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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기억 잃은 영어 교사, 다시 다롄 감옥에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성(遼寧省) 잉커우(營口)지역 훙치진(紅旗鎭) 파룬궁수련생 처훙페이(車洪飛)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다섯 차례나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게 무리한 납치 및 감금을 당했다. 2008년 4월, 처훙페이는 다롄(大連)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대뇌는 기억을 잃었으며, 생명이 위험해졌을 때에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2012년 1월 11일, 다롄 감옥의 감옥장을 우두머리로 한 한무리의 악도들은 다시 한 번 처훙페이의 집으로 와서 그를 납치했다.

2012년 1월 11일 오전 9시가 넘어서, 다롄 감옥 감옥장은 한 무리의 악도들을 거느리고 잉커우 바위촨(鱍魚圈)의 처훙페이의 집으로 왔다. 당시 혼자서 처훙페이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를 알고 있는가?” 여러 해 전에 박해로 대뇌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처훙페이는 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모릅니다.” 그 사람은 “나는 감옥장이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 무리 악인들은 처훙페이를 납치하기 시작했다. 처훙페이의 70여 세인 모친은 울며 외치면서 가로 막다가 신마저 잡아당겨져 벗겨졌다. 감옥의 악독한 경찰은 여전히 강제로 처훙페이를 차 위로 잡아당겨 납치해 갔다.

처훙페이(42세)는 영어교사로, 파룬궁을 수련한 뒤, 유달리 술을 좋아하고 도박을 즐기는 나쁜 습관을 없앴다. 그는 줄곧 대법의 ‘진, 선, 인(眞, 善, 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사람됨과 글을 가르치는 실력을 현지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2004년 7월, 2005년 6월과 9월 그리고 2006년 3월 사이에 처훙페이는 따로따로 납치, 불법 감금을 당했다. 그 기간, 바위촨 국가보안대대 왕훙쿠이(王洪奎)에게 4천 위안을 갈취 당했고 훙치진 파출소에 의해 납치 당했으며, 가이저우시(蓋州市) 유치장에 감금당했다가 또 잉커우 교양원으로 보내져 노동교양을 당했다. 5개월 후, 폐결핵에 걸려 풀려 집으로 돌아왔다. 처훙페이는 이미 8차례나 핍박에 못 이겨 직업을 잃은 적이 있다.

2006년 2월, 처훙페이는 선양(沈阳) 위훙구(于洪區)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 가 영어를 가르치다가 납치당했다. 바위촨 검찰원은 그에 대해 7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해 안산(鞍山)감옥에 감금했다. 2007년 12월 27일, 당국은 갑자기 처훙페이를 안산감옥에서 다롄감옥으로 옮겼다.

안산감옥의 장시간의 박해로 처훙페이는 생명위험이 나타났다. 그는 누워서 움직이지 못했고, 말을 하고 눈을 뜰 기운조차 없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졌고 전신의 근육이 위축되었으며, 또 심장박동이 문란해졌고 위출혈과 심각한 빈혈 현상이 나타났다.

처훙페이의 부모, 장인과 아내는, 처훙페이가 안산감옥에서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져 다롄감옥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차례로 다른 친척과 친구와 함께 4차나 다롄감옥으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다롄감옥에서는 각종 구실로 회피하며 얼버무렸다. 2008년 4월 24일, 처훙페이가 집으로 돌려 보내졌을 때, 한 숨만 남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더욱 많은 자세한 박해사정은, 랴오닝 잉커우시 영어교사 처훙페이가 당한 박해(사진)를 보시길).

처훙페이한테는 부친과 모친이 있는데 모두 칠순을 넘겼고, 10살쯤 되는 딸이 있다. 처훙페이는 집으로 돌아간 뒤,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었고 대뇌는 기억을 잃었다. 그는 여태껏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70여 세인 부모에게 의거했다. 가족은 항상 그를 걱정하며 매우 큰 고통을 감당했다. 오늘날, 중공의 사악한 당 감옥에 의해 이미 생활능력을 잃은 사람은 다시 다롄감옥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다롄감옥 전화번호:0411-86906662

처장 왕훙량(王宏梁)(핸드폰):13188080608

양(楊)모모: (사무실):0411-86906916

감옥복무전화 :0411-86906668

문장발표: 2012년 02월 0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1/252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