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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박해로 하지 마비, 다시 진저우 감옥으로 이송(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다롄(大連) 기중기(起重) 기술정보부 엔지니어인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뤼카이리(呂開利)는 판진(盤錦)감옥에서 박해로 하지가 마비되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스스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2012년 5월 8일 다시 진저우(錦州) 감옥으로 이송되어 감옥 내 죄수병원에 감금된 채 4명의 바오자(包夾)의 감시 박해를 받고 있으며 가족과의 면회도 거부되고 있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吕开利入狱前的照片
뤼카이리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

믿음을 견지해 고난을 겪다

뤼카이리는 아내 쑨옌(孫燕)과 중공(중국공산당)이 1999년 7월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뒤에도 파룬따파(法輪大法) 쩐싼런(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가 거듭 박해를 당했다. 2000년 4월, 뤼카이리는 파룬따파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자, 정부를 믿고 합법적인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그러나 그 청원 때문에 중공에 불법 납치되어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는데 랴오닝성 마싼자 교양원(馬三家教養院), 다롄 교양원(大連教養院), 관산(關山) 교양원 등으로 전전하며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했다. 구타, 전기충격, 장기간 사인침대(死人床) 고정시키기, 장시간 동안 매달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등의 고문과 사람의 능력을 초과하는 강제노역 등의 온갖 잔인한 박해를 당하다가, 2001년 8월에 석방되었다.

노동교양소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온 지 겨우 13일이 되었을 때 다시 다롄 경찰에 납치돼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2001년 12월 다롄 노동교양소로 이송 파룬궁 수련생들만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8대대에 감금되었다. 뤼카이리는 강제노역을 거부하고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여 작은 독방에 갇힌 채 비밀리에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했다. 인면수심의 악경(사악한 경찰) 징뎬커(景殿科), 쑹헝빈(宋恆岳) 등은 장기간 단식으로 근육이 위축된 뤼카이리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 강제주입을 했으며, 또 “너의 공력을 파괴하겠다!”라고 하면서 도수 높은 바이주를 강제 주입하여 꼬박 하루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런 상태에서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하고, 매달기 고문과 침대 판자로 구타한 후 두 손 두 발을 결박하여 소위 사인침대에 몇 달 동안을 매달아 놓았다. 뤼카이리는 다롄 노동교양소에서 2003년 10월까지 불법 감금되어 이런 고문 박해를 당한 것이다.

중공사당은 국가의 모든 언론 매체를 이용해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모함하여 많은 대중으로 하여금 거짓말의 독해를 입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법(佛法)을 적대시하고 대법제자를 적대시하도록 하여 그런 대중으로 하여금 미래에 도태될 위험한 처지에 빠지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뤼카이리 등 대법제자들은 소중한 동포를 사당의 사악한 새빨간 거짓말 속에서 구해내 각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텔레비전 방송국의 ‘스폿 방송’을 이용 민중에게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대법재자들은 2005년 9월 5일 랴오닝성 랴오양현(遼陽縣)에서 성공적으로 텔레비전 ‘스폿 방송’을 진행하는 데 성공했다. 한 시간 넘는 진상 프로그램은 현지 대중에게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진상 내용을 상세하게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어 알렸다. ‘스폿 방송’이 전파를 타고 보도되자 사악한 당은 공포로 떨었으며, 즉시 대법제자들을 비밀리에 납치하도록 조치를 했다.

뤼카이리 등 대법제자들은 2005년 10월 13일 다롄시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비밀리에 납치당했다. 다롄 유자촌(由家村)의 국가보안국에 특별장소로 마련된 샤오바이루(小白樓)에서 혹독한 고문 구타를 당했다. 그 후 랴오양시 구치소로 이관된 후 2006년 4월 초 랴오양시 법원에 의해 10년 형의 불법 판결을 받고, 잉커우(營口) 감옥 2대대에 감금되었다. 그 후 다시 2007년 12월 20일 판진(盤錦)감옥 5감구역으로 이송돼 박해를 당했다.

판진감옥 고문 박해로 하지가 마비되다

뤼카이리는 2010년 4월 6일 오전 9시, 판진감옥 옥정과(獄偵科)의 왕징린(王景林), 5감구역의 교도관 리펑(李峰) 등의 지휘 하에 전기고문을 당했는데 150 볼트 전기봉으로 11시가 넘도록 지속했다. 전기고문으로 지치고 심신이 훼손되자 감옥 내 영창에 감금시켰으며 그 영창 안에서 보름이 지났어도 손과 팔 등 온몸에 고문으로 인한 상처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2010년 6월 말, 뤼카이리는 단식으로 강제 노역을 거부하자, 3일 후 교도관 대대장 관펑춘(管風春)이 뤼카이리를 찾아와서 노역에 응하도록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관펑춘과 교도과장 왕후이(王輝) 교도관 친페이(秦飛) 등은 뤼카이리를 대대 교육실로 끌고 가서 전기봉을 사용하는 전기고문 등 온갖 고문을 자행했는데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고문을 가했으며, 그 후 7월 9일부터 14일까지 이런 고문을 매일 가해 뤼카이리의 온몸은 상처투성이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고문을 주도한 관펑춘 대대장은 수련생에 대한 고문 전력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과거 1감구역 교도대장 재직 시 죄수에게 지시하여 진저우(錦州) 파룬궁수련생 황청(黃成)의 열 손가락에 바늘을 꽂는 등의 고문을 자행한 자로 널리 알려진 자다.

관펑춘은 2010년 8월 29일 11시부터 뤼카이리에 대해 잔혹한 전기고문 박해를 감행하며 ‘전향’하도록 강요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자 4시간 동안 고문을 가했는데, 8월 30일 오전 6시 40경 뤼카이리는 작업장 맨 위층 건물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추락하여 중상을 입었다.

고문 박해 추락 사건이 발생한 뒤 판진 감옥은 고문 박해 교도관에 대해 일부 인사이동을 단행하면서 5감구역의 책임자들을 전출시켰다. 감구역장 쑹보(宋波)는 감옥 총대(總隊)로, 책임자인 부감구역장 관펑춘은 선양(瀋陽) 소년교도소로 각각 전출되었고, 교도과장 왕후이와 교도관 리펑은 다른 감구역으로 이동 배치됐다.

판진 감옥 측에서는 고문 박해의 죄행을 감추기 위해 인사이동을 단행한 후 대표적인 피해자인 뤼카이리를 감옥 병감구역에 격리시킨 후 일체 사람의 접근을 차단했다. 소식을 들은 뤼카이리의 가족들이 여러 차례 감옥을 찾아가서 면회를 신청했으나 이를 거부한 채 계속 고문 박해의 실상을 감추기에 급급하고 있다.

가족과 변호사의 간고한 노력을 통해 마침내 2011년 11월, 고문 박해로 극심한 고통을 당한 뤼카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때 그가 고문을 당하다가 건물에서 추락한 지 이미 14개월이 지난 후였다. 하지는 마비 상태로 움직일 수 없었고 몸은 매우 허약했는데 요추, 미저골, 복사뼈 등 여러 부위의 골절상을 입은 상태이며 또 말초신경이 손상된 상태였다. 다만 골절된 요추부위와 복사뼈 부위는 강판으로 지탱했을 뿐이다. 하지가 마비되다 보니 혼자서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두 주먹을 바닥에 대고 조금씩 이동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두 손의 손가락 관절부위에 굳은살이 박였다. 이런 형편이니 스스로 대소변 가리기도 어려워 뤼카이리의 생활의 형편은 매우 고생스러웠다.

뤼카이리가 여러 차례 불법 감금당해 고문 박해를 받게 되자 그의 가족들도 함께 고통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공포와 슬픔을 견디지 못한 모친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또한, 뤼카이리의 둘째 누나 뤼루룬(呂麗潤)은 2010년 5월 대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중공에 납치되어 3년 형의 불법 판결을 받고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 여자감옥에 감금당해 있는 상태다. 뤼카이가 고문 박해를 당하던 중 건물에서 추락한 사건이 발생하여 감옥 측이 사건을 은폐하며 소식을 봉쇄했을 때, 그의 장인 장모 등 처가의 가족들 역시 걱정과 슬픔으로 초조했으며 이 때문에 장인 장모의 지병이 도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등 매우 몸이 허약한 상태다. 또한, 뤼카이리의 아내는 수차례 판진 감옥을 찾아가서 남편의 석방을 위해 교섭을 시도했으나 감옥 측은 진상을 숨기고 책임을 미루며 매번 회피했다.

판진 감옥으로 이송된 뤼카이리 현재 생사가 불명

판진 감옥에서는 당 감옥에 불법수감된 대법수련생들을 2012년 5월 8일 랴오닝성 주재 각급 수감시설에 분산 감금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당일 뤼카이리 등 4명 파룬궁수련생들은 감옥 내의 병원에 격리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가족들이 소식을 알고 먼 길을 달려 판진 감옥으로 찾아왔으나 감옥 측은 애타는 가족의 면회를 거부하며 “가족이 현지 파출소에서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증명서를 가져오면 면회를 허락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자 가족들이 “그런 규정이 어디 있는지 보여 달라.”라고 하자, 감옥 관계자는 “문서가 아닌 구두로 시달된 상부의 지시다.”라고 답변했다.

가족이 부감옥장 왕쉐(王學)를 찾아가자, 그는 “가족이 파룬궁을 지지하면 수감돼 있는 사람이 개조되는데 지장을 초래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역시 면회를 거부했다. 소식에 따르면, 판진 감옥에서는 그 곳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강제 전향을 시키고 있는데, 한 파룬궁수련생은 4명의 바오자에 의해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 고문 박해를 당하면서 역시 가족의 면회를 거부당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뤼카이리는 생사를 알 수 없다. 가족은 몹시 걱정하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파룬따파는 세계에 홍전된 지 이미 20주년이 됐으며 전 세계 백여 개 국가와 각 지역에 전파되었다.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은 1억을 넘는 같지 않은 종족과 같지 않은 대중에게 도덕이 제고되고 심신에 이로움을 얻게 하였다. 당초에 장쩌민(江澤民)집단은 “3개월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라고 큰소리친 미친 소리는 이미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되었고, 중앙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두목 저우융캉(周永康)의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집단의 두 손엔 선혈이 가득 묻어 이제 역사의 청산을 당함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판진 감옥의 악인 교도관들은 아직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진선인’을 믿는 수련생들에게 고문 박해를 가하며 강제로 전향을 시키려고 광분하고 있다. 그들은 고문과 학대를 가하며 믿음의 자유를 파괴하고 있는데, 그들은 인간의 법률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있는바, 그들은 가장 무서운 말로에 직면할 것이다.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자기 고집대로만 하는 자는 꼭 역사의 죄인으로 중공의 희생양으로 되어 정의로운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감옥의 교도관들은 시기와 형세를 잘 판단하고, 즉시 박해를 멈추도록 권고한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역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각성하고 자구하는 기회를 주지만 영원히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뤼카이리는 무죄인바 즉시 석방함이 마땅하다. 감옥에 갇혀 있는 매우 많은 대법제자는 모두 당연히 즉시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누가 감옥에 있는 대법제자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깔아준다면, 누가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건지는 길을 깐 것이다.” 교도관들이여, 빨리 각성하라!

판진감옥의 일부 정보:

랴오닝성 판진감옥 주소: 랴오닝성 진저우시 타이허구 난산리 86호 (遼寧省錦州市太和區南山裏86號)우편번호 121013

편지쓰는 주소: 중국 랴오닝성 판진시 진궁 999 편지함 X감구역 ×××(앞) (中國遼寧省錦州市錦公999信箱X監區 ×××(收))

진저우 전화 지역번호 0416

진저우감옥 교환대: 0416-3496200

감옥장: 왕전숴(佔王所)

정치위원: 우쉬(吳旭)

부감옥장: n왕훙보(王洪波)

부감옥장: 왕쉐(王學)(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세뇌박해를 주관함)

사무실 전화: 0416─7496008

옥정처(獄政處) 처장:(주요 박해부서)가오콴(高寬) 사무실 전화0416-3496242 3496241

교육처 부처장: 차이신리(蔡立新) 15541611195

감옥 사무실 주임: 왕훙타오(王洪濤) 사무실 전화 0416-3496358

감옥 1감구역 전화: 0416-3496661 3496680

감옥에서 각 감구역의 감옥 경찰은 근무시간인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 반 사이에 휴대폰을 고정된 곳에 놓고 전화기를 끄라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각 감구역의 감옥 경찰에게 진상전화를 걸려면 아침 8시 전이거나 혹은 오후 4시 반 이후거나 혹은 휴가일에 걸어야 한다. (감옥 및 감구역 책임자를 제외함).

문장발표: 2012년 5월 2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26/2581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