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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저우 부녀자, 세뇌반에서 독극물을 주사당해 억울하게 사망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올해 58세인 후난(湖南) 천저우(郴州) 파룬궁수련생 리자쥐(李甲菊)여사와 남편은 2011년 5월에 융싱현(永興縣)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과 정부의 악인 황니향(黃泥鄉)이 집에 들이닥쳐 우시 베이후구(北湖區) 당 간부학교 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리자쥐는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보름 후, 세뇌반의 중공(중국공산당) 사악한 당 인원은 리자쥐에게 독극물 한 병을 주사한 뒤, 그녀를 집에 돌려보냈다. 리자쥐는 몸에 좋지 않은 증상이 나타났다. 그해 9월부터 한 달에 몇 번씩 하체에서 출혈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2012년 설을 쇤 뒤, 리자쥐는 대량으로 핏덩어리가 섞인 출혈을 빈번하게 했다. 결국 몸져누웠다가 2012년 4월 16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李甲菊
리자쥐(李甲菊)

리자쥐 여사는 융싱현 황니향에서 살았다. 1997년 7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원래 여러 가지 고질병이 있었는데 수련 후 약을 쓰지 않고도 완쾌되었다. 원래 불같은 성질도 고쳤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정치깡패집단은 이번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는데 그 수단은 잔인했고 동서고금의 사악함을 다 집결해 갖추었다. 리자쥐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융싱현 정법위, 공안국, ‘610’ 인원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에게 중공의 거짓말을 듣지 말고 파룬궁을 선하게 대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책임지도록 했다.

2000년 음력 12월 14일, 황니향 정부의 악인 30여명은 리자쥐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으로 대법서적, 진상자료를 강탈해갔다. 그리고 집안의 모든 가구를 전부 박살내 없애고 리자쥐 부부 두 사람(남편도 역시 파룬궁수련생임)을 납치했다. 차 안에서 리자쥐 부부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으며, 그들에게 강제로 삼각형으로 된 철 위에 꿇어앉도록 명령을 내렸다. 향 정부의 계단 아래에서 꼬박 2일 동안 족쇄와 수갑에 채워졌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빗방울은 얼음이 되었다. 리자쥐는 박해로 손발이 얼어서 터지고 혼미해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어서야 풀려났다.

2002년 음력 12월 21일, 리자쥐는 황니향에서 융싱현 정법위 두목 쉬융진(許永金)에게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그리고 무거운 쇠고랑으로 세 사람의 손과 발을 한데 연결해 6개월 넘게 학대했으며, 8백 위안(14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도 못한 2003년 5월 1일 밤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리자쥐의 집에 들이닥쳐 리자쥐를 구치소로 납치했다. 리자쥐는 반년 동안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해 생명이 위독해져서야 풀려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2개월이 되지 않은 2004년 1월, 황니향 정부에서는 또 리자쥐를 구치소로 납치했다. 게다가 16개월의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壟)노동교양소에 보내 10개월간 박해했다. 리자쥐는 노동교양소에서도 수련을 견지해 대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발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작은 차로 사경을 헤매는 그녀를 주저우 기차역으로 보내서 그녀한테 차표를 사서 주며 집으로 가도록 했다. 그녀는 노동교양소의 돈을 거부했다. 돈 한 푼 없이 주저우 기차역에서 2일 간 있은 뒤에, 마음씨 좋은 사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2005년 10월 21일, 리자쥐는 수련생을 동반해 창사(長沙)여자감옥으로 두 딸(파룬궁수련생임)을 면회하러 갔다. 리자쥐는 접대실에서 여자감옥의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나눠주어, 악독한 경찰에게 구류당한 뒤, 융싱현 ‘610’에게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3개월 후인 2006년 1월, 거듭 18개월 동안 주저우 바이마룽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리자쥐는 믿음을 견지해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상황에서 노동교양소에서는 가족의 면회를 거부했다. 밍후이왕에서 노동교양소의 잔혹한 박해를 폭로한 뒤, 리자쥐는 노동교양소에서 12개월 동안 박해를 반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008년 4월, 리자쥐는 한 수련생과 함께 레이양시(耒陽市) 톈이향(天義鄉)으로 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수련생은 자료를 한 사복경찰에게 나눠줬다가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리자쥐는 즉시 파출소로 가서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수련생을 석방하도록 요구했다. 파출소에서는 리자쥐마저 구류했다. 이틀 뒤에 그녀는 정념으로 벗어났다. 수련생은 열흘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2009년, 리자쥐는 한 수련생과 함께 융싱현 탕먼커우진(塘門口鎮)의 외진 산골로 갔다가, 진상을 알지 못 하는 사람에게 신고 당했다. 악인은 그녀를 구치소로 납치해, 주저우 바이마룽 노동교양소로 보냈다가, 수감을 거부당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2010년 3월, 그녀는 혼자서 융싱현 리위탕진(鯉魚塘鎮)의 한 산골로 갔다. 차 안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어떤 사람이 진 정부에 신고한 이유로, 악인이 미행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그녀를 진 정부로 납치했다. 3일 만에 그녀는 정념으로 벗어났다.

2010년 4월 13일, 천저우시와 융싱현의 이급 ‘610’공안 국가보안, 파출소 등 10여 명이 융싱 파룬궁수련생 리자쥐의 집에 뛰어들어 그들 두 사람을 납치했다. 게다가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해 대법 서적을 수색해갔다. 납치한 구실은, ‘610’인원이 그들 부부가 상하이(上海)로 가서 ‘엑스포(EXPO)’를 보려 한다고 의심했다는 것이다.

2011년 5월, 리자쥐 여사와 남편은, 융싱현 ‘610’과 황니향 정부의 악인이 집에 들어 닥쳐 천저우시 베이후구 당 간부학교 세뇌반으로 납치당해 독극물주사를 강제로 맞았는데 결국 2012년 4월 16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2년 07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2/259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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