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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박해당한 치치하얼 수련생 고문으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헤이룽장보도) 치치하얼시(齊齊哈爾市) 여성 파룬궁수련생 류이(劉利, 60여세)는 파룬궁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줄곧 현지 신궁디(新工地) 파출소경찰에게 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 납치, 감금당했다. 또한 과거에 이미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고문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녀는 치치하얼시 구치소에서 파룬궁수련생 하오즈메이(郝智美)가 고문으로 사망한 것도 직접 목격했다. 류이는 12년 동안 박해 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스스로 말했다.

베이징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러 가다가 납치당하다

1999년 12월 17일 저녁 10시, 나는 딸과 함께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기차가 막 움직이자마자 3명의 경찰이 신분증을 검사하고 불법으로 가방을 수색해 우리를 식당차로 끌고 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대법을 욕하도록 핍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대략 5~6명 경찰들은 곧 나와 딸 그리고 2명의 파룬궁수련생 우리전(吳立珍)과 류수잉(劉淑英)을 타이라이(泰來)공안국 인근으로 납치 감금했다. 우리는 이튿날 타이라이 공안국으로 납치당했다.

당시 타이라이공안국 국장은 정보과 과장과 2명의 여경을 거느리고 와서 불법으로 우리 몸을 수색하고 심문했으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이름과 주소를 보고하지 않자, 아래층의 머리를 박박 깎은 악독한 경찰은 흉악하게 한 손으로 몽둥이를 치고 눈을 도사리며 우리를 공갈 협박했다. 날은 어두워졌으나 그들은 여전히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를 타이라이 구치소에 가두고, 물을 주지 않고 밥도 주지 않았다. 우리 네 사람은 함께 대법을 외우고 연공했다.

12월 20일, 가족 자오샹린(趙向林)이 악독한 경찰에게 단서를 제공했던 이유로, 신궁디파출소의 경찰 판카이(樊凱), 싱후이민(邢會民)은 우리를 신궁디파출소에 가뒀다. 동시에 우리 4명의 수련생 몸에 있는 3천여위안을 강탈했다. 그들은 12월 21일에 우리를 밤낮으로 불법 심문했다.

이튿날, 신궁디파출소경찰은 헤이룽장(黑龍江) 치치하얼시 톄펑(鐵鋒)분국의 악독한 경찰과 결탁하여 우리가 더욱 많은 수련생을 실토하도록 불법 심문하고 핍박했다. 그리고 또 불법으로 신체검사를 하고 밤중에 우리 4명을 치치하얼 제2구치소에 가뒀다.

당시 그곳에 백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했는데, 모두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을 보호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납치당한 것이다. 매일 우리는 핍박에 못 이겨 14시간동안 판자침대에 앉아있었는데 솜바지는 닳아버렸고 발의 뼈는 검은 자색으로 변했다. 매일 워터우(옥수수 가루나 수수가루 따위의 잡곡 가루를 원뿔 모양으로 빚어서 찐 음식)에 배추국이었는데, 사발 밑바닥은 온통 모래였다. 사람이 많아서 판자침대에 옆으로 누워 잠을 자야 했으며 밤새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여경 궈리눠(果麗娜)와 뤼정(吕錚) 등은 늘 돌격적으로 개인물품을 수색하고 조사했다. 감방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있어서 저녁에 불을 끄지 못하게 했다. 당시의 대장 린(林)모는 늘 파룬궁수련생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었고, 딱딱한 흰색 플라스틱배관재로 사람을 후려쳤고 뺨을 때렸으며, 특별히 제조한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파룬궁수련생 톈슈링(田秀玲)은 독방에 갇혀 박해를 당했다. 화장실로 가는 것도 목욕을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구타당하고 욕을 먹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견정했다. 악독한 경찰은 톈슈링의 모친 자(賈)아주머니의 손발을 함께 묶고 그녀를 다그쳐 걷게했다.

끊임없이 교란과 박해를 당하다

나와 딸 사오자닝(邵佳寧)은 2001년 3월 21일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톄펑구(鐵鋒區) 룽화지국(龍華分社)은 신궁디파출소 경찰과 수광(曙光)2위원회 주임 자오(趙)모와 무작정 맞장구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우리집에 와서 교란하고 이웃에게 우리를 감시하게 했다.

2004년 9월, 나와 딸은 집을 이사했다. 신궁디파출소의 경찰 바이궈주(白國柱) 등은 딸의 직장으로 가서, 총지배인에게 딸이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공갈 협박해 말했다. 보안부장은 딸을 핍박해 2명의 경찰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조사받도록 했다. 그 후 신궁디 소장 왕밍장(王明江)은 몇 사람을 거느리고 집으로 가서 교란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2005년 3월 9일, 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데, 칭윈로(青雲路)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2명이 나를 납치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나의 두 팔을 쇠우리에 매달고 큰 괘에 올렸다. 동시에 소파위에 다리를 가로 놓고 악독한 경찰 저우환위(周環宇), 친젠궈(秦建國)가 그 위에 앉아 힘껏 내리 눌렀다. 또 저우환위는 나사돌리개로 늑골을 찌르면서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못살게 굴어 죽여도 아무도 알 수 없다. 괴롭혀 죽인다 해도 자살로 친다.”고 공갈협박 했다. 그들은 나의 머리위에 몇 십 근 되는 큰 쇠모자를 씌워놓았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친젠궈 등 악독한 경찰 4명은 나를 집으로 끌고 가서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3월 10일, 그들은 나를 치치하얼구치소로 납치해 불법 감금했다. 그곳에서 악독한 경찰은 매일 감옥규정을 외우고, 사악한 당의 노래를 부르도록 핍박했으며, 워터우에 배추국을 먹였다.

하오즈메이가 치치하얼시 구치소에서 고문으로 사망하다

파룬궁수련생 하오즈메이는 전베이다제(北大街) 초등학교 교사로, 그녀도 3월에 제1구치소에 불법감금 당했다. 악독한 경찰은 하오즈메이를 치치하얼시의 ‘두목’으로 여겨 그녀에게 몇 십 가지 고문박해 했다. 가장 사악한 것은 칫솔 4개를 그의 음부에 꽂아 넣은 것이다. 그녀를 박해한 악독한 경찰 중에 많은 사람은 이전에 모두 그녀의 학생과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루걸러 하오즈메이는 심문을 당한 뒤 박해로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구치소의 악독한 여경 런다샤(任大霞)는 하오즈메이가 큰 공을 세웠기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고 속였다. 뻔뻔하게 큰소리치며 사람을 속였다.

어느 한 파룬궁수련생 장(張)씨는 철도교사인데, 당시 그도 제1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장씨가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연공을 견지하자, 악독한 경찰 런다샤는 빗자루로 구타했다. 런씨는 철도병원 인근에 음식점을 차린 여성 파룬궁수련생 리씨를 음흉하고 악랄하게 구타했다.

파룬궁수련생 쉬위샹(徐玉香, 이전에 정신병력이 있었음)은 조급하고 속이 타서 정신이 좋지 못했다. 악독한 경찰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노동교양소에 가둬놓고 1년 동안 불법 박해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쉬씨의 병은 점점 심각해졌다.

2005년에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다

2005년 6월 6일, 나는 솽허(雙合)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다. 솽허노동교양소의 사악한 소장 샤오(肖)모는 교도원왕(王)과 각 대대의 대장을 지시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여 강제로 믿음을 포기하는 전향서를 쓰게 했다. 여성대대 대장 장즈제(張志傑)는 우리가 사악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들은 전향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전향하려 해도 전향해야 하고, 전향하지 않으려 해도 전향해야 한다.” 그리고 감시 관리 전문요원을 파견해 강제로 전향서를 쓰도록 핍박했으며 밥을 먹이지 않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노동교양소에서는 1년 내내 변질된 배추를 먹였다. 명절 때면 변질된 오리고기를 먹였지만, 악독한 경찰들은 전문적으로 작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급식이 좋았다. ‘상부’에서 검사하러 오면 곧 고기를 탁자 위에 놓았다가, 검사가 끝나면 곧 치웠다.

2005년 6월 7일, 솽허노동교양소에 면회 온 남동생은 바오자(包夾) 대장 자오리쥐안(趙麗娟)에게 50위안을 주었다. 그는 돈을 자신의 허리춤에 넣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이쑤시개 고르기, 젓가락 고르기, 수공꽃 만들기, 조롱박 붙이기 등 노동노역을 시켰다. 수련함에 확고한 파룬궁수련생 리순잉(李順英)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으나 핍박으로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그리고 잠을 재우지 않고 전향당한 파룬궁수련생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으며, 가족과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다.

2005년 말, 한번은 몸을 수색할 때 악독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의 책상 안에서 경문을 발견했다. 악독한 경찰 왕메이(王梅)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욕설을 퍼붓고 대법을 공격했다. 왕메이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허파가 이미 그물상태로 변했으나 박해는 여전했다. 늘 그의 능력을 신문기사로 실어 표창을 받았다. 여성 파룬궁수련생 리씨는 수련에 확고했던 이유로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그리고 여성대대 대대 장궈리(郭麗)는 몸을 수색할 때 그녀에게 100위안의 돈이 있는 것을 발견하자, 뺨을 때리며 저속한 말로 대법을 욕했는데 극도로 잔인하고 악독했다.

‘610’의 악독한 우두머리 뤄간(羅幹)은 치치하얼 솽허노동교양소로 시찰하러 갔는데, 악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에게 청소를 시키고 바닥 위의 층계를 닦은 다음 붉은색 양탄자를 깔게 했다. 그리고 10여명의 젊은 노동교양인원을 시켜 널찍한 방안에서 일하게 하면서 시찰했다. 노약자와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은 전부 남성 감방에 가둬 만나지 못하게 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 매주 일기를 쓰고, 감옥 규정을 외우게 하고, 늘 시험을 치며 무슨 ‘팔영팔치(八榮八耻)’를 외우도록 했으며, 연속 14시간 동안 일을 시켰다. 악독한 경찰 푸청쥐안(符成娟)은 약간의 이익을 더 볼 속셈으로 고액의 생산량을 정해서, 완수하지 못하면 곧 욕설을 퍼부었다. 악독한 경찰은 또 파룬궁수련생을 선택해 그들을 시중들게 하고, 설거지하고 옷을 씻게 했으며 똥오줌통을 버리게 했다. 악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의 선량함을 이용해 수법을 바꿔가면서 박해했다. 인간지옥의 사악한 노동교양소에서 나는 1년 반 동안 박해를 당했다.

2008년 미행, 감시당하다

2008년, 신궁디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리청량(李成亮)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특별히 부탁해 총 한 자루를 지니고 왔다. 나와 딸을 ‘상부’에 ‘중점’으로 보고하여 장시간 사람을 파견하여 거주지를 감시하게 하여 인권침범이 심각했다.

리청량은 관직에 오르기 위해 극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으며, 또 신궁디 파룬궁수련생 양리천(楊立臣)을 그가 붙잡았다며 과시했다. 양리천은 지금 4년의 불법판결을 선고 받았고, 그의 딸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리청량은 지금 톄펑분국에 파견되어 ‘610’과 협력하여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기간, 악독한 경찰은 날마다 나와 딸을 미행했고, 집에 지소(分社)의 악독한 경찰을 파견해 호구조사를 했다. 그들은 딸의 직장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고, 딸이 수업하는 곳까지 감시했으며, 최저생활보장인원을 협박해 딸이 타고 다니는 버스 역에서 잠복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자와 여자를 매수하여 딸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동시에 나의 신분증을 압수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받지 못했다.

2011년 4월에 다시 납치당하다

2011년 4월 15일 오후 1시경, 나는 치치하얼 제2선반공장의 옆문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실제로 이 세 사람은 전문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악인들이었다. 이때 두 악인이 빙빙 돌고, 한 악인이 전화를 걸어 우룽(五龍)파출소에 통지했다. 나는 한 무리 악독한 경찰에게 우룽파출소로 납치당했다. 악독한 경찰 하오쥔(郝軍)은 나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고, 악독한 경찰 저우환위(周環宇)를 비롯한 소장 리훙웨이(李宏偉)와 8~9명의 악독한 경찰은 우리집을 가택 수색하여, 대법경서와 자료를 강탈해갔다. 그리고 나를 구치소로 납치한 후 박해하려고 시도했다. 신체검사를 할 때 나에게 심각한 ‘병’상태가 나타났던 이유로, 구치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리훙웨이는 단념하지 않고 단독으로 구치소 소장을 찾아가서 나를 구치소에 가두도록 요구했다. 3시간 동안 서로 양보 없이 맞서다가 마지막에 구치소에서는 나에게 병이 있고 연령이 63세가 넘었다고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은 나를 파출소로 데려와 쇠의자에 채웠다. 리훙웨이는 나에게 3천 위안에서 5천 위안까지의 보증금을 낼 돈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 후 악독한 경찰은 여동생에게서 5천 위안과 그 밖에 5천 위안의 금품을 갈취하고 나서야 나를 석방해주었다. 11월 25일에 악독한 경찰은 전화를 걸어 감옥 밖에서 나의 형기를 집행한다고 알리고 이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도록 했지만, 우리는 사악을 승인하지 않았고 협조하지 않았다.

악인이 악보를 입다

수광(曙光)2위원회 주임 자오(趙)모는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적극적으로 박해하여 자업자득하였다. 그의 딸은 미쳐서 늘 울고불고하면서 화가 나면 그를 마구 때렸다.

신궁디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싱후이민(邢會民)은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참여해 허리가 아파 곧게 펼 수 없게 되었고, 지금은 또 중병에 걸렸다.

문장발표: 2011년 12월 2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25/2510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