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시 보도) 산시(山西)성 허우마시(侯馬市) 전기토목(電氣土木) 엔지니어이자 파룬궁수련생 루하이싱(陸海星)은 2012년 1월 10일 이른 아침 3시가 넘어 산시 진중(晋中)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5세였다.
2010년 7월 25일 저녁, 허우마시의 악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루하이싱을 납치했다. 11월과 12월에 두 차례나 불법으로 재판을 열었으나 결과가 없었다. 2011년 1월에 구치소에서 루하이싱은 5년의 불법 판결을 내렸다는 통지를 받았다. 한 악독한 법관은 루하이싱이 너무 완고해 그의 가족과 아이들마저 동정할 가치가 없기에 중형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루하이싱은 1966년 7월 6일에 출생한 산시성 허우마시 성젠이회사(省建一公司) 전기토목 엔지니어이며 현지에서 기술권위자다. 박해당하기 전에 몸무게는 95kg이 넘었고 몸은 매우 건강해 질병이 없었다. 가족이 문의하자 감옥에서는 갑자기 뇌경색이 도졌다고 대답했다. 동영상을 통해 3시 15분쯤에 비정상적인 증상이 나타났는데 같은 방안의 감옥 친구에게 발견되어 보살핌을 받았음을 발견했다. 4시 20분에 감옥경찰이 도착했는데 그는 이미 호흡을 멈췄다.
이전에 진중감옥에서 박해당한 파룬궁수련생의 증언에 따르면 감옥에서는 일부러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한 죄수를 바오자(包夾, 감시인원)로 배치해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고 한다. 악독한 경찰은 공개적으로 바오자를 시켜 ‘대담하게 관리’하라며 ‘일이 생기면 교도관이 책임진다’고 했다. 박해수단은 주로 다음과 같다. (1) 폭력으로 ‘전향’(강제로 믿음을 포기) 시키기와 24시간 바오자 감시하기, 욕설을 퍼붓고 감시하며 세워두는 고문을 가하고 구타하기, 노역노동 시키기. (2) 영창실에 가두거나 혹은 무기한으로 엄한 관리실에 가두기, 구타하기, 장시간 동안 세우기 고문 가하기, 수면 박탈하기, 족쇄와 수갑을 채우기 등 수단으로 잔혹하게 학대했다. ‘좌반에 앉히기’(군대자세로 앉히기와 흡사함) 고문을 당한 기간에 늘 뺨을 맞고 발에 채였으며 심한 구타를 당했다. ‘좌반에 앉히기’ 고문을 가장 길게는 8개월 동안 당했다. 그리고 서로 말하지 못하게 했고 음식물과 화장실 가는 것도 제한했으며, 또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온종일 ‘면벽(面壁)’(체력을 소모함)하고 세워두는 고문을 당하는데 발끝과 복부, 코끝을 벽에 붙여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손찌검을 하고 발로 밟았다. 어떤 수련생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어떤 이는 고문박해 하에서 ‘단식’으로 항의하다가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적어도 4명의 파룬궁수련생이 학대 속에서 생명을 잃었다. 그중에 류즈빈(劉志斌)이 있는데, 그는 류제윈(劉接運)이라고도 부르며 링추현(靈丘縣) 우링진(武靈鎭) 시관촌(西關村)사람으로 2004년 7월 22일 저녁에 악인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40여 세인 파룬궁수련생 왕즈강(王志剛)은 2008년 7월 10일에 납치 및 3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는 진중감옥에서 감옥 경찰의 지시를 받은 악독한 죄수에게 여러 차례나 혹독한 구타를 당해 오른쪽 눈이 실명했고 왼쪽 눈은 흐릿해져 거의 실명에 이르렀다. 왕즈강을 접촉했던 사람은 모두 그가 진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고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김을 알고 있다. 왕즈강은 1996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8년 8월, 전국에 홍수가 난 기간에 그는 세책(租書)경영으로 번 돈 만 5천 위안을 모두 기부해 당시‘타이위안(太原) 석간신문’에서 보도된 바 있다.
진중감옥의 일체 박해를 감행한 상부 책임자: 산시성 사법청과 산시성 감옥관리국은 그것의 상급 주관단위다.
역주 : 박해에 참여한 관련 기관 및 명단, 연락처는 원문을 참조 바람.
문장발표: 2012년 01월 1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8/2519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