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현수막을 펼쳐 10년의 불법재판 당한 엔지니어,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산둥보도) 산둥 칭다오시 파룬궁수련생 사오창은 2000년 12월에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99미터의 현수막으로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펼쳐 보이고 중공(중국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 후 10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고 지난감옥에서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잔혹한 박해를 당해 정신이상이 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사오창은 검은 소굴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차츰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세상 사람들이 중공의 사악한 면모를 똑똑히 가리도록 하기 위해 여기서 사오창이 몇 년 동안 감옥에서 당한 각종 박해와 고문을 세상에 폭로하겠다. 아래는 사오창이 당한 박해의 일부 사례이다

사오창은 원래 칭다오 항우2회사의 엔지니어로,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가지 새로운 항목을 연구해 낼 만큼 머리가 총명하고, 지식이 많으며, 지덕을 겸비한 좋은 청년이다.

중공은 1999년 7월부터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2000년 12월, 사오창은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 수련생과 함께 톈안먼광장에서 99미터의 긴 현수막을 펼쳐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보여주었다. 그런 뒤 중공 경찰에게 납치되어 10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아 산둥성 지난감옥에 수감 당했다.

2001년부터 2004년 까지, 사오창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전향을 거부해 늘 어두운 방안으로 끌려가서 박해를 당했다. 악경(흉악한 경찰)은 그를 공갈 협박했고,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바늘로 손등을 찔렀다. 악경은 구타하다가 지쳐서야 손을 멈추었다.

악경 리웨이는 악독한 죄수 왕씨와 궈를 불러와 결박끈의 쇠고리로 사오창의 치아를 벌려놓고 생식기를 그의 입안에 넣었다. 그런 다음 결박끈으로 오른손과 왼발을 함께 묶어놓아 일주일 동안 허리를 곧게 펴고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악경 리웨이와 구역장 왕씨는 사형수와 죄수에게 사오창에게 질문을 하고 감시하도록 했으며, 결박끈으로 두 팔을 뒷짐결박으로 함께 묶어놓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구타가 끝난 다음 사람이 많은 곳에 던져서 다른 죄수에게 구경시켰다. 점심 때 밥을 먹지 못하게 했으며, 다른 죄수가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오창의 발뒤꿈치에는 아직도 족쇄를 찼던 상처가 남아있다.

2003년부터 2004년 까지 사오창의 가족은 여러 차례 사오창을 면회하러 갔는데, 그때마다 그의 얼굴에 구타당한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산둥성 지난감옥은 매우 사악했다. 악경은 늘 강탈범이나 강강범을 지시해 광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으며, 걸핏하면 파룬궁수련생에게 구타와 고문을 했다. 8감옥대대 11감구역의 15평방미터의 감방 안에 약 50명의 파룬궁수련생이 감금돼있다. 지난의 여름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무덥다. 그런 열악한 환경 하에서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심하게 모욕했다. 한번 앉히기만 하면 하루 종일 앉혔으며, 마음대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이런 인성을 상실한 영창에서 어떤 사람은 1년 동안 갇혀 있었다. 많은 사람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상이 되었다. 사오창은 8감옥대대에 갇혀있는 동안 늘 영창실에 감금당하고, 엄혹한 관리, 강제적인 감시 등을 당했다.

2003년 초, 사오창은 4감구역으로 옮겨져 불법감금을 당했다. 4감구역의 악경은 그가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그에게 엄혹한 관리 박해를 가했다. 낮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온 후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었으나, 그는 독방에 갇힌 채 감옥 규정을 베껴야 했다.

사오창은 구타당한 뒤 몇 평방미터의 어두운 방안에 갇혀 매일 만터우 두 개만 먹을 수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고, 방안에 대야를 놓고 대소변을 보아야 했다. 방안은 고약한 냄새가 풍겨 잠시도 있기 어려웠다. 사오창은 매번 갇히기만 하면 한달 동안 갇혔다.

사오창이 엄혹한 관리를 당하고 영창실에 갇힌 동안 악경은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몇몇 파룬궁수련생이 그를 보러 가려고 했지만 매번 사오창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므로 만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러나 악경들은 위선적으로 면회 온 가족을 알뜰히 보살피고, 이것으로 책임을 미루었다.

2003년 3월, 사오창의 어머니는 사오창을 보러갔다가 아들의 손에서 바늘에 찔린 상처를 발견했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자 악경이 그를 재우지 않고,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손등을 바늘로 찔렀다고 사오창은 말했다. 가족이 한 달 후에 다시 그를 보러갔을 때에는 얼굴에 구타당한 상처가 있었다.

2003년부터 2004년 초까지 친척과 친구가 사오창을 면회하러 갔을 때, 감옥에서는 몇 번이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사오창이 또 구타당했거나 영창실에 갇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면회가 허락되었을 때, 사오창의 얼굴과 목에는 구타당한 상처가 있었다.

2004년 6월, 형이 면회 갔을 때 사오창의 얼굴과 목은 구타를 당해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사오창의 어머니는 듣자마자 지난으로 가서 9일 동안 머물렀다. 9일 동안 어머니는 도처로 사법기관을 찾아 갔지만 모두 감옥에서 사람을 구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매번 사오창의 상처를 본 경험을 글로 작성해서 사법기관에 보냈다. 맨 마지막에 자오취검찰원 검찰장을 찾아 감옥에 가서 사오창의 상황을 조사하라고 재촉했다. 이튿날 어머니가 검찰원으로 갔을 때 검찰장은 사오창이 구타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곧 그들에게 말했다. “만약 구타하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신고하러 오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성감옥을 신고하고 있는데, 나도 어깨의 짐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사오창을 구타하지 않았다면 나는 무고죄를 질 것입니다. 당신들은 구타하고도 승인하지 못합니다. 만약 승인한다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러자 원장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약간의 상처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했다.

사오창의 모친은 산둥성 감옥관리국 대문 밖에서 팻말을 들고 항의를 하여, 성감옥관리국에서 무조건 그녀의 아들 사오창을 석방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2006년, 한 친구는 사오창이 감옥 안에서 박해당한 경험을 편지로 써서 사오창의 가족에게 알려 빨리 가서 사오창을 구하라고 했다. 가족은 편지를 받은 후 7월 23일에 지난으로 가서 먼저 사오창을 만나서 상황을 파악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아들이 박해당한 경험을 플라스틱판 위에 써서 상점 앞과 관광지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성 감옥관리국 앞에서 12일간, 성 감옥 앞에서 8일 동안 펼쳐놓고 민중들에게 중공감옥의 죄악을 폭로했다. 감옥에서는 매우 두려워했다.

2008년 12월 31일, 사오창은 꼬박 8년 동안 지옥 같은 학대를 당한 뒤 검은 소굴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문장발표: 2012년 01월 2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8/252471.htm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