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쓰촨 여자 감옥에서 학살당한 위안융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올 68세의 쓰촨성(四川省) 츙라이시(邛崍市) 파룬궁수련생 위안융원(袁永文)은 쓰촨 여자 감옥에서의 박해로 전신이 마비되고 의식이 없는 사망 직전의 상태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는 가족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1년을 더 살았으나 감옥에서의 심각했던 후유증으로 2011년 5월 7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袁永文
생전의 위안융원(袁永文)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12년 동안, 쓰촨(젠양 양마허(簡陽養馬河)) 여자 감옥은 파룬궁수련생을 소위 ‘전향’시키기 위해 각종 고문으로 학대했다. 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을 학살하고 그 책임을 회피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각종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가하고, 각종 독약으로 생명이 위독해 질 때까지 심신을 파괴했다. 곧 사망하리라는 감옥 병원의 감정을 받은 후에야 귀가를 허락했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게 했으며, 일부는 ‘보석’으로 석방했다. 감옥의 한 책임자는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반복적으로 “전향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되 여기서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병원이 아닌 집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누구도 우리를 추궁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며 협박했다.

위안융원은 츙라이시 전동기계공장 퇴직 직원으로서 정부 기숙사에서 거주했다. 파룬궁을 열심히 수련해 진선인(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다. 허약한 체질에 잔병이 많았던 그녀는 수련 후 신체가 건강해져 자식들에게 조금도 경제적 부담을 준 적이 없으며 인자하고 선량하게 변했다. 중공이 박해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지어 낸 고혈압과 심장병은 없었다. 그녀는 4차례에 걸쳐 불법 납치되어 박해받았다.

2008년 3월 26일, 진상을 정확히 모르는 한 시민이 츙라이시 시제라이시(西街萊市)에서 진상활동을 하던 그녀를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급히 출동한 츙라이시공안국 국가보안대대의 옌사오이(嚴紹毅)를 포함한 17명의 경찰들은 위안융원을 불법납치하고 즉시 가택을 수색했다. 가족들이 문을 열어주자 경찰들이 들이닥쳐 위안융원의 침실 문을 부수고 대법서적과 mp3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그녀는 당시 침대 기둥을 안고 흉악한 경찰들의 불법납치에 저항했다. 경찰들이 달려들어 머리카락과 사지를 잡아 차에 내던졌으며 바로 공안국으로 이송된 그녀는 그날 오후 불법으로 츙라이시 구치소에 감금되어 박해받았다.

그녀는 7개월 간 불법 감금되어 심신을 파괴당했다. 10월 중순경 츙라이시 법원은 가족에게는 일체 통지도 하지 않고 적법한 절차도 무시한 채 3년형을 선고했고, 악명 높은 쓰촨성 젠양 양마진(養馬鎭) 여자 감옥으로 보내 박해했다.

소식에 따르면, 그녀는 약간의 변비 증상이 있었지만 간수는 강제로 독극물을 주입했다고 한다. 결국 정신이 흐리멍덩해진 위안융원은 매일 감방 안을 끊임없이 돌아 다녔다고 한다. 그 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진 그녀를 흉악한 간수 리춘(李春)이 간병원 류단(劉丹)을 지시해 매일 밤 잔인하게 구타했고, 구타로 미추골이 부러진 그녀를 경찰은 엄살을 부린다며 다른 죄수를 시켜 양팔을 끼운 채 끌고 갔다고 한다.

불법 수감 중에도 흉악한 간수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가족들을 괴롭혔다. 그녀의 남편 탕차이밍(唐才銘)에게 이익을 주겠다고 유인해, 면회를 통해 소위 ‘전향’을 종용했으며 수련을 포기한다는 보증서 작성을 강요했다. 다른 한 편 고문으로 그녀를 박해해 ‘전향’시키려 했다.

위안융원은 교도소에서도 일체 협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찍이 박해로 수차례 생명이 위독했다. 2009년 12월 쓰촨성 경관 총병원으로 이송되어 박해받은 적이 있다.

2009년 12월 9일 그녀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중공의 흉악한 하수인들은 상호 협조했다. 젠양 양마진 여자 감옥 제2동의 책임자 리씨와 츙라이시 공안국 카오펑(考棚), 사회구역 경관 허관훙(何官紅), 츙라이시 국가보안대대 옌사오이(嚴紹毅)는 서로 결탁해 위안융원의 남편 탕차이밍(唐才銘)을 이익을 주겠다고 유인해 위안융원이 평소 고혈압과 심장병을 앓았다고 거짓 증언하게 했다. 위협을 받은 상황에서 탕차이밍은 전화상에서 마음을 어기고 거짓말을 승인했으며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21일, 흉악한 경찰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사경을 헤매는 위안융원을 집으로 돌려보내며 길어야 2,3시간이면 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위안융원은 전신이 마비상태였다. 피골이 상접한 그녀는 온몸이 경직됐고 호흡도 미약했다. 음식도 먹지 못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소변줄을 꼽은 상태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소리를 해댔다. 그녀는 자신을 건드리기만 하면 ‘나를 때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오른쪽 팔에는 수많은 주사바늘 구멍이 있었고, 수시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二零一零年四月二十日在成都警官医院见到袁永文时,她已经被迫害得瘦骨嶙峋、神志不清
2010년 4월 20일 청두 경관병원에 입원한 위안융원. 그녀는 이미 박해로 뼈만 앙상했고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위안융원이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은 그녀를 정성으로 보살폈다. 매일 미음밖에 먹을 수 없었고 일체 거동이 불가능해 모든 일을 침대 위에서 치뤄야 했다. 1년 넘게 고통에 시달려 온 그녀는 2011년 5월 7일 새벽 5시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대단히 비통해 했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젠양 여자 감옥은 이런 방식으로 이미 최소 10명의 파룬궁수련생을 학살했다. 사망자는 다음과 같다. 자장현(夾江縣) 옌청진(嫣城鎭)의 리위화(李玉華), 러산시(樂山市)의 린리사(林麗莎), 젠양 차오츠진(草池鎭)의 후구이팡(胡桂芳), 네이장시(內江市)의 양정비(楊正碧), 시창시(西昌市)의 마오카이밍(毛開明), 청두의 뤄잉제(羅英傑), 청두의 멍샤오(蒙潚), 러산의 천원아이(陳文艾), 츙라이시의 위안융원이다.

문장발표: 2011년 12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2/250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