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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 반차오 노동교양소에서 학대당한 왕루이화, 병세 심각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보도) 톈진(天津) 다강(大港) 파룬궁수련생 왕루이화(王瑞華, 41)는 작년에 톈진 반차오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당한 뒤 정신과 육체적인 학대를 당해 현재 병세가 심각하다. 여위고 초췌하며 음식을 삼킬 수 없다. 그리고 수차례 기절해 쓰러졌고 허약해져 걸을 수 없다. 가족은 여러 차례 석방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거부당했다. 왕루이화가 ‘전향’을 거부해 파룬궁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2011년 2월 26일, 그녀는 남편 두완청(杜萬成) 등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파룬궁진상 전단지를 붙이다가 성리(勝利)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 후 반차오 여자노동교양소로 이송되었다. 감옥 경찰은 그녀에게 세워두기 고문, 노역 노동, 세뇌, 협박 등 수단으로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으며, 이 때문에 왕루이화는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2011년 5월, 왕루이화는 목구멍이 불편해 음식을 삼키기 어려웠다. 8월에 이르러서 그녀는 물로 약간의 음식물을 타서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에는 크고 작은 혹이 나타났는데 병인이 확실하지 않다. 2개월 후, 노동교양소 경찰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가 검사를 받게 하여 몇백 위안밖에 없는 그녀의 돈을 전부 써버렸다. 게다가 그녀에게 약을 먹도록 핍박했다. 그러나 그녀 본인과 가족에게 병세를 설명하지 않았다. 왕루이화는 가정 경제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받을 돈이 없었던 이유로 더는 의료비를 쓰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몇 명의 악인에게 손을 눌려 서명한, 수련생에게 부합되지 않는 말을 전부 폐기한다고 표시했다. 이 때문에 악독한 경찰에게 보복을 당해 몇 달 동안이나 시누이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2012년 봄, 왕루이화의 병세는 갈수록 더욱 심각해졌다. 노동교양소 경찰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가 혈액과 소변 검사를 했는데 말로는 염증이 있으나 큰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왕루이화는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아주 수척하고 초췌해져 몇 차례나 기절해 쓰러졌다. 가족은 조기 석방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경찰은 거부했는데 왕루이화가 ‘전향’을 거부해 파룬궁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12년 4월, 왕루이화는 음식물을 먹을 수 없었다. 몸무게가 35kg에 불과해 강제로 링거를 맞혔다. 가족이 면회할 때,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걸어갔다. 왕루이화의 가족은 경찰에게 무엇 때문에 왕루이화의 몸이 이렇게 극도로 허약해졌는지를 질문했다. 대대장 리(李)씨는 왕루이화에게는 병이 없다며 그녀가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자신의 정서 때문에 조성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오히려 노동교양소 경찰에게, 왕루이화에게 왜 이런 나쁜 ‘정서’가 생겼는지, 그녀가 어떤 박해를 당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동시에 이는 왕루이화가 당한 박해와 그녀가 납치당했을 때 당한 모욕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왕루이화는 작년 2월 26일에 성리 파출소로 납치당한 뒤, 악독한 경찰 왕충허(王從河)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했다. 왕충허는 또 몽둥이 하나를 들고 광적으로 그녀를 구타했는데 줄곧 몽둥이가 구타로 부러질 때까지 때렸다. 그런 다음 다가가서 왕루이화의 바지를 벗기고 능욕을 시도했다가 왕루이화에게 강한 저항을 받았다. 그는 그제야 부득이 손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경찰 두 명이 줄곧 현장에서 전체 과정을 목격했다.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문밖에는 또 한 이른바 책임자가 있었는데 뜻밖에 문틈으로 몰래 살펴보면서도 저지하려 하지 않았다. 2월 26일 밤, 왕루이화는 성리 파출소에 의해 하룻밤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그 기간에 악독한 경찰 왕충허와 다른 한 이름 모를 악독한 경찰은 따로따로 네 차례나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를 구타해 쓰러 넘어뜨리고 그녀의 몸 위에 타고 앉아 옷을 벗기고 능욕을 가하려고 시도했다. 심지어 “너를 강간할 테다.”라고 소란을 피웠다.

왕루이화가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뒤, 가족은 2011년 9월에 반차오 노동교양소로 면회하러 갔다. 왕루이화는 가족에게 성리 파출소 경찰이 납치, 가택수색, 재물강탈과 자신을 구타한 동시에 능욕하려 시도한 죄행을 폭로했다. 왕루이화의 가족은 이미 이것으로 성리 파출소를 신고했다. 그러나 여태껏 관련 부서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왕루이화는 믿음을 견지했다가 중공(중국공산당)의 악독한 경찰의 납치와 능욕을 당했으나 여태껏 공정한 해결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반차오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돼 연속 박해를 당했다. 이 때문에 왕루이화는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가족은 몇 번이나 석방을 요구했는데 ‘왕루이화가 반드시 ‘전향’해야 한다.’는 답변만 얻었다.

이곳에서 박해에 참여한 모든 경찰에게 권고한다. 파룬궁을 박해하면 반드시 악보를 입을 것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왕리쥔(王立軍)이 바로 사례인바, 저우융캉(周永康)과 장쩌민(江澤民)의 청산도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공은 이미 말로에 들어서서 사분오열되었다. 중공의 이 곧 침몰될 배 위에 자신을 묶는다면 단지 그것의 순장품이 될 수밖에 없다.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출로다.

문장발표: 2012년 04월 1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4/19/2558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