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베이징 미윈현 추이페이잉, 박해로 세상을 떠남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베이징보도) 베이징시(北京市) 미윈현(密雲縣)의 파룬궁수련생 추이페이잉(崔佩英)은 두 차례나 중공(중국공산당)의 노교 박해를 당했다.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져서 결국 2011년 8월 19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崔佩英'
추이페이잉(崔佩英)

추이페이잉(여, 59세)은 1998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 병이 없어져서 온 몸이 가벼웠고 심신도 건강했다. 그녀는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며 누구에게나잘 대해주어서 친척과 친구, 이웃 등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공산당이 대법을 광적으로 모독하고 비난했다. 대법이 좋음과 사부님의 결백하심을 실증하기 위해 추이페이잉은 여러 차례 톈안먼과 현(縣)정부로 가서 진상을 알리고 행인들에게도 진상을 알렸다가 이미여러 차례 사악에게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2년 8월 31일 그녀는 사당(邪黨)의 경찰에게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했고 중공사당의 2년의 불법 노교처분을 받아 베이징시 다싱(大興)여자노동교양소에 감금당했다. 그녀의 남편은 60에 가까운 반신불수로 그를 보살펴 줄 사람도 없이 혼자 집에 남아있다. 불법 감금기간 그녀가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자 경찰은 그녀에게 잔혹한 고통을 주었다. 그녀를 잠 못 자게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세워두었는데 심지어 더욱 긴 시간을 세워둔 날이더 많다. 감금당한 곳은 2평방미터 되는 작고 캄캄한 방으로 반년 동안 세수도 못하게 했고 작은 걸상에 앉게 하여 마약범과 매음녀를 시켜 그녀의 심신을 학대하게 했다. 그녀는 모두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으로 일하고 선념으로 그녀들을 감화시켰으며 그녀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려서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2004년 8월 31일 석방된 후그녀는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된 3명의 마약판매범과 매음녀에게 새 옷을 사 보내어 그녀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2004년 8월 31일 추이페이잉을 석방할 때 미윈현국가보안과 610 두목 샤오춘밍(肖春明)은 그녀의 집에도 직장에도 통지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아침 8시 사람을 풀어주려 해도 마중 오는 사람이 없자 집으로 전화했다. 반신불수인 남편이 전화를 받은 뒤 지팡이를 짚고 아래층 계단으로 겨우 내려가 택시를 타고 마중 갔다. 몇 백리 길을 가서 감옥에 도착했으나 감옥에서는 직장 사람들이 와야 풀어준다고 했다. 감옥에서 그 후에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고 직장의 사람이 가서야 비로소 그녀를 풀어주어 저녁 8시 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체중이 60kg되는 건강했던 그녀가 노동교양소를 떠날 때에는 걷지도 못하고 몸무게가 35kg도 안 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파룬궁수련을 통해 그녀는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며 아울러 계속해서 진상을 알렸다.

2009년 1월 9일 미윈현국가보안과 610 두목 샤오춘밍은 경찰과 결탁하여 잠복 감시를 해서 또 추이페이잉을 불법 납치했다. 동시에 그녀의 집을 수색해서 컴퓨터, 프린터, CD, CD-RW 및 각종 소모품 등을 강탈했고 2년 반의 불법 노동 교양처분을 내렸다. 그녀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로 경찰의 잔혹한 학대를 당해서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두 다리는 부어올라 그지없이 아팠다. 후에 칼로 종아리의 한 부분을 베었는데 다리 안은 전부 농혈이었다. 농혈이 흘러나온 뒤에 다리의 부기가 가라앉았다.

추이페이잉이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지자 2010년 7월 노교소에서는 죄책이 두려워 병보석으로 풀어주었다. 추이페이잉의 두 다리 뼈, 관절은 심각하게 굵어졌고 현지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중증의 류머티즘성관절염, 임파선암(겨드랑이 부위의 여러 곳) 진단을 내렸다. 겨드랑이에 고름주머니가 생기고 목 위에도 큰 고름주머니가 하나 생겼는데 고름주머니가 터지자 오랫동안 고름이 흘러서 걷기도 어렵게 되었으며 일상생활에도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바로 이렇게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선량한 사람을 감옥, 베이징 미윈현국가보안과, 610에서 여러 차례 집으로 가서 교란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전화와 핸드폰 추적, 미행, 감시, 등 교란으로 그녀의 가족, 친척과 친구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했다. 중공당국의 박해 중에서 그녀의 남편은 사악한 당, 악한 경찰, 악도들의 끝없는 교란과 박해를 감당할 방법도 없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딸과 사위는 베이징에서 거주하고 출근했으며 서로 아끼고 사랑했고 양가 부모에게도 효성스런 부부였다. 610과 국가보안과는 딸과 사위의 직장에서 추이페이잉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녀의 딸과 사위를 출근 못하게 하고 급여를 중지시키며 직장에서 해고시킨다고 위협하여 협박에 못 이겨 금슬 좋던 이 젊은 부부는 이혼했다.

2011년 7월 나이 겨우 59세인 추이페이잉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어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으며 결국 2011년 8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중공 사악한 당은 멀쩡하던 그녀의 가정에 불행을 주어 그녀의 딸을 부모 여위고 이혼한 외로운 딸로 만들었다.

문장발표:2011년 08월 28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28/2459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