교양소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기에 곧바로 쫓겨났다. 사흘 후, 노동교양소는 다시 한 번 가족회의를 연다(이 때 또 7명이 단식함)고 통지했다. 회의에 참석한 쑨사오민의 누나에게 그들은 서명을 요구하며 “그들은 죽어도 쌉니다. 노동교양소는 책임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가족이 거부하자 노동교양소는 뜻밖에 가족을 한 방에 가두고 불법 구류했다. 결국 한 가족에게 급한 일이 생겨 ‘우리를 풀어주시오. 사람이 죽어도 당신들을 찾지 않겠소’라고 말하자 노동교양소는 그제서야 가족을 풀어주었다.

2001년 9월 29일, 쑨사오민은 비인간적인 고문박해를 당한지 90일만에 하얼빈 노동교양소와 창린쯔 노동교양소로부터 무조건으로 석방되었다.

10년의 불법 판결을 당하다

2002년 초, 하얼빈시의 한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던 쑨사오민은 3명의 하얼빈 ‘610’ 악도에게 하얼빈시에서 우창 자료점까지 미행당했다. 악도들은 문밖에서 잠복감시를 하면 우창의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할 수 있으리라 망상했다. 파룬따파 사부님 법신의 보호 하에 쑨사오민과 다른 한 동수는 정념으로 미행을 따돌렸다. 사악은 미행이 탄로나자 즉시 화를 내며 우창시 공안국과 함께 방안의 2만 위안(약3백60만원) 가량의 물품을 모두 강탈했다.

2002년 2월 9일, 쑨사오민은 하얼빈시의 한 파룬궁수련생 집에 갔다. 그러나 하얼빈시 ‘610’과 하얼빈시 공안국이 합동으로 쑨사오민과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가족은 도처로 수소문했지만 아무 소식도 알 수 없었다.

하얼빈시의 한 비밀 소굴로 납치된 쑨사오민은 자백을 강요당하며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개월 넘게 비밀리에 우창 제1구치소에 감금당했다. 그 후 하얼빈시 ‘610’과 하얼빈시 공안국은 우창시 공안국 천수린, 정보과 잔즈강, 우창시 ‘610’ 주셴푸, 우창시 법원 등 악도들과 결탁하고 비밀리에 10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한 후 하얼빈시 후란(呼蘭)감옥으로 납치했다.

쑨사오민은 후란 감옥 5감구역에서 여러 차례 잔혹한 박해를 당해 생명이 위독해졌다. 쑨사오민은 과거 박해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 2003년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악독한 교도관 리밍쥔(李明君), 중대장 왕빈 (王濱)은 죄수를 사주해 그에 대한 폭력적 세뇌를 감행했다. 죄수 왕위(王瑜), 량하이타오(梁海濤), 위하이(於海), 류다좡(劉大壯), 후샤오펑(胡小豐), 쑨량(孫亮) 등 6명은 3팀으로 감시하며, 5일 동안 수면과 식사 그리고 물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밀고, 비틀고, 넘어뜨리며 핍박하여 ‘3서(三書)’에 서명토록 했다. 2003년 10월 20일부터 29일까지 악독한 경찰 리밍쥔, 왕빈은 죄수 장리(張力), 뤼웨천(呂躍臣), 왕위(王雨), 마오원쥔(毛文俊), 쑹자오룽(宋兆龍)을 사주해 쑨사오민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밀고, 비틀고, 넘어뜨리고, 머리에 비닐주머니를 씌웠고(주머니가 일곱 개나 터졌음), 호랑이의자에 앉혔으며, 코에 고추가루를 밀어 넣고, 소금을 주입하는 고문을 했다. 구타로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었고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람을 사주해 뒤에서 밀며 강제 노역노동을 시켰다.

쑨사오민은 과거 6개월 동안 박해를 반대했다. 2005년 9월 20일 오후, 악독한 경찰과 죄수 두 명은 쑨사오민의 팔과 다리를 들고 병원으로 납치해 음식물을 주입하려 했다. 몇 걸음 가지 못해 자세를 바꿔 팔을 잡고 땅위에서 끌며 병원으로 끌고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알던 후란감옥 경찰은 쑨사오민의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상황에서도 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계속 그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며 잔혹하게 박해했다. 원래 80kg이던 쑨사오민은 학대로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박해로 치사되다

2011년 10월 18일 저녁 8시 경, 쑨사오민의 누이는 후란감옥 5대대 대대장 차오(喬)모로부터 쑨사오민이 뇌출혈 증상으로 후란 중의원에 후송됐고 가족의 서명이 있어야 수술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 도착한 가족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고 정신이 혼미한 채 병원 복도에 누워있는 쑨사오민을 보게 됐다. 당시 감옥의 한 감구역장과 대대장 차오모는 몇 십명의 경찰을 거느리고 있었다. 감구역장은 수술 결정은 가족이 한다며 왼쪽 뇌실에 출혈이 있고 출혈양은 50미리리터인데 통상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받고 깨어난다 해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는 병원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세 명의 누이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쑨사오민의 전 처는 “저는 대법수련자입니다. 저는 자비(慈悲)를 수련하기에 죽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아직 한가닥 생존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즉시 서둘러 수술하세요”라고 말했다.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의 손에는 수술에 사용한 소반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쑨사오민의 뇌실에서 뽑은 흰 대뇌가 뒤섞인 선홍색의 혈장이 담겨 있었다. 그는 “뇌 수술은 하지 않았고, 단지 구멍을 낸 후 피를 뽑았습니다. 깨어날 수 있을 거라 예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에 가족들은 이른바 병보석 수속을 밟았다. 감옥측은 모든 의료비용을 가족이 부담하지 않을 경우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해야만 했다. 수속 과정 중, 우창시 충런(崇仁) 파출소 소장은 서명해주지 않으며 가족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쑨사오민은 입원한지 3일 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전체 우창 파룬궁수련생들이 정념으로 가지한 상황 하에, 쑨사오민은 집에 도착한 뒤 매우 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오른쪽 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고 말을 하지 못했으며 글을 읽지 못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보름 후 앉을 수 있었고 1개월 후에는 남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그 후 간단한 말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0년 간의 고문박해로 인해 쑨사오민의 신체 기능은 정상이 아니었고 갈비뼈가 부러진 가슴부위(비장 위치)에는 박해로 생긴 손바닥만한 혹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몇 해전 가족은 감옥 측에 외부 병원에 가서 검사받게 해 줄 것을 요구한 적이 있으나, 감옥은 허락하지 않았다. 음식물 주입으로 겨우 네 개만 남은 아래 쪽 치아로는 음식물을 먹기에 매우 힘들었다. 먹는 양이 적고 소화도 시키지 못했다. 대장이 굳어 항문 주변에 아래위로 1센티미터 길이의 상처가 생겼고, 3~4일에야 대변을 한 번 볼 수 있었는데 매번 대변을 볼 때면 지쳐서 온 몸에 땀이 났고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쑨사오민은 영양을 보충해 들이지 못했고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글을 읽지 못해 법공부를 할 수 없었으며 설 수도 없기에 연공을 할 수 없었다. 한 젊은 파룬궁수련생은 결국 박해로 생명을 잃게 됐다.

생전에 쑨사오민은 자신에게 뇌출혈 증상이 나타난 것은 어떤 사람을 업신여겨 생긴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쑨사오민이 13년 동안 박해 당한 사실은, 박해 집단, 박해기구와 박해자가 직권을 남용해 고의로 상해한 죄, 불법 구금죄, 불법 수색죄 및 불법으로 주택 침입죄, 모욕죄, 고문 및 폭행죄, 감시 관리인원을 사주한 죄, 불법으로 국민의 종교신앙자유를 박탈한 죄, 강탈죄를 저질렀음을 증명한다.

지금 가족들은 국제인권기구가 13년에 걸쳐 박해당한 쑨사오민의 죽음을 조사하고 공정히 평가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

부록: 박해에 가담한 책임기구와 책임자 정보

黑龍江省監獄管理局地址:哈市南崗區漢廣街79號 郵編:150080

電話:0451-863164420451-863422380451-86342139

呼蘭監獄通信地址區腰堡鄉803信箱。郵編:150521

呼蘭監獄辦公室電話: 0451-57304738

呼蘭監獄長孫凱文電話:0451-57307303 0451-57307719 0451-57307220

呼蘭監獄副監獄長:0451-57304313

呼蘭監獄主任電話:0451-57307108

獄政科電話 : 0451──57307738

陳維強:所謂「教改科手機:13136764116

五監區一分監區(一分隊)電話:0451-57307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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呼蘭監獄醫院電話:0451-57307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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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常市公安局國保大隊戰志剛電話:0451-53524126 手機:13936551668

肖建春五常市委書記 孫顯臣五常市副書記 王曉春 五常市副市長原政法委書記

何憲光五常市政法委書記

朱憲福原五常市「六一零」負責人原五常市政法委副書記現打手 手機:13115456599;

莫振山原五常市「六一零「副主任 現打手 手機:13945764423

劉曉玲原五常市「六一零「主任

付彥春五常市「六一零」原打手、現頭目 手機:13936017177

陳福林原五常市公安局長

許家佳原五常市公安局長

陳樹森五常市公安局副局長主管迫害法輪功

程慕山原五常市公安局副局長主管迫害法輪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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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松鵬原五常公安局政保工作惡棍

張曉東原五常公安局政保副科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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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志明原五常國保大隊副科長現退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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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波原五常監獄(第一看守所)所長辦公電話:0451-5354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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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鳳和原五常杜家鎮派出所所長

閻友原五常市公安局法制科長現退休

五常市杜家鎮派出所的所長辦公電話:0451-53511110

五常市法院院長桂順吉電話:0451- 56657001 0451-57282916 手機:1360366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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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常市法院副院長陳維超電話:0451- 56657006 手機:13796781179

五常市法院副院長蓋春來電話:0451- 56657005 手機:13936146658

五常市法院畢景新電話:0451- 56657009 手機:

五常市法院高寶君電話:0451- 56657007 手機:15146067888

문장발표: 2012년 08월 1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19/2617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