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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쓰대학 부교수 야오카이,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2012년 5월 8일 자무쓰(佳木斯)대학 전자공학부 부교수인 파룬궁수련생 야오카이(姚凱)여사는 속임수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날로 이춘(伊春)세뇌반으로 납치돼 불법 감금 및 박해를 당했다.

50세인 야오카이 여사는 하얼빈(哈爾濱) 공업대학(工業大學) 석사로, 우수한 교수이며 업무핵심을 맡고 있다. 이번에 그녀를 납치한 것은 중공(중국공산당) ‘610’이 이른바 ‘2010-2012, 3개년 공격적 전향’ 계획에 협조하기 위해 신화(新華)파출소와 공모하여 행한 범죄 조직의 범죄 행위이다. 야오카이의 남편은 당시 중공 불법 무리에게 그녀를 어디로 납치해 가려는 지를 물었는데, 그들은 뻔뻔스럽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당신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 명백한 불법적 행위이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이춘세뇌반을 ‘법제학교’라 불렀는데, 실질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정신적 세뇌를 실시하는 사설(私設)감옥이다. 이른바 100% 전향율을 꾸며대며 매일 강제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비난하는 영상과 모독하는 글을 보게 했다. 그리고 각종 비열한 수단을 이용하여 박해하면서 또 속임수를 써서 먼저 ‘3서(三書)’를 쓰게 했다가 효과를 보지 못하면 곧 신체 폭력을 가했다.

1. 속임수를 써서 납치하다

5월 8일 오전 8시가 넘어서 자무쓰대학 정보전자학부 사무실의 근무자 청허(程鶴)는 전화를 걸어서 야오카이를 속여 직장으로 오게 했다. 정보전자학부 서기 가오원샹(高文祥)은 야오카이에게 그녀의 남편에게 보위처에서 그녀를 찾는다고 알려주라고 했다가, 또 그 후에는 대학 610사무실로 가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 가오원샹과 야오카이 및 그녀의 남편 세 사람은 함께 대학610사무실로 갔다. 그들을 문 앞으로 보내고 서기 가오원샹은 곧 떠났다.

야오카이와 그녀의 남편은 방안에 들어선 뒤에, 대학 610사무실의 두목 루롄보(盧連波), 신화(新華)파출소와 대학 보위처의 경찰이 일찍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야오카이를 ‘세뇌반’으로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야오카이의 남편은 이 말을 들은 뒤 거부하는 동시에 야오카이를 보호해 밖을 향해 걸어갔다. 경찰과 낯선 3명의 남자가 뒤쫓아 나왔고, 루롄보는 전화를 걸어 사람을 찾았다. 훙샤로(紅霞路)사범전문대학 인근에서 야오카이의 남편은 그들의 범죄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그들과 서로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는데 싸우는 과정에서 심장병이 도졌다. 맨 마지막에 5명의 사람은 야오카이를 붙잡고 풀어주지 않았다. 야오카이는 오고가는 사람들에 대해 큰 소리로 외쳤다. “경찰이 좋은 사람을 붙잡아요!”

야오카이와 남편은 강제로 대학 미니버스에 납치당했다. 보위처 처장 푸구이빈(付貴彬)이 야오카이의 남편을 속여 차에서 내리게 한 뒤, 미니버스로 야오카이만 태우고 도주했다. 그 기간에 야오카이 남편이 사람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냉정하게 ‘당신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알기로는 야오카이는 이미 이춘세뇌반으로 납치당했고 정보학부 교수 딩샤오디(丁曉迪)가 동반하여 이춘세뇌반으로 갔다고 한다.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는 그녀의 처지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

2. 10년간 여러 차례 납치박해를 당하다

1999년 ‘7.20’에 중공사당(中共邪黨)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자무쓰대학에서는 한 사람씩 문을 통과시키는 짓을 꾸몄다. 야오카이의 학력과 직책이 모두 비교적 높았던 이유로, 학교 측에서는 그녀를 전형으로 삼아 세뇌반에서 대법을 비난하는 발언을 시키고 또 강제로 그녀에게 대법책을 바치게 하려 시도했다가 그녀의 단호한 말에 거부당했다. 2000년 5월과 6월 사이에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업이 정지당하고 강제로 매일 선전부와 보위처에서 조직한 세뇌반에 참여케 했다. 게다가 강제로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서’와 이른바 ‘사상회보’를 쓰도록 했다. 그녀가 협조하지 않았다고 하여 전체 교내에 ‘통보’했다.

2001년 1월 15일, 야오카이 여사는 베이징으로 들어가서 합법적으로 청원했다는 이유로 송환된 동시에, 강제로 자무쓰 구치소로 보내져 일반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신적 압력과 고통을 겪은 뒤, 19일 후에 풀려났다. 그 기간에 가족은 금액 2만 위안(360만 원)을 갈취 당했다. 같은 해 5월 8일에 모함으로 자무쓰 구치소로 납치당했는데, 24일 동안 단식했다가 가족이 8천 위안(148만원)을 갈취당해서야 풀려났다. 같은 해 7월 20일 오전, 대학 보위처 리지(李季)는 시 공안국의 한 경찰을 거느리고 그녀의 집에 불법으로 들이닥쳐 약간의 개인 물품을 강탈해갔다. 게다가 그녀를 끌어가려 했는데, 그녀가 단호히 박해를 반대했던 이유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날 오후, 시 공안국 610주임 천완유(陳萬友)와 한 젊은 경찰은 속임수를 써서 방문을 열고 그녀를 시 공안국으로 납치했다. 그 후 가족이 또 3천 위안(54만 원)을 갈취당하고 나서야 그녀는 풀려났다.

같은 해 8월 27일, 신화파출소 경찰 류제(柳傑)는 그 파출소와 결탁해 야오카이를 납치했으며, 또 그를 자무쓰 샹양구(向陽區) 공안분국으로 보냈다. 그 후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2만 위안(360만 원)의 현금을 갈취 당했다. 노동교양소에 갇힌 기간에 야오카이는 일반사람이 상상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어려운 박해로 괴로움을 당했다. 예컨대 강제 세뇌, 화장실 가는 것을 제한,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 강제 노동, 장기간 침대에 매달리기, 하루에 16~17시간 동안 걸상에 앉혀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장기간 뒷짐결박하기 등등인데 심신에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酷刑演示:铐在床上
고문시연:침대 위에 채우다

2003년 8월, 자무쓰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뒤, 자무쓰대학에서는 그녀한테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했다. 그녀가 응하지 않자 2003년 말 대학에서는 2년 동안 학교에 남겨 살펴본다는 구실로 교수에서 전출시키고 등급을 낮추는 방법을 사용해 그녀에 대해 박해를 가했다.

2008년 대동회(大冬會)기간에 대학 보위처, 610사무실 자오청성(趙成生)과 정보학원 서기 등 사람들과 공동으로 계획해, 학부를 도와 부상으로 줄 상품을 산다고 속여 야오카이를 사무실로 데려가서 2시간 동안 불법 구금을 했다.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대한 견정한 믿음 때문에, 중공의 박해는 우수한 교수로 하여금 강단을 잃게 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없게 했으며,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게 했다. 1년 사이에 4차례나 불법 체포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녀의 남편, 시아버지는 심장병이 도졌고, 시어머니와 어머니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아이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가족은 그녀를 위해 울었고, 동창과 동료 그리고 친구들도 그녀를 위해 손을 불끈 쥐고 탄식했다. 10년간 갈취당한 재물이 적어도 5만 위안(9백만 원)이고, 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은 20만 위안(3천6백만 원)도 넘는다.

대학은 지식을 전수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신성한 전당이지, 사악이 행패를 부리는 낙원이 아니다. 현재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사건 이후,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가 정권을 빼앗고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적출한 흑막(왕리쥔은 이미 대량의 자료를 미국 영사관에 제출했으며, 또 연속해서 국제사회에 폭로했음)을 끌어내어, 저우융캉과 파룬궁을 박해한 그 혈채(血債-피의 빚)파 무리들은 오늘날에 이미 화살에 놀란 새로 되었다. 그들은 손에 쥔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권력을 모두 이용해 각급 610에게 지시하여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광적으로 박해하여 그들이 청산당할 시간을 끌었고, 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많은 하급 관리, 경찰을 납치해 그를 위해 죄를 짊어지고 누명을 덮어쓰게 했다.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일찍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곧 청산 당하게 됨을 알려주었다. 문화대혁명 후, 그들 박해에 참여했던 경찰들은 윈난(雲南)으로 끌려가 비밀리에 총살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그들 나치 무리들은 줄곧 지금까지 여전히 체포당하고 있다. 여전히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즉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멈추며, 또 자신이 박해에 참여해 저지른 죄과를 서둘러 만회하도록 권고한다. 청산할 날은 머지않았다.

박해에 참여한 대학 주요책임자:

멍샹차이(孟祥才) 대학 사악한 당서기 13803657506

취훙빈(邱洪斌) 대학 교장 13903681456

루롄보(盧連波) 대학 610사무실 두목 13836655590

푸구이빈(付貴彬) 대학 보위처 처장 13836600071

가오원샹(高文祥) 정보전자학원 원장 13845475646

청허(程鶴) 정보전자학원사무실 근무자 13845451928

딩샤오디(丁曉迪) 정보전자학부 교수 13704547852

이춘(伊春)세뇌반 인원 13804536212

이춘시610, 세뇌반:

린샤오밍(林曉明) 이춘시610부주임 세뇌반의 이른바 ‘교장’ 0458-3879397(사무실)

부두목:량바오진(梁寶金),남,대략 58세, 이춘 다이링(帶嶺) 사람, 원래는 다이링 정법위 직원이었는데 지금은 2선으로 물러났음. 세뇌반에서 주로 ‘전향’박해에 참여했음. 핸드폰 번호:13845813057

위징즈(於景枝):여,57세,원래는 쑨(孫)씨역에서 근무했다가, 그 후 하얼빈역의 매표원으로 전근되었는데, 지금은 퇴직했음. 주로 ‘전향’박해에 참여했음. 세뇌반에서 매달 월급은 1천 5백 위안(27만원)임. 핸드폰 번호:13936822054

문장발표: 2012년 05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11/2572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