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진(鎭)정부 여성연합회장 억울한 재판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파룬궁 수련생 렁둥메이(冷冬梅)는 랴오닝성(遼寧省) 펑청시(鳳城市) 훙치진(紅旗鎭) 사람으로, 이전에 진정부 여성 연합회 주석, 국가공무원을 지냈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여 정부에 사실 정황을 반영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이를 이유로 수차례 중공(중국공산당)으로부터 불법 노동교양 처분과 판결을 총 10년 동안 당했다. 그 기간에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도 정신적, 경제적으로 극심한 손실을 입었다.

렁둥메이는 1998년 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장기간 앓던 민감성 비염, 천식, 손발톱 무좀, 불면 등등의 질병이 완쾌되어 건강을 회복했다. 원래 병이 도질 때면 계단을 몇 걸음만 걸어도 좀 멈춰서 숨을 몰아쉬어야 했지만, 수련한 후에는 농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부에서 근무한 기간에 렁둥메이는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여,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고 욕심을 내지 않아 주변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도덕성이 좋은 간부로 인정받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직장의 책임자는 렁둥메이를 불러 중공이 파룬궁을 모독한 텔레비전 방송을 보게 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좋은 공법이 금지당하는 지 이해할 수 없어 수련을 포기함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후 퇴근 후 서기는 렁둥메이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렁둥메이가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는 계속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권고했으며 강제로 그녀의 대법서적을 태웠다. 렁둥메이는 혼자 방에 앉아서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심사숙고를 거친 후 렁둥메이는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내렸다. 2000년 렁둥메이는 자신이 파룬궁 수련을 통해 얻은 이로움과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로움이 있기에 당연히 박해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장쩌민에게 보냈으나 편지는 펑청시 정부로 되돌려 보내졌고 훙치진 정부의 책임자는 상급의 비평을 받아야 했다.

1. 베이징으로 가서 참말을 했다가 2년의 불법 노교처분을 받아

2000년 11월, 렁둥메이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지만 톈안먼광장에서 무장경찰에 의해 경찰차로 납치당했다. 한 남성 무장경찰은 렁둥메이의 가방을 빼앗고는 발로 그녀의 손을 힘껏 밟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베이징 융딩먼(永定門)파출소로 보내졌다. 4~5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안에 갇혀 핍박에 못 이겨 이름과 주소를 말했다.

렁둥메이는 펑청으로 납치돼 돌아온 뒤, 펑청구치소에 감금당했다. 구치소 안에서 연공했다는 이유로 렁둥메이는 경찰에게 고문을 당한 후 특수한 형구에 채워졌다. 손과 발 사이를 대략 5센티미터 되는 속이 꽉 찬 두 가닥 쇠몽둥이로 이어놓았는데, 이로 인해 허리를 똑바로 세울 수 없었다. 걸을 때는 손으로 쇠몽둥이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겨야 했고, 잠을 잘 때도 옷을 벗을 수 없었으며, 두 가닥 쇠몽둥이를 발 위에 놓아야 했다. 렁둥메이는 음력 12월 20일부터 28일까지 꼬박 8일 동안 이 형구에 채워졌고, 형구를 푸는 날 그녀는 막 허리를 펴자마자 평형을 잃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어느 날은 가족이 5살 되는 아들을 데리고 그녀를 보러 왔다. 아이는 철난간 밖 창문턱 위에 서서 작은 손으로 철난간을 잡고 외할아버지에게 “외할아버지, 빨리 상점으로 가서 쇠톱을 사다가 철난간을 열어서 엄마를 풀어주세요”라고 말해 온 가족을 울렸다.

렁둥메이는 2년의 불법 노교 처분을 받고, 직업을 잃었다. 직장도 이에 연계되어 ‘문명 향과 진’이라는 호칭을 취소당했고, 직장내 모든 사람에게 1백 위안(한화 약 1만 7천원) 상당 지급되던 ‘정신문명상’도 없어졌다.

2.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고 부부가 핍박에 못 이겨 이혼하다

2002년 가을, 렁둥메이는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당시의 파출소 소장 먼광쥔(門廣軍)은 경찰 허위신(何玉新), 쉬진광(徐金光)을 파견해 렁둥메이를 파출소로 연행하려했지만 그녀와 남편은 이를 거부했다.

토요일에 경찰이 또 왔는데 렁둥메이는 핍박에 못 이겨 파출소로 갔고, 소장 먼광쥔은 그녀에게 전단지에 관한 일을 캐물었다. 또한 경찰을 파견하여 가택 수색을 감행해 일부 대법서적과 진상자료를 수색해 냈고, 이를 이유로 그녀를 펑청시 유치장에 가뒀다. 결국 10월에 렁둥메이는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렁둥메이가 랴오닝성 다베이(大北) 감옥 5감구역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 대장 자잉춘(賈迎春)은 그녀가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과 말하거나 서로 마주보지 못하게 했다. 또한 세 명의 ‘바오자(包夾, 감시 인원)’를 파견해 하루 24시간 동안 밀착감시를 하여, 화장실을 가려 해도 한 사람을 불러 깨워서 동반해야 했다. 옥중에서 렁둥메이는 천식이 도져서 사흘이 멀다 하고 병원에 다녔는데, 한 달 동안 입원한 적도 있었으며 2개월 동안 저축했던 6천 위안(한화 1백 여 만원)을 모두 입원비로 써야했다. 그녀는 죄수들에게 ‘샤오촨얼(小喘兒)’로 불렸다. 신장에도 질병이 생겨 소변도 아주 잦았다. 한 번은 그녀가 동반하는 사람 없이 혼자 화장실로 갔다가 감시하는 죄수 허우쉬훙(侯緖紅)에게 한바탕 욕설을 듣기도 했다.

1년 후, 렁둥메이는 ‘병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은 중공에 대한 공포감과 그녀가 다시 고통 받을 일이 생길까 두려워 시시각각 감시하면서 그녀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다. 렁둥메이는 혈뇨하고 ‘+’가 세 개 나타났을 때, 질병이 많았던 원인으로 동시에 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 렁둥메이가 연공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는 단호히 반대했다. 그녀가 가부좌를 하면 구타하고 욕하면서 못하게 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렁둥메이는 기회를 찾아 도망가다가 또 부친과 남동생에게 붙잡혀 되돌아 왔으며, 땅을 밟고 내려 오지 못하게 됐다.

훙치진 정부에서 근무하는 남편은, 파룬궁 수련생을 답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할지에 대해 캐물으며 파룬궁과 남편 중에서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렁둥메이는 모두 선택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자신이 받는 정신적 압력이 너무 커서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정으로 가서 기소할 것이라는 등 핍박에 못 이겨 결국 남편과 협의이혼을 하겠다고 동의했다.

3. 진상을 알리다가 다시 한 번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다

2008년 11월 14일, 렁둥메이는 파룬궁 수련생 류인펑(劉銀鳳), 왕춘전(王春珍)과 훙치진 황치촌(黄旗村)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에 똑똑치 못한 촌민 샤오리(肖麗) 등에게 신고 당했다. 훙치진 파출소 소장 쥐춘보(鞠春波)는 경찰을 거느리고 와서 세 사람을 납치했는데 자전거마저도 현장에 던져져 있었다. 세 사람은 각각 다른 곳에 보내져 불법 감금당했다. 류인펑은 단둥시(丹東市) 구치소, 왕춘전은 펑청시 구치소, 렁둥메이는 둥강시(東港市)구치소로 보내졌다.

둥강시 구치소는 음습해 벽에도 곰팡이가 생겼다. 식사할 때 배춧국에서 진딧물이 떴고, 매주 생활을 개선해서 먹는 닭의 목과 국물 안에도 닭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축한 돈은 먼저 강제로 구치소안의 이불과 생활필수품을 사야 했는데 가격이 배로 높았다. 그리고 또 강제로 노동해야 했다. 렁둥메이는 죄수복을 거부했다가 여성 교도관 츠아이민(遟愛民)에게 뺨을 맞았다. 렁둥메이가 왜 사람을 때리느냐고 묻자 츠아이민은 “내가 구타하지 않으면 나는 죄수를 시켜 구타하겠다”고 말했다. 말을 마친 뒤 곧 다른 감방의 두 명의 죄수 우양(吳陽), 리이(李義)를 불러와서, 렁둥메이에게 감방을 옮겨주겠다고 말했다. 렁둥메이는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가지 않으려 하다가 두 사람에게 억지로 잡아당겨져서 팔이 시퍼렇게 멍들었는데 흔적은 여러 날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렁둥메이는 법정에서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이 때문에 법원에서는 가족에게도 통지하지 않고 비밀리에 재판을 열어 그녀에게 불법 판결을 내렸는데 현장에는 경찰 천(陳)모만 있었다. 렁둥메이와 류인펑은 모두 자신을 위해 무죄변호를 했지만 결국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렁둥메이는 상소했다가 단둥 중급인민법원에서 기각 당했다.

렁둥메이는 둥강 구치소에 있던 기간에 심각한 병상태가 나타났다. 둥강시 중의원에서는 ‘심장쇠약’이란 진단을 내렸으며 수시로 생명위험이 있다고 했다. 또 천식이 심각했는데 다베이 감옥으로 보내졌을 때 감옥측은 수감을 거부했다. 결국 렁둥메이는 병보석으로 풀려났는데, 경찰은 집으로 돌아가서 목숨만 구해도 괞찮다고 말했다.

렁둥메이가 오늘까지 걸어옴에 따라, 사실 그녀의 가족은 마음속으로 파룬궁이 좋음을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공 사악한 당의 세도의 핍박에 못 이겨, 감히 정의로운 입장에 서서 가족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지 못했다.

렁둥메이처럼 이렇게 무고한 박해를 당한 파룬궁 수련생은 중국 대륙에 너무도 많다. 그들과 가족은 진심으로 중국 대륙에서 하루빨리 중공이 해체되어 박해가 중지되고, 다른 민주국가에서처럼 자유롭게 신념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문장발표: 2011년 08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11/245206.html