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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리신, 뤄양시 경찰에게 납치되어 8일 만에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장쑤성(江蘇省) 쉬저우시(徐州市) 파룬궁수련생 왕리신(王立新)과 왕융신(王永新)은 형제이다. 파룬궁 박해 12년 사이 두 사람은 여러 차례나 중공(중국공산당)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진 적이 있다. 2011년 2월 12일, 허난(河南) 뤄양시(洛陽市)에서 근무한 형 왕리신은 뤄양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게 납치되어 그날로 뤄양 구치소에 갇혔다가 8일 후에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51세였다.

왕융신은 중공 악독한 경찰이 두 형제를 박해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나의 형 왕리신은 1997년에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 나도 형의 소개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법 수련 중에 이로움을 많이 얻었다. 수련한 지 겨우 며칠 만에 위장병이 나았고, 심신은 수련 중에서 아주 큰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20’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우리 두 형제는 파룬궁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했다가 중공 당국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정신병원에 갇히다

중공 사악한 집단은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홍보 대변인을 조종해 온 천지를 뒤덮을 듯한 기세로 파룬궁을 모함했다. 파룬궁의 올바름을 되찾기 위해, 1999년 10월, 나와 형 그리고 다른 수련생 2명은 열차에 올라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 갔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막 펼치자마자 경찰 8명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우리의 머리를 땅위에 내리누르고 수갑을 채워 경찰차 위에 끌어올렸으며 경찰봉으로 혹독하게 구타했다. 3일 후에 현지로 납치당했다. 공안국 국가보안과장 장궁량(張珙亮)과 610 주임 장융청(薑永成)은 직접 우리들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신경파괴약물을 강제 주입당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명현상이 있다. 우리는 정신병원에서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다.

불법감금, 노교 등 박해

2001년에 나는 파룬궁을 결연하게 수련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형도 파출소와 610에게 체포되지 않기 위해 장쑤를 떠나 뤄양으로 왔다. 2006년 12월, 나는 쿠이산(奎山)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혹독한 구타로 근육을 다치고 뼈가 부러져서야 석방되었다.

2008년 7월, 나는 수련생에게 자료를 보내주다가, 마침 악독한 경찰이 가택수색할 때 마주쳤다. 나는 즉시 납치당해 쉬저우시 구치소에 갇혔다가, 이튿날 장쑤성 팡창(方強)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나는 비인간적인 잔혹한 박해, 욕설 퍼붓기, 체벌, 구타, 각종 고문을 당했다.

형 왕리신, 박해로 사망

왕리신은 2011년 12월 아침, 왕청(王城)공원에서 수련생과 함께 시민에게 파룬궁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뤄양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납치되어 그날로 뤄양시 구치소에 갇혔다. 왕리신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단식 셋째 날, 악독한 경찰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학대를 가했다. 악독한 경찰 대장 장제(張傑), 류하이강(劉海剛), 자오궈화(趙國華) 등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으며, 장제는 죄수를 교사해 대법수련생을 혹독하게 때리게 했다.

2월 20일, 왕리신은 구타로 사망했고 시신은 구치소에 의해 103사회구역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가짜 병력서를 만들었는데, 왕리신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핑계를 댔다. 중공 사악한 당 인원은 또 죄수 한 무리를 협박해 위증을 서게 한 뒤에 시신을 뤄양 화장터로 끌어갔다. 가족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2월 22일, 강제로 화장했다. 구치소에서는 왕리신이 괴로움을 당하고 구타로 사망한 7호 감방의 모든 인원과 목격자를 해산했고, 죄수에게 외부에 대해 통일적인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했다.

같이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 리즈바오(李志寳)는 2월 23일, 103사회구역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살아났다.

문장발표: 2011년 12월 2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29/2509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